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먼저 와서
류인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 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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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쁜 도시의 일상에 쫓기다보면 계절이 언제 지나간 줄도 모른다. 팬데믹 시대에 야외활동이 뜸하다보니 더 더욱 그렇다. 그러다가 우연히 공원길을 지나가면서 엊그제 봄이 온 것 같은데 언제 피었는지 모를 봄꽃들이 울타리에 잔뜩 피어 있음을 본다.
화자는 이렇게 활짝 핀 봄꽃들이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피었다고 한다.
또 봄꽃들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세상천지 난만하게 /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라고 섭섭함을 못내 감추지 못한다.
봄 맞을 준비도 못했는데 봄은 언제 왔는지 봄꽃은 또 언제 피었는지, ‘먼저 와서 피고’만 봄꽃에 대한 아쉬움이 배여 있다. (최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