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입니다.
남들은 친정 나들이가 기쁘다고 했지만
저는 친정에 갈 생각만 하면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10여 년째 중풍을 앓으시던 아버지 때문이었죠.
아버지 생신을 맞아 내려간 그날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누워만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과를 한참 깎다 보니
어디선가 쿰쿰한 냄새가 났습니다.
아버지가 볼일을 보고 혼자 뒷처리를 하려다
방바닥이며 이불 여기저기에
묻혀 놓으신 거였습니다.
젖먹이를 등에서 내려놓고 치우는데
갑자기 짜증이 나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지, 왜 이래 정말!
이런 모습 때문에 짜증나서 못 오겠어.”
그러자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제게서 걸레를 빼앗으려고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손등을 보았습니다.
화상으로 일그러져 시커멓게 얼룩진 손등.
그 손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형제 가운데 가장 약했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아버지는 당신이 손수
보약을 달이셨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약을 사발에 부으려고
탕기를 휘이 흔들다
그만 펄펄 끓던 약이 넘쳐 아버지 손등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생긴 화상 흉터가
아버지 손등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내 자식에게 대하는 것
100분의 1이라도 아버지를 생각했더라면,
자리 보전하고 누워서 꼼짝도 못하신 채
손자 한번 안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했을 텐데….
지금은 화상 자국 남은 아버지의 손등을
볼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먼길을 떠나신 아버지는
이젠 아픔 없는 저 하늘나라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우릴 내려다보시겠지요.
아버지를 볼 수 없기에
더더욱 간절하게 그 사랑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