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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남 정 맥 6차
◇ 일 시 : 2008.10.9 ~ 10
◇ 산 행 지 : 봇재 ~ 접치
◇ 산 행 거 리 : 도상 53.7km(누계:359.2km)
◇ 산 행 자 : 홀로
◇ 산 행 시 간 : 25시간 38분(누계:175시간 54분)
* 10월 9일 : 15시간 40분 (35.5km)
․ 03:28 봇재
․ 04:30 화죽사거리(임도)
․ 05:17 봉화산
․ 06:01 배각산
․ 06:35 그럭재/기러기재/풍치
․ 07:30 대룡산 갈림길
․ 08:44 오도재
․ 09:53 파정치
․ 10;43 방장산
․ 11:35 주월산
․ 12:33 무남이재
․ 13:21 초암산 갈림길
․ 14:27 군부대 철조망
․ 15:40 제암산 정상
․ 16:57 주랫재
․ 17:38 486.5봉
․ 19:00 석거리재
* 10월10일 : 9시간 58분 (18.2km)
․ 05:20 석거리재
․ 06:50 백이산
․ 07:25 빈계재
․ 09:23 511.3봉(도상 510.5봉)
․ 10:12 고동재
․ 10:45 고동산
․ 11:56 장안치
․ 12:53 큰굴목재(선암사굴목재)
․ 13:20 작은굴목재(송광사굴목재)
․ 13:40 배바위
․ 13:55 조계산 장군봉
․ 15:18 접치
◇ 교통 및 숙박
* 교통편
․ 봇재 : 울산 → 남해고속도로 → 광양IC → 2번국도(광양→순천→보성)
편도 281km(3시간10분, 승용차)
군내버스 수시운행
보성택시 011-643-3284, 061-852-4848 (8,000원)
․ 석거리재 : 순천시 외서와 벌교를 연결하는 고개로 시간당 1대의
군내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막차는 19:30분(석거리재19:45)
벌교 조광택시(주성철) 011-622-1837
․ 주랫재 : 벌교 공용터미널에서 군내버스(4회)운행
낙안택시 061-754-2520
․ 접치 : 순천에서 승주읍을 거쳐 송광사 행 대중교통이 있다.
순천 교통 061-753 -6266
승주택시 017 -622 -5683
05:50~07:15분까지 30~40분 간격으로 송광사 -순천역 시내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들머리인 석거리재까지 회차하러 갈려면 접치에서 순천까지
1시간여, 순천에서 벌교까지 50분, 벌교에서 석거리재까지 15분여를
합하면 2시간이 소요.(이동시간만)
* 숙 박 및 식수
․ 숙박 : 보성군 소재지나 봇재다원의 민박이 가능하다 (061-853-1117)
낙안읍성내에 민박집들이 많으나 석거리재나 접치 인근에는
없다.
․ 식수 : 봇재다원, 석거리재 휴게소(061-857-4550 매식가능),
빈계재에 계곡수인 습지를 흘러나오는 물이 있다.(음용하기 썩 좋은 물은 아님)
이번구간 역시 식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봇재 ~ 석거리재 35.5 km 석거리재 ~ 접치 18.2 km
전라남도 보성과 순천을 이어가는 이번 코스는 고흥반도를 배경으로 남해
득량만을 굽어보며 진행하던 마루금이 서서히 북동진하며 전남내륙으로
파고든다. 분기점과 발원지부터 천리가 넘는 산길과 물길 오백리를 함께해 온
호남정맥과 섬진강이 머지않아 만나게 될 섬진강 하구에서 긴 여정을 마무리
하며 정답게 포옹을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조계산과 존제산이 있으며 도립공원인 조계산 자락에는
선암사와 송광사란 두 거찰이 있어 사시사철 탐방객들이 붐비고 있으며
특히 존제산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로서 해방직후 부터 사상과
이념의 대립으로 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리며 숨져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호남정맥이 남도로 들어서면서부터 남해고속도로를 이용 접근이나 귀울을
한다. 이동거리가 멀기 때문에 매번 야간에 운행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24시간 문을 열어 놓는 고속도로 휴게소다.
이번도 마찬가지 목적지 봇재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을 더 달려가야 하지만
마지막 휴게소인 섬진강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10월 9일 옅은구름과 농무
02:00 섬진강 휴게소
화물차 기사인 듯한 몇몇만이 자판기 앞에 커피를 마시고 있을 뿐
차량과 인파로 붐비던 휴게소도 이 시간만큼은 정적에 쌓여있고 24시가
지나면 당직자만 근무하는 듯 먹거리는 우동 한가지로 통일이 된다.
따뜬한 국물로 잠을 깨우고 광양IC를 빠져나오면 2번 국도는 순천을 거쳐
거침없이 보성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보성읍으로 진입하는 기러기재를
넘는 순간 전조등 불빛도 삼켜 버릴 듯한 짙은 안개 때문에 거북이걸음을
한다.
상습 안개지역이란 말은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봇재도 마찬가지로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있다.
봇재다원에 차를 파킹시키고 맞는 새벽바람 또한 매섭게 느껴진다.
오버자켓을 꺼내 입은 채 출발을 알리는 셔터를 눌러대지만 농무로 인해
피사체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산행을 마치며 들머리를 확인해
둔 덕분에 그나마 쉽게 접근을 한다. 마루금은 주유소 옆 시멘트길을 따라
차밭과 함께 이어지며 안부사거리에서 1시방향 농장 철망을 따라 오름길이
시작된다.
조그만 봉우리를 올라서면 다시 수레길이 열린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지만 신작로 같은 등로 때문에 다행이라 여기며 35.5km
를 넘어야 하는 오늘 일정상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등로가 머릿속에
그려진 것과 다르게 점점 우측으로 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지도와
나침반을 놓아본다. 야간이라 현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마루금과
점점 멀어져가는 회천면 쪽 지능선을 탄 것이다.
봉우리를 지나 9시 방향으로 리본들이 제법 붙어 있었지만 짙은 안개로 보질
못했고 정면으로 수레길이 너무 잘 나있어 별 의심 없이 진행한 게 화근이었다.
(20분 알바)
오늘같이 안개가 짙을 때나 야간산행시 생각나는 것이 GPS다.
그러나 때론 된통 고생을 하고서도 지형도와 나침반을 고집하는 것은 독도를
자신해서도 아니며 그동안 함께 해온 나침반의 정을 떼어버리지 못해서도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첨단 장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되었다지만 이젠 주객이 전도되어 그것들에게 지배되면서 점점 인간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공장들도 기계화되면서 직장을
잃은 명퇴자들이 늘고 있으며 매년 졸업하는 고급인력들이 박 터지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기계와 인간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현대를 사는 사람으로 이미 그 편리함에 길들여져 배척할 수도 없으며
컴퓨터를 비롯해 자동차, 휴대전화, 주거시설 등 이젠 없어서는 안될 만큼 몸에
베어버린 것이 요즘 우리의 일상이다.
그래서 산에 들어와서 만큼은 그 잘난 기계의 조종을 받기 싫다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아직 지형도와 나침반을 고집하고 있다.
강천산구간을 내려오면서 만난 옛 전우도 군대에서도 천리행군이나 작전수행 중
GPS가 필수라면서 자기가 쓰고 있는 휴대폰크기만한 놈을 보여주며 준다는 것을
사양한 적도 있지만 편리하고 필요한 장비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동으로 향하던 마루금이 갈림길에서 북동진하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마을이 있음을 말해주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04:20)
산길에서 내려선 화죽사거리란 이정표부터 포장임도와 함께 지루한 오름이
시작된다. 오름이 계속될수록 운무의 농도는 옅어지고 이젠 제법 헤드랜턴
불빛이 제 기능을 찾을 쯤 SKT보성기지국과 산불초소가 있는 411.4봉에
올라선다.
득량만쪽 조망이 좋다고 하지만 아직은 어선들의 불빛만 희미하게 보일뿐 ...
5:17 봉화산
봉화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봉화대 복원기념비엔 고려 공민왕때 왜적의
침투상황을 신속히 전달하기위한 통신수단으로 축조되었다고 적고 있다.
도상 그럭재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몰라도 이정표에는 기러기재로 되어 있고
고갯마루 아래 휴게소도 기러기휴게소라 한 걸 보면 기럭기재의 오기인듯하고
풍치라고도 불린다. 417봉이 배각산이란 이름을 얻고 기러기재까지는 순조로운
등로가 이어진다.
기러기재/그럭재/풍치
2번국도가 지나는 4차선 자동차전용도로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이 많다. 중앙분리대가 가슴 높이로 설치되어 있으며 횡단 시
주의해야 할 곳이다. 벌써 해가 뜰 시간이지만 짙은 안개로 오리무중.
어느 고개나 마찬가지지만 내려섰다 다시 능선에 오르기까지 쉬운 곳은
없다. 도로를 무단횡단 밭길을 지나면 다시 된비알의 오름이 시작된다.
등로 옆으론 폐타이어로 축조된 대간첩침투 시 방어용 참호들이 잡풀만
무성한 채 방치되어 있다. 이곳 또한 멧돼지들의 운동장이 된 듯 곳곳에
흔적들을 보면 아작을 내어 놓고 있다.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대룡산, 갈림길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은
채 눈인사만 보낸다. 잠시 급경사 내리막길이 평온을 되찾으며 오도재까지
그야말로 부드러운 오솔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득량과 겸백을 잇는 84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오도재.
하루 네 번의 대중교통이 마을을 연결시켜 준다고는 하지만 도로는 한적
하기만 하다. 길 가장자리에 있는 방장산 등산안내판 아래에서 공복의
허기를 달래본다.
안내판 좌측으로 올라서서 빽빽이 들어찬 삼나무 숲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되며 코가 땅에 박힐 듯 20여분을 올라 355.5봉에 도착한다.
이따금씩 열리는 예당평야의 황금들판과 득량만의 조망 그러나 가스 때문에
가시거리가 짧은 게 흠이다.
비포장임도와 간이 체육시설이 있는 파정재에서 방장산 오름길은 급경사
구간에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3개의 고개를 넘어가야 방장산 정상에
설 수 있다. 정상석 아래에 통신시설물과 전망대가 있고 쉼터 잔디밭에 몸을
눕히고 잠시 휴식을 가져 본다.
탄탄대로 같은 주월산까지의 능선길에서 북으로는 겸백면의 초암산 아래 넓은
들판이 남으로는 고흥반도를 굽어보며 펼쳐진 득량면과 조성면으로 이어지는
조망권이 홀로 가는 종주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이제 주월산 활공장을 내려서면 마루금은 북동진을 계속하며 내륙으로 치닷고
멀어지는 남해바다를 아쉬움으로 바라보며 발길을 돌린다.
철쭉나무가 빽빽한 내림길 그러나 보성군에서 정리를 한 듯 로프가 매어져 있고
갑자기 확성기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발파음이 온산을 진동시킨다.
무남이재 우측 산자락이 이미 채석장으로 허물어진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무남이재
조성면 중촌마을과 겸백면 원수암 마을을 잇는 도로다.
대중교통수단은 없으며 얼마 전까지 존제산에 군부대가 상주하며 출입을 통제
할 때는 이곳에서 구간을 마무리한 종주자들이 많았고 교통이 불편하지만
요즘도 구간이 길다보니 이곳에서 구간자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예부터 존제산 구간은 마의 구간이었고 무나미재-존제산-주랫재 구간을
아예 빼먹고 종주한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현재는 부대가 철수하여 그나마
통제를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등로는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남이재를 뒤로 하고 초암산을 오르는 등로는 아주 가파른 오르막이다.
초암산갈림길이 왜 광대코재인지 궁금했으나 이 길을 오르면서 광대의 높은 코에
비유해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된비알이 연속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보성군에서 설치한 등산안내판에 방장산 주월산
초암산 등로만 표시된 이유를 광대코재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 수 있는데
초암산 방향은 산길이 잘 나있으나 정맥길은 이곳을 누군가가 지나갔을까 싶을
정도로 웃자란 억새들과 청미래 넝쿨들이 뒤엉켜 발길을 돌리고 싶을 지경이다.
고흥지맥 분기봉을 지나 모암재 내림길에는 굴삭기와 인부들이 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 물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을 붙여보지만 본전도 못 건진 채 임도를 따라
너털 걸음으로 모암재에 도착한다.
입산통제 경고판을 지나 철탑이 있는 곳에서 부터 본격적인 존제산 오름이 시작되고
빽빽하다 못해 지독한 철쭉군락들이 바지가랑이를 잡아채고 온몸을 밀쳐대 한 걸음
옮겨 놓기가 힘들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간다.
철쭉터널은 기어가고 누운 김에 쉬어가며 올라선 철조망 앞 어느 듯 철쭉정글은 끝이
나고 있다. 지뢰 매설지역임을 알리는 경고판과 함께 첫 관문 통과에 축하라도 보내
듯 키 작은 억새들이 춤을 추고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돌아보는 지나온 길, 만감이 교차되어 온다.
철망을 통과 정상에 서면 헬기장 주위와 벙커엔 잡풀만 무성하고 정상 조금 아래
군 막사도 인기척이 없는 걸 보면 철수를 한 모양이다. 정상을 내려오며 정문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느닷없이 뛰쳐나오며 짖어대는 백구와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소리에 놀라 내려다보니 군인 한명이 예초기로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
(아직 완전 철수는 안한 것인지?)
존제산은
고려 충렬왕 작명설과
제암산을 향해 읖조린 산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설이 있다.
벌교의 진산으로 해방직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리며 숨져간 한이 서린 곳이며 한국전쟁이후로 정상을 군부대가 장악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지긋한 벌교의 택시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옛 어른들께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이라며 존제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전쟁터라는 기억밖에
없다고 하며 60평생을 더 살았지만 아직 정상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존제산 정상에 서면 거칠것 없는 조망과 보성, 장흥, 순천 등
이 지역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곳이라 예부터 군사적 요충지가
된듯하다는 말씀이다.
군부대 막사에서 주랫재까지는 작전도로를 따라 2시간 동안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존제산 오름길에 비하면 천양지차로 피로가 몰려오자 졸음이
쏟아진다.
출입금지가 풀린 이후에도 종주자들이 유독 이 구간만은 반대편인 주랫재로
올라 역주행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 군사도로를 따르면 오르기가 편하고
마의 철쭉군락지는 내려감으로서 체력적인 부담을 줄이려 했음이라 생각이
든다.
16:57 주랫재
고갯마루에는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소공원 공사가 한창이고 승합차가
2대가 정차된 채 잡담을 나누고 있다.
벌써 13시간을 넘겨 지친다리를 쉴 여유도 주지 않은 채 해는 벌써 서산에
걸쳐 있다. 등로만 좋다면야 어둠이 내리더라도 별 걱정을 않겠지만 오늘 지나온
길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가야할 길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주랫재를 뒤로하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벌목지대가 나오고 쓰러진 나무들과
잡목들이 바쁜 발걸음에 태클을 건다. 잠시 후 창녕조씨묘를 지나면 다시
철 계단으로 신설도로로 떨어진다. 그러나 반대편 사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지
않아 돌아가려는데 스틱으로 홈을 판 듯 겨우 발끝만 걸치며 올라간 흔적이
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건만 아등바등 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485.5봉을 오를 땐 오늘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광일농장 임도를 따르다 다시 벌목이 된 사면을 따라 능선을 잡아야 석거리재로
내려 설수 있다. 저물기 전에 산행을 마치려고 했으나 끝내 랜턴을 밝히며
어둠이 깔린 날머리로 내려선다.
이번구간은 산행거리도 길게 잡았지만 그것보다도 접근하는 도로사정과
교통편이 좋지 않아 산행 후 회차 하는 것이 더 큰 부담이 된다.
마침 석거리휴게소에서 벌교 행 막차가 7:45분에 있다고 해서 대충 씻을 수
있었고 벌교에서 보성행 버스는 8:30분(직행8:45분)이 막차라 터미널식당에서
저녁도 해결한다. 그러나 보성에서 봇재 교통편은 8:50에 끊어져 택시를
이용해 회차를 한 시간이 밤 열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10월10일 흐린 후 비 조금
어제는 산행거리도 길었지만 철쭉군락지와 넝쿨지대를 헤쳐 나오며 많이 지쳤던
듯. 회차를 해서 들머리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 중 쏟아지는 졸음으로 휴게소에서
골아 떨어졌던 모양인데 알람소리에 놀라 깨니 새벽 3시다.
차를 몰아 석거리재에 도착한다.
적막에 쌓인 고갯마루
아직 이런 적이 없었건만 어둠속으로 몸을 내몰기가 싫어진다.
의자를 젖힌 채 다시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인데
시간은 벌써 5시를 넘기고 있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산길로 들어선다,
잠시 완만하던 오름길이 백이산 아래 채석장에서 설치한 흰 테이핑을 따라
한바탕 된비알을 치고 올라서면 백이산은 다시 뒤짐을 진채 저 만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전위봉에서 백이산까지는 억새능선이지만 다시 한 번
깔닥고개를 넘어야 하고 정상에 서면 고동산을 넘어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가야할 능선과 뒤로는 지긋지긋한 존제산의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 사이로 붉게 물들은 동녘
지척의 낙안민속마을과 금전산에서 고동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로
펼쳐진 황금들판과 자연부락들이 다정하기 이를 데 없다.
백이산을 내려서서 빈계재까지는 억새군락지라지만 잘 손질되고 부드러운
능선으로 별 어려움이 없다.
빈계재
보기 드물게 마루금 옆으로 물이 흐르는 곳이다.
가을 가뭄으로 식수도 부족하다는 판에 이정도면 수량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멧돼지들이 목욕을 한 흔적들이 많고 진흙
습지를 흘러내려 오는 물이라 가급적 준비를 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계곡 좌측으로 올라서면 편백나무 숲과 농장울타리가 시작되며 철망은
급경사로를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편백나무 허리춤에 묶여있는 511.3(도상510.5)봉에 눈도장을 찍고
비포장임도 사거리인 고동재에는 리본 뭉치가 이채롭게 걸려있다.
억새평원을 이루고 있는 고동산
영남알프스의 신불평원이나 억새명산들에 견줄 바는 못 되지만 마루금
위에서 출렁대는 은빛 억새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SKT기지국이 있는 다음 봉우리를 지나 다시 급사면을 내려선 이후부터는
큰 굴곡이 없는 능선이 이어지며 장안치를 지나 700.8봉(도상705.7봉)의
산불감시초소는 잡목 속에 틀어박혀 무엇 때문에 세웠는지 의아심마저
들게 한다. 도상에 없는 비포장임도를 지나 산죽지대를 지나면 본격적인
조계산 등로가 시작되는 큰굴목재에 도착한다.
도립공원이자 좌우에 송광사와 선암사라는 두 거찰의 끼고 있어서인지 평일
임에도 심심찮게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앉아 쉬고
있는 작은굴목재 이정표에 보리밥집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에서 제법
이름난 곳이란 짐작이 간다. 작은굴목재에서 장군봉까지는 제법 급경사의
돌길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간다.
정상직전 길게 로프가 드리워진 배바위의 전설과 상사호의 수정색 푸른 물결을
보며 오랜만의 긴 휴식도 갑자기 몰려오는 비구름에 쫓겨 장군봉으로 올라선다.
장군봉
오석으로 만들어진 정상석 아래 등산객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다.
그들이 건네준 귤 하나의 고마움이 목구멍을 타고 오장육부로 스며든다.
그것도 잠시, 우려했던 날씨가 결국 빗방울을 뿌려대며 스쳐가는 인연을
아쉬워하며 서로의 갈 길로 돌아선다.
접치까지의 길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정상을 내려와서 연산봉 갈림길만 조심하면 접치까지는 어려움이 없다.
자칫 직진하는 연산봉 쪽 등로가 잘나있어 3시 방향의 접치와 오성산 쪽
마루금을 놓칠 수 있다.
접치
호남고속도로와 22번 국도가 교차하며 지나간다.
송광사와 선암사를 찾는 탐방객들의 차량 왕래가 많은 편이고
순천에서 승주를 경유 송광사 행 버스도 자주 다니는 편이다.
당초 계획은 노고치까지 진행하려고 했으나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다
때 맞춰 내리는 비를 핑계로 오늘 산행은 여기서 접기로 한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들머리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다 히치를 했는데 유해조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다녀오는
사냥꾼 차량에 탑승을 하여 순천까지 쉽게 올수 있었다.
요즘 어딜가나 멧돼지들 때문에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깊어지고 있는데
관련기관이나 동물보호단체 등에서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며
불만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분 역시 90년도 초반까지 울산공단에
근무했었다며 기어이 순천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가신다.
이 자릴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접치→순천(1시간 소요)
순천→벌교(88번 시내버스, 50분)
벌교→석거리재(외서행 15분)
수확과 축제의 계절 가을
각 지방단체마다 행사가 한창이다.
이곳 벌교에서는 꼬막축제가
낙안민속마을에서도 9일부터 남도음식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제 호남정맥도 가을걷이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종착역 백운산 정상에서 섬진강을 굽어보는 감회가 어떨지
마지막 구간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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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