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화성행궁 수원시인학교 참여기
- 시에게로 가는 길
김유섭
최동호 시인이 주최하시는 문학모임에서 느끼는 감동이 이번 2014년 수원 시인학교에서도 넘칠 듯 나를 휘감아 왔다. 물론 좋은 문학행사에 당당한 일원으로 참여했다는 뿌듯함과 우리 서정시학회 회원들과의 행복한 만남 때문일 것이다. 학교장이신 오세영 시인, 행사를 주관하시는 최동호 시인, 대구에서 오신 이기철 시인 그리고 신달자 시인의 “삶이 문학을 부른다.”는 강의로 첫날의 일정이 감동적으로 시작되었다. 기라성 같은 시인 평론가와 시와 문학을 사랑하고 지망하는 일반 참여자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지난해보다 더 큰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최동호 시인의 모교이기도 한 수원 남창초등학교, 그 작고 예쁜 교정을 지나 대강당으로 들어섰을 때, 실내를 가득 메운 뜨거운 열기에 사뭇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이 삭막한 자본주의 창궐한 세상에 아직도 문학이 아니 시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감동을 주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 대낮의 어둠 속에서 단 한 명의 반짝이는 눈빛이라도 사라지지 않는 한, 시는 써지고 읽힐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 평론가들이, 시를 사랑하고 시인을 지망하는 일반 참여자들과 어울려 마음을 터놓고 시 창작을 지도하고,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빈 술잔을 노려보면서 시와 삶과 나와 너를 이야기하는 수원 시인학교! 즐겁고도 진지한 시와 문학의 시간이 수원 남창초등학교와 화성 일대를 따듯하게 보듬어 안으며 세상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김종훈 시인 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남창초등학교 대강당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정시학회 회원들과 함께 남창동 식당 거리에 있는 맛집에서 특미 비빔밥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지난해, 1회 시인학교 때도 느꼈지만 이곳 수원 화성행궁 주변의 식당 카페는 모두가 맛집임이 분명했다. 시인학교 식권을 들고 어느 곳을 가도 실망 시키지 않았다. 가슴에 걸린 시인학교 명찰을 보는 순간, 남창동 식당이나 카페 주인부터 일하는 분들까지 모두가 미소로 친절하게 반겨 주어서 한 맛 더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수원성, 화성행궁, 남창동에서 만나는 일반 시민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누가 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했는지 여기 수원 화성 시인학교에 한 번 와보라고 하고 싶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때부터 화성행궁, 남창동 거리 곳곳의 카페와 식당 등에는 조별로 담임선생님과 참여자들이 모여 앉아 열띤 시 창작 지도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맹문재 선생님 조, 방민호 선생님 조, 유성호 선생님 조를 비롯한 모든 조들이 열심이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치 시의 나라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일상의 모든 일들을 떨쳐버리고 오직 시와 문학을 위해 열정적으로 몰입해 있는 사람들, 아니 시인들, 그 순간 그들은 모두 시인이었고 문학이었다. 불볕더위를 예상한 기상대의 예보와는 달리 남창동은 내내 골목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구에서 더위에 시달리다가 왔다는 권기덕 시인은 “여기 정말 시원하네요.”라며 놀란 얼굴로 감탄했다. 이 시원한 바람은 시인학교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순진한 권기덕 시인에게 뻥 한 번 칠까 하다가 그만 뒀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뻥을 친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우리 서정시학회 회원들도 그 전날 나온 따끈따끈한 동인지 「미래서정」을 가슴에 안고 열띤 낭송회를 하기 위해 배정된 숙소로 향했다. 백남오 성선경 황명강 최해춘 양균원 정혜영 배성희 박순원 강호정 권기덕 한영수 이지담 이언주 김유섭 이정희 한효정 현순영 김종훈 김조민 최정용 송민규 각 동인들이 자신의 시와 작품을 낭송하고 또 진지하게 경청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해설을 쓴 김종훈 시인 평론가의 30명 시인의 시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가졌다는 시평에 회원들 모두 힘을 얻었음이 분명했다. 물론 최동호 시인께서 함께 하시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경기 인터넷 방송의 취재와 촬영이 있어 활기찬 분위기였다.
사실 우리 계간 「서정시학」 출신 회원 시인 수필가 평론가들에게 올해는 특히 많은 성과를 올린 해이기도 하다. 작년에 출간된 박순원 시인의 시집 「그런데 그런데」가 4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고, 올해 아르코 창작기금을 4명이나 받았다. 또한 작년도 아르코 기금을 받았던 강호정 시인의 첫 시집 「슬픔이 움직인다」가 지난달에 출간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곧 성선경 시인, 권기덕 시인, 한영수 시인, 그리고 김유섭의 시집도 출간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필이 실려 있는 수필가 백남오의 「지리산 세석고원의 여름이」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많은 회원들이 치열한 창작의 결과물인 시집, 수필집, 평론집, 출간을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조금 쓸쓸하였다. 해마다 피던 뜰 안에 꽃이 피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맛집에서의 맛있는 생선찌게 저녁 식사, 대승원 대웅전에서 진행된 수산 스님의 설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중이라고 하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 달라고 하셨다. “스”라고 부르면 이상하니까 “스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시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방민호 선생님 사회로 이어진 시 낭송회와 장기자랑,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며 또한 서울대 교수이기도 한 방민호 선생님의 재치 넘치는 사회 솜씨는 방송계로 나가면 스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났다. 아, 초청 소프라노 여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감전된 듯 넋이 나가고 말았다. 아름다운 노래뿐만 아니라 미모의 여가수가 입은 반짝이 드레스에 철없던 시절에 드나들었던 무도회장이 생각났다. 나는 향수와 감동적인 노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드디어 한 곡만 부르기로 했던 노래가 거듭된 앙코르로 결국 세 곡을 부르고 나서야 아쉽게 끝나자, 방민호 선생님 대웅전 부처님께서도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방민호 선생님의 그 말씀에 아니라고 눈을 크게 떴다 감으시는 부처님을 나는 보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깊어가는 여름 밤, 시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터져나오는 “건배~” “위하여~” 외침과 함께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음날, 둥근 해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떠올랐고 놀랍게도 토하지 않았다. 호스텔 일층 뷔페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책을 겸해 화성행궁과 수원성을 구경했다. 수원성과 화성행궁 곳곳에서 만나는 각 조별 담임선생님과 참여자들의 표정이 진지하면서도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나는 백남오 수필가 성선경 시인과 함께 수원성을 구경하면서 어제 화성행궁 안 화령전에 갔었던 때를 떠올렸다. 권기덕 시인과 함께 간 화령전에서 최동호 시인의 시 화령전이 생각났다. /첫사랑 시의 입맞춤 남몰래/화령전 붉은 기둥에 새겨놓고/나비 날아간 그 꽃밭 사잇길/누가 볼세라 잠 못든 어린 날./ 4행의 극서정시 안에 숨겨진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편집해 보면서 실실 미소를 지었었다. “첫사랑 시의 입맞춤” 이 첫 행의 “시”는 은유일까? 아닐까? 최동호 시인의 첫사랑이 궁금했다. 내년에 최동호 시인께 살짝 질문을 드려볼 생각이다.
수원성 허릿길을 걸어 도착한 남창초등학교에 백일장을 준비하는 참가자들이 일찍부터 나와 대책 없는 창작의 고통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속속 이승하 선생님 뒤를 이어 모습을 보이시는 담임선생님들께로 다가가서 시에게로 가는 길을 묻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정에 담임선생님들께서도 감격하신 듯 두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불고기 백반 맛집에서의 점심, 염태영 수원시장님의 “수원화성 일대에 시의 길”을 만들겠다는 축사가 있었고 증정품 전달과 함께 이어진 수료식을 끝으로 2014 수원 시인학교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년을 기약하면서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2014 수원 시인학교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의 따듯하고도 정겨운 만남은 정말 즐겁고도 행복한 경험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일박 이일의 순간들이 감동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런 큰 행사를 주관하신 최동호 시인과 시인학교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서정시학회 한 분 한 분께 감사할 뿐이다.
[2014 서정시학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