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의 기억>과 <노르웨이의 숲>
<숲의 기억>님.
이 닉네임을 접할 때 마다 정말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님의 닉네임 위에 오브랩 됩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읽었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었는데 우리나라엔 <상실의 시대>란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란 본래 존 레넌 작사에 비틀즈가 노래한 <NORWEGIAN WOOD>란 팝송의 제목입니다.
이 노래는 이 작품의 배경 음악 같은 역할을 하며 후미에 나오는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난 혼자임을 알았어요."란 가사는 작가가 의도하는 이 책의 주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선명하게 떠 올릴 수가 있다.
며칠인가 계속된 부드러운 비로, 여름동안 쌓였든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 산은 깊고 선연한 푸르름을 머금고 있었으며, 기다란 구름이 얼음장처럼 투명한 창공에 떠있었다.
하늘이 너무 높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 올 지경이었다.
바람은 초원을 건너 그녀의 머리카락을 잔잔히 흔들고는 잡목 숲으로 빠져나갔다.'
너무나 우리의 마음을 투명하게 하는 묘사입니다.
문득, <여름 향기>에 등장했든 반딧불이 생각납니다.
민우가 혜원을 위해 준비했든 반딧불은 병 뚜껑을 열자 십 여마리가 너무나 환상적으로 날아 오릅니다.
그걸 보면서 두 사람은 사랑의 교감을 가집니다.
<노르웨이의 숲>에도 반딧불이 등장합니다.
똑같이 병속에 갇혔다 풀려납니다.
그러나 이곳의 반딧불은 풀려나서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이리 저리 비틀거리다가 한 참 후에야 겨우 희미한 궤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마치 갈곳 잃고 헤메이는 우리의 영혼처럼.
우리 모두 일생을 통해서 한번쯤 경험함직한 젊은 날의 사랑의 상처와 좌절,
인간의 비켜갈 수 없는 MORTAL에 대한 상념을 요구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마지막 부분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꼭 찝어서 작품의 특징이나 매력을 표현하기 어려우나 읽어 가는 동안 독자로 하여금 한없이 작품 속으로 동화되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저는 꽤 되는 분량을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든 기억이 납니다.
책을 다 보고 덮는 순간, 보헤미안의 영원한 노스탈지어 같은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가슴속을 싸ㅡ 하게 지나감을 느낍니다.
맛부 여러분께서도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요즘 엉뚱하게도 부산의 모 건설회사에서 아파트 이름에다 <노르웨이의 숲>을 사용하고
있더군요.
아래 꼭지님,
요즘 장안의 화제인 옥탑방 고양이란 드라마 아시죠.
그 드라마 원작이 인터넷 소설이었든 걸 아시죠.
그 인터넷 소설의 원작자가 동아대 모 여대생인 것도 아시죠.
그 다음엔 더 멋진 작품이 부산대에서 나올 것도 아시죠.
만약 나오면 그 작품은 <숲의 기억>이란 필명으로 나올 것을 저는 압니다.
ㅡ 메 롱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