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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실 스크랩 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성
樂而忘憂 추천 0 조회 103 08.08.27 23: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성
 
(1) 포스트 모더니즘의 양식적 특성
서구 전체로 확산되어 여러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196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 인식소(Episteme), 또는 패러다임(Paradime)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적 지주로 알려지고 있는 이합 핫산(Ihab Hassan)은 1987년에 발행한 ‘포스트모던한 전망 속의 다원주의’라는 저서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정리한다.

① 불확실성(Indeterminacy)
경제학자 갈브레드가 2차 대전 이후의 서구세계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지은 것처럼 과학분야에서도 베르너 하이젠베르그(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 토마스 쿤(Thomas S. Khun)의 「패러다임」, 폴회이에르 벤드의 「과학의 다다이즘」등이 대두되면서 사회 각분야에서 상대주의적이고 불확정적인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 사업이자 무정부주의는 법과 질서의 대안보다 훨씬 인도적이며 발전을 고무시켜 준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변화와 실험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영역에서 조차도 즐거운 실험을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다다이스트”라고 주장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특정한 유파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조의 견해, 그리고 문학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개방성, 해체, 반항, 변용, 다원성, 이단의 정신 등의 불확정적인 이론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단편화(Fragmentation)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회적, 인식론적 종합을 거부하고 총체성을 오명으로 여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논하는 유명한 글의 결론 부분에서 “총체성에 선전 포고를 하자.  제시할 수 없는 것에 증인이 되자,  차이를 활성화하여 차이의 명예를 구해내자”고 주장한다.

확신, 차이, 변증의 시대가 되며 몽따지 수법, 꼴라쥬 등의 기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유와 환유가 중요시되고 역설, 배리, 병렬결합이 자주 등장하는 정신분석적 시대가 도래한다.

③ 탈 경전화(Decanonization)
1-3)에서처럼 리오타르는 현대사회를 지배담론(Masternarrative)의 탈권위와 붕괴의 시대라고 지적하며 그 대신 소수의 담화이며 언어게임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소설화가 그 자리를 차지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 체계인 진리, 주체, 초월적 이성 등을 거부하고 규범과 경전에 대한 도전은 엘리트주의, 남성우선주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대중의 참여와 비평을 유도하며, 대중문화, 여성문화,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노동자 예술,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대중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한다.

④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장르가 붕괴되고 혼합되는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모방을 거부하고 예술의 한계를 추구하며 소모를 즐기고 침묵 속에 존재하면서 예술고유의 재현(Representation)양식을 문제시 하여 반리얼리즘의 성격을 가른다.  리오타르는 동시의 상황은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종합적 분석대신 구대 불가사이를 인정한 칸트의 ‘숭고미(Sublime)’의 개념을 증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대 기술 문화의 무형태성, 공해, 절대 등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들이 주는 위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혼성모방(Hybridization)
풍자적, 조롱적 모방, 우스운 모방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르의식의 붕괴와 혼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다원적이고 확산적이며 논리를 무시하는 유동적인 현상황에 맞추기 위한 전략으로 문학에서는 ‘뉴 리얼리즘’, ‘논 픽션 소설’등으로 나타나서 허구와 사실이 두드러지게 배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에 대한 다른 개념을 보완하다.  지속과 단절, 고급 문화와 저급문화가 혼합되고 현재 속에서 과거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확장시키게 된다.  다원적인 현재 속에서 모든 형식들은 현재와 현재가 아닌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과거의 동시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공간 상호성 즉 병렬적, 수평적, 평등적 공간의 확산을 통한 공동체 의식도 얻게 된다.

⑥ 대중주의(Populism)
고급문화와 본격 모더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역력히 드러나며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마르쉘 뒤상의 기성풍 이론은 예술의 기존 관념을 깬 것으로 ‘이미 만들어진’ 즉 주변의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하였고 앤디워홀은 스프깡통, 브릴로 상자, 슈퍼맨 만화 등 대중적인 사물을 이용하여 혼합 모방기법을 연출하였다.

또한 화가인 라우센버그에게서 재미있는 것은 도시의 상업적인 추함에 영원성과 자연의 불변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는 도시 일상의 재료들을 즐겁게, 그리고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에게는 도시의 추한 면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⑦ 행위(Performance)와 참여(Participation)
포스트 모더니즘은 직접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행위로 연출되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행위를 통하여 시간, 공간, 또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완성된다. 요즈음은 예술의 여러가지 경향을 관통하는 인식틀은 ‘놀이’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엄격한 통제와 인간관계의 틀을 버리고 우연의 작용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에서도 구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존재하고 의미하기 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⑧ 보편내재성(Immensity)
앞서 지적한 불확실성의 분산은 거대한 확산을 이룬다.  보편 재재성의 경향은 율동, 상호작용, 의사소통, 상호의존, 상호침투 등의 잡다한 개념들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념들 속에서 가치관의 세계화, 보편화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아놀드 토인비의 영혼화, 어비 다드로즈의 개념화, 빅 인스트홀러의 무상화, 칼 마르크스의 역사화 한 자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와같이 상징을 통해 인간의 정신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정신적인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인간은 새로운 통신수단과 전자매체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의식과 정신의 끊임없는 확장을 경험한다.
 
(2)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 창조 전략들
최초에 발행된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에서 마이클 뉴만(Michael~Newman)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 창조방법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로 분류한다.

트랜스아방가르드, 저자의 죽음, 알레고리, 도취와 불가사의, 모조, 패러디, 브리콜라주(Bricolage)등 또한 어떤 학자들은 패러디(린다 허치언), 모조 (보드리야르), 차용 (레오 스타인보그), 그리고 혼성모방 (프레드릭 제임슨)등을 주요 창조방법이나 특성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조전략을 정리하면 재현, 패러디, 이중 코드, 전도된 아방가르드 등으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① 재현(representation)
포스트 모던 세계에서는 삶이 재현에 의해 완전히 매개되어 있다.  근.현대를 지나면서 세계는 인공위성, 컴퓨터 출현으로 벤야민이 말한 ‘기계적 복제의 시대’ 를 훨씬 앞지를 만큼 고도로 발전되어 왔다. 이에 대해 현대문화가 내재적으로 재현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정도로 재현의 위기상태에 놓여 있다는 논의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데리다의 재현으로부터의 ‘도피 불가능성’과 푸코의 인식론 속에 밀착되어 있는 전통적 재현에 관한 비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의 재현은 불가피하다고 보여진다.

포스트모던의 재현은 리얼리즘처럼 소박하고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얼리티는 어떻게 의미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문제시 한다.  즉 그것은 리얼리즘을 말소시키거나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적으로 재현의 존재의미를 일깨우는 것, 다시 말해 리얼리즘을 분해하여 재창조하는 것이지 리얼리즘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략들은 매체를 투명명료성과 언어와 세계간의 혹은 기호와 관련물과의 자연적이고 직접적 결합을 추구하는 리얼리즘적 재현을 비판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물론 이같은 전략은 모더니즘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경우, 매체의 능력과 의미체계의 자기충족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지시대상에 치명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목적하는 바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양자의 힘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리얼리즘의 투명성과 모더니즘의 반성적 반응을 비본성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재현의 불협화음적 책략이 된다.

이처럼 리얼리즘의 현실반영, 모더니즘의 자율성을 문제시하고 ‘비교조화(dedoxifing)’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재현은 예술과 세계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다.  터부시 되어오던 전략들을 소환하면서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재현의 패러디와 재차용(reaappropriation)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재현의 역사 자체를 예술의 담론과 세계의 담론 사이에 놓인 경계선이 포스트모던 이론과 실천 속에서는 상호 침범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② 패더디(parody)
패러디(때로는 아이러닉한 인용, 혼성, 모방, 차용 또는 상호 텍스트성)는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나 반대자를 가릴 것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체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은 패러디에 관심을 기울여 재현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으로 과거의 이미지들을 발굴해 내는 행위에 주력해왔다.  솔로몬 거더우(Solomon Godeau)의 표현처럼, 뒤샹의 모더니즘적 `ready-made` 는 이제 포스트모던의 `already-made`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예술을 패러디화하는 것은 ‘향수’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현재의 표상들이 과거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지속성과 차이를 함께 지닌 이념적인 결과로서 유래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패러디는 또한 예술적 독창성과 유일무이성 그리고 자본주의의 소유권, 재산권에 관한 개념들 같은 인본주의적 관점을 검증한다.  패러디(어떤 복제의 형식과 더불어)에 의해 희소성이 있고 유일하며, (상업적으로)가치있는 진품성은 여지없이 의문시된다.  이것은 예술이 이제 그 자체의 의미나 가치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패러디 작품은 ‘재현의 정치학’ 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포스트모던 패러디에서 공인된 관점은 아니다.  지배적인 해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과거 형식들을 자유롭고, 장식적이며, 반역사적인 방식으로 인용할 수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것이야 말로 각종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현사회의 가장 적절한 문화적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패러디를 ‘재현의 정치학’이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핼 포스터(Hal Foster)에 따르면, 혼성모방 (pastiche) 은 신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던의 ‘전형적 기호’가 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맥락과 연속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호모순적인 ‘예술작품과 생산양식’을 허황되게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린다허치언은 포스트모던 패러디는 그것이 인용하는 과거 재현물의 맥락을 부정하지 않으며, 우리가 오늘날 불가피하게 과거와 유리되어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아이러니를 사용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현재는 과거의 지속이며 다만 거기에는 역사가 빚어낸 아이러닉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패러디에는 모순적 형식들을 일거에 해결하지 못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밝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모순은 재현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다시 말해 허치언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반대하는 리얼리즘 관습에 의존하여 재현의 복합성과 그 밑에 깔린 정치성을 나타내는 것을 포스트모던 패러디라 말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현의 정치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③ 이중 코드(plural coding)
이중 코드는 주로 건축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략적 특성이긴 하지만 그 일반적인 원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구체적으로 부각시키므로 그것이 어떠한 전략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는 다원적인 상징적 차원들을 재도입하고 부호체계를 혼합시키며, 지방 특유의 언어들과 지역 전통을 도용하는 행위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젠크스(Charles Jencks)는 건축가들에게 두 방향, 즉 ‘서서히 변화하는 전통적인 부호체계와 한 이웃이 갖고 있는 특수한 민족적 의미라는 방향 하나와 빠르게 변화하는 건축상의 유행과 전문주의의 부호체계라는 또 다른 방향을 향하여’ 동시에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즉 젠크스는 민족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의미와 유행,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예술의 방식을 모색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가장 뚜렷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다원주의 형식은 과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예술이 고전적인 것을 추방하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는 데 고무되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역사적 스타일과 기법을 복원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의지를 보여준다.  젠크스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건축언어의 상대성에서 진일보한 결과라고 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주목을 끌어왔던 다양한 형식의 부활주의 속에서, 우리는 건축의 동시적 맥락 뿐만 아니라 일시적이며 동시적 맥락을 충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젠크스는 현대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 기능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가시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조화를 기대하면서 그가 말한 ‘진보적 절충주의’의 시대를 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진보적 절충주의’속에는 “다른 종류의 의미들이 정신과 육체 같은 상반된 기능을 추구하면서 상호 관계하고 상호 교호할 수 있도록”하는 다가치성이 내포된다고 설명하였다.

이중코드는 맥락에의 관심과 역사에의 관심을 의미심장하게 엇물리게 한다.  젠크스의 이중코드가 역사적 이원성을 일원화시킨다면, 케네스 프램턴 (Kenneth Frampton)은 맥락의 이원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케내스 프램턴은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라는 글 속에서 문화적 차이가 국제적인 건축문법의 획일성으로 사라지는 경향을 저지하는 건축을 구상한다.  프램턴에 따르면 ‘비판적 지역주의’란 모던 건축 빌딩 형식에 반대하거나 그 속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발전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프램턴은 이런 지역주의 형식을 산업 사회 이전의 모델이나 빌딩 설계 방법으로 회귀시키는 단순한 과거에의 동경 행위와 조심스럽게 구별짓는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주의는 ‘비판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을 새롭게 결합시키는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특수한 지역성의 언어는 모더니즘 속에서 일찌기 발견된 것이라 할지라도 지역 전통은 물론이고 지역의 풍토나 지질에 관한 문제를 감안한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의 이중 코드를 나타냄으로써 생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젠크스와 마찬가지로 프램턴은 현대예술의 추상을 전통적으로 서구 합리성 인식론적 규율과 결합되었던 시각의미의 야만적 지배를 가져다준 결과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그는 ‘읽히는’ 빌딩을 확산시키고,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의 세기를 조절하는 등 의미의 범위를 넓히는 ‘저항의 건축’을 강조했던 것이다.

④ 전도된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아방가르드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태도는 상반되게 나타난다.  하나는 철저하게 아방가르드를 거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방가르드의 전략과 이상을 실질적으로 재포착하고 고도화 시키려는 입장이다.

본래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모더니즘의 핵심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 관한 많은 설명들은 아방가르드의 촛점의 범위를 미리 앞질러 가버렸다.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미적 형식에서 이념적 물질적 계기를 발전시켰고 미술에 있어 창조를 “제조”로 작가를 “생산자”로 대체하는 개념과 기능의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는 점차로 미학과 정치적 영역의 분리, 즉 초기의 아방가르드의 정치적인 도전들이 예술가 개인의 형식적 실험의 제한된 탐구로 떨어져 분리의 입장으로 후퇴했다. 이같은 정치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의 의도된 분리의 정당화는 키치, 대중문화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양식으로 전개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양상을 비판하며 아방가르드가 경멸해온 대중문화에 대해 귀족적으로 거리를 유지해온 태도를 가차없이 버린다.  이것은 귀치와 대중문화의 수용을 의미한다.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스타인 같은 팝작품이 그 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아방가르드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략적으로 수용된다.  19세기 후반구의 예술적, 사회적 편견에 대해 구체적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태도가 문화적으로 점차 보편화되면서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혁신적 의도를 지닌 예술 조류를 지칭하는 의미가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loi)는「아방가르드의 이론」이란 저서에서 아방가르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적극적 행동주의(Activism) - 행동, 다이너미즘, 전진, 탐험정신
둘째, 대립의식(Antagonism) - 역사적 사회적 기본질서에 대한 대립의식, 반전통주의
셋째, 허무주의(Nihilism) - 파괴성, 유치함, 극단적 행동
넷째, 불안(Agonism) - 낭만적 불안, 긴장, 희생, 정신적 패배주의
다섯째, 미래주의(Futurism) - 미래의 예술에 대한 예견이나 예고

위의 특성들 중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의 특성들과 공통적으로 보인다.  특히 대립의식은 모더니즘에 저항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당부분 공통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아방가드로와 숭고미의 결합을 요구한 리오타르 역시 모더니즘 에너지의 개개로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종국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기의 상태에 있는 모더니즘이며 이러한 상태는 지속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잔 피카소,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말게비치, 뒤샹과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의해 고양론 모더니즘의 원리에 대해 탐구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실제적 진행은 모더니티의 가정들을 파고드는 탐색의 길고, 완고하고, 고도로 책임있는 노동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원화되고 있고 대중문화는 그러한 사회에서 커다란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는 대중문화를 인위적인 입장에서 거부하는 식의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때이다.  대중 매체에 의해 문화가 형성되고 소멸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아방가르드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적 배경

1.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과 양상
1)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는 아직도 이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은 문학, 철학, 사회학과 더불어 예술일반에 적용될 수 있으면서도 적용분야에 따라 그 의미가 상당부분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개념의 어원과 유래를 살펴봄으로써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을 시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문자 그대로 ‘포스트’라는 접두어와 ‘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생긴 말이다.  그러니까 이 용어는 의미 면에서 본다면 단순히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현상을 가리킬 따름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차적인 면에서 시간적 구분을 의미할 뿐 결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떤 유형의 가치 평가가 개입된 개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즉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시성(後時性)을 가르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프리모던’이란 용어가 단순히 ‘전근대(前近代)’ 또는 ‘전현대(前現代)’를 가리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스트 모던’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후근대(後近代) 또는 후현대(後現代)’를 가리키는 표현인 것이다.

이 용어를 보다 明示的으로 보여준 사람은 1950년대 초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이다.   토인비는 서구문명이 19세기 이루 전환기적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전환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을 ‘돌연변이’로 인식했고, 또 현대를 맞이하는 서구역사의 전통에 극적인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연구 A Study of History> 후반에서 우리의 시대를 사회적 불안, 세계전쟁, 혁명의 시대 그리고 ‘포스트 모던 시대’로 명명했다.  토인비는 근대의 서구역사를 네가지로 분류한다.  초기근대(Early Modern : 르네상스), 근대(Modern : 르네상스전성기와 그 이후), 후기근대(Late Modern : 17세기와 18세기를 정점으로 한 기간과 좀더 넓혀서 보면 계몽주의가 풍미했던 19세기), 마지막으로 포스트 모던(Post-Mordern : 1870~80년을 기점으로 한)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한 세기가 지난 서구문명에서의 포스트 모던 국면은 무정부주의(anarchy)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을 지 모른다.

토인비는 포스트모던 개념을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구축한 서구세계의 지적 인식틀 안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합리주의 이성론이 붕괴되고 말았다고 지적할 때 사용한바 있다.  고전적인 것을 재발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결과로서 유래된 근대 뿐만 아니라 서구문명 전체에서 누차 강조된 합리성에 대한 신뢰는 후기 근대를 맞이하면서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1850년대 이후 그러한 도전은 한층 격화되었다.  토인비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대립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서구 과학정신은 “情念은 理性을 지니나 이성은 知識을 지니지 못한다”는 파스칼의 직관적인 관찰에 의해서 변화되고 말았다.

20세기 기독교시대에 탈 기독교적인 소구의 심리학은 인간영혼에 깔린 무의식적 심연을 탐구하기 위한 시초였으며, 자연법의 근간이 된 것은 논리(logic)의 법칙이 아니라 신화의 법칙이었음은 당연하다.

이와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처럼 해석되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올바르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관계를 논의하는데서 이론가들의 입장은 크게 두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의 하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가깝게는 모더니즘, 넓게는 낭만주의의 계승이나 논리적 발전으로 파악하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펴는 이론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후기현상이나 그것보다 한결 더 극단적으로 발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흔히 ‘후기 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 온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의 네오리얼리즘 이론가 제럴드 그래프는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파악해 온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이제까지 서구 세계를 풍미해 온 문화적 전통과 예술적 인습은 몇몇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 않고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가깝게는 모더니즘, 멀게는 낭만주의의 전통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이 견지하는 입장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운동의 기본 전제들을 논리적으로 발전시킨 극한 점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일종의 ‘돌파구’로 파악하는 일부 이론가들의 태도를 가리켜 그가 ‘신화’라고 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편 다른 일군의 이론가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 의식적 단절이나 비판적 반작용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론가들에 따르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낭만주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더니즘과도 변별적으로 구별되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하고 고유한 존재이유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뒤이어 나타난 급진적으로 새로운 예술전통이나 이론 또는 사조에 해당된다.  이런 입장을 내세우는 이론가들의 경우 포스트 모더니즘은 ‘탈(脫)모더니즘’이니 ‘반(反)모더니즘’적인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리 레빈(Harry Levin)은 <모더니즘은 무엇이었는가? What was Modernism>이라는 글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가 여전히 모던의 상황에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휴머니즘이나 계몽주의의 자식들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나는 주장한다.  어떤 의미에서 비이성적인 것의 힘을 규명하고, 또 고립시키는 것은 언제나 지식의 전유물이 되어왔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반지성적 풍토를 가져오기도 했다.  나는 이것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우리는 해리 레빈에게 있어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단순히 역사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을 명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모던과 포스트 모던을 어떤 목적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 때의 목적이란 가치 판단과 편견을 뜻한다.  이처럼 레빈이 사용한 용어의 문맥에서 보면 포스트모던은 명백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반대의견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와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나 의식적 단절로 파악하려는 일군의 이론가들 중 레슬리 피들러(Leslie Fiedler)는 ‘모더니즘의 죽음을 곧 포스트 모더니즘의 출생’이라는 도식으로 모더니즘의 종말을 주장한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모더니즘의 죽음과 고통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출생의 산고(産苦)를 겪으며 살아왔고-1955년 이후 그 사실은 한결 더 첨예하게 의식되었다.-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겪으며 살고 있다. (감수성과 형식에 있어 가장 앞지르고 있으며, 앞으로 이보다 더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제아래)자신들을 스스로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자처하던 유형의 문학,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르기 까지 찬란한 전성기를 맞이하였던 유형의 문학은 이제 사망하였다.  즉 그것은 이제 현실이 아니라 역사에 속해 있다.

이와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는 ‘계시적, 반리성적이며, 맹렬하게 낭만적이고 감상적’ 이게 된다. 위 시대의 문화는 지나치게 자기 의식적인가 하면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권위주의적이며 전제주의적인 이성체계에 맞서서 현실비판, 문명비판, 도구적 이성비판의 저항력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계승, 발전이냐 아니면 그것의 전면부정과 도전이냐라는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로 상충되고 대립되는 이 두 가지 입장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고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어떤 분야에서 대답되어 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학의 경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계승발전과 더불어 대립, 적대관계’라는 절충주의 입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 특히 본 연구 논의의 촛점으로 삼고 있는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광고의 경우에는 ‘탈(脫)모던’의 의미가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과 그것이 극복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과연 포스트 모더니즘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전략상의 방법과 목적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떠한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향을 미친 사상은 다름 아닌 후기 구조주의 혹은 해체주의인데, 후기구조주의나 해체주의는 바로 모더니즘이 기치로 내세웠던 ‘이성적 주체관’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적 배경으로 보여지는 후기구조주의 혹은 해체주의를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리오타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러한 영향을 받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반적 경향이 어떠한 것인가를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2.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과 일반적 특성
1)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던적 이성에 대한 근본 비판으로 규정할 수 있다.  모더니즘에서는 어떤 이성적인 주체의 개념, 아주 투명하고 뚜렷한 이성을 가진 주체라고 하는 ‘이성적 주체관’이 모더니티를 규정짓는다.  또한 근대 이전에 고대와 중세까지 서양사에서 통용되었던 유기체적인 자연관이 근세에 이르러서 ‘기계적인 자연관’으로 변한 것과 더불어 우리의 역사나 자연과정 자체라고 하는 것이 덜 발전된 상태에서 더 발전된 상태로 끊임없이 향상되어 나가거나 또는 진보되어 나간다는 ‘진보에의 믿음’이 모더니티를 규정짓는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이러한 모더니티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는다.
 
(1) 미셸 푸코의 이성비판
푸코는 그의 초기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狂氣와 文明’에서 소위 서양인의 의식세계와 경험에 있어서 이성이라는 것이 언제 정확한 양태로 출현했는가를 보여 주면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 이성적 주체이고 자유의지에 의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는 그는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것, 또는 수상쩍은 것, 불가사의한 것들을 뭉뚱그려서 우리가 비이성적 범주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보는데 푸코는 이러한 이성과 비이성의 분리라고 하는 현상이 서양의 경우에 17C에 비로소 커다란 사회적인 흐름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이성의 형성사라는 관점에서 1656년 1793년을 대단히 중요한 시점으로 설정한다.  1656년은 소위 종합병원이라는 대감금시설이 유럽 전역에 걸쳐 건립되기 시작한 해이며, 1793년은 의료개혁가인 프랑스인 피넬이 비세뜨리 정신병원에서 인도주의적인 의료개혁을 실천한 해이다.  그때까지 광인을 치료하는 방식이었던 무자비한 구타나 고문을 그만두고 인도주의적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주장을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개혁이 야만적이고 효과를 거두지 못한 방식을 바꾸어, 처벌의 목표를 육체에서 정신으로 전이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도주의적 정신병동의 개혁이 결국 정신병자들의 행위 양태에 대한 기록이나 조사, 그리고 검사들을 동반하게 되면서 당시에 통용되는 가치 규범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주입시키려는 시도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해 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푸코는 18세기에 이르러서 이성과 비이성의 대분리라는 유럽적 경험이 거의 완결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경험 차원으로 서로 귀속되면서 정상적인 것은 비정상적이고 미친것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이성이라고 하는 카테고리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모든 색다른 경험들, 광기 등은 열등하고 바람직 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적 이성, ‘이성적 주체관’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푸코의 분석에 따르면 ‘이성적 주체’라는 정상인의 우월함이라는 개념들은 결코 절대적인 보편타당성의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푸코는 후기 저작 ‘감시와 처벌’에서도 사회규범과 관련하여 ‘이성적 주체’개념의 허구성을 주장한다.  푸코는 처벌하는 제도가 세가지 과정을 밟아서 변화해 왔다고 본다.  먼저 제일 처음 나타나는 것은 서구 역사의 경우 왕정시대의 공개고문이 대부분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처벌 형태였다.  그런데 18세기 소위 계몽사상이 도입되면서 그런 식의 처벌 방식은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것이라고 간주되고, 범죄자를 좀 더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형벌제의 개혁이 전 유럽에 확산된다.  이것이 두 번째 과정이고 세 번째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법감금인데, 이러한 인도주의적 형벌제도의 개혁이 결국 정신병동의 인도주의적 개혁과 정확히 그 의미를 같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도주의적 개혁이란 다름 아닌 처벌의 경제학 즉 비용은 적게 들이면서 범법자를 정상적인 사회규범이 허용하는 행위양태로 만드는데 효과의 극대화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주의적 개혁이 실천되는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 규범에 순응시키려는 기제들이 아주 주도면밀하게 작용한다.  사회 모든 영역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 가정에서 조차 그런 교육이 행해진다.  사회 구성원들의 몸과 정신을 길들이고 특정한 사회의 가치규범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 사회의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는 규범의 체계들을 내면화 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성장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좀 더 이성적인 인간, 좀 더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려는 사회 내부적인 욕구에 자신을 순응시켜 가는 과정이 된다.  그리하여 푸코는 서양의 근현대사회를 시사적으로 ‘유폐적 그물망’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푸코가 주장하는 바는 모더니즘에 있어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성적인 것이 비이성적인 것보다 우월하다는 ‘이성적 주체관’과 이러한 가치판단은 17, 18세기의 특정지역, 특정시기에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투명한 이성을 가진 주체라고 하는 개념이 결코 인류의 역사에 처음부터 보편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같이 투명하고 통일적인 의식을 가진 근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작업, 이것이 바로 ‘해체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이성적 주체관’에 대한 비판은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운위되고 있는 ‘주체의 죽음’과 관련된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주체의 죽음’이란 다름 아닌 투명하고 통일적인 자아의식을 가진 주체라고 하는 개념을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거의 대부분 심각한 자기 분열에 시달린다.  현대인들은 어떤 행위를 할 때에도 이것을 할 것인가, 저것을 할 것인가라는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분열과 복잡성을 느낀다.  일종의 자아의 편파성이 보여지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들은 이러한 현대인의 내면적 경험양식의 실상을 ‘주체의 죽음’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푸코의 ‘이성적 주체관’에 대한 비판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2) 자끄 데리다의 해체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인 ‘해체’는 데리다의 해체주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먼저 데리다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지배적인 지적인 전통을 ‘현전의 형이상학’으로 규정짓는다. ‘현전의 형이상학’이란 존재의 의미를 현전으로 이해한다는 것이고, 객관적인 세계가 따로 존재하며 그 객관적인 세계를 언어와 개념체계를 사용해서 정확하게 표상할 수 있다고 보는 세계관을 말한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세계관을 그 자체 내에 있는 모순, 역설, 아이러니 등에 부딪혀 분열하게 되는데 이러한 필연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데리다는 ‘언어’자체를 분석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서양의 언어관은 문자언어보다 음성언어를 더 우월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고 한다.  왜냐하면 언어의 기능은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음성언어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명료하게 지금 이 시점에서 현존하는 양태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반면 문자언어는 그러한 음성언어를 다시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차적이고 열등하게 되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런 서양의 전통적인 언어관은 현존의 형이상학에 침윤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말(음성)이 문자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근거가 말(음성)이 문자보다 더 현존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존이라는 관점에서 언어를 파악하면서 음성언어를 특권화 시켰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언어를 결코 현존(지금 이 시점에서 존재하는 것)하는 것으로서 그 특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Pet라는 단어는 애완 동물을 지칭하는데, Pet라는 단어가 특정한 애완동물을 의미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Pat, Pit, Pot라는 다른 단어들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영어 어휘 속에 무수히 다른 언어들이 전제가 되어야만 Pet라는 단어의 의미가 형상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단어의 의미는 그 시점에서 부재하는 다른 무수한 단어들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현전의 문맥에서 구별하는 서양의 전통적인 접근방식은 정당화 될 수 없게 된다.

데리다의 언어관은 결국 어떤 기호(기표 Signify)와 그 기호가 지칭하는 대상(기의 Signified)사이에는 본질적인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전통적 언어관에 따르면 기표와 기의 간에는 엄격하고 본질적인 구분이 유지되어 왔지만 데리다는 해체작업을 통하여 그러한 경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해체가 그러한 선험적 기의의 가능성을 따져물을 때, 우리는 모든 기의는 또한 기표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기의와 기표의 구분은 그 뿌리에서부터 문제가 된다.J. Derrida, of Grammatology, Th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74, p.43.

선험적 기의란 ‘자지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 의미화 된 개념’인데, 그러한 선험적 기의의 가능성은 일차적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데리다는 이것을 뿌리라고 표현했다)에 의존해 있다.  그런데 해체가 밝히는 것은 안과 밖의 결정 불가능성이며, 안에 있다고 생각한 기의가 사실상 밖에 있다고 간주된 기표의 자리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데리다의 해체는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것들로 받아들여지는 관계들, 원리들, 개념들의 진리성 및 정당성에 물음을 던지고 그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분법적 논리에 의거한 이성적 언어의 규정성이 갖는 한계를 비판한다.  다시 말해 해체적 사고는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을 요구하는 이성의 요구자체가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아포리아, 역설, 아이러니들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이성의 원칙을 비판하는 것이다.

(3)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한 가지 사유형식에로 몰고 가 통일화와 체계화를 추구했던 논리중심적 합리주의에 반대하고 심미주의에 기초한 복수적 사회구조를 주장한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합리주의나 이성주의의 바탕이 되고 있는 이성 내지는 사고(思考)의 탈무장화를 철학의 과제로 삼는다.  논리중심적 사유형식을 비판함에 있어서 리오타르는 다른 후기 구조주의자들과는 달리 오늘날 변화된 사회현상에 주목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언어철학에 의존하고 있다.  리오타르는 주관은 표상, 의미, 기호, 진리들과 묶여 있는데 이러한 사슬은 끊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관찰 가능한 사회적 유대가 여러가지 언어의 ‘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리오타르는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서 학문을 벌써 오래 전부터 합리적 형식을 넘어서기 시작했음을 밝히고 오늘날 합리적 사유형식으로부터의 해방과 현대후기적 학문형식에로의 이행을 주장하게 된다.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을 ‘19세기 말 이래로 학문, 문학 및 예술의 유희규칙에 일어난 변화 이후의 문화의 상태’라고 말했을 때 ‘변화’는 다시 ‘설화들의 위기’로 구체화 된다.  학문은 자기가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유희 규칙을 적법화 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메타논의’에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실험과학이 사회속에서 적법성을 얻기 위해 ‘메타-설화’로 돌아가면 학문은 이데올로기나 권력의 도구로 되고 선학문적(先學問的)내용에 좌우된다.

현대를 이끌어 왔던 ‘메타-논의’로 리오타르는 인간의 해방을 말하는 계몽주의라든가 정신의 목적론으로서 관념론 및 의미의 해석학인 역사주의 등 ‘대설화(grand narrative)’를 들고 있다.  이러한 ‘메타-설화’들은 그 동안 신뢰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스트모던이란 사람들이 ‘메타-설화’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메타-설화’가 더 이상 효력을 잃었다던가 전혀 지침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보편적’영향력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오타르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로, 이 대설화들은 진정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몇가지 특수상황에선 예외조항을 두어야 한다.  그에 대한 예를 리오타르는 특히 체계적이고 정밀하다는 과학에서 찾아 하이제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괴델의 ‘불완전성이론’등을 들고 있다.  이것들이 이야기 해 주는 것은 어떠한 이론도 완전할 수 없으며 절대적으로 규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로, 상부구조로서 ‘메타-설화’는 오늘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첨예화되어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포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인류는 전체성이 단지 허상이었음을 통찰하게 됐으며, 오늘날의 학문은 이러한 ‘메타-설화’에 의존하지 않으며 불연속적이고 파라독스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던의 학문은 서로 다는 논의들이 오류추리(Paraogie)로 이해되는 이질성 속에 그 모형을 취한다는 것이다.  극도로 전문화된 오늘날의 학문은 상충적일 수 있는 ‘소설화(小舌話)’내지는 ‘소논의’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리오타르가 주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신 속에는 기능을 합법화시키거나 강요하는 설화체계의 위기, 허구성에 대한 비판의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메다-설화’의 종말은 학적 진리의 제도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내적 구조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리오타르는 비트게슈타인의 후기철학에서 언어적 생활형식이 규칙을 나타냈던 ‘언어유희’개념을 받아들인다.  더구나 그는 그 개념이 지닌 경쟁적 차원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사회적 연관관계는 상호 경쟁적으로 얽혀 있는 유희들 속에서 드러난다.  현대후기인 오늘날에는 사회 속의 이렇게 경쟁적이고 상충적인 언어유희들을 서로 화해시킬 어떠한 재판관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리오타르는 이러한 경쟁상태를 사회발전의 역량으로 여긴다.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개별유희들은 다른 유희에 종속되거나 종합됨으로써 침해되서는 안되고, 오히려 완전한 내용을 지닌 채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질성과 복수화를 기본구조로 삼는 ‘미적’인 사회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리오타르는 ‘숭고’개념을 제시한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논의하면서 미의 구조가 아니라 숭고의 구조에 관심을 쏟는다.  실상 리오타르의 숭고론은 그의 필학의 정점을 이룬다.  여기에서 리오타르는 미적 영역에서의 화해, 보편적 조화의 유토피아를 거부하고, 메타-설화에서 배제되었던 ‘작은 설화’의 예술 즉 사유될 수는 있으나 묘사될 수 없는 예술의 모델을 제안했던 것이다.  “사유할 수는 있으나 볼 수도 가시화될 수도 없는 어떤 것을 가시화 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현대미술의 노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가시화 된 묘사를 통해 묘사될 수 없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18세기 이래로 철학에서 잊혀졌던 ‘숭고’의 부활은 그의 철학적 공헌이라 볼 수 있다.  숭고의 분석에서 귀결되는 결과는 서로 다른 유희들 간의 ‘미적인 구조’를 지니는 사회 속에서 실천적 모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적 배경은 한마디로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현실과 분리된 관념의 전수나 영향은 아니다.
어떤 하나의 사상적 흐름은 반드시 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때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복잡하고 다원화되는 현대 사회의 반영인 것이다.  더구나 포스트 모더니즘이 확실한 이론적 체계를 담보하고 있다거나, 그 내용에 있어서 어떠한 이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이상 포스트 모더니즘은 하나의 사상이나 이론체계이기보다는 현대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일반적인 경향성을 표현하는 조류로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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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이해

I. 들어가는 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유령이 지금 유럽에 출몰하고 있다. 1981년 10월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위와 같은 제목의 르메르(G.-G. Lemaire)의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마치 마법적인 위력을 가지고 우리의 생활 전반에 침투하고 있고, 그 용어는 철학, 문학, 사회학, 경제학, 자연 과학, 건축을 비롯한 예술, 심지어는 신학에서조차 무분별할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것이 일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거나 혹은 대학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전문적이고 생소한 이론은 아닌듯 싶다. 그러나 Posrmodernism을 조심스레 취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이유는 Welsch가 지적한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비판하는 이른바 근대성 혹은 현대성(modernity)은 아직도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인식과 행위의 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아직도 상당 부분 근대성이 지배하는 시대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 비판은 그 자체가 근대성의 범주 안에 속해 있으면서 근대가 이미 끝이 났다는 식의 사망 신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우리의 연구의 목적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맹목적으로 근대적인 것을 파괴하는 일종의 문명 파괴 이론인지 아니면 근대(현대) 문명의 모순점을 건전하게 비판하기 때문에 건전하게 수용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연구를 함에 있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다른 사상의 흐름처럼 옛 것에서 새 것으로의 자연스러운 진행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식의 사고적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의 연관성을 거부하고자 하는 하나의 지성사적 운동으로써 중세에 빠져 있던 서구 유럽인들이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제시된 천동설을 이해하기 위해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여야 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인식 구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가다머의 말대로 우리는 근대성에게서 물려 받은 전이해를 가지고 사고하는데 익숙해 있으므로 이러한 자세를 갖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성사에 있어 지나치게 좌경화된 사조라는 인식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어려움 때문이다.
 
우리의 바램은 칼 포퍼의 용어를 빌리자면 소위 “열린”(open) 마음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주로 철학적인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의 서론격이 될 것이며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 진다. (1)근대주의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던 17세기 R. Descartes의 인식론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식론의 동향. (2)M. Foucault와 J. Derrida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주의와 해체주의. (3)엄밀한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취지에서 이른바 “비판 이론”(Critical Theory)을 통해 문명 비판을 시도하는 J. Habermas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을 살펴 볼 것이며, 철학적 해석학을 만들어 내고 철학의 영속성을 주장한 바 있는 H.-G. Gadamer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을 대략적으로 살펴 보게 될 것이다.
 
Postmodernism의 철학적 이해-개론적 연구라고 하는 이 첫번째 연구 보고서는 자크 데리다 연구,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이해, 포스트모던 신학 연구 등 뒤이어 논술될 동료들의 연구에 대한 전체적인 서론격이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에 대한 논의에 많은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
 
II. 서 론.
 A.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이해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 “포스트”(post)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영문학 교수인 Veith는 그의 Postmodern Times 이라는 책에서 우리들의 세계는 기존의 문화가 그 토대부터 무너진 시대라고 하였다. 즉 16세기 이후 4세기 동안 지속되던 근대(modern)가 무너지고 그 이후의 시대, 즉 “포스트”(post)모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 명칭에서 보여지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와 관련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서양의 근대 문화가 15-18세기 동안에 형성되었다고 보는데 이는 문예부흥에서부터 서양 근대 문화의 독특성을 이루었다고 하는 계몽주의 시대까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형성된 사상적 기저를 근대성(modernity)이라고 하는데 혹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 근대성에서 벗어난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철학과 문학에 대한 극단적 비판 운동으로 보기도 하며, 20세기 중반 이래 나타나는 서구 문화 전반의 폭넓은 변화 추세에 대한 막연한 지시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포스트”(Post)라는 말이 “이후”라는 시간을 의미하는 접두어이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흔히 시간적으로 단순히 모더니즘에 후속하는 하나의 사조로 이해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철학자인 료타르(Jean-Francois Lyotard)는『포스트모던적 조건』이란 자신의 저서 뒤에 실린 “질문에 답하며: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논문에서 포스트모던적 상황이란 오늘날 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큰 움직임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연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 안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그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이해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 속에 살면서 모더니즘적 문명과 철학을 비판하는 문화 전반에 있어서의 사유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II. 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
 
A. 근대주의(Modernism)의 태동.
 
철학적 탐구에 있어 가장 근본된 물음은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에 관한 것들인데, 그러한 형이상학과 존재론은 항상 “존재를 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러한 인식이 가능한가?”라는 등의 인식론적 의문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서 인식론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식론은 서구 지성사에서 철학의 핵심적 논쟁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본성에 관한 문제와도 늘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인식론과 과학은 상호 관련을 맺게 되고 인식론의 변화는 인식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상적, 과학적 전반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에 있어 데카르트(R. Descartes)를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그러한 인식론에 있어 가히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이라 불릴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은 과학 자체를 철학에서 독립시키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는 적합한 기초가 없는 과학을 과학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는데, 그래서 그가 의심과 성찰 끝에 얻어낸 명제가 곧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것이었다. 테카르트는 자아 존재의 확실성이라는 단일 원리 위에서 그이 사상을 전개시켰는데 그가 모든 학문적 탐구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모든 사람은 이성적 능력을 소유하며 그 능력을 바로 쓰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명석?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참이며 확실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생각은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서 분명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근대성의 기본 이념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계몽주의의 이념을 이성에 대한 믿음과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자연관 그리고 진보의 교의 등 세가지로 들 수 있다.
 
데카르트의 사상은 중세 기독교의 영향 아래 억눌려 있던 인간 이성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지향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이후 펼쳐지게 될 새로운 시대의 커다란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에는 몇나지 난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제시한 사유의 원리로서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단일 원리, 즉 자아 존재의 확실성이라는 명제는 그것으로부터 다른 명제로의 비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그의 명제 자체가 중세적인 인식론에서 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하나의 비약이었음에도 그 자신은 어떠한 비약도 허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작업은 상당히 무리가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적 인식론을 토대주의(Foundationalism)라고 부르는데 이 토대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데카르트의 난점은 이성과 관련하지 않은 그 어떤 인식론적인 사유도 허용하지 않으며, 역사와 현실의 다양한 흐름에 대하여 수정과 보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칼 포퍼는 이러한 맥락에서 반증이 불가능하도록 짜여져 있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학,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 등을 비판하기도 한다. 토대주의로서의 데카르트적 인식론은 흄(David Hume)과 같은 경험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소위 “정당화”(justification)의 문제에 관하여 공격당하게 되고, 20세기에 이르면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에 의해 심각에 도전을 받게 된다.
 
B. 칼 포퍼의 신실증주의.
1. 반증 원리.
막스 베버(Marx Weber)가 말한대로 서양 문명에 있어 근대성을 합리성, 즉 점진적 합리화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합리성에 대해 칼 포퍼(Karl Popper)는 ‘실증주의 논쟁’에서 소위 ‘비판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으로 합리성에 도전한다. 우선 그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지각이나 자료의 집적이 아닌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한 ‘반증 원리’를 주장하게 된다. 반증 원리란 것은 기존의 논리 실증주의적 검증주의를 반박하고 나선 것으로써 .보편 명제로 구성되는 과학적 법칙은 경험적 관찰에 의해 완전히 검증할 길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보편 명제는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단 한 건의 부정적인 의해서도 반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귀납적 지식에 의해서는 형성되지 않으며, 반증에 의해 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그의 반증 원리는 인식론에 있어 획기적인 시도였다. 그의 의도는 일반적으로 인식의 확실성이나 인식의 확고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론의 견해와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열린 사회.
포퍼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열린 사회’(open society)의 개념이다. 앞서 말한대로 사회 과학이나 자연 과학적 지식은 모두 문제로부터 시작한다. 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 적절한 비판에 열려져 있지 않은 것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분류되어 폐기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비판이란 무엇이며, 이른바 ‘열린 사회’란 것은 무엇인가? 비판에 관해서는 간단하게나마 앞서 다룬반증 원리의 개념으로 설명될 것이다. 열린 사회는 철저하게 자율적 이성-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율적 이성은 절대로 방임은 아니다-에 근거한다. 그의 열린 사회는 존재론적으로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인식론적으로는 인간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는 개인주의에 대립되는 것으로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그것이 역사를 전체로 보는 역사주의에서 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역사를 하나의 전체로 보는 통합적 관점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의 열린 사회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다. 우선 그는 종래 계몽주의적 계열에 속해 있는 논리 실증주의를 비판하며, 반증 원리라고 하는 새로운 인식론상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그는 또한 역사의 연속성과 통합성을 부인하고 부분의 이해와 묘사만이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 그래서 하나의 이론이 확립되면 이전 것은 폐기되어진다고 하는 단절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후에 토마스 쿤과의 논쟁에서 나타나게 된다. 열린 사회에 있어서는 기존의 것과는 다는 새로운 지식의 진보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그 새로운 지식들은 그 자체가 열림이라고 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포퍼의 열린 사회의 개념은 모더니즘을 뿌리채 비판하고, 역사의 우연성을 중요시하면서 다양한 인식들의 병립을 가능하게 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길을 닦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C. 역사적 사건들.
모든 사상은 역사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형성되고 변천한다. 그래서 헤겔은 “철학은 시대의 산물”이라고까지 말한 것이다. 이성을 그 토대로 한 모더니즘은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여러 역사적 사건들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로 불리는 양자 역학과 아인슈타인에 의해 체계화된 상대성 원리는 자연 과학에 있어 고전 역학의 개념을 뒤엎었을 뿐만 아니라 철학에 있어서도 고전적결정론을 비판하며 비결정론을 주장할 수 있는 사실적 증거로써 영향을 끼쳤다.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 등에 의해 종래의 근대적 논리 개념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요구되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을 토대로 하는 모더니즘에 결정적으로 충격을 준 것은 바로 20세기 초반 두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 클램이라는 철학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근대주의적 이상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살 두차례의 전쟁을 겪은 유럽인들은 그 파괴에 몸서리를 쳤고 연이은 이념 분쟁(미-소 갈등, 한국 전쟁, 월남전) 소겡서 전대미문의 문화, 정치, 사회적 혼란을 겸험했다. 또한 도덕적 쇠퇴와 과학의 한계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 그리고 환경문제 등에 부딪혀 이성에 대한 회의의 단계를 넘어 위기 의식이 팽배해 지게 되었다. 그러한 서구인들의 위기 의식은 후설의『유럽 학문의 위기』와『서구의 몰락』등의 책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사람들이 근대주의가 산출한 규격적이고 합리적인 것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주의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을 끌기에 아주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외에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시민층의 의식이 향상되고 문화가 보편화 되어 대중 문화를 형성한 것도 또다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의 암흑을 이성이라는 빛으로 밝게 하려던 모더니즘의 시도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서 모더니즘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역사와 문명을 바라보던 자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우리는 그들의 새로운 사조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른다.
 
IV. 포스트모던 사상.
 
A. 미셸 푸코
1. 푸코의 사상적 배경과 특징.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파리 고등사범을 나와 프랑스의 여러 지식인들처럼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후 파리 대학과 프랑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의 사상은 ‘후기 구조주의’라고 불리운다. 푸코는『性의 역사』,『狂氣의 역사』『사물의 질서』등의 저술을 통해 그의 사상을 피력했는데, 그의 사상은 “서양 사상의 근원인 기독교의 신과 희랍적 진리가 억압의 수단”이라는 니체의 주장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푸코의 작업은 “고매해 보이는 종교와 진리의 탐구 이면에 투쟁과 권력의 저질적 동기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특히 이제껏 보편성과 객관성을 근거로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학의 뒤에도 권력의 역학이 있음을 폭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인식에 있어 합리성(근대성)과 연관되는 문제에 대하여 보편주의적 접근을 엄금한다. 베버와 같은 비판 이론가들의 합리성에 대한 일반화는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며 비생산적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의 과제는 병, 범죄, 광기, 성 등 특정 부분에서 특수한 합리성의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분석하는데 있다. 따라서 합리성에 대한 연구의 방향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 가운데 우리는 계몽 사상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태도를 갖지 말고 계몽 사상의 이념을 투시해 보는 비판적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2. 푸코의 역사관.
푸코는『광기의 역사』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광기라고 하는 또 다른 형태, 즉 광기라고 하는 타자성의 역사를 기술해야만 한다. 바로 이 타자성을 통해서 인간은 지배적인 이성의 작용 속에서 자신의 이웃을 감금하고, 비광기라는 냉혹한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 교통한다…우리는 이 언어와 이성의 공모의 순간을 규정해야 한다…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광기의 진행 과정에 있어서의 영점에로 복귀해야 한다.
 
그가 지식의 ‘계보학’, 혹은 ‘고고학’이라고 부른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근대 문명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근대적 주체의 계보학’은 인간을 우주의 주체로 여기는 근대 사상에 대한 비판이다. 푸코는 사회, 정치 그리고 과학에서조차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주체를 객체에 대립시키는 근대 사상의 특징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주체 중심 사상이 서구 문화의 독특한 철학 이론과 사회, 정치, 경제적 실천의 결과임을 계속해서 밝히고 있다. 그의 의도는 그의 작업을 통해 근대적 인간관을 폐기하고 나아가 그것을 계몽주의적 인본주의의 파괴로까지 파급시키는 것이었다. 

푸코는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적으로 이식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그는 역사 발전의 법칙을 주장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해체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푸코는 지식의 중립성을 배격하고 근대적 인본주의의 이성적 주체를 죽음에로 몰아치는 극단적인 비판을 감행한다. 지식과 주체에 대한 이같은 비판은 결국 근대 문화의 중심에 대한 파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역사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연구 목표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목표는 어떠한 목적론도 사전에 환원되지 않은 불연속을 통해 역사를 분석하는 것이고, 기존의 어떠한 지평에도 포함되지 않을 산개(散開)로 역사를 그리는 것이고, 어떠한 초월적 정체도 주체의 형식을 강조하지 않을 익명으로 역사가 전개되게 하는 것이고, 특정한 새벽으로 복귀한다고 약속하지 않을 덧없는 시간을 향해 역사를 개방시키는 것이다.
 
그는 니체로부터 근원주의와 형이상학에 대한 깊은 반감을 물려받아 계몽주의의 울타리 안에 있던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기존의 이성주의적 사상들을 파괴하고자 했던, 그의 주장대로 역사를 개방시키고자 노력하며 지성사에 있어 단절적인 작업을 통해 변화를 역설했던 ㄷㄱ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20세기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호수에 빠뜨린 장본인이었다.
 
V.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A. 신계몽주의의 비판이론.
이미 언급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모더니즘에 후속하는 사조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상계 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지대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전 사상계가 포스트모던화되어 있는것은 아니고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또한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비판하는 것이 근대주의적 계몽주의이므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은 주로 계몽주의적 전통에 속해 있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게승자인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견줄만한 대안적 이론을 든다고 한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주창되어 온 ‘비판 이론’(Critical Theory)를 들 수 있는데 비판 이론은 1960년대까지 사회 철학을 주도했던 벤자민,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등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근대 문화의 객관주의와 과학 기술 문명의 폐해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이고도 파괴적인 비판에 대하여 계몽주의적 계획을 회복하고자 하는 수정주의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신계몽주의(Neo-Enlightenment)라고 불리기도 한다

B. 위르겐 하버마스.
비판 이론가들은 근대적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폐기를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달리 “오늘날의 위기는 근대적 전통의 비판적 계승으로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가 외치는 ‘모더니티-미완성의 계획’ 이라는 말은 그 주장의 핵심을 잘 대변해 준다. 그는 근대의 사상적 전통을 “객관적 관학, 도덕과 법의 보편주의적 토대, 자율적 예술을 각각의 고유한 내면적 의미에 따라 발전시키고, 동시에 그렇게 축적된 인지적 잠재력을 그 폐쇄적 형태로부터 해방시켜 실천, 즉 생활 관계의 이성적 구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것을 회복하고자 한다.    하버마스는 오늘날 그러한 계획이 위기에 빠져 해체되어야 할 우명에 처한 것이 아니고 단지나치즘의 잘못 등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서 방황한 결과 미완성의 과제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근대의 계획을 수정 보완하여 유지하려 하지 않는 자들을 모수 보수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점이다. 그 이유는 계몽을 지향하지 않으면 결국 기존의 제도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우기 계몽은 언제나 이성적 기초에서 출발하므로 이성의 기초적 성격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야말로 가장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할 보수주의로 비친다. 하버마스가 근대적 게몽의 계획을 계승하지 않고 반대하는 이들을 신보수주의자라고 비판하며 그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가운데 가장 첫째로 꼽히는 것은 물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다. 그가 청년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니체의 전통을 이어 받아 심미주의적 유희서을 강조하는 그룹으로 바타이유, 푸코, 데리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보다 겸손하고 자기 비판적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적어도 이전까지 인간의 사고와 모든 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 이성이라고 하고 그것에 무한한 신뢰를 두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에 대한 신뢰라고 하는 모더니즘적 관습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자세는 권위있는 스승이 속썩이는 학생들을 벌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지키려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개념, 상대주의라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등은 기독교적으로 보아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C.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가다머는 하이델벨크 대학에서 야스퍼스의 뒤를 이었고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cal Hermeneutics)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리고 1970년대 초 철학적 해석학과 관련하여 하버마스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그 자신이 근대적인 개념들에 대해 도전하기도 하는 흥미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전 해석학에서는 중립적인 관찰자가 감정 이입이나 추체험 등의 기법을 통해 대상 자체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대사을 참으로 엄정하게 이해학 위해서는 관찰자 자신이 놓여 있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밖으로 빠져 나와 중립적인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해석학적 감성이란 대상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중립성이나 관찰자가 가진 입장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관찰자가 가지고 있는 전의미와 편견들을 의도적으로 통합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편견을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써 그 대상 자체가 새롭게 드러날 수 있게 해야 하며 우리가 가진 전으미를 배경으로 하여 대상 자체의 진리가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모든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목표 자체가 또 하나의 편견이므로 그러한 계몽 사상을 극복해야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 의식을 지배하는 유한성에 대한 적절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철학적 해석학을 통해 계몽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면서도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다머의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가다머는 모든 진리의 추구가 역사와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독립된 자율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이고 반이성적인 성향에는 반대한다. 즉 가다머는 이해를 객관적 원리에 의한 기계적인 과저으로 규정하려는 근대적 객관주의를 배격한다. 동시에 이해가 그것을 구속할 수 있는 그 어떤 규범도 없는 상대주의적 유희라고 보는 포스트모더니즘도 거부한다. 그 한 예로써 그는 예술 작품의 의미 해석에 관한 설명을 들고 있다. 그는 한 작품의 이해가 과학 공식을 풀듯이 어떤 객관적 법칙에 의해 좌우도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 규범도 없는 것이 아니라 마치 놀이에는 규칙이 있고 대화에는 주제가 있듯이 한 작품의 이해는 작품이 제시하는 주제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즉 해석은 그 주제에 대한 대화이고 그 작품이 던지는 놀이에의 참여이므로 그 주제를 따르고 놀이의 규칙을 벗어나서는 바른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다머는 계몽주의의 객관성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삼의 진리관을 제시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철학적 해석학이다. 그의 해석학의 기본 정신은 오늘날의 서구 문화의 위기를 전통에대한 무비판적 계승이나 무조건적 배격과 파괴가 아닌 해석적 수용과 잃었던 유산을 다시금 화렁화시킴으로써 극복해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적 이상을 수정, 보완하여 계속적으로추구하는 비판 이론이나 극단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비해 온건하며 중립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VI.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본 포스트모더니즘을 정리하며 그 특징을 살펴 보고자 한다. 손봉호 교수는 계몽주의에 대해 도전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일곱가지로 제시한다. 1) 불확정성, 2) 단편화, 3) 탈경전화, 4) 이종혼합, 5) 대중주의, 6) 행위?참여 강조, 7) 보편 내재성 등이다. 그가 제시한 특징들은 주로 푸코나 데리다 등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를 고려한 것이다. 하버마스와 가다머의 비판과 이론까지 고려한다면 몇가지 특징을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반토대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이며, 다원적이고, 비판적-창조적인 면과 파괴적인 면 모두에서-이다.

중세에게서 신앙의 위치를 빼앗아 문예 부흥 이후 계몽주의에 이르러 이성을 신앙에 대치시킨 근대주의가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이성의 위치를 공격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 개혁 이후 다시금 교권?교리주의와 계몽주의에 의해 권위가 실추되었던 신앙을 인간의 사상과 가치관에 있어서 지고의 위치로 격상시킬 기회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11:3)라고 한탄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을 생각하며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적 상황에 대해 위기감과 새로운 희망을 동시에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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