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4차 남포동 <18번 완당> 정모 후기 - 그대 있음에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정모에 참석하고 또 어김없이 후기를 쓰고 있다.
내가 맛부에 가입하고 1년 3개월.
그 간 쉬임 없이 정모가 진행되어 왔으나 내가 불참한 건 딱 2번.
그 한번은,
나의 첫 정모(2003,7,24 서면 고려 삼계탕) 때 인원이 60여명. 그 전까진 보통 2~30명 선인데
갑자기 인원이 왕창 늘어나자 겁이(?) 덜컹 난 무요님이 다음 정모때부턴 인원을 제한하는 (잘못하면 인원이 100명도 넘을까봐) 제도를 도입해 (그 전 까진 신청자는 무조건 참석)
정모 공지를 늦게 접하는 바람에 커트라인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고,
또 한번은.
어머님 상을 당하면서 참석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내가 생각해도 우스울 정도로 열심히 다녔다.
흔히 님들이 말하는 맛부 중독이 된 걸까?
정말 중독이 된 것처럼 마치 뭣에 홀린 것처럼
때가 되면 밥 먹고 밤 되면 자는 것처럼 자연스레 꼬박꼬박 정모에 참석하고
먹이(?)를 찾아 키리만자로를 헤메이는 하이에나처럼 시간만 나면 맛부 게시판을 헤메인다.
젊은이들 틈바구니에서 한사코, 죽자고 참석하고 따라다닌 것이 한편으론 주책없어 보이고
또 그 연유를 따져보면 부끄럽기도 하다.
황혼까지 접어든 나이까지 살았음에도 달리 의미 있는 모임도 많지 않고, 정 붙일 취미도
별로 없고 외로움을 나눌 지인도 없이 살아 온 인생이 잘못 산 것 아닌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그런 조건을 갖추기엔 많은 제약이 있었다 하드라도)
자유와 낭만을 만끽해야 할 젊은 시절, 이런저런 사연으로 그 젊음을 저당 잡힌 세월을
보낸 아픔이 있기에 이제사 그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주책과 자망 自忙
(스스로 바쁘고 부지런한 척)를 떠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맛부에 열심인 것은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맛부에 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존중의
휴머니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힘든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 외로운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그대 편히 쉬게 하리라 ♬ 오래 전 유행했든 노래 가사다.
아마 우리 맛부는 빈 의자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빈 의자에서 일상의 힘겨움과 허전한 빈 가슴을 채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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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 완당집.
지난 해 (9, 18) 부용동 완당집에 이어 정모에선 두 번째 완당 정모이다.
그러나 이 집은 아득한 옛날부터 와 봤든 곳이다,
내가 미혼일 적에도 왔으니 30년도 넘은 것 같다.
그때는 이곳에 극장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본다면 의례 남포동으로 왔고,
끼니때와 영화 시간이 물려 있으면 맛있고 값 눅은 이 곳 완당집을 즐겨 찾곤 했다.
지금은 지하이나 그때는 1층과 복층 비슷한 구조로 된 2층으로 되어 있었든 기억이고
(10년 전에 불이 나 재 건축을 하였음) 주방 앞 개방된 곳에서 종이 장처럼 얇은 만두피를
손바닥 위에 수십장 올려놓고 대나무 꼬챙이 같은 것으로 소를 조금 찍어 피에 마는 것과
동시에 떨어뜨리는 반복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손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하여
식사하러 온 사람들은 그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마술을 보듯 넋을 놓고 바라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때 그 거리 그대로 있고
그 옛날 향긋한 추억은 어제 런 양 생생한데
몸은 늙어 백발이 성성하니
무심한 세월 어이 하리오.
비교적 이른 시간(7시)에 도착하니 무요님과 깜보님이 식당 앞에 계셨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오니 이른 시간임에도 20명 정도는 와 계셨다.
식당 안 분위기는 지하인데다 워낙 땅값 비싼 곳이라 그런지 탁자도 작고 공간도 협소하고
바로 이웃한 주방에서의 열기 등으로 매우 답답한 느낌이다.
불나기 전에는 여유로운 좌석 배치와 공간으로 또 만두 빗는 솜씨를 직접 보여주는 공간까지 있어 지금 보다는 매우 쾌적했든 것 같다.
나의 꽃수례에 꽃이었든 두분, 얼음과자님과 하얀백합님, 맛달이신 댕기님, 나. 이렇게 한
식탁에 앉았다. 모두들 정겹고 낮 익은 얼굴들. 시간 맞춰 비교적 신속하게 음식이 나왔다.
첫 번째는 비빔 메밀 국수.
옛날에는 없든 메뉴인 것 같다. 새콤 매콤 달콤한 맛이 젊은이 취향인 것 같고
그냥 먹을 만 했다.
두 번째는 완당.
부용동 완당 정모 사이님 후기에서 컨닝을 하자면, 완당은 중국 음식 훈당을 우리 식성에 맞게 개량한 일종의 만두 국으로 종이처럼 얇게 민 완당 피에 소고기 안심을 갈아 만든 소를 콩알만큼 넣어 감싸서 이것을 끓는 물에 잠간 담갔다가 건져내 국물을 붓고 간을 맞춘 것으로 그릇에 담긴 완당 모양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닮았다하여 운당이라고도 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맛은 변함 없는 것 같다. 국물 개운하고 만두는 새색씨 손길처럼
부드럽고 가격은 눅어니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 한끼 해결하기엔 그저그만이다.
흠이라면 소화가 너무 잘 되어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것.
마지막 김밥.
김은 본래의 맛과 향을 느껴 비교적 좋은 재료(김)을 쓴 것 같았으나 밥은 약간 뜸이 덜 돌아 입안에서 구르는 듯 했고 내 입맛엔 약간 싱거운 듯. 단무지라도 좀 많이 주었으면 좋으련만 추가 시켰는데 또 시킬려니 미안하고..............
요즘은 정모 메뉴가 너무 평범한 음식들만 접하게 되어 가끔은 새롭고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메뉴에 대한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2차, 세 번째 와보는 호프집.
철학적 사유를 가지신 무념님, 속이 알찬 생활을 영위하시는 쌈장님, 너무나 반듯한 가치관과 원칙을 실천하시는 장경님, 내가 합석하기를 권유한 신입이신 알파와오메가님과 11월님.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사람이 테이블 메이트가 되었다.
신입 두 분은 행여 첫날이라 쑥스럽고 어색해 할까봐 내가 분위기 맨이 되기를 자청해 합석을 권유했으나 어쩌다 보니 테이블 성원이 두분 외는 거의 장년 층에 속하는 것 같아 젊은이들끼리 어울리게 할걸 하는 후회도 되었다.
본디 커무니케이션이란 대화가 오고가는 것을 이름인데 비교적 쌈장님과 내가 일방적으로
장광설을 풀어놓은 것 같아 나머지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았나 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특히 신입 두 분은 속으로 (뭔 동호회가 말짱 노땅들 뿐이야, 고리타분한 설들이나 풀고
말이야) 하는 건 아닐런지? 그런 가운데 많은 연령 차이를 극복하려는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을려는 노력도 엿보이고 파장엔 다대포맨님이 합석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업 되면서
유쾌상쾌해지고,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장경님도 일찍가고 나도 신입 두분을 무사히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할 중차대한 임무를 띄고 조금 이른 시간에(10시 10분) 귀가하게된 것.
(알파와오메가님 전포동, 11월님 대연동, 나와 같은 방향이라서 동승하기로 미리 예약된
관계로 두 분의 시간에 맞추다보니 평소보다 1~2시간 정도는 일찍 귀가 한 샘) 그 덕분에
마누라한테는 점수 얻음.
귀가 길, 나의 꽃수레에 타신 두분.
시네라리아를 닮은 알파와 오메가님, 시네라리아는 초롱꽃 목, 국화과의 두해살이 화초로
북 아프리카 카나리아섬이 원산지고 우리의 토종 꽃 단국화를 닮은 꽃으로 소박하고 품위
있는 보라색 (가끔 자색도 있음) 꽃입니다 (꽃말 : 사랑의 고백)
하얀 자스민을 닮은 11월님, 자스민은 히말라야가 원산지고 파키스탄의 국화이며
상큼한 향기를 지닌 다섯 꽃잎의 청초한 꽃입니다. (꽃말 : 사랑스러움, 이별)
두분을 모시게된 늙은 강구, 너러바회 오늘도 행복합니다.
<맛부>, 그대 있음에 오늘도 나는 행복하였노라--------
따로 전하는 말 : 중간에 담양답사 때 찍은 사진 전해주신 별별★님,
집에 와서 돋보기 쓰고 자세히 보니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요.
표정도 자연스럽고 배경도 멋지고 구도도 적당하고, 절묘한 타이밍에 순간 포착하신
솜씨도 대단해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찍어 줘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