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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자치신문 (2007-01-19) 기사(별고을 문중-경산이씨 편)를 전제함
경산이씨(京山李氏)의 시조(始祖)는 신라 53대 신덕왕의 외손(外孫)이며, 고려(高麗) 의종과 명종조에 악거부정(樂居副正)을1) 역임한 덕부(德富)이다. 대대로 계림(현 경주)에서 거주하다가 정중부·이의방·이 고 등이 무신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전단(專斷) 함으로써 이에 반대하여 1173년(명종3)에 경산부(京山府) 본아리(本牙里) 에2) 이거(移居)함으로써 새롭게 관향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관향을 경산(京山)으로 했던 것이 아니고 성주 지명의 변천에 따라 성산(星山) 또는 성주(星州)로 호칭 하였으나 성주의 6李, 즉 성주(농서), 벽진(碧珍), 성산(星山), 경산(京山), 광평(廣平), 가리(加利) 등도 동일(同一) 한 관향을 사용함으로써 1821년(순조21)에 성주(星州)의 오랜 고호(古號)인 경산(京山)을 관향으로 확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3)
고려조에 경산이씨를 빛낸 인물은, 2世 당유(唐兪)가 소보(少保)를 지냈으며, 3世 교년(喬年)이 위위(衛尉), 4世 원필(元弼)이 부령(副令), 5世 조(祚)가 비서성시랑(秘書省侍郞), 호(祜)가 청송부원군(府院君)에, 6世 성유(成裕)가 사온서직장(司 暑 直長), 7世 ‘미’는 송안군(松安君)에, ‘협’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는 등 많은 고위관직을 배출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서의 기틀을 다졌다.4)
특히 소부윤(少府尹)을 지낸 7世 ‘함’은 고려훈국공신(高麗勳國功臣)인 광평군(廣平君) 이능(李能)의 사위가 되어 광평(廣平)의 땅을 전수(傳受)하여 당시 세거지였던 성주읍 경산리로 부터 광평(덤개)의 땅으로 이거함으로써 덤개는 경산이씨의 본거지(本據地)이자 집성촌이 되어 7백년간 세거하고 있다.5)
경산이씨는 시조공의 맏집으로 이어지는 5世 조(祚)의 후손들이 성주파(星州派) 즉 경산이씨(京山李氏)가 되고, 조(祚)의 종제(從弟)인 5世 호(祜)가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에 봉(封)해짐에 따라 금성파, 즉 청송이씨 (靑松李氏)로 갈리게 되었으며 청송이씨는 현재 평안북도 및 황해도와 강원도 일대에 산거하고 있다.
이 두파 사이에 왕래가 끊겨 경산이씨는 다른 성주의 타 씨족들에 비해 수가 많지 않다.
조선조에도 경이문중(京李門中)은 명신(名臣)들과 특히 대유학자(大儒學者)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7世 소부윤(少府尹) ‘함’의 아들 삼형제 모두가 목사(牧使)와 부사(府使)를 지내는 등 지방행정장관이 많이 나왔다. 즉 8世 번(蕃)이 가선대부 양양도호부사, 사충(思忠)이 목사, 채(菜)가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6)
9世 흥문(興門)은 도호부사 번(蕃)의 아들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조선 문종때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단종때 수양대군이 황보인·김종서·허 후 등 여러사람을 화 입힐 당시 우참찬 ‘허 후’의 장인된 탓으로 제주도 안무사(按撫使)로 좌천되었지만 제주에서는 선정(善政)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기록되고 있다.7)
대사헌(大司憲) 흥문(興門)의 아우인 보문(保門)은 통덕랑(通德郞), 영문(榮門)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각각 지냈다. 흥문(興門)의 장자(長子) 10世 엽(曄)은 건공장군(建功將軍)을 지냈으며, 차자(次子) 안(晏)은 군수(郡守)를 지냈는데 선정(善政)으로 의령에 유허비가 있다.8)
경산이씨의 대표적 거학도유인; 삼익재(三益齋), 백천(白川), 학가재(學稼齋)는 높은 학행으로 경산이씨 가문을 더욱 빛냈다.
대사헌 흥문의 5대손이자 암서공(巖棲公) ‘침’의9) 아들인,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는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여헌 장현광과 교류하였으며 도학(道學)과 덕행(德行)으로 사림(士林)에 추중되었다. 천곡서원(川谷書院)을 중수하고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성주의 덕암서원과 검양서당에 제향되어 있다.
삼익재(三益齋)의 아우 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 역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고제(高弟)로 선조때 성균관 생원을 지냈고 정묘호란때는 경상도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그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강문삼로(岡門三老)로 불리었으며 ‘석학의덕’으로 사림(士林)에 추중되어 덕암서원에서 봉향하고 있다.10)
건공장군(建功將軍) 엽(曄)의 7대손이며 14世 천증(天增)의 장자(長子)인 학가재(學稼齋) ‘주’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門下)의 십철(十哲)에 드는 대유현(大儒賢)으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다. 판서를 지낸 광주인(廣州人) 이원정 등 많은 제자를 배출함과 동시에 여헌(旅軒)의 행장(行狀)을 모두 지었으며, 백인당(百忍堂)을 세우는 등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11)
특히 학가재(學稼齋)는 아들 7형제(兄弟)를 두었는데 형제 모두가 대소과(大小科)에 등제(登第)하는 등 문학(文學)과 행의(行誼)로 학가재는 당대 명성(名聲)이 대단하였으며 타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에는 삼익재, 백천, 학가재 3선생(三先生)을 존모하여 영남 유림들이 1672년(현종 30)에 창건하였고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6호로 지정된 덕암서원이 있다.
또한 조선중기에 학가재(學稼齋) ‘이 주’와 사월정(沙月亭) ‘이 윤’이12) 선조인 소부윤 이 함과 양양부사 이 번, 대사헌 이흥문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경산이씨의 대종재실로 경북문화재자료 제287호로 지정된 백인당(百忍堂)이 있다. 따라서 백인당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경산이씨 집성촌으로 마을이름을 백인당이라고 부른다.13)
한편 병절교위 팽조(彭祖), 산청군수 여애, 종사랑내금위 순(恂), 군자감봉사 및 금교도찰방 천증(天增), 사과(司果) 천장(天章),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윤(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곤’, 병조좌랑 및 순천부사 형천(亨千), 훈련원판관 ‘형제’, 생원으로 대유학자였던 달신(達新), 훈련원판관 취신(就新), 사과(司果)로 성주 동문밖에; 유공비가 세워져 있는 득신(得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규덕(奎德), 생원으로 유현이었던 석연공 우세(禹世), 이조좌랑 및 사헌부지평 병영 (秉瑩), 통정대부 절충장군 기한(基漢), 조봉대부 기린도찰방 병흠(秉欽), 효자로 칭송을 받았던 궁내부주사 두준(斗埈), 옥천군수 세영(世永), 서대문경찰서장 근복(根復) 등이 경산이씨 가문을 더욱 빛낸 인물들이다.14)
특히 경산이씨는 구한말에 우국지사와 독립투사로도 크게 활약했다.
계준(季埈)은 파리독립청원서로 옥고를 치루었고, 대유학자(大儒學者)였던 현창(鉉昌)도 파리장서 가담으로 대구감옥에서 1년간 복역하였으며, 만성(萬成)은 독립청원서 가담으로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후 순국했으며, 특히 만정(萬貞)은 을사보호조약 체결 후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각처에서 지하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탈출하여 중국에 망명하였으며 이후 미국에 건너가 이승만·서재필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계원(啓源) 역시 파리독립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우국지사였다.
또한 경산이씨는 특히 능필(能筆)이 많이 배출된 문중이다. 익수(益壽)는 금석지필로, 도원(道源)은 중등교장을 역임하였고 서예의 대가로 국전 특입선 14회로 이름을 떨쳤다. 성주향교 전교와 월항면장을 지낸 상건(相虔) 역시 능필로 이름이 높았다.
경산이씨는 10世인 건공장군 엽(曄)과 군수(郡守) 안(晏) 형제에서 분파(分派)되며, 크게 6개 대파(大派)로 분류되고 있다.
첫째는 수언파(秀堰派)이다.
10世 엽(曄)은 사형제(四兄弟)를 두었는데 장남 수언(秀堰)은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지냈으므로 창신공파(彰信公派)라고도 하며, 건공장군 의홍위 중부장(中部將)을 역임한 엽(曄)의 관직을 따서 부장공파(部將公派)라고도 부르나, 학가재(學稼齋)의 호를 명명하여 보통 “학가재파”로 불리운다. 월항면 안포리, 청도군 이서면 대곡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일부는 대구와 고령군 운수면 등에 산거하고 있다.
둘째는 수장파(秀場派)이다.
건공장군의 아들로 사맹(司猛)을15) 지낸 수장(秀場)은 숙부인 단천군수 안(晏)에게 출계(出系)되었고, 군수공파(郡守公派) 또는 사맹공파(司猛公派)라고도 한다. 그러나 백천(白川)의 호를 명명하여 일반적으로 “백천파”로 불리운다. 월항면 안포리, 금수면 어은리(적산), 금수면 봉두리(새출), 선남면 용신리(제정)16), 초전면 문덕리(송천) 등지에 살고 있다.
셋째, 수제파(秀堤派)이다.
건공장군의 차남 수제(秀堤)는 보공장군 부사직(保功將軍 副司直)을 지냈으므로 사직공파(司直公派)라고17) 불리운다. 월항면 안포리,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김천시 지례면·황정면에도 세거하고 있다.
넷째, 수오파(秀塢派)이다.
건공장군의 3남 수오(秀塢)는 김안국(金安國)의18) 문인으로 진사(進士)를 지냈으므로 진사공파(進士公派)라고도 한다. 월항면 안포리, 합천군 삼가면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다섯째, 홍복재파(洪福齋派)이다.
수언(秀堰)의 2자(二子)인 팽복(彭福)은 학문이 고매하고 인품이 출중하여 홍복재(洪福齋)에 제향되어 있으며; 재실(齋室) 이름을 따서 홍복재파(洪福齋派)라고 일컫는다. 월항면 안포리, 벽진면 매수리(수남)을 포함한 성주군 일원과 대구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여섯째, 보문파(保門派)이다.
9世 흥문(興門)의 아우로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보문(保門)의 후손들로써 통덕랑공파(通德郎公派)라고도 하는데, 성주군 초전면과 대구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집성촌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가재의 장자(長子) 형백(亨百)의 후손은 월항면 안포리(상포)에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그의 현손(玄孫) 산수정(山水亭) 덕유(德游)의 후손은 월항면 용각리(묵산)에 살고 있고,
학가재의 삼자(三子) 생원(生員) 형만(亨萬)의 후손은 청도군 이서면에 살고 있으며,
오자(五子) 형조(亨兆)의 후손은 고령군 운수면에 살고,
칠자(七子) 생원(生員) 형하(亨河)의 후손은 대구 월배에 살고 있다.
팽복(彭福)의 현손이자 학가재의 6子인 암재(岩齋) 형련(亨連)의 후손은 월항면 안포리(신기)에 집성촌을 이루었고,
형련(亨連)의 둘째집 장손 18世 만학재(晩學齋) 하상(夏相)의 자손은 벽진면 매수리(수남)에 거주하고 있으며, 학가재의 아우 학포재(學圃齋) ‘성’의 후손은 월항면 지방리(모산)와 안포리에 거주하고, 12世 팽복(彭福)의 차자(次子) 위장 (衛將) 염(恬)의 후손은 대구에 살고 있다.
백천(白川)의 장손 16世 의당(毅堂) 형희(亨禧)의 후손은 월항면 안포리(백인)에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형희(亨禧)의 장자 17世 삼민당(三悶堂) 달신(達新)의19) 3자인 ‘취’의 후손은 선남면 용신리(제정)에 살고 있다.
16世 대은(大隱) 형조(亨祚)의 후손은 월항면 안포리(백인)와 금수면 어은리(적산)에 거주하고, 돈재(遯齋) 형호(亨祜)의 후손은 월항면 안포리(백인)에, 형호(亨祜)의 5자인 석헌(石軒) 취신(就新)의 자손은 금수면 봉두리(새출)에 주거한다.
백천(白川)의 차자 천하(川下) ‘영’의 후손은 초전면 문덕리(송천)에 살고 있다.
경산이씨는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에 시조공과 2세 당유(唐兪), 3세 춘년(椿年), 4세 원연(元衍), 5세 성유(成裕)의 제단비를 세워 매년 음력 10월 3일에 향사하고 있다.
경산이씨는 전국 세거종인이 약 8천인으로 추정되며 성주군에는 305호 1천인정도의 종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산이씨 대종회 회장은 이영석씨이며, 서울·대구·부산에 화수회가 결성되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문중의 각종 사업에 대해 열정을 쏟고 있다.
현재 경산이씨를 빛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의근 경상북도지사, 이상경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원덕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등이 있다.
※ 엮은이 : 이재필 , 교 정 : 경산이씨 대종회
1) 악거부정은 음악 등을 주관하던 부처의 3품직인 이사관급
2) 경산부 본아리는 현재 성주읍 경산리 일대를 말한다.
3) 경산인의 묘비에는 성산 또는 성주로 기록되어 있는 곳도 많다.
4) 소보란 태자소부라고도 불리었는데 고려조 태자부의 2품 차관급 ; 위위는 고려조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 병기(兵器) 등을 맡아보던 관청의 6품직 사무관급 ; 부령은 고려조 전의시 등의 차관에 해당하던 4품직 ; 비서성시랑은 고려조 경적(經籍)과 축문(祝文)을 주관하던 비서성의 차관급 ; 사온서직장은 조정의 주류(酒類)를 관장하던 7품직; 청송부원군과 송안군은 정1품직으로 왕족이나 왕후의 아버지 또는 국가공로자에게 수여하던 명칭 ; 판도판서는 현재의 재경부 장·차관급 ; ‘협’은 원래 ‘합’으로 읽혀지나 선조들이‘협’으로 읽어왔다.
5) 소부윤은 부의 수령으로 종3품직인 이사관급 ; ‘함’은 원래‘감’으로 읽혀지나 선조들이 ‘함’으로 읽어왔다. ; 광평은 현재의 성주군 월항면 덤개(암포) 일원을 말한다. 당시 덤개(암포)는 월항면 안포리를 포함하여 그 인근지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경산이씨의 세거지인 덤개 마을의 특이한 점은 성주의 집성촌 중 가장 많은 호수와 인구를 가졌으며 마을 역사가 7백년으로 매우 길다는 점이다.
6) 도호부사는 종3품직의 이사관급 ; 목사는 조선조에 전국 약 20여목이 있었는데 목의 수장인 정3품직으로 관리관급
7) 대사헌은 종2품으로 현재의 검찰총장 또는 감사원장에 해당 ; 대사헌을 지낸 이흥문은 허 후의 장인이다. 허 후는 허 조의 아들로 직제학·승지·한성판윤·대사헌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단종을 보필하다가 계유정난 뒤에 거제도로 유배 후 살해되었다. 허 조는 호가 경암(敬庵)으로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조선건국 후에 예조참의·판서·좌의정을 역임했으며 검소한 생활로 존경받았다. 대사헌 이흥문은 경암(敬庵) 허 조와 양촌(陽村) 권 근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안무사는 백성들의 어려움과 수령들의 잘잘못을 살피기 위해 파견한 정3품직이다.
8) 통덕랑 및 사헌부 지평은 5품직의 서기관급 ; 건공장군은 종3품 상계로 조선조의 8장군(절충·어모·건공·보공·진위· 소위·정약·선약)중 3번째 장군으로 현대의 소장∼중장급 ; 단천군은 현재 함경남도에 소재하고 있으며 단천군수는 4품직으로 부이사관급 이상
9) 암서공(巖棲公) 침은 삼익재와 백천의 아버지로, 한강 정구와 함께 덕계(德溪) 오 건(吳 健) 문하에서 배웠고 동강 김우옹과 낙선호의(樂善好義)로 사귀었다.
10) 의금부도사는 5품직인 총경급 ; 강문삼로라 하면 한강 정구의 제자로 회연서원을 건립하고 스승의 신도비를 세웠으며 ‘한강 문집’을 간행하는데 주역을 했던 동호·백천·등암을 일컫는다.
11) 학가재는 11세부터 여헌에게 수학하였고 벼슬은 멀리하였으며 이조판서를 지낸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 여헌 장현광은 1554년(조선 명종9)에 生하여 1637년(조선 인조15)에 卒하였다. 본관은‘인동’으로 父는 이조판서 열(烈)이며 母는 경산이씨 팽석(彭錫)의 딸이다.
여헌은 현감·군수·지평·이조참의·형조참판·대사헌 등에 임명되었으나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만 종사하였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거유석학(巨儒碩學)이었다. 서애 유성룡이 여헌의 학문에 탐복하여 아들을 문하로 보내어 배우게 했다. 조선 효종때는 영의정에 추종되었다. 저서에는 여헌집 11권, 역학도설 9권, 용사일기 2권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선산의 금오서원·구미의 동락서원 등에 제향되고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12) 사월정(沙月亭) 윤(綸)은 백천(白川)의 아들로 통정대부 첨중추(僉中樞)를 하사받았고, 낙동강 어귀인 지금의 칠곡군 기산면 강정촌(江亭村)에 정자(亭子)를 지어 사월정이라 이름짓고 청천당 장응일·병조좌랑을 역임한 백포(栢浦) 채 무·성주군수 최계훈·인동현감 강 호 등 한 시대의 여러 명사(名士)들과 시문(詩文)을 즐겼다. 특히 사월정의 아들 6형제 모두가 학행도의(學行道義)로 성망(聲望)이 높았을뿐 아니라 6천석(千石)의 호부(豪富)로 많은 은덕을 베풀어 성주고을 백성들로부터 추앙과 칭송을 받았다.
13) 백인(百忍)마을은, 학가재와 사월정이 경산이씨 대종재실를 건립하고 ‘참으면 덕이 되고 참으면 어질게 된다’는 종족 화목의 뜻을 담고 대종재사 명칭을 ‘백인당’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유래된다.
14) 병절교위는 영관급 장교 ; 종사랑내금위는 왕의 측근에서 호위를 맡은 경호실 간부급 ; 찰방은 지금의 왜관역장급 ; 사과는 영관급 이상의 장교 ; 통정대부는 정3품 상계이며 중추부사는 종2품직으로 차관보급 ; 가선대부는 종2품 하계 ; 좌랑은 사무관∼서기관급 ; 훈련원판관은 영관급 장교 ; 승문원정자는 외교통상부 주사급 ; 조봉대부는 종4품으로 부이사관급 이상 ; 절충장군은 정3품의 무관직 당상관으로 조선조 문무차별로 무관직은 정3품이 최고관직이었기에 지금의 ‘대장’급이다. ; 궁내부주사는 지금의 청와대비서실 주사급
15) 창신교위는 조선조 오위중 하나인 충무위 소속의 5품 무관직으로 지금의 영관급 장교 ; 사맹은 8품의 무관직
16) 선남면 용신리(제정)는 마라톤으로 우리나라를 드높인 京山人 창훈의 출생지이다.
17) 보공장군은 지금의 준장급 장성이며, 부사직은 조선조 오위에 속한 영관급 장교로 창신교위라고도 한다.
18) 김안국은 조선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의성’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굉필(金宏弼) 문인으로 사림파(士林派) 학통을 계승했으며, 대사간·공조판서·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9) 삼민당 이달신은 만회정 송세빈의 사위이기도 하다. 종조(從祖)인 학가재 문인으로 호는 삼민당(三悶堂)이며 유림에서 수계하여 건립한 공암서당에 추존되어 있다. 삼민당은 1690년(숙종16)에 참혹한 흉년으로 주민들이 곤란에 빠져있을 때 몸소 호조에 나아가 수백 은채로 주민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고 이듬해 전답을 팔아 상환했다.
성주자치신문 2007-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