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혈족인 외가 친척들은 모두
순천에 살고 계신다.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왕래가 잦을수도 있을텐데
너무 먼 순천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일찌기 서울로 올라온 우리집은
순천에서 in seoul 하여 대학에 진학한 친척들의
하숙집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 때 몇년을 함께 했던 오빠는
올해 72세.
50년전의 고마움이
나이가 들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엄마에게 종종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그 오빠가 이번에 딸을 결혼시키는데
코로나도 그렇고, 거리도 그렇고,,,
쉽게 간다는 말이 안나왔다.
축의금만 먼저 송금을 하고 축하와 사과를 동시에 했다.
그러던차에 부고를 받았다.
막내 이모부가 소천을 하셨다.
공교롭게 결혼식 전날이라
문상을 가는길에 예식장에 먼저 들러 인사를 할 요량으로
여덟시쯤 오빠와 언니를 만나 출발했다.
고속도로 하면 자동연관 단어로 휴게소가 떠오르지만
예식 시간까지 빠듯할듯 하여
그냥 가자 했는데
고속도로에 올라타니
차량들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거슨.... 마치.......
명절의 귀향차량 행렬 같다.
휴가철도 지나고, 단풍은 아직 이른데
다들 어딜 가려고 이렇게 나선 것일까.....
추석을 앞둔 벌초행렬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결국....ㅠㅠ
다섯시간후에 도착할꺼라던 네비는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다가
여섯시간 반만에 안내를 종료했다.
예식장은 물건너 갔고,
장례식장으로 바로 갔다.
코로나 확진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이모부.
간병을 하다가 함께 확진된 이모는
자가격리중이라 보이지 않았다.
식장은 썰렁했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시아주버님의 자녀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입양을 해서
빈소는 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모 부부는 자식이 없으니....
그리고 모든 허드렛일은
큰 일을 도맡아 해 왔던 사촌언니가 돕고...
오랜만에 만난 이종 사촌들은
언제나 정겹다.
언제봐도....
나는 어제 교회 목자 모임에 참석했던 한 목자가
자가키트 결과 양성이 나왔다고 했다.
밀실까진 아니더라도
카페의 룸에서 다섯명이 함께 했던 자리라
움찔 하며 염려가 잠깐 되었으나
그녀는 한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나도 내 차례에 얘기할때 외엔 쓰고 있었다.
오늘 아침 기도했다.
지금까지 지키신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