"수양대군 납시오~~!"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의 압도적인 등장 장면을 다들 잊지 못할 것이다. 사냥을 마치고 피 묻은 얼굴로 사저에 돌아오는 그 강렬한 장면말이다.
어쩌면 그날 수양대군이 거칠게 짐승을 몰고 사냥을 즐겼던 곳이 바로 우리 동네, '중곡동'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 11년(1465년), 이 일대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세조(수양대군)가 친히 몰이사냥에 나섰다는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다. 당시 호랑이들에게 중곡동을 포함한 '살곶이벌'의 거대한 왕실 말 목장은 그야말로 뷔페나 다름없는 사냥터였기 때문이다.
왕실의 최고급 말 목장, 지명에 남은 중곡동 일대의 흔적
우리 중곡동 인근의 동네 이름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이 일대가 거대한 국립 목장이었음을 증명하는 재미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마장동(馬場洞) - 말 키우던 마장안으로 불리다가 마장리로 동명이 확정
장안동(長安洞) - 마장동과 함께 마장안으로 불리던 곳. '마'를 빼고 장안, 장내로 불리다 일제가 한자음 長安으로 둔갑시킴
송정동(松亭洞) - 마장동, 장안동과 함께 숫말을 키운 터, 숫마장 발음이 솔마장으로도 불리고 일제는 또 착각하여 소나무(松)인줄 알고 송정리라 함
자양동(紫陽洞) - 암말을 키운 자마장(雌馬場)터, 일제가 한자로 기록하면서 또또 착각하여 비슷한 한자인 자양리으로 적음
모진동(毛陳洞) - 왕실말이 근처 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를 근처 '모진' 여인들이 건져내서 고기를 먹었다는 유래
면목동(面牧洞) - 말 목장(牧)을 마주(面)보고 있는 동네라는 뜻
화양동(華陽亭) - 세종대왕이 살곶이벌 목장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관리하기 위해 지은 거대한 정자 '화양정(華陽亭)'에서 유래
그리고 중곡동(中谷洞) - 목장들 가운데(中) 있는 작은 마을(간뎃말)이라 불렸으나, 일제가 한자로 옮기며 중곡리가 됨
지금 우리가 쓰는 동 이름 상당수는 1914년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며 한자로 정리되었다. 담당자가 지 맘대로 한자로 적은게 그대로 정착했다.
태조부터 세종, 세조까지… 왕들이 사랑한 핫플레이스
이곳이 조선 최고 등급의 왕실 목장 겸 사냥터가 된 이유는 명확하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평탄하고 거대한 살곶이벌을 왕실 목장 겸 군사훈련(강무) 장소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중랑천과 청계천, 그리고 용마산과 아차산이 이 일대를 마치 섬처럼 빙 둘러싸고 있어 말이 도망갈 곳이 없는 천혜의 요새였던 것이다.
강무(講武)는 국왕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참여했던 사냥을 겸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말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치면 대통령이 직접 참가하는 야외기동훈련이라고나 할까나.
왕이 군사 훈련을 참관할 때는 왕권과 군대의 대장기를 상징하는 거대한 깃발인 '뚝기(纛旗)'를 세웠다. 중랑천,청계천과 아차산이 이곳을 섬처럼 만들었기에 '뚝섬(독도·纛島)'이라고도 불렀다.
동쪽에 있는 교외라서 동교라고도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 동교(東郊)를 검색하면 기록이 489건이나 나온다 이중 태종 이방원이 108건, 세종대왕(110건), 세조(수양대군 56건)의 비중이 높다.
태종과 세조가 살곶이벌에 사냥하러 자주왔기 때문이다. 당일치기로 와서 매사냥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태종이 사냥을 위해 매를 날린 곳은 그때부터 응봉산(매가 한자로 응鷹)이라 불리고 있다.
태종은 은퇴하고 낙천정(자양동 현대아파트 자리)과 이궁을 지어 살았는데. 덕분에 세종도 왔다 갔다 했다.
태종은 세종대왕이 육식을 좋아하여 살이 찌니
"주상이 비대하니 내가 끌고 다니며 사냥을 하러 가겠다"라고 했다 한다.
세종대왕은 아버지를 위해 살곶이다리도 건설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가장 긴 돌다리고 우리 동네에서 걸어서 4km 밖에 안떨어져 있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도 사냥을 좋아하고, 아들 수양대군(세조)도 사냥을 좋아했으니 그 사이에 낀 세종대왕은 참 힘들었겠다 싶다. 그래도 직접 사냥하는 것보다 구경하는건 좋아하셨나 보다.
세종대왕은 아예 화양정을 지어 이 일대의 거점으로 삼았다. 100칸(약 400평) 규모의 초거대 정자다. 덕분에 지하철 2호선으로 건대입구가 흥하기 전까지 화양동은 무려 600년간 동부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종대왕 만세!)
우리 중곡동 사람들도 예전엔 무조건 좋은걸 사려하면 화양동에 가야했다.
역사의 중심지에서 다시 '미래의 중심'으로
강원도나 경기도 동쪽, 충청도와 경상도로 가려면 살곶이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했다. 그만큼 이곳은 한양 동쪽의 중요한 교통 요충지였다.
당시 주요 교통로를 살펴보면 이렇다.
ㅇ 강원도 강릉 방면(관동대로): 우리 일대를 거쳐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와 이천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향했다.
ㅇ 충청도·경상도 방면(영남대로): 우리 일대를 거쳐 신천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와 충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대구와 부산으로 이어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인공 단종이 한양을 떠나 유배길에 올랐을 때, 첫날밤을 보낸 곳도 화양정이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군대를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하면서 거쳐 간 곳 역시 이 일대였다. 왜구들은 화양정과 낙천정을 불태우고 목장의 말을 약탈했다.
이처럼 왕과 군대, 여행객들이 오가던 중요한 길목이었지만, 정작 중곡동을 비롯한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이 왕실 소유 말 목장이었기 때문이다.
왕실이 관리하는 목장에서는 일반 백성이 마음대로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넓고 평탄한 땅이 한양 바로 옆에 있었지만, 자유롭게 마을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왕실 목장의 기능이 약해졌고, 말들이 뛰놀던 벌판은 차츰 논밭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은 1918년 촬영된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왕실 목장이 사라진 뒤에도 이곳은 오랫동안 농경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지금 우리가 아는 중곡동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1화에서 이야기했듯, 내가 아기였을 때 중곡동도 아기였던 셈이다.
현재 서울시는 살곶이다리를 건너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와 한강으로 뻗어나가는 자전거길을 훌륭하게 정비해 두었다.
서울 도심코스(약 12.5km)
ㅇ 우리 동네~살곶이다리: 4km
ㅇ 살곶이다리~광화문 청계광장 8.5km
뚝섬한강공원 코스(약 10km)
ㅇ 우리 동네~살곶이다리: 4km
ㅇ 살곶이다리~노을전망대 약 2.5km
ㅇ 노을전망대~뚝섬한강공원 약 3.5km
우리 중곡1동 A구역에서 중랑천 수변길로 진입한 뒤 청계광장이나 한강까지 이어지는 길을 이용하면, 주요 하천길에서는 자동차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정작 집에서 중랑천으로 나가는 길에 문제가 하나 있다.
동일로다.
한강과 청계광장까지 가는 동안 단 하나의 횡단보도가 있는데 그게 동일로 횡단보도다. 단지에서 수변공원까지 자동차 도로를 건너지 않고 이어지는 입체보행로가 필요한 이유다. 서울시와 광진구청에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 구역 앞 중랑천 수변공원이 뚝섬한강공원처럼 조성된다면, 두 공원 사이 약 10km의 거리를 활용해 멋진 러닝 코스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광진정보도서관까지 달렸다가 뚝섬한강공원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만들면 어떨까? 약 21.1km, 하프마라톤 거리다.
광진구의 북쪽 끝에서 출발해 남쪽 끝을 거쳐 동쪽 끝까지 달리는 코스다. 광진구 전체를 하나의 러닝 코스로 연결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
광진정보도서관이 있는 곳은 옛 광나루 일대다. 조선시대 한양을 떠나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로 향하던 사람들이 지나던 길목이다. 6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오가던 길을, 오늘날에는 시민들이 걷고 달리는 길로 다시 잇는 것이다.
왕들이 말을 달리던 길을, 이제는 우리가 두 발로 달린다.
왕들이 호랑이를 쫓고 매를 날리던 이 쾌적하고 드넓은 땅. 우리가 구청과 서울시에 올바른 방향(무엇을 지을 것인가)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면, 중곡동은 과거 600년 전 화양정이 누렸던 영광을 넘어 서울 최고의 하이엔드 수변 라이프의 중심지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다시 한번 세종대왕 만세!)
[1화] 내가 아기일 때, 중곡동도 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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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중곡동에 '올림픽종합운동장'과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질 뻔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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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서울시 최고의 '귀족 재개발' 중곡1동 A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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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수양대군 납시오! 조선시대 왕들의 사냥터, 중곡동의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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