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시의 항해
-시집 『삐딱선 타다』
손혁건 시인 (국제시사랑협회 회장)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거나 마음 또는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바르지 못하고 조금 비뚤어져 있을 때 우리는 삐딱하다는 표현을 한다.
오영란 시인은 적지 않은 시간 시를 써온 시인이다. 시에 대한 치열하고 맹렬한 의지와 열정이 남달랐으며 누구보다 시에 대한 고민이 많았음을 익히 알고 있던 터다.
오시인의 시에서는 빼어난 서정적 감성과 일상의 소소한 발견에서 얻어지는 잔잔한 감동들이 빼곡했으며 순수하고 깨끗한 정갈함이 가지런하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그런 그녀가 삐딱선을 타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와 놀라웠다. 삶의 일탈이나 이탈이 아닐까 하는 소심한 염려를 일거에 불식 시키는 새로운 시적 전개는 예컨대 사물이나 자연 또는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곡점이 생기며 또다른 상상력의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밤의 우물가엔 많은 것들이 서식한다
전생의 기억인 듯 뒤엉킨 그림자들의 아우성과
축축한 낮의 환영들은 이끼를 만들어 미끄러지게 하고
짚고 일어나는 손가락 사이마다 꽃 피운다
털어낼 수도 없는 꽃잎은
은밀한 시간에 손잡는 알약을 닮았다
하지만 꽃은 꽃이고 약은 약일 뿐,
꽃잎을 갈아 알코올에 섞어 마실까
끈질기게 따라온 잠의 방해꾼은
싸리비로 쓸어 담아 텃밭 퇴비로 쓰면 좋곘다
이끼꽃에 한눈 판 게 미안해서
알약은 다시 서랍에 넣는다
약을 타지 않은 잠의 우물 안에 온몸 담그고
바다 깊이 유영하는 한 마리 고래가 된다
- ⌜불면증 밀어내기⌟ 전문
한 생을 사는 건 만만치 않아서
삶은 경이롭고 눈물겨운 일이다
-⌜품다⌟부분
⌜불면증 밀어내기⌟에서 살펴보면 불면증은 자아가 겪는 현실에서의 난관이자 극복해야 할 과정이다. 시인은 오롯이 혼자서 이겨내야 할 삶의 무게를 타의적인 것에 현혹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가령 ‘약’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 견뎌내기 위한 방법으로 바다라는 잠재의식의 세계 속에서 “잠”과 “잠의 방해꾼” 다시말해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를 유영하는 고래가 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과감히 일차원적 서정의 세계를 벗어나 다분히 다의적인 것들을 품고 ⌜품다⌟보면 ‘삶은 경이롭고 눈물겨운’ 여정임을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성찰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삐딱한 시의 항해를 위한 닻이 올려졌다.
전시회는 끝났다
액자를 지탱했던 작은 못은
휴식을 즐기는데
흰 벽은
우두커니 텅 빈 공간을 마주한다
설렘 땀 웃음이 깃든 시간에 가리어져
벽은
잠시 잊었나보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약속 없는 기다림으로 잠 잃은 새벽을 맞이하겠지
저 하얀 공간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숨 고른다
-⌜빈 둥지 증후군⌟ 전문
위 시 ⌜빈 둥지 증후군⌟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거나 주시해야만 의미를 전달받을 수 있는 ‘전시회’가 삶에서 수도 없이 표출하고 충족하는 욕망의 감정이며 상징계라 말할 수 있다면, 그 다양한 감정을 가두고 벽에 걸어 끝없이 자아를 발견하려 하고 판단을 유추하려 하는 ‘액자’는 상상계라 할 수 있다. 또한 액자를 지탱하고 있지만 삶을 관통하는 깊은 고통의 뿌리인 ‘못’은 실재계가 아닐까 하는 라캉적인 사유를 유추하게 만드는 시이다. ‘벽’이 바로 시적 자아의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오영란 시인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에서 무소유의 자아를 각성하고 있으며, “저 하얀 공간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숨 고른다”고 하였으나 머물지 않아도 될 “저 하얀 공간”이 결국 “벽”이며 꾸준히 헤쳐 나가야 할 자신의 삶이란 걸 잘 알면서도 아이러니(역설)한 표현을 통한 오영란 시인만의 시의 삐딱한 항해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너의 외침은 노래가 아닌 울음
세상 가장 처절한 기도였다는 것을 알기에
차마 묻지 못했다
-⌜매미⌟ 부분
엄마가 보여
그곳에서도 꽃무늬 옷을 즐겨 입나봐
생전엔 보이지 않던 나비도 보이네
조심스레 손 잡았지
따뜻했어
중략
가끔은 그리움이 시간의 등허리를 적시겠지만
당신의 말을 부적처럼 기억하며 풀빛 그림 그려갈 거야
그러니 엄마도
‘아무 걱정 하지마!’
-⌜아무걱정하지마⌟ 부분
어떤 절대자에게든 삶에 대한 물음을 꾸준히 던져 보아도 되돌아오는 대답은 운명이거나 숙명의 테두리 안에 갇힌 극복이 최선이다.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오영란 시인은 일상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경험하고 그것을 오롯이 견뎌 내며 시를 써왔기에 “차마 묻지 못했다” 해도 이미 삶의 방식이 각성 되어 있는 것이다. 시린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에게 “당신의 말을 부적처럼 기억하며 풀빛 그림 그려갈 거야 / 그러니 엄마도 / ‘아무 걱정 하지마!’” 라는 당부 또한 엄마의 안부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삶에 대한 지독한 걱정의 아이러니(역설)로 보인다.
안개 짙은 삐딱선에서는 항구도 보이지 않는다
창을 적시는 빗줄기에 물어볼까나
어디쯤에서 하선해야 좋은지
-⌜삐딱선 타다⌟ 부분
오영란 시인의 삐딱선은 결국 시의 아이러니였으며 상상력의 변곡점이자 삶의 전환점이다. 따뜻한 햇볕이 듬뿍 쏟아져 내리는 남국의 크루즈에 탑승해 새로운 시의 항로를 개척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하선의 위치나 시기를 묻거나 하선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다. 오영란 시인의 삐딱선이 저 끝없는 바다를 헤쳐 나가며 가져다줄 앞으로의 여정에 기대가 무척 크다. 오영란 시인의 삐딱선에 지중해산 피노누아 한 병 들고 동행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