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3년 6월 15일 갈라디아서 3장 찬송가 424장(새찬송가 380장)
0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0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0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0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0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0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0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0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0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믿음으로만 가능한 의에 대한 논증”
앞서 자신의 사도직의 신적 권위를 강조한 바울은 본 장에서는 그 권위를 가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유대주의자들의 꾀임에 빠져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갈라디아인들을 책망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던 실제적 경험도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은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또한 율법이 있기 전에 믿음에 근거하여 세우신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구원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서만 나오는 것임을 논증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갇혀 있거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아들들이 된 사람임을 선포합니다.
믿음으로 받은 성령과 칭의(1-14절)
【1절】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을 것입니다. 마치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 있는 것과 같이 반복적으로 그것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유대주의자들의 꾀임에 넘어갔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격분하여 그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2-5절】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성령의 부어주심을 경험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인치는 사건으로서, 성령을 받음으로부터 성도의 삶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성령을 받은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듣고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던 일이었습니다.
【6-9절】당시 율법주의자들은 모세를 자신들의 선생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세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신득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으로서(창 15:6),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은 혈통적 유대인들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된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됨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10-14절】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신 27:26; 레 18:5) 율법에 속한 자들, 즉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했는데, 누구도 그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그 모든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다 감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두 가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복,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방인들에게 미치게 하고, 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주의자들과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은 믿음보다 율법을 따름으로써 이 두 가지를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헛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 앞서는 하나님의 언약(15-22절)
【15-18절】사람 사이에서 세운 언약도 쉽게 바꿀 수 없음을 들어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셨던 언약은 그보다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결코 폐기할 수 없는 것임을 논증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자손들(children)’이 아닌 그 ‘자손(the posterity)’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으로서, 아브라함과 같이 믿는 자들에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의롭게 칭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9-22절】율법에 앞서는 언약에 대해 바울이 강변하자 유대주의자들이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냐?” 바울은 거기에 대해서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그것은 그 율법을 통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롬 3:20; 4:15; 7:7). 그리고 바울이 묻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냐?” 그리고 자신이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약속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우리로 깨닫게 해 준다.”
믿음으로 자유하게 된 하나님의 아들들(23-29절)
【23-29절】바울은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를 두 가지의 비유를 통해 표현합니다. 첫째는 율법의 감옥에 갇힌 자였으며, 둘째는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의 아래서 감독을 받으며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그처럼 율법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아들은 억압과 통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들은 사랑과 자애로운 보살핌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한 믿음’ 안에서 인종과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어 ‘하나’가 된 사람들로서, 이처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유업, 즉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상속자들인 것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아브라함의 의는 언제,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2. 아브라함의 언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습니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함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믿음의 글◈ “율법과 은혜”
은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율법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경험할 때 거룩한 행동은 우리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데 이것은 그분의 생명의 결과이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초점을 그분께 맞춰야 한다. 종교적인 활동이나 도덕적인 생활 방식, 혹은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바로 그분이어야 한다. 그리스도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분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초점을 맞춘다면 자연히 그분의 삶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 스티브 맥베이,“내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
첫댓글 목사님,
쪽지 보내드렸어요. 체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