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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 434-1번지 (제천 신백동 본당 어상천 공소).
방문 기록 (2005년 1월 26일):
교구 공소사목협의회 심경섭(스테파노) 회장과 임원들이 방문함.
김우영(에드워드) 회장의 안내로 면 소재지에 있는 강당에 도착하였으며, 성모상 머리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따뜻한 봄이 와야 치워질 모습이었음.
2. 어상천 공소의 창립과 발전 과정
창립 배경:
남천동 본당 주임으로 재직 중이던 배은하 타데오 신부가 남천동 본당 주임으로 재직할 당시인 1984년 10월, 김우영 회장이 M·E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개종한 것에서 비롯됨.
김 회장은 1985년 부활대축일에 영세를 받았고, 같은 해 4월 30일 김우영·장정·원 마리아 등 3명이 김 회장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시작하면서 공소가 설립됨.
성장과 시설 건립:
김우영 회장이 자신의 소유 토지 150평을 기증하고, 공소 신자들의 모금과 본당 지원으로 1985년 5월 10일 조립식 강당(31평)을 준공함.
1986년 3월 29일 첫 영세자가 탄생하였고, 이후 예비자가 10명으로 늘어남.
1998년 4월 19일 '믿음의 샘 Pr.' 탄생, 2001년 6월 15일 '받는 이들의 모후 Pr.'이 탄생함.
현재 신앙 생활:
매월 넷째 주일 14시에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며, 그 외 주일에는 김 회장의 인도로 공소예절을 거행함.
신자 수는 1985년 28명, 1996년 28명, 1997년 34명, 1998년 34명, 1999년 37명, 2000년 35명, 2001년 63명임.
3. 임현리 박해 시대 교우촌 및 순교 기록
지리적 특성: 임현리에서 제천으로 넘어가는 험한 중재에도 교우들이 살았음.
순교자 기록 (전래 <치명일기> 744쪽):
배 베드로 (증언자 이성섭 니콜라오의 백부): 본명은 베드로이고, 1867년 청주에서 순교함. 1866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배 신부와 함께 본관으로 들어갔다가 신부 두 분은 상경하시고 베드로는 나와서 병인·정묘 양년 농사하고 그 해 동짓달에 영춘 중재 밑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무진 5월에 제천 포교에게 잡혀감.
옥중에서 아전들이 "생명은 위중할뿐더러 아전들 말이 '생원님은 나가시면 우리가 일일이 할 것이니 나가소서' 하니 베드로로 대답하되 '나는 나라 죄인이라 나라 영(糖)없이 못나가는 법이라' 하니, 이런 양반은 천하에 없는 일이라 하더라..."라고 하며 신앙을 증언하다가 청주로 이수하여 순교함 (당시 나이 50세).
정리번호 115 기록: 이성천은 이성옥 회장의 백부로, 아우와 한 동리에서 살다가 군난을 피하여 영춘으로 가서 살더니, 정묘 5월에 충주 포교에게 잡혀 치명함 (당시 나이 근 50세, 증인은 이 위 이 토마스와 그 아우 마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