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빈 임신 출산 기
지금 난 다섯 살과 세 살배기 너무도 예쁜 두 딸을 둔 엄마이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내가 성영주 선생님을 만나 수련을 하지 않았으면 과연 이 예쁜 딸들을 볼 수 있었을까 싶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산모와 태아 케어 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서른여섯 늦은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이 장남이었던지라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소식이 없냐고 어른들께서 은근히 재촉을 하셨다.
더 늦기 전에 인공수정이라도 해야 되나 싶어서 남편과 함께 차병원을 예약했다. 그런데 생리가 없어지고 가슴이 땡땡해지며 자꾸 체하는 것이 이상해서 동네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이라는 것이다. 결혼 사 개월 만에 자연임신을 한 것이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그런데 임신 삼 개월 때 밤에 잠을 자는데 갑자기 뒤 골이 당기고 참기 어려울 정도로 밤새도록 머리가 아팠다. 잠 한 숨 못자고 동네 산부인과에 갔더니 혈압도 높고, 자궁입구에 근종도 큰 게 있고, 나이도 많아서 잘못하면 출산 시 대량출혈로 인해서 산모와 태아가 다 위험해질 수 있다고 대학병원으로 의뢰를 해주는 것이다. 그 산부인과도 그 지역에선 꽤 잘한다고 소문난 산부인과였는데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난 강남성모병원을 예약했다. 그리고 수련원을 가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께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는데 엄마의 몸에 변화가 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시며 날 수련시키셨다. 그렇게 매일 삼일을 수련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뒤 골이 당기던 것이 사라졌다. 그 얘기를 강남성모병원 담당교수님께 했더니 너무도 놀라워하시며 도저히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노령 산모이다 보니 기형아 검사니 핵의학검사니 초음파 검사니 별의별 검사를 다 했다. 그리고 은근히 노령출산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엄마로서 혹시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이상이 있으면 어떡하나 괜히 걱정이 되고 우울해졌다. 선생님께선 그럴 때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고, 엄마가 우울하면 배속의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시며 수련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 당부를 하셨다. 그때는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라 운전할 때마다 불쑥불쑥 끼어드는 차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고, 어른들을 모시고 사느라 받는 스트레스가 겹쳐 몸에 부종이 왔다. 그래서 임신 육 개월 만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신 칠 개월 때 분가를 하면서 병원도 집근처의 제일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혹시나 나중에 수술할 지도 모를 거 같아 난 산부인과 과장님으로 특진을 예약했다. 그런데 첫 대면에서 대뜸 노령 산모이면서 왜 양수검사는 하지 않았냐고 양수검사부터 예약하라고 호통을 치셨다. 난 더 이상의 기형아 검사는 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외과 과장님은 노령산모에겐 그런 검사가 필수코스인양 오히려 날 안타까워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너무도 기가 막혀서 수련원에 왔더니 선생님께선 오히려 양수검사 안 한 것이 잘한 일이라며 그건 산모에게나 태아에게나 스트레스이고, 자칫 잘못하여 운이 나쁠 경우엔 태아의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는 검사라고 말씀해주셨다. 병원에서 피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하고 올 때마다 배속이 땡땡하게 뭉치고 소화가 안 되었다. 분명 배속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분명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서 수련을 시키시면 배 속의 아이가 편하게 잠이 들고 나도 깊게 숙면을 하고 집에 갔다. 배가 점점 불러 오면서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항상 오일로 배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런데 남편의 손이 움직이는 곳으로 배가 불룩해지면서 배속의 아이도 움직였다. 그래서 남편이 “난 네 아빠란다. 아빠 소리가 들리면 발로 한 번 뻥 차봐!” 그랬더니 놀랍게도 배속의 아이가 발로 뻥 차는 것이다. “한 번 더!!” 그랬더니 다시 한 번 뻥 차는 것이다. 뻥 찰 때마다 아이가 발로 찬 부분이 불룩하게 올라 왔다. 남편과 나는 너무도 놀랍고 신기했다. 남편의 손이 갈 때마다 기감을 느낀 배속의 아이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배가 불룩 튀어 나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남편이 내배에 귀를 대고 있으면 배속에서 물소리, 아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다 들린다고 했다. 이런 경험을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그런 일이 어디 있냐고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직 선생님께서만 당연한 일이라며 흐뭇해하실 뿐이었다. 수련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다행히도 근종은 더 커지지 않았고, 산모의 몸 상태도 좋고, 배속의 아이도 건강하다며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자며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서른일곱 살인 2007년 11월 12일 열두시간의 산고 끝에 난 자연 분만으로 3kg의 건강한 첫딸을 순산했다. 출산 때 일화를 하나 소개 하자면 아무리 힘을 줘도 아이가 잘 나오지 않자 과장님이 겸자 분만을 유도했다. 그런데 과장님이 나가고 그 옆에서 보조했던 의사가 나를 보고는 놀라면서 말했다. 과장님이 겸자 분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아주 위험할 뻔 했다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탯줄이 발목을 잡아 제대로 돌지를 못해서 겸자로 빼냈을 때 아이가 아래를 보고 있어야 하는데 위를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발목에는 탯줄이 감겨 있더라는 것이다. 까닥 잘못했으면 아이가 나오지 못해 질식사 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행운이라고 했다. 남편과 난 첫 대면에서만 껄끄러운 의사였지 결국에는 과장님을 특진 예약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놀라워했다. 육 개월 뒤 자궁 검진에서 근종이 깨끗하게 사라졌다는 놀라운 소식도 접했다. 수련을 하면 젖이 너무 잘 돌아서 모유수유를 십 오 개월 까지 하고 둘째 아이가 들어서면서 첫째 아이의 수유를 끊었다. 이미 첫아이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둘째 때는 몸도 한결 가볍고 수월했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께서 해외로 장기 명상수련을 가셨다. 선생님께서 서울에 안 계시는 것이 너무도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혼자 수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임신한 몸으로 혼자 수련하는 건 잘되지 않을뿐더러 한계가 있었다. 첫 아이 때의 경험을 거울삼아 임신 초반기에는 굳이 큰 병원을 찾을 것 없이 동네 산부인과를 갔다. 내가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 임신에 자연분만을 했다고 하니까 의사도 놀라워했다. 검사도 기형아 검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고, 중요한 몇 가지 검사만 선별해서 했다. 그런데 배가 점점 불러오니까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팔 개월에서야 제일병원으로 다시 옮겼다. 과장님은 왜 이렇게 검사를 안했냐고 또 호통을 치셨다. 그런데 삼차원 입체 초음파 검사에서 아이의 심장으로 가는 대동맥과 대정맥이 하나는 가늘어 있고, 하나는 굵어져 있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손을 쓸 수는 없고 분만 후에 소아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도 놀랐다. 임신 이 개월 무렵 양평에서 해장국을 잘못 먹고 두드러기가 올라오더니 그것이 온몸에 피부병으로 번져 한 삼 개월 동안은 약도 제대로 못쓰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오 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병원 처방을 받고 제한적으로 연고를 바르며 고생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피부병으로 고생하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가 심장에 타격을 입었나? 아니면 피부과 연고 때문에 영향을 받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자꾸 자책을 하면서 걱정을 하니까 남편은 첫째 때도 병원에서 별의별 소리 다 듣지 않았냐면서 별일 없을 거라고 날 위로해 주었다. 구 개월이 되자 자궁에 양수가 부족해서 자칫하면 아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하여 예정일보다 한 달 앞서 유도분만을 했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 세 시간 정도 진통을 하고 2009년 9월 21일 내 나이 서른아홉에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에서 심장 이상을 측정하기위해 몸에다 심장 진단기를 달았다. 모자동실에 입원해 있는 삼일 동안 나는 두 시간마다 신생아실에 가서 모유수유를 하면서 아이를 계속 수련시켰다. 특히 심장부위를 집중적으로 수련시켰다. 그 덕분인지 심장은 이상이 없다고 하여 아이를 안고 무사히 집으로 퇴원을 하였다. 선생님께서 옆에 계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다행히도 선생님께서 명상수련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난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그 추운 겨울에 백일도 채 안 된 둘째를 안고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수련을 계속한 덕분인지 둘째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났고, 젖을 빨고 자는 습관 때문에 앞니에 충치가 생겨 십 오 개월에 서야 겨우 모유수유를 끊었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선생님과 인연을 맺어 수련을 하게 된 것이 나를 위해서도 남편을 위해서도 우리 예쁜 두 딸을 위해서도 얼마나 잘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면서 선생님께 너무도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첫댓글 우리 볼매파대장이라서 글도 잘쓰고 선생님을만나 일찍부터 수련해서 태교를 잘했네요 딸내미들이 엄마를 닮아서 눈도 크고 참 이쁘고 귀여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