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당밭으로 들어가는 잠녀들이 시끌벅적하다. 골 패인 이마로 떨어지는 햇살에도 아랑곳 않는 무구한 웃음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의 삶을 우도를 중심으로 짚어 본다.
사진 김흥구(사진작가)
이제 막 바당밭으로 일하러 들어가는 잠녀들. 커져 가는 숨비소리와 함께 오늘도 고단한 노동을 수행할 터이다.
숨비소리 한창이다. 그것은 고단한 노동의 합창. 직선의 궤적 그리며 바람 뚫고 지나가면 소리는 이내 흩어지고 사람들도 다시 사라진다. 하향(下向). 일 미터, 이 미터, 삼 미터, 삼 미터 오십, 사 미터……. 뽕돌(허리에 둘러 찬 납 덩어리)의 무게에 몸을 맡긴다. 내려갈수록 검푸르게 짙어지는 물 빛깔의 두려움은 떨친 지 오래. 일렁이는 파도에 흐느적이는 천초며 미역 등과 이내 한몸 되어 부유하고 만다.
망사리에 담는 삶 한자락 제주 우도의 조일리 비양동에 보랏빛 엉겅퀴와 그보다 좀 더 옅은 나팔꽃 등속의 봄꽃이 지천이다. 바닷바람에 익숙한 꽃과 풀들은 자기 몸과 마음 흔들리기 싫어 낮게, 낮게 누워 있다. 비양도 구릉에 앉아 있으면 몸피 큰 것은 나뿐이라 학군일계(鶴群一鷄)처럼 머쓱하다. 누웠다 앉았다 서성이다 바다 다시 바라다본다. 점점이 떠 있는 오렌지빛 테왁들. 쉴 자리 찾아 날아가는 철새떼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물에 들어간 지 네 시간이 훌쩍 넘었다. 점점 커져 가는 해녀의 숨비소리가 오늘의 물질작업이 얼추 끝나감을 알려 준다.
“왜 안 힘들겠어, 힘들지. 그래도 이거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하는 게지. 여남은 살 때부터 시작해서 예까지 왔으니 꽤 한 거지? 세월이 어떻게 흘렀나 몰라. 그냥 그렇게 왔어, 여기까지.”
바다에서 나와 가쁜 숨 몰아 쉬는 우복련 할머니의 목소리에 짙은 회한이 서려 있다.
망사리를 메고 물질 나가는 해녀의 모습이 애잔하다. 제주의 해녀는 60~70대의 연로하신 어머니들이 대부분이다. 10년, 20년 후, 이제 해녀는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소중한 유산 하나를 '또' 잃는 것이다. | |
비양동에서는 마흔네 살의 공만숙 씨부터 여든다섯의 우복련 할머니까지 45명이 물질을 한다. 제주의 다른 곳처럼 여기도 60~70대의 해녀들이 주로 많다. 물질은 조류(潮流)와 연관이 깊다.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조금부터 여섯 물(한 물은 하루)까지 일주일 간 작업을 하고 일주일 정도는 하지 않으니, 한 달에 2주 작업 하고 2주는 쉬는 셈인데, 작업 기간은 동네마다 조금씩 다르다. 겨울부터 6월 중순까지 비양동에서 나오는 ‘물건’은 천초(우뭇가사리)류다. 망사리(잡은 해산물을 담는 망)에 하나 가득 담긴 갈색 천초의 무게는 어림잡아 30~40킬로그램은 족히 될 듯하다. 바다에서야 부력 때문에 괜찮다지만 뭍으로 나오면 해녀들이 들고 옮기기엔 무리가 가는 무게다. 그래서 다섯 시간여의 작업이 끝날 때쯤이면 경운기 두세 대로 동네 남정네들이 마중을 나간다. 네 것 내 것 없이 경운기에 가득 실은 다음 동네를 돌며 해녀들의 문간에 망사리를 떨어뜨려 준다. 박 모양의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테왁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어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쉽다. 망사리를 수면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테왁은 작업한 해산물을 담거나 해녀들이 바다에서 몸을 의지할 때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해안가를 따라 고즈넉이 난 우도의 올레 길을 걷다 보면 해녀들의 작업 현장을 만날 수 있다. 물소가 누운 모습 같다는 우도(牛島)는 그 이름만으로도 여행객의 촉촉한 정서를 간지럽히는데, 실제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조단괴 해빈이 있는 산호사해수욕장의 옥빛 바다나 엽록빛의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는 우도봉은 적도 부근의 아름다운 섬처럼 장관이다. 섬 둘레는 17킬로미터, 하루 정도 온전히 걸으면서 그 눈부심을 만끽할 수 있다. | |
하지만 풍광에 너무 심취하지는 말자. 자칫 그곳을 터전으로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 온 해녀까지도 풍광의 한 소재로 잘못 볼 수 있으니. 진정한 여행자는 여행자의 정서로가 아니라 여행지의 정서로 현지를 읽는다. 따라서 우도에 가면 길가에서 해녀의 물질 모습만 볼 것이 아니고, 그 분들 한 명 한 명과 눈맞추며 그들의 삶 속으로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 망원 렌즈가 아니라 마음 속의 어안 렌즈로 포근히 봐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영일동, 비양동, 하고수동, 상고수동 등지를 돌면 하루가 촉박할 수도 있겠다.
옅어져 가는 숨비소리 합창 이를 조금 더 확대하면, 제주의 해안 마을엔 어디를 가나 해녀가 있는 것으로 봐도 된다. 그러니까 남부외에도 북서부의 한림이나 애월, 동북부의 세화나 김녕에서도 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수는 현저히 줄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1만5천여 명이었는데 지금 제주엔 약 5천2백여 명밖에 해녀분들이 없어요. 그것도 75퍼센트 이상이 60대 이상이시고요. 그러니 10년 후면 더욱 줄어들 것이고, 그 다음엔 이 분들이 사라지게 되겠지요.” 해녀만 꾸준히 연구해 온 제주 해녀박물관의 좌혜경 박사는 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풀이 죽는다.
무엇보다 해녀 수가 줄어드는 것은 작업 자체의 고단함에 있다. 하루를 백날같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물 속에 들어가 노동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호락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몸 하나 쉬이 움직이기 힘든 수중에서, 전력으로 호맹이질하는 것도 그것이려니와 2~3분씩 숨 참고 수심 5~20미터 깊이로 드나든다는 것이 어찌 녹록하랴.
뿐만 아니라 물때와 조류, 바람, 수압 등 물질을 할 때 알아야 하는 고급 기술이 많은데, 이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 것은 당연하다. 잠수계원들 여럿이 함께 공동작업을 할 때에도 기술 좋은 상군 해녀들은 중∙하군을 배려, 그들보다 먼 바다로 나가 작업을 한다. 이렇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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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병 한 가지 달지 않은 분이 없다. 그 고역을 집단 노동으로 극복한다. 웃음이 더할 수 없이 건강하다. | |
힘든 일이다 보니 웬만한 병 하나 달고 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특히 잠수병과 관절 관련 질환들 때문에 고생하는데, 자기 몸 돌보지 않고 오로지 가족 먹여 살리려 살아온 지난한 삶의 결과다. 이를 본 자식 세대가 업을 잇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면에서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한수풀해녀학교가 해녀 후계자 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제주도 특화사업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에 개교해 2008년 5월부터 매해 1기씩 해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파람 부는 16주 동안 이어지는 교육은 제법 강도가 세다. “주의보가 내려지지 않는 한 무조건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물질을 하다 보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인위적인 교육을 하지 않으려는 거죠.”
임명호 교장의 단호한 말에는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제주 해녀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절박함이 깔려 있는 듯하다. 2010년 8월의 교육생은 55명이었는데, 이 중 열세 명은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와 교육을 받는다. 이는 생업으로서의 물질을 배우는 이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임 교장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성산일출봉을 등에 지고 시작되는 올레 2코스의 끄트머리에 온평리가 있다. 제주의 시조인 고, 양, 부 삼선인이 혼례를 치렀다는 그 마을이다. 주중임에도 올레꾼들 여럿이 쉼터에 앉아 지친 다리 토닥인다. 그들 옆을 막 물질 끝낸 해녀들이 터벅터벅 지나간다. 오래 전 헤어져 얼굴 서로 못 알아 보는 남매처럼 무심히 겹쳐졌다 페이드아웃되는 사람들. 바다로 부는 남풍조차 멋쩍은 듯 멈춰 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 올레꾼들이여, 제주에 가면 해녀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野 | |
올레꾼이 바다를 보는 사이, 상(像)이 된 해녀는 뭍을 보고 있다. 혹 제주에 가 해녀를 만나면 경의를 표하며 눈 맞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 |
평생의 삶을 함께 했을 잠수복이 해물과 함께 청량한 하늘 아래 걸려 있다. 그들의 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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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집, 전복죽. | |
Way 제주까지 빨리 가려면 비행기로 가고, 느릿하게 가려면 배를 타고 간다. 이젠 빨리 가는 배도 생겼다. 전남 장흥 노력항에서 타면 성산항까지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자동차도 가져갈 수 있다. 올레 길을 걸으려면 대중교통이 낫다. 차를 갖고 가면 코스 끝 지점에서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성산항에서 우도까지 가는 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있다. 바람 많이 불면 배가 안 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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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온평리에 가면 전복죽 잘하는 소라의 성 해녀의집(064-784-6363)이 있다. 이 마을 어촌계 소속 해녀 23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만큼 먹을거리 재료는 모두 믿을 수 있고 싱싱하다. 세 명씩 당번을 정해 운영하는데 밑반찬들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식당으로 내 온다. 여름엔 소라물회나 한치물회도 시원하고 맛 좋다.
Accomodations 제주도에 괜찮은 숙박 장소야 많다. 해녀를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우도에서는 하얀성펜션(064-784-4487)에서 묵어 보자.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호사해수욕장에 자리해 있는데, 테라스에서 바라보면 바다 건너 성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 온다. 7월 10일 이전엔 8만 원, 그 후부터 8월 15일까지는 15만 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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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우도...가본지 30년이 넘었네.
정동묵 작가의 '야*야' 가운데 한자가 뭐냐? 좀 쉬운 거 갖다 좀 써라.
'야' 발음 나는 걸로 하나 갈쳐 주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