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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에서 메콩강까지(4)
- 앙코르 왓 Angkor Wat -
앙코르 왓(Angkor Wat)은 씨엠립(Siem Reap)에서 북쪽으로 약 6㎞에 위치해 있으며 앙코르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1860년 프랑스의 동물학자 앙리무오에 의하여 발견되어 세계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99년 트레블러지가 선정한 여행자들이 살아생전에 가봐야 할 유적 50곳에 선정된 유적지라고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앙코르 왓에 도착하니 15:00시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멀리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왕성(王城)과 같은 장엄한 규모의 석조 건물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인류의 문화유산인 앙코르 왓을 만났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쌓였다. 앙코르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에. 이곳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고 많은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인도의 힌두교가 전해지게 된다.
<앙코르 왓 전경>
앙코르 왕국 초기인 9세기에는 그 힌두교를 중심으로한 사원들이 조성되었으나 자야바르만(Jayavarman)
7세는 힌두교를 버리고 대승불교를 택하였고. 가장 넓은 영토를 누리고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농사와 목축업이 전부이며 지금과 같은 교통수단이 없던 1000년 전에 인구 100만의 도시를 상상해보면 그 규모와 위용은 나의 머리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야바르반 7세가 사망하고 한동안 잘 지내던 이곳은 14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암족, 참족을 비롯한 주변의 계속되는 침략을 받게 되고, 왕실 내에선 전염병이 돈다는 소문 때문에 크메르인들은 수도를 옮기면서 이곳을 버리고 타지로 흩어지면서 열대수목의 빠른 성장에 의하여 거대한 정글 속에 묻혀진 것이라고 한다.
<앙코르 유적지 지도>
앙코르(Angkor)라는 이름은 산스크리스트어인 ‘나가라’(나라 또는 도읍을 뜻함)가 캄보디아 사투리로 ‘노코르(Nokhor)’라 불리다가 이것이 다시 앙코르로 변했다 한다.
앙코르(Angkor)는 ‘도읍’이라는 뜻이고 왓(Wat)은 태국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므로 앙코르 왓은 ‘사원의 도읍’ 이라는 뜻이란다. 앙코르의 대부분의 사원은 생명을 뜻하는 동쪽에 정문이 있고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비해 이 사원은 죽음을 뜻하는 서쪽에 정문이 있고 사원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아마도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보고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이거나 수리야바르만(Suryavarman) 2세의 장례(화장식)를 치르기 위한 사원으로 지어 졌다고 추측하고 있다.
부조 또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며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도 흰두교의 장례식의 절차에 쓰이는 법도이며,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계단 축조는 탑돌이 방향과 일치 한다고 하며, 또한 왕이 죽은 후에 모시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왕의 무덤이나 유해 등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발견 초기에는 “죽음의 사원”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앙코르 왓은 정동에서 정서를 향해 있는 까닭에 아침의 장엄한 일출의 모습과 석양녘에 황금빛으로 불타오르는 앙코르 왓의 모습과 일몰은 신의 세계에 근접한 예술의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고 하나 여행 일정상 일출과 일몰의 감동을 체험 할 수가 없었다.
이 사원은 수리야바르만(Suryavarman) 2세 (1112∼1152)에 의해 12세기 초에 석공 3만명, 기타 년 인원 10만명이 동원되어, 골조에만 7톤짜리 돌기둥 1천 8백여개가 사용되고 4개 면을 동시에 건립하기 시작해 약 37년 만에 완공되어 힌두교의 비슈누(지구를 유지보수한다는 신)에게 헌정된 사원으로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또한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예술품이다. 이 사원은 구성과 균형 그리고 설계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중앙탑과 보수중인 공사현장(좌)>
15세기 앙코르 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남방불교인 소승승려들에 의하여 관리된 덕분에 큰 손상 없이 현재까지 유지되어 왔으며, 또한 이 사원은 처음에는 흰두교 사원으로 지어져 탑꼭지에 압살라 상을 모셨던 것을 왕조가 멸망한 후에 이 압살라상을 수문장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불상을 모시어 불교 사원으로 변신하여 현재는 많은 불상을 사원 내에서 볼 수가 있다고 가이드 채의 설명이다.
약 210만㎡ 넓이의 사각형 땅에 성벽을 쌓고, 그 안에 1km의 면적에 사암으로 건설된 앙코르 왓은 힌두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우주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전체가 동서로 꼭 같은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동과 정서로 건축되어 서향(西向) 건축물로서 하지에는 중앙탑의 정중앙에 태양이 뜨며, 춘분에는 우측에 그리고 추분에는 좌측에 태양이 뜬다고 한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 중심의 메루(Meru)산의 정상이며 주위의 5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한다. 메루는 힌두교에서 창조신 브라마의 거처로 우주 중심으로 일컬어진다. 힌두교의 우주관은 메루를 중심으로 7개의 대양이 두르고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외벽은 세상 끝에 둘러쳐진 산을 의미하며 주변에 둘려진 해자(인공호수)는 ‘바다’를 의미한다. 이 해자의 폭은 약260m, 길이는 약 5.5㎞에 달한다. 이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가(Naga)난간을 따라 이어지는 250m의 사암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가이드 채의 설명에 따라 앙코르 왓트의 전경을 바라보노라면 대칭을 이룬 본당 전체의 완벽한 균형적 조화와 웅장한 규모 그리고 하늘과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는 진한 감동의 전율을 느낄 수가 있다. 해자에는 과거에 커다란 악어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수염이 길고 입이 큰 메기가 수면 위로 올라와 유영을 하다가 잠수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본당에 이르는 길은 약 355m로서 길 중간 양옆의 아담하고 우아한 건물은 어떤 귀족의 호화로운 별장 같은 느낌을 주는데 서고로 이용되던 건물로서 우측 건물은 한창 보수(복원)작업 중으로 옆에는 라테라이트 벽돌을 제단하고 있다.
앙코르 건축에는 라테라이트, 벽돌, 사암이 주 재료로 사용되었다. 라테라이트는 열대지방에 널리 분포한 홍토색의 흙으로, 건물의 기초에 주로 이용되었다. 높은 건물들의 기단부에는 모두 라테라이트를 사용하였는데 무엇보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일단 공기 중에 노출되면 벽돌보다 단단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초를 다지는데 좋은 재료였다.
앙코르 건축의 초기(10세기 전)에는 주로 전탑 양식의 건물이 많으며, 중기에 와서도 중요한 탑들을 제외한 외곽의 건물에 있는 탑들은 대부분 전탑양식을 띤다.
10세기 이후의 건물들은 대부분 사암으로 쌓아올렸는데 앙코르 유적을 축조한 사암들은 대부분 앙코르 유적지에서 40km 북쪽으로 떨어진 프놈 쿨렌에서 옮겨왔다. 사원의 천정에는 타일을 사용했지만 현재 앙코르왓에 조금 남아있다.
서고에서 조금 더 가면 폭 50m, 길이 65m의 연못 사이의 풀밭에는 제주 조랑말과 같은 작은 말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으며 연못 주위의 상점과 말을 태워주는 상인이 열심히 관광객을 태운 말을 몰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성문 입구에 머리 7개 달린 코브라 조각상이 버티고 있다.
<머리 7개의 코브라 석상>
건물의 좌측에 훼손된 자국들이 보이는데 이는 캄보디아 내전 때의 총탄 자국이란다. 본당에 이르는 355m 길을 보수(복원)하고있는데 이에 사용할 사암벽돌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사자가 지키고 있는 십자모양의 단상은 ‘영광의 단상’으로 불리는데 예전에는 왕이 종교의식을 참관하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라고 한다.
본당으로 들어서면 외부 복도의 벽면에 인류의 자취 중 손꼽히는 명작인 환상적인 부조가 펼쳐진다. 사원 자체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여 내부를 다니면서 구조를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하다. 멀리서 이 사원을 바라보면 긴 통로가 중앙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석조물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층들로 이루어진 탑들로서 수많은 예술적인 조각과 방. 베란다. 정원을 연결하는 계단과 각각 다른 층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볼 수가 있다. 지면에서의 높이는 213m로 크게 3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층 사이에는 많은 기둥들이 세워진 회랑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맨 위의 3층 단에는 5개의 큰 탑이 세워져 있는데 중앙의 탑이 가장 높다.
<중 앙 탑>
탑들의 모양은 연꽃을 본떠 만들었으며 모든 건물들은 동서를 축으로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회랑과 방 통로들의 지붕은 곡선으로 경사지게 만들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길고 좁은 산등성이 같이 보인다 계단들은 그 용도가 건축물 고유의 목적을 초월하여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신성한 분위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엄숙해 질수 있도록 하며,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분위기를 고려하여 축조된 것이라 한다. 사원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축물들이 일련의 반복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하며, 많은 기둥들이 세워진 회랑. 탑. 곡선의 지붕. 계단. 그리고 대칭으로 연속되는 십자형의 공간 등이다. 이러한 구조물들은 2개 또는 그 이상을 높이에 변화를 주어가면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배열 기법은 탑과 탑을 연결하는데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지붕은 높이. 길이 또는 치수의 변화를 갖고 있다. 중앙 탑을 본뜬 작은 탑들은 눈에 잘 띄는 회랑과 입구탑 두 장소에 서 있다.
입구의 긴 통로는 입구 탑을 지나 뒤편으로 같은 모양으로 이어진다.이 사원은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있는 우주의 모형이다. 중앙의 탑은 사원의 정중앙에 세워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내며 성벽은 세상의 끝을 둘러싼 산맥을 나타내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가이드 채의 입심 좋은 해박한 설명을 메모하기가 바빠 감탄사를 연발 할 기회도 없다.
참배도 끝에 제1회랑으로 올라가는 높이 8m의 돌층계가 있고 층계 양쪽에 날씬한 몸매의 예쁜 돌사자 네 마리가 앉아서 참배자를 맞이한다. 본당으로 들어서자 1층 회랑을 우편으로 돌면서 회랑벽면에 부조된 총 750m에 이르는 현재 캄보디아 국교인 불교 이전의 국교였던 힌두교 신화와 앙코르 제국의 승전에 관한 기록과 신화나 민화를 모티브로 한 빽빽한 환상적인 부조를 감상하기에 정신을 빼앗겼다.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도 정교하고 사실적이며 역동적인 부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이 사원의 건설자들은 동쪽보다 서쪽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서쪽, 특히 남서쪽에 가장 중요한 테마를 배치하고, 동쪽에 덜 중요한 것을 배치했으며, 동쪽 두 개의 패널은 완성하지 못했다가 16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완성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건물 안의 조각들이 아침의 엷은 광선, 대낮의 강한 햇빛 그리고 저녁의 붉은 햇살 등 광선마다 다르게 반응해 보이도록 자연의 빛까지 고려하여 설계됐다.
앙코르왓 사원의 설계자들 수르야와르만의 영광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장소로서 회랑의 부조를 활용했으며 부조의 전체 줄거리나 의도가 위슈누신과 수르야와르만 왕을 동일시하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1층 외벽 회랑의 부조
1층 전체를 부조회랑(제1회랑)이라고 하며, 다른 사원의 회랑과는 반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회랑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보아야 주제의 연결을 알 수 있다. 서쪽 문 중앙으로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돌아 시계 반대방향으로 관람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이렇게 계속 회랑을 따라 돌면 남쪽, 동쪽, 북쪽 회랑을 보고 다시 서쪽 회랑의 북쪽 면을 마지막으로 보게 된다. 서쪽회랑에서 시작하여 남쪽, 동쪽, 북쪽에 회랑 전체가 부조로 되어있으며 그 부조는 높이가 2.4m, 길이가 각 50~100m로 모두 여덟 개 패널로 되어 있으며, 그 총 길이는 520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회랑의 외부는 60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고 부분적으로 기둥 밑을 콘크리트로 보강하여 부실한 기둥을 보호하고 있는 곳과 천정을 콘크리트로 보수한 곳도 간혹 보인다, 내부는 벽으로 되어 수많은 부조가 양각되어 있다.
<압살라 부조 : 밝은 곳이 복원한 것이다>
◑부조 조각의 주제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인도의 전설과 경전, 그리고 앙코르 시대의 전승 기록 등이다. 어떤 학자는 또 이 부조의 내용뿐 아니라 배치 또한 주제와 관련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였는데, 그 예는 해가 뜨는 동쪽 벽에는 생명과 탄생, 해가 지는 서쪽 벽면에죽음과 사멸, 그리고 남쪽 벽면은 인간의 세계 끝으로 북쪽은 신의 세계에 관한 주제를 표현한 것 들이다.
<춤을 추는 압살라 부조 : 동작이 이어져 있다>
◑앙코르 왓에서 쓰인 조각 기법은 조각의 주체를 남겨두고 그 배경을 파내는 기법이었다. 때로는 반대로 음각을 한 곳도 있다. 광택이 나는 곳도 있는데 관광객들이 만져서 광택이 나는 곳도 있고, 일부 조각에는 락카칠을 했던 곳도 있다. 특히 금도금을 하거나 검은 색, 붉은 색 등의 칠을 한 곳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채색들은 아마도 기초 배색이었거나, 접착제의 흔적일 수도 있다.
이 조각들의 표현 기법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예술 표현 기법이 보인다. 각은 수평으로 길게 평행선을 긋고, 그 안에 물고기들의 모양을 새겼다. 이집트의 예술에서는 계급의 표현을 사람의 크기로 표현하였는데, 앙코르에서도 계급이 높을수록 사람을 크게 새겼다. 전투 장면에서 부러진 행렬용 양산은 격파된 적장을 상징한다. 원근의 표시는 겹쳐진 모양으로 나타내었고, 거리가 먼 것은 벽의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다리를 벌리고 무릎이 굽혀진 모양은 날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앙코르 왓에서 쓰인 조각의 특징
동서남북 4면에 부조된 장면들을 형태로 구분하면 모두 8면으로 나누어 지고 동서남북의 모서리 마다 별도의 주제를 그려 넣었다. 물론 회랑 벽면의 각도에 따라서 빈틈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다양한 주제들이 수 없이 부조되어 있으나 그 가운데서 도 부조가 의도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방향성이다. 쿠륵세트라 평야의 전투, 랑카의 전투, 그리고 우유바다 젓기 장면은 서-동 축을 향해 부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과 신을 서로 구분하면서도 신과 왕이 동일하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는 규모와 위치다. 부조의 크기가 클수록 그 인물의 비중이 그만큼 크고 또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랑카의 전투나 신과 아수라의 전투장면은 신과 악마들이 서로 얽키고 설켜 있고 활과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혼란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인물은 그 장면의 중심에 클로즈 업시켜서 부조해 놓았다.
셋째는 사원이 특정의 숫자에 대한 상징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가 한 면에 부조되면 다른 면에는 그에 상응하는 주제가 부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쪽에 수리야와르만왕의 열아홉 명 대신이 부조되어 있으면 그 맞은편 북쪽에는 신들의 왕인 인드라신과 열아홉 신이 부조되어 있고, 랑카의 전투에서 라마와 그의 열아홉명의 장군들은 라바나가 이끄는 열아홉 명의 아수라와 대비시켜 설계해 놓았다.
넷째, 우주론과 종교적 신념이 건축에 반영되어 있다. 우유바다 젓기는 제3회랑 동쪽에 부조되어 있는데 그것은 수리야와르만 왕의 대관식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왕의 대관식이 회랑에 부조되어 있지는 않지만 신과 아수라의 싸움을 끝내고 혼란을 회복한 다음에 인드라 신이 다시 최고 신의 권위를 되찾는 장면은 곧 수리야와르만 왕이 앙코르 정치의 혼란을 끝내고 왕중의 왕으로서 등극했다는 이미지를 중첩시켜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다섯째, 회랑의 부조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서쪽 측면을 기준으로 오른쪽의 쿠루평원의 전투장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서쪽 정면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보아야 된다.
앙코르왓은 태양의 사원이다. 춘분이 되면 태양은 정동쪽에서 뜨기 시작하여 하지가 되면 가장 북쪽으로 기울어져 뜨고 진다. 그리고 3개월 후인 추분에는 서쪽으로 이동하고 동지가 되면 정남쪽으로 이동한다. 물론 이와 같은 공간적 이동은 건축물에서는 순수히 개념적인 것이지만 사원의 설계자들은 태양이 동쪽(춘분), 북쪽(하지), 서쪽(추분), 남쪽(동지)으로 이동하는 것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인식했고 새해는 춘분과 함께 시작된다고 여겼다.
◑서쪽 회랑의 남쪽 방면 - 쿠륵세트라의 전투
이곳의 벽에는 엄청난 전투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병사들이 병사들을 무참하게 찔러 죽이는 아수라장. 처음 이것을 보는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 신들이 산다는 메루산 언덕에 이런 끔찍한 인간의 살육을 표현해 놓았을까? 중앙을 향해 왼쪽과 오른쪽에서 진군하는 아래쪽 보병들, 중간의 기마병들 뒤에는 병사들을 독려하는 연주자들이 보일 정도로 질서 정연하고 여유가 있다. 그러나 양쪽 군대가 충돌하는 중앙에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활을 쏘고 창으로 찌르고 죽이고 육박전을 벌이는 처절한 장면이다. 이것이 바로 마하트마 간디, 네루를 비롯한 인도의 지성들 그리고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등지에까지 영향을 미친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한 장면을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라고 한다.
<쿠륵세트라의 전투 부조>
이것은 인도의 한 지방인 '쿠륵세트라'에서 있었던 왕과 반군인 조카간의 역사적인 최후의 전투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카우라마스'군과 '판다바스'군은 각기 반대편에서 행진을 시작하여 가운데에서 전투를 벌인다. 투구 장식의 모양으로 양편을 구분할 수 있다.
전투의 시작은 군악대의 행진곡에 맞추어 보병들이 전쟁터로 행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쟁터의 모습은 백병전과 많은 사상자들을 표현하고 있다. 지휘관들과 장군들은 크게 조각하였으며, 말, 코끼리 및 전차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 전투방면은 점점 더 격렬해지다가 혼전을 벌이면서 절정에 이른다. 마하바라타 전설의 영웅이며 카우바라스 군의 대장인 비스마(벽화의 시작 위치)가 화살을 맞고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죽어가고 있으며, 아르주나(악마 라후의 얼굴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다)가 그의 이복 형제인 크리슈나를 활로 쏘아 죽이고 있다. 마하바라타에서는 이 전투에서 아르주나라는 장수가 차마 사촌들을 죽이지 못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때 신분을 숨기고 아르주나의 전차 마부로 행동하던 크리슈나 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아르주나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친족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마하바라타의 제 6권의 내용으로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내어 바가밧 기타라고 하며 이 내용은 훗날 전 인도 지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 내용은 전투에 임해 나약해진 아르주나를 가르치는 것이지만 깊은 철학적,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위급한 때, 어디서 그대에게 이런 나약함이 온단 말인가? 산 자를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를 평등히 여기며 집착을 버리고 행동하라. 나는 세계를 파멸하는 다 된 시간으로서 여기에 세계들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래 전에 이미 바로 나에 의해 죽임을 당했은즉, 그대는 단지 수단이 될 지어다. 죽여라. 주저 말고 싸워라.”
아쉽게도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 수많은 인물들이 각각 누구인지는 잘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다. 단,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진군하는 군사들이 아르주나의 군사들인데, 아르주나와 크리슈나 신만은 명확히 알 수 있다. 팔이 네 개인 사람이 아르주나의 전차를 끄는 마부 크리슈나이고 그 전차에 타서 싸우고 있는 이가 바로 아르주나다.
◑남서쪽 모퉁이의 작은 방
이 작은 방의 조각은 '크리슈나'의 생애와 인도의 전설 '라마야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탕수수 화살을 쏘는 안드라신의 부조에서 사랑의 화살을 맞으면 화살을 맞는 아픔이 있지마는 사탕의 달콤함도 함께 맛본다는 부조 설명이다. 오른쪽으로 돌면서 벽화를 감상한다.
동쪽의 왼편에는 강의 축제를 묘사했으며, 장기 두는 모습도 있다. 오른편에는 닭싸움. 중앙 출입문 위에는 제물을 받는 신들이 묘사되어 있다. 남쪽의 왼편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발리와 원숭이 수그리바의 싸움, 라마가 활로 발리를 쏘고 있고, 발리는 아내의 품에 안겨 있다. 원숭이들이 그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중앙과 출입문 위에는 악마들의 살인 '크리슈나'가 불을 끄는 모습이 보인다 서쪽의 왼편에는 시바가 아내 파르바티와 같이 카이라사 산에 앉아 있는 모습이, 중앙과 출입문 위에는 크리슈나가 자신이 묶인 돌과 나무를 들어 올리고 있다. 오른쪽에는 카멜레온으로 변장한 라바나가 인드라의 왕궁에 나타나는 모습이 있다.
<닭싸움 부조>
북쪽의 왼편에는 유액의 바다를 젓는 전설이, 위에는 태양과 달, 중앙 출입문 위에는 황금 사슴으로 위장하여 시타의 유괴를 돕는 야차 마리카를 라마가 죽이고 있다. 오른쪽에는 화가 난 인드라가 내려치는 폭풍우로부터 양떼와 양치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크리슈나가 고바다나 산을 들어 올려 막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남쪽 회랑의 서쪽 방면
이 회랑에서는 수리아바르만 2세가 이끄는 크메르 군대가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웅장한 승리의 행진을 묘사하고 있다. 조각들은 전쟁 방법 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로 백병전으로 격투하는 장면들이다. 배경에 자연스럽게 나무들과 짐승들을 그려 넣은 것이 매우 색다르다. 중앙에 있는 15개의 일산(日傘) 밑에서 코끼리를 타고 원추형 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앙코르 왓을 건축한 수리아바르만 2세다. 회랑에 새겨진 문구에 그의 사후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아 이 문구는 왕이 죽은 후에 새겨 넣었던 것 같다.
<백병전의 전투 장면>
17개 일산(日傘)은 왕에 도전하는 반역 장군이거나 전장에서 적에게 왕으로 오인하여 전승을 위한 전략적이라는 가이드 채의 설명이다. 코끼리 코앞의 삐죽한 막대기 위에 앉아 있는 새가 가루다다.(가루다는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 신화 속의 새로 이 새는 후일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는 금시조로 알려져 있는 새다.
불교 신화 속의 금시조는 머리는 매와 비슷하고 여의주가 박혀 있으며 금빛 날개가 있는 몸은 사람을 닮고,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 가루다 위에 조그맣게 서 있는 인물이 바로 비슈누다. 큰 성화가 배 위에 실려 가고 있는데, 성화를 든 사람, 악대, 광대 등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가고 있어 매우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보인다. 바라문 승려들이 큰 심벌즈를 치면서 노래를 하며, 이 행렬을 뒤따르고 있어 왕에게 바치는 진상품들이 가마 위에 실려 가고 있다. 또 이 회랑에는 벽에 사각형의 구멍이 가끔 보이는데, 사원의 보물이나 중요한 것을 보관했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회랑 위 부분을 보면 왕(금박을 입혔던 흔적이 있다)이 산에서 청중들을 모아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이 있다.
아래에는 왕궁의 여인들이 숲 속 산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군대가 사열을 위해 집합해 있고 지휘관은 코끼리를 타고 적군을 향해 행진하는 부대를 이끌고 있다. 지휘관의 계급은 조각 근처에 작은 글씨로 표시해 놓았다. 회랑 벽의 끝 부분에 가까워서는 태국 군대의 행렬이 시작되는데, 지휘관은 코끼리 위에 앉아 있다. 태국군의 모양은 주름 잡힌 꽃 모양의 치마와 긴 펜던트를 단 혁대, 땋은 머리, 짧은 콧수염, 그리고 투구는 깃털 장식으로 표현하였다. 크메르 군 중 일부는 뿔 또는 사슴, 말, 새 등의 짐승 머리가 달린 투구를 쓰고 있다. 그리고 방패에는 괴물들을 그려 놓았다.
<각종 전투 장면의 부조>
◑남쪽 회랑의 동쪽 방면 - 지옥도
인간에 대한 염라대왕의 심판을 3단계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명도 2단계에 걸쳐서 상세히 조각되어 있다. 37개의 천국은 왕궁에서 즐겁게 노니는 모양으로 설명하고 있고, 32개의 지옥에서는 벌을 받는 모습과 고통을 받는 모습들을 조각하였다.
휘장 모양과 압싸라들에 의해 이 천국과 지옥을 구분해 놓았으며, 맨 밑은 가루다의 행렬로 되어 있다. 지붕은 1947년에 번개에 맞아 파손되었으나 프랑스가 복구하였다. 회랑의 시작점에 말을 탄 사람들은 금박을 입혔던 흔적이 있다. 벽의 아래 부분에는 군데군데 심하게 파손이 되어 시멘트로 메워져 있다. 최고 재판관인 '야마'가 물소를 타고 부하들을 지휘하며 서기관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지옥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앞에서 죽은 영혼들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야마의 저승사자들이 아래쪽으로 가는 함정 문으로 악한 자들을 밀어내고 있으며, 그 밑에는 욕심 많은 자의 몸을 톱질하고 있는 등의 고문과 처벌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법을 어긴 자는 뼈를 부러뜨리고 있다. 다른 벌을 받는 자들은 족쇄를 차거나 머리에 못들이 박혀있기도 하다. 천국의 왕궁은 띠같이 연결된 가루다와 압쌀라들이 하늘에서 춤추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동쪽 회랑의 남쪽 방면
이곳은 앙코르 왓에서 가장 유명한 부조 회랑이며, 그 내용은 인도의 창조설화인 '바가바타-푸라나'에서 유래한다. 악마들과 신들이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비슈누가 이 전쟁을 중재하여 젖의 바다를저어서 불로장수의 약을 만들자고 제의하여 젖의 바다를 젓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온갖 생명체들이 탄생한다는 내용의 전설이다. 주인공인 비슈누의 얼굴이 수리야바르만 2세와 비슷하게 조각되어 있어 수리야바르만 2세 스스로 비슈누와 동일시하였다는 설이 있다.
바수키(큰 뱀)의 몸통이 유액(乳液)의 바다를 휘젓는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이 젓는 동작을 시작하기 위하여 신들과 악마들은 뱀의 몸을 비꼰다. 악마들은 뱀의 머리를 잡고 있고, 신들은 꼬리 쪽을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축이 되어 리듬 있게 전후로 당기기 시작하여 바다를 휘돌리며 젓기 시작한다. 신들과 악마들의 이 작업은 3명이 지휘하고 있는데, (크게 조각되어 식별이 쉽다) 이들은 제일 위에 '인드라'신, 그 밑에 '비슈누'신 그리고 제일 오른쪽에는 원숭이 모양을 한 '하누만'신 등으로 뱀을 간지르고 있다. 유액의 바다는 신들과 악마들이 휘저어 불로 장수의 영약인 “암리타(Amrita)”를 만든다. 또 젖의 바다를 휘젓는 이유는 잃어버린 보물들, 즉 불로장수의 영약과 행운의 여신 '락슈미', '인드라'의 흰 코끼리 같은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의 추구가 바로 행운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비슈누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일을 1000년 동안 주도하고 있다.
전체 장면은 3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아래 부분은 여러 가지 실체 또는 추상적인 물고기 및 바다 짐승들로 조각되어 있고, 큰 뱀으로 경계를 두었다. 중간 부분은 한 쪽에는 92명의 악마들(툭 튀어나온 눈과 투구를 쓰고 있다)과 반대편에 88명의 신들(원추형의 모자를 쓰고 있다)을 조각하였다. 이들은 같이 큰 뱀을 잡고 젖의 바다를 휘젓고 있다. 그리고 거북이는 비슈누 신의 다른 모습으로, 오래 동안 휘젓는 행위를 통하여 축이 되었던 만다라 산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거북이의 모습으로 변하여 자기 등위에 만다라 산을 얹어 세상이 가라앉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뒤흔드는 동안 보물들을 찾아냈고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 바로 앙코르 왓에 1500개의 부조로 새겨진 춤추는 선녀 압쌀라가 탄생하게 된다.
이 휘저음으로 인하여 양쪽에서 신들이 잡아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에 찬 뱀 바수키는 무서운 독을 뿜어 바다를 덮는다. 이 독에 의해 신들과 악마들이 죽게 될까 봐 브라흐마가 나타나 시바에게 이 독을 마셔 없애달라고 요청하고 시바는 그 요청을 받아 그 독을 마셔버리지만, 목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된다. 시바가 독을 마시자 그 결과로 불로장생의 영약인 암리타가 액체로 되어 흘러내리게 된다. 악마들이 이 액체를 받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비슈누는 이 때 아름다운 마법의 여신 마야로 변신하여 이 암리타를 다시 모으고 있다. 그러나 신들은 이 암리타를 얻기 위하여 또다시 선신과 악신은 전쟁을 일으키게 되어 거듭되는 윤회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한 압살라 부조물들은 현재 압살라 댄스의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벽에 남은 기록문
동쪽 회랑의 중간쯤을 막 지나면 앙코르 왓이 불교 사원일 때인 18세기 초에 새겨진 흥미 있는 기록이 하나 있다. 그 내용은 마을의 촌장이 그의 아내와 자식의 뼈를 묻어 작은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그 무덤은 지금 회랑의 앞 멀리에 비록 상태는 나쁘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북쪽 회랑의 동쪽 방면
회랑의 처음 시작에는 크리슈나로 변신한 비슈누가 가루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다. 그 뒤에 불의 신 아그니(팔이 여러 개)가 코뿔소 위에 앉아 있다. 이러한 장면이 여러 번 반복해서 보인다. 성을 둘러싼 성벽에는 불이 타오르고, 가루다를 탄 크리슈나와 신들의 군대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 크리슈나가 나오는 장면도 여러 번 반복된다. 가루다는 신성한 강인 갠지즈 강에서 물을 떠다가 이 불을 끄고 있다. 코뿔소를 타고 있는 팔이 여러 개인 악마 바나가 반대편에서 접근하고 있다. 제일 오른쪽에는 '크리슈나'(1000개의 머리를 가지고 손을 가슴 앞에서 가리키고 있다)가 시바 앞에 꿇어앉아 악마 바나를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데 이때 시바는 카일라사 산에서 아내 파르바티와 아들 가네쉬(머리가 코끼리)와 같이 앉아 있다.
◑북쪽 회랑의 서쪽 방면
바라문 신전의 21명의 신들의 행렬이 고전적인 상징물들을 들고 전통적인 모습으로 말을 타고 있다. 병사들이 뒤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앞에서는 한 신이 악마와 싸우고 있다. 신들이 계속 연이어 나타나고 있는데, 불의 신인 아그니 신으로 그는 코뿔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고, 부의 신인 쿠베라가 야차의 어깨 위에 보이며 전쟁의 신인 스칸다(머리와 팔이 여러 개)가 공작 위에 앉아 있다. 인드라 신은 코끼리 위에 항상 앉아 있다. 4개의 팔을 가진 비슈누가 가루다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가 층층이 달린 악마가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죽음과 심판의 신인 야마가 칼과 방패를 들고 소가 끄는 마차 위에 앉아 있다. 시바가 활을 쏘고 있으며, 창조신인 브라흐마가 신성한 거위를 타고 있다. 태양의 신인 수리야는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으며, 물의 신인 바루나는 짐승처럼 자갈을 물린 머리가 5개인 큰 뱀 위에 서있다. 부조들은 너무나 섬세했으나 너무 복잡하고 광대한 범위 때문에 하나하나를 알아본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부조 하나하나의 역동성과 원근감에 의한 사실적 표현과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율동성 그리고 미완성의 부조 등은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앙코르 왓 2층(제2회랑)
1층 본당의 북족회랑의 부조는 감상하지 못하고 2층 회랑으로 올라왔다.
십자형 중회랑에서 계단을 열다섯 개 올라가면 제 2회랑에 이르고, 이 회랑을 동쪽으로 빠져나가면 제2회랑으로 둘러싸인 내정이 나오는데, 들어서자마자 높게 쌓아올린 이 사원의 핵심 중추부인 제3회랑과 우뚝 솟은 중앙첨탑의 위용이 충격적으로 불쑥 나타난다. 참배자들은 여기서 눈앞에 나타나는 장엄한 고탑당을 올려다보게 마련인데, 설계자는 독신자의 깊은 신앙심까지 교묘하게 계산에 넣어, 그들을 숭교한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 내정에 물을 가득 채워 못을 만들고, 본전 대계단으로 인도하는 통로는 육교로 놓였었다고 한다. 이 내정을 한 바퀴 돌면서 위를 올려다보니 중앙첨탑과 제3회랑 네 모서리의 당탑들은 솔방울 같기도 하고 파인애플 같기도 한데 연꽃 봉우리를 본뜬 모양이라고 한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곳에도 십자형의 회랑이 있다. 이곳은 지붕으로 덮이고 사각 기둥들이 대칭으로 늘어서 있는 2개의 회랑과, 4등분으로 나뉘어 있는 중앙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 매우 독특한 기법으로 지어져 있다. 이 회랑의 가운데 공간에 있는 기둥에는 산스크리어트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통로의 오른쪽에는 전국에서 모셔왔다는1,000개의 부처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구석에 목이 없는 몇 개의 부처상이 있을 뿐이다(이 부처상들은 후대의 사람들이 갖다 놓은 것인데, 이는 앙코르 왓이 원래 흰두교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2층 내부 회랑>
2층의 내부 회랑은 1,700명이 넘는 아름다운 천상의 무희인 압살라가 끝없이 새겨져있다.
앙코르왓을 방문한 사람들은 노을이 질 무렵이면 석조건물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에 매료된다. 신들의 세계를 지상에 건설하면서 좌우대칭을 살린 공간 배치, 회랑과 회랑 내벽에 부조된 아름다운 여신상, 각양각색의 포즈로 하늘에서 유희하고 있는 압사라 춤이 저녁노을을 받아 화려하게 재현된다. 앙코르왓의 신비는 여기에 있다.
저녁 무렵 붉은 빛으로 물든 태양이 몇 분 동안 중앙의 첨탑에 서 있으면 신화를 그려 넣은 부조, 신들의 무희(舞姬)인 압사라와 여신들의 군무(群舞)가 시작되면서 그 여광이 그윽한 실루엣을 만들어내고 경건한 사원 분위기가 신비를 가져온다.
크메르 건축의 벽면에 요철(凹凸)부분이 꽤 많은 것이 그 특징 가운데 하나다. 앙코르왓의 중앙사당까지 걸어가다보면 사원의 건축물 어느 곳이나 부조로 뒤덮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기둥과 벽면, 연자 모양의 창문 좌우에 여신 데바타, 그리고 압사라가 조각되어 있고 당초무늬와 꽃, 신화에 등장하는 무수한 동물이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독립적으로 서 있는 기둥에는 조각된 여신 상 혹은 압사라가 살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느낌을 주는 것 또한 특징이다.
앙코르왓 회랑의 벽면이나 기둥에 부조된 여신상 혹은 압사라는 어떤 때는 하나의 여신이, 어떤 때는 2인, 3인, 5인, 7인이 조를 이루어 미소짓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여신들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표정뿐만 아니라 왕관형의 머리 장식, 가슴 장식, 팔찌, 의상에 이르기까지 표현과 프로포즈가 모두 다르다. 유사성은 있지만 압사라의 포즈는 뚜렷이 구분된다.
앞서 말했듯이 앙코르왓에는 여신과 압사라의 조각품이 1,737여개에 이를 정도로 여신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중심으로 한 여러 주제가 회랑에 부조되어 있으며 여신상들은 머리에 보석으로 장식된 관을 썻고 발은 출입문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측면을 향하도록 부조되었다.
앙코르왓의 위대성은 사원의 배치와 조각을 조화시켜 완성해 놓은 데 있다. 앙코르왓의 장식은 자수(刺繡)를 놓은 것처럼 사원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눈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영의 강도와 다양성을 통해 벽면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한 데 있다. 또한 심지어 보이지 않는 곳 조차 조각을 해 넣었다. 이 것은 성지순례를 위한 신도들에게 매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들에게 경건심을 보여주고자 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이 장식적(裝飾的)인 정밀성은 완벽에 가깝다. 약 10㎞에 달하는 돌더미에 조각칼을 들이 댄 노력과 가공할만한 표현력은 우리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앙코르왓의 부조는 존재하는 모든 기념비적 조각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 있는 불교사원 보로부두르(Borobudur)도 공간이 넓기로 유명하지만 사원의 전체 규모나 출입구나 기둥, 파풍에 새긴 조각을 비교하더라도 앙코르왓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앙코르왓에 부조된 여신과 압사라는 《리그베다》, 《마하바라타》,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하급의 여신들이지만 사원에 모셔진 주신(主神)을 보조하고 기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여신(devata)은 크메르어로는 테보다(tevoda)로 칭해지며 사원 본존의 공양녀(供養女)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지위가 낮은 여신을 일반적으로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한편, 압사라(apsara)는 무희(舞姬), 천녀(天女)로 칭해지는데 힌두교 신들의 분류상 지위가 낮은 신이며 항상 위대한 남신들에 출현할 때 동반하여 위대한 신을 즐겁게 하고 유혹하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압사라는 천지창조 신화에서 물 위(apsu)에서 태어났다(rasa)의미라고도 하며, 대양(大洋)에서 추출되었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2층의 회랑 바깥치수는 100x115m이며 외부에는 밋밋하여 아무런 장식이 없다. 아마 승려들과 왕이 묵상과 수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 였을 것이다. 2층 회랑의 압살라들은 젖의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2층의 공간에 막 들어서면 압살라 상들이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 다른 자세들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제2회랑의 내정 쪽 외벽에는 격자의 원주창이 많이 있는데, 그 창과 창 사이의 공간, 기둥과 건물 모서리마다 여신 데와타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사원에는 사당의 기둥과 벽면에 각각 다른 모양의 데와타와 압사라 약 1700개가 조각되어 있는데, 그들은 정교하고 세밀한 식물 문양의 보관을 쓰고 머리를 여러 갈래로 땋아 내렸으며 입가에는 웃음이 넘쳐흐른다. 화려한 목걸이를 두른 목 아래로는 둥근 유방이 풍만하고 허리는 잘록하다. 상반신은 나신인데 하반신에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씨스루 치마를 걸치고 있고, 날씬한 팔과 다리에는 화려한 팔찌와 발찌를 끼고 있다.
이 데와타는 아마 그 당시 왕궁의 아름다운 궁녀와 무희들을 모델로하여 실사한 것일 것이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자태는 도상학상으로도 크메르에 특유한 조각상이어서 높게 평가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내정 벽면에 조각된 데와타들을 포함하여 기둥의 장식문양, 격자의 원주창, 대계단까지 금빛으로 빛나서 처음부터 참배자들을 숭고한 세계로 이끌었다고 한다.
2층의 외부 회랑은 1,500명이 넘는 아름다운 천상의 무희인 압쌀라가 끝없이 새겨져있다. 2층의 회랑 바깥치수는 100x115m이며 외부에는 장식이 없다. 아마 승려들과 왕이 묵상과 수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 였을 것이다. 2층 회랑의 밋밋한 외부는 화려한 장식이 대신하고 있는데, 1,500명이 넘는 아름다운 천상의 무희인 압쌀라가 끝이 없이 나타
난다. 이 압쌀라들은 젖의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2층의 공간에 막 들어서면 압쌀라 상들이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 다른 자세들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무희상들은 아직 그 어떤 조각도 압도하지 못하였을 정도로 정교한 머리카락, 머리 장식 그리고 보석 장신구들을 하고 있다. 앙코르왓에서 묘사하고 있는 압사라들은 보통 2-3명씩 같이 모여 춤을 추고 있으며, 탑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형식과는 다르게 거의 정면을 보고 있다. 17세기 캄보디아의 시인이었던 “팡”은 이 압사라를 다음과 같이 표현 했다. “이 수 많은 우아한 모습들은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정신이 새로워지며, 마음을 뜨거운 감동으로 빠지게 한다.
그들은 사람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 신들에 의하여 탄생한 것이다. 살아 생동하고 사랑스러우며 숨쉬고 있는 여인들이다.”
◑앙코르 왓 3층(제3회랑)
다시 정문 쪽으로 와 지성소(至聖所)인 중앙 탑을 향해 사람이 올라 다니기 힘들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70도 정도 계단을 오르면 3층 제3회랑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왜 사람이 다니는 계단을 만들면서 이렇게 경사를 가파르게 했을까? 학자들은 추정하기를 원래 중앙 사원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 신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드나들기는 하지만, 사제들에 국한된 것으로 겸허한 마음으로 두 손을 짚고 두 발로 기어서 올라가라고 하는 종교적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 공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주기 위하여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경사 70도의 40계단을 여행객들은 모두가 손과 발을 이용하여 기어서 올라간다. 보행이 불편하거나 필자와 같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자는 이 계단을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고소공포증으로 3층에 오르지 못하고 일행이 내려오도록 2층에서 3층을 관조하였다. 3층은 직접 답사하지 못하여 기록에 의한 자료를 인용하여 기술한다.
중앙 대 계단 33개를 기어올라 좌우로 폭이 좁아진 네 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면 힌두교의 37천국과 같은 수의 계단이다. 내정보다 13미터 높은 제 3회랑에 다다른다. 대계단 위 제 3회랑 입구에 앉으면 걸어 들어온 서쪽이 바라다 보인다. 눈 아래 멀리 사원 입구에서 돌다리로 해자를 건너 탑문을 지나 들어오는 475m의 참배도와 제1회랑, 제 2회랑이 똑바로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머리 위로 우뚝 솟은 탑들이 함께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멀리서 보였던 그 탑들이다.
여기도 벽을 따라 수많은 압싸라들이 보인다. 그리고 좌우로는 조그만 석조물들이 또 보이는데 이곳 역시 도서관들이다. 아마도 하나씩 이 신전을 오를 때마다 필요한 도구나 향료, 음식들을 보관해 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공간은 사람이 없을 때 들어서면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채색의 사암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할 때면 꼭 무슨 신성한 곳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앙코르 왓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원들은 관광객이 적은 시기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지성소(至聖所)인 중앙 탑을 향해 오르는 계단은 매우 가파르다. 사람이 올라 다니기 힘들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데, 70도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이 다니는 계단을 만들었으면서 이렇게 경사를 가파르게 했을까? 학자들은 추정하기를 원래 중앙 사원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 신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드나들기는 하지만, 사제들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 공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주기 위하여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경사 70도의 40계단을 여행객들은 모두가 손과 발을 이용하여 기어서 올라간다. 보행이 불편하거나 필자와 같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자는 이 계단을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고소공포증으로 3층에 오르지 못하고 일행이 내려오도록 2층에서 3층을 관조하였다
<2층에서 3층의 중앙탑으로 오르는 70도 경사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