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심에 글 하나 올리니, 시간나는 사람은 읽어보기 바랍니다.
매년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참 시간이 빨리 간다. 이제 7기 합격자 발표가 정말 코앞이다. 벌써 10기가 입학했고, 매년 다양한 학생들을 접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을 옆에서 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공부를 못하는 타입과 잘하는 타입이 자연스레 나눠지고 전자들은 특정한 유형들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질없지만 이참에 학생들이 졸업하기까지 3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웠던 모습들을 정리해 보았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생각처럼 공부가 되지 않는다면 아래의 유형들을 한번 살펴보자. 여러 원인들로 학업에 실패하는 형태를 분류해 봤다.
첫 번째 유형은 완벽주의자형이다. 이런 부류의 학생들은 지나치게 꼼꼼하다. 전 과목의 암기노트를 만들고 학교시험에서도 방대하면서도 완벽한 모범답안을 만들고자 한다. 좋은 습관이며 성취도가 높은 공부방법인 것은 맞지만... 로스쿨 3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2학년 1학기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만, 재판실무과목이 늘어나고 시험범위가 전범위로 늘어나면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런 학생들은 지나친 완벽주의를 버리고 좀 대범하게 시험 준비하기를 권한다. 취사선택과 강약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다. 3학년에 가서도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병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변시니 여기에 페이스를 맞춰 힘 조절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유형은 뒤죽박죽형이다. 앞의 유형과는 반대로 배운 것을 정리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법학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이해만으로는 부족하고 암기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학부 전공과목보다 훨씬 많은 책들을 보아야 한다. 얄팍하게 하루살이처럼 공부해서는 그 많은 시험과목을 소화할 수가 없다. 따라서 뒤죽박죽형은 우선 좋은 교재를 하나씩 찾아 단권화하며, 많은 분량의 낱 지식들을 잘 체계화하고 분류하여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세 번째 유형은 과신형이다. 이런 학생들은 지나치게 자기머리를 믿고 공부량을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1기 때에는 합격률이 워낙 높았으니 이런 유형도 합격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상위 0.001프로가 아니면 노력 없이 합격이란 없다. 옆 친구가 정독실에 보이지 않는다고 공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시험은 질적 노력뿐만 아니라 양적 노력이 뒤따를 때에만 가능하다. 머리만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 머리 나쁜 사람? 로스쿨에 별로 없다.
네 번째 유형은 강의만족형이다. 명강사가 하는 강의는 쫓아다니며 듣는 타입이다. 강의는 단시간에 어려운 과목의 흐름을 잡아주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강의를 통해 쉽게 1회독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맹점이 있다. 마치 강사의 지식이 내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강의가 아무리 좋아도 그런 강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없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자기주도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인강 욕심은 버려야한다. 결국 이기는 사람은 명강의를 많은 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떡같은 강의도 찰떡같이 정리하는 사람이다.
다음은 과대망상형이다. 이런 유형은 로스쿨생이라는 타이틀을 변호사자격증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남들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나 로스쿨 들어오기 전에 뭐했어. 나 이런 사람이야', '우리 아버지 뭐하신다' 등 쓸데없는 얘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거기다 ‘나 문제유형별로 기출문제집 다 봤고 연수원 교재도 보고 이것저것 다 공부한다’며 떠들고 다닌다. 요즘은 없는 것 같지만 과거엔 명함을 만드는 학생들이 있었다. 로스쿨 3년은 몸조심하면서 내공을 쌓는데 시간을 보내야하는 시기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로스쿨생의 본분은 공부이다. 로스쿨 입학으로 변시가 됐다고 착각하면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으므로 헛된 망상은 일찍이 접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공부해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지 남이 결정해주지 않는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부장판사여도 시험에 떨어지면 뭔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유형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해가야 한다. 경험상 이런 유형은 참 쉽지 않은 타입이지만, 로스쿨에서 '뭣이 중한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다른 유형은 실천결여형이다. 이런 유형은 매학기 계획만 200% 세우고 진득하게 실천을 하지 못한다. 방학 때 민사 끝낸다라고 계획만 세우고 실제론 민법하나를 간신히 끝낸다. 장단기 충실한 계획 없이 변시에 합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계획만으로 시험에 합격할 수도 없다. 이런 사람은 결국 중간점검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스스로 하는 것이 어려울 테니 스터디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타인이 계획을 점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스스로 실천력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일곱 번째 유형은 팔랑귀형이다. 이런 유형은 공부에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항상 남들의 얘기에 과도하게 반응한다. 법학사 출신이 요즘 누구 책이 뜬다고 하면 보던 책을 집어 던지고 그 책으로 바꾸고, 친구가 스터디를 시작했다고 하면 자기도 스터디에 가입한다. 신림동이 좋다고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싼다. 경험상 이런 학생들이 합격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변시 합격의 지름길은 공부에 있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빨리 자신만의 공부방법을 찾는 것이다. 일단 책이든 공부장소든 정하고 나면 자신을 믿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야한다.
여덟 번째 유형은 현실도피형이다. 사실 로스쿨에 올 정도면 학교 다닐 때 공부 꽤나 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로스쿨에 와서 보니 다 그런 사람들이고, 처음 써보는 사례형 답안과 방대한 공부량에 주눅 드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갈림길에 마주하게 된다. 이런 현실을 떨치고 이를 악물고 매일 정독실에서 버티는 길과 봐도 끝이 없고 전날 봤는데 기억이 안 나는 짜증나는 공부를 피해 달아나는 길이 눈앞에 놓여 있다. 현실도피형은 공부를 하면서 자꾸 핑계를 찾는다. 당연히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공부가 안 되는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정독실은 사람이 많아서 공부가 안 되고, 원룸은 윗집 사람이 시끄러워서 안 된다고 한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몸이 아프다고 한다. 누가 뺨만 때려주면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휴학이든 반수든 누가 방아쇠만 당겨주길 바란다. 누군들 그러고 싶겠냐마는 이런 사람들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트리거가 아니라 부딪쳐 깨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다. 자꾸 도피하다 보면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만이 기다릴 뿐이다. 멘탈도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눈으로만 공부하는 유형이다. 변시는 이전 사시와 달리 사례형과 기록형을 한번에 본다. 기록형은 말할 것도 없고, 사례형도 과거 사시의 사례문제와 다르다. 따라서 눈으로만 사례문제와 기록문제를 풀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답안지를 꾸준히 쓰고 첨삭으로 결점을 고쳐야 한다. 이런 유형에게는 눈이 아닌 손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법학의 휘발성을 잘 알지 않는가? 편한 공부법으로 공부하면 좋겠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한 내용은 머릿 속에서 오래가지 않는다.
예외도 있지만,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꼰대다운 말이지만 경험상 로스쿨 재학생들도 그랬다. 그러나 본인이 목표로 하는 것이 변시라면 수험생활에 마이너스가 되는 성격, 반수험적 태도는 고쳐야 할 것이다. 공부에 왕도는 없고 세상에 쉬운 것도 없다. 변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지 한번 중간점검을 해보기 바란다. A4 용지에 천천히 한번 써 내려가 보자.
모쪼록 자기만의 공부비법을 빨리 찾고 잘 다듬어, 우리 법전원 재학생 모두 따스한 봄날에 찾아 올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