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손상익
대항해시대와 조선 화승총
인류 역사는 15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에 이르는 250여년을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 부른다. 선두에 서서 범선을 띄웠던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 시기를 위대한 탐험시대(Grandes Navegações)라 이름 지었다. 영어로는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 혹은 탐험의 시대(Age of Exploration)라 불린다.
대항해시대란 근사한 작명(作名)은 사실 후안무치한 서구의 관점이다. 대항해시대는 유럽이 화승총을 발명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며 그 총을 들고 유럽이 아닌 다른 나라 인류에게 마구잡이로 총질하고 부(富)를 강탈한 시기와 맞물려있다. 강도행위에 불과한 역사를 대항해니 발견이니 탐험 따위의 거룩한 단어로 치장했을 따름이다.
부연하자면, 화승총을 발명한 남유럽 국가가 먼저 사격수를 범선에 태우고 망망대해로 나가 화승총을 가지지 못한 무방비 상태의 이방 인류에게 총알세례 퍼붓는 해적질에 성공하자, 나머지 유럽 나라가 너도나도 바다로 나가 배가 닿는 나라마다 화승 총질하여 식민지삼고 약탈한 역사가 바로 대항해시대라는 허울이다.
서구의 대항해시대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남북 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동아시아로 점차 확대됐다. 서양의 대척점이던 동양(Asia)은 오로지 서양의 수탈대상이었고 조선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아시아에 화승총이 전래된 루트는 대부분 16세기부터 인도와 동남아에서 화승총을 휘둘러 식민지를 뒀던 포르투갈과 17세기 초에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이 동양에서 독점무역을 행사하려 인도에 설립한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 East India Company)와 연결된다. 동인도회사는 오늘날의 민간 주식회사 형태와 같은 형태지만, 무소불위의 화승총부대가 함께 배치된 엄연한 폭력집단이었다.
동인도회사는 서구 중상주의 시대의 전근대적 독점상업조직의 틀을 간직한 채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산과 산업자본의 지배를 위해 존재했다. 장사에 방해되는 동양인은 물론 함께 진출한 유럽 나라끼리도 이권다툼의 피비린내 나는 총질을 해댔다. 1858년 세포이 항쟁이후 기득권의 승기를 잡은 영국이 결국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말았다.
화승총은 포르투갈과 동인도회사의 아시아 착취무역 영향아래 동아시아 3국에 전래됐다. 신무기 화승총을 보유하는 길만이 자국의 국방을 도모한다는 사실은 중국과 일본, 조선이 모두 깨닫고 있었으나 실제로 화승총을 도입했던 과정은 사뭇 달랐다. 지정학적인 조건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중국은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유럽에 사기그릇(china)이나 비단(silk), 차(tea)를 무역했던 탓에 화승총을 비롯한 서양의 문물을 접할 기회가 조선이나 일본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포르투갈에 의해 중국의 연안 항구에는 화승총 상인이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중국 왕조와 끊임없는 내우외환으로 말미암아 화승총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가는 집중과 선택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서구 무역선이 중국항로를 개척하면서 곁다리로 개척됐던 것이 일본항로였다. 일본열도의 남쪽 섬 큐슈의 나가사키는 일찍이 남만(南蠻; 포르투갈) 무역상이 왕래했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商館)까지 설치됐다. 거기를 서구 무역상이 화승총을 들고 수시로 들락거렸다. 일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화승총을 도입했다.
1543년 중국의 닝보(宁波; 저장성 항구)로 향하던 포르투갈 상인이 폭풍을 만나 큐슈 아래 외딴 섬 타네가시마에 난파하여 판매한 구형 화승총 아케부스를 1년 뒤에 국산화 하는데 성공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유럽 무역상으로부터 화승총 수 천정을 수입해 당시 일본 기병대 최강무력이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부대를 격파하고 일본 전국을 통일하는데 일조했다.

▲ 일본 쿠니토모 뎃포의 본가(国友鉄砲の里). 시가현 나가하마시 구니토모정 534번지
(滋賀県 長浜市国友町 534)에 위치한 쿠니토모의 옛 뎃포생산처는 1544년 타네가시마
화승총을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곧 바쿠후 쇼군의 뎃포 제작을 의뢰받아 처음 화승총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쿠니토모는 뎃포를 생산한 수많은 일본의 장인가문 가운데 하나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휘하 장졸의 무장에 쓰일 뎃포를 독점생산했다.
www.kunitomogs.co.jp/CompanyProfile/K_comp_root.html
화승총 국산화에 성공한 일본은 열도 곳곳에 화승총 총포제작 장인(匠人) 가문이 생겨나고 군벌과 결탁해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최대 화승총 생산국이 됐으며 그 뎃포로 무장한 왜병이 명나라까지 집어삼키려 조선을 침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조선은 서구의 화승총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었다. 지리적으로 유럽이 개척한 해양항로에서 소외됐거나 일본 바쿠후의 의도적인 방해로 조선과 통하는 서구 무역항로는 원천적으로 막혔기 때문이다.
사실은 조선도 일본에 앞서 화승총을 도입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무역선이 두 차례나 제주도에 난파하는 등 화승총 국산화에 나설 찬스가 있었지만 아깝게도 조선 측 사정으로 인해 번번이 실기(失機)하고 말았다.
첫댓글 좋은글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