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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ㆍ전남소설문학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를 중심으로
광주의 소설문학은 전남의 소설문학과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역 소설가들이 주로 광주에서 생활을 하면서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태어나고 자라 문학적 모태가 된 곳이 광주뿐만이 아니라, 나주ㆍ곡성ㆍ화순ㆍ담양ㆍ목포ㆍ장흥ㆍ고흥ㆍ광양ㆍ영광ㆍ 보성ㆍ완도 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소설문학을 이끌어가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소설단체의 이름도「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이다.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가 광주ㆍ전남 소설문학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거개의 소설가들이 회원으로 있으니,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광주ㆍ전남소설문학을 말할 수 없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문학>의 동인사와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의 창립에서 지금까지의 활동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현재 광주ㆍ전남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들의 면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명 뒤의 존칭은 생략하겠다.
시만 무성했던 60년대 후반, 우연히 만난 백시종과 주동후가 광주의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소설동인 하나 만들어 보자는 소박하면서도 거창한 뜻을 품었다. 그들은 김만옥ㆍ서희석ㆍ안유덕ㆍ 이항열ㆍ한승원ㆍ황방현을 만나 뜻을 같이 하나, 백시종과 주동후가 광주를 떠나는 바람에 소설동인은 잠시 주춤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 주동후와 한창 활동 중이던 한승원이 다시 뭉쳐서 김만옥ㆍ김신운ㆍ김제복ㆍ 백시종ㆍ 이계흥ㆍ이명한ㆍ주길순을 끌어들여 소설동인이 탄생하였다. 이들은 광주ㆍ전남의 소설문학을 꽃피워 보자고 결의를 다진 후 오랜 숙의 끝에 <소설문학>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동인지 <소설문학>은 순수 소설만 실은 작품집으로, 60년대 서울에서 나왔던 <산문시대>의 초기 몇 권을 제외하고는 보기 드문 경우여서 동인들의 자부심도 그만큼 컸다. 처음에는 제목을 <남도소설>이라고 했다가 <소설문학>으로 바꾼 것만 보아도 그들의 자부심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적어도 걸적지근하게, 거침없이 하고많은 사람들이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도록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에게는 서울문단은 있지만, 한국문단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여기 피 흘려 농사를 벌입니다.”
<소설문학> 창간호는 1973년 3월 5일에 발간되었는데, 문단에 대한 결기마저 느껴지는 발간사를 서두에 싣고, 김만옥ㆍ김신운ㆍ김제복ㆍ이계흥ㆍ이명한ㆍ주길순ㆍ주동후 ㆍ한승원의 단편을 실었다.
두 번째 작품집은 ‘8인의 작품집’이라는 표제를 달고, 1974년 7월 5일에 발간되었다. 이 작품집에서는 김만옥과 주길순 대신에 문순태ㆍ강순식이 참여하였다.
세 번째 작품집은 1979년 2월 10일에 발간되었다. 오 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있는 만큼 송기숙ㆍ설재록ㆍ이지흔ㆍ정청일이 새로운 동인으로 참여하게 되어, 당시 광주에서 소설을 쓴다하는 사람은 다 망라된 셈이었다. 또한, 이계흥과 한승원은 거처를 서울로 옮겼으나, 동인으로서 함께 참여하였으니 <소설문학>에 대한 동인들의 애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12인의 작품집’이라는 표제를 달고 나온 3집은 제법 두툼하여 서울과 광주의 서점 판매대에 올랐다.
그 후, 4, 5집에 대한 열망은 강했으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자의 또는 타의로 한동안 펜을 꺾인 이 지역 소설가들이 울분을 삼키면서 암흑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소설문학>은 잠시 길을 잃고 말았다.
광주ㆍ전남소설문학에 불을 지핀 <소설문학>의 동인사는 웬만한 지면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으나, 한정된 지면으로 다 담을 수 없어 훗날을 기약해 본다.
90년대에 이르러 광주ㆍ전남의 문단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장르별로 단체를 구성하였다. 이에 따라 광주ㆍ전남의 소설가들도 1992년 4월에 첫 모임을 갖고 「광주ㆍ전남소설문학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강무창ㆍ김만선ㆍ김석중ㆍ김신운ㆍ김유택ㆍ김제복ㆍ김현주ㆍ문순태ㆍ박양호ㆍ박혜강ㆍ박호재ㆍ박홍렬ㆍ백성우ㆍ설재록ㆍ송하훈ㆍ심홍섭ㆍ양원옥ㆍ유금호ㆍ이명한ㆍ이미란ㆍ이삼교 ㆍ이지흔ㆍ이향란ㆍ임철우ㆍ정강철ㆍ정명섭ㆍ정해천ㆍ조승기ㆍ주동후ㆍ채희윤ㆍ허형권 이상 31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광주ㆍ전남소설문학회」의 현재 회원은 55명이고, 회장은 정을식이다. 한때는 6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있었으나, 2006년 회칙을 일부 개정하는 과정에서 탈퇴와 제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광주ㆍ전남소설문학회」는 회원 중에서 수상을 하거나, 책을 발간하면 수시로 축하의 자리를 만들어 노고를 치하하는 등 친목의 역할을 해내면서, 1993년에 2월에 회원작품집을 발간했다. 소설동인들의 동인지가 아닌 회원작품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작품집은 <포도씨앗의 사랑>과 <베데스다로 가는 길>로 두 권이었다. 참여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수가 많아서 한 권으로는 묶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80년대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광주ㆍ전남소설문학은 목말라 있었다.
이후 각자의 개인 사정과 다른 장르와는 달리 원고를 수합하기가 어려운 소설의 특징상, 마음은 있었으나 더 이상 회원작품집을 발간하지는 못한 채「광주ㆍ전남소설문학회」는 단지 친목만을 도모하는 단체로 전락하는 듯싶었다. 이에 자성의 소리가 있어, 1998년 12월 회칙을 부분 개정하고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로 명칭을 변경한 후, 2002년 3월 17일 담양 대나무골 야영장에서의 청소년여름문학캠프를 개최하고, 2004년 5월 29일 오유권선생문학비를 건립하는 등의 창작외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회원작품집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2005년 1월 21일 두 번째 회원작품집이면서 소설동인 5집인 <파랑새, 마젤란 해협으로 가다>를 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2007년 3월 12일「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가 사단법인이 되었다. 소설가협회의 사단법인화는 소설가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차원도 있지만, 인터넷 등 여러 영상 매체에 밀려 소설이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백일장, 문학캠프, 문학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작가 스스로가 독자들 곁으로 다가가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에서는 올 연말 소설동인 6집과 문학 세미나를 계획해 놓고 회원들의 작품을 수합하고 있다.
회원인 송은일이 장편소설 [반야]를 출간한 직후「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야유회 자리에서 “소설을 쓴다는 게 외로운 작업이라, 혼자인 줄 알았는데 늘 당신들이 곁에 있었다.”라고 말했듯이 「광주ㆍ전남소설가협회」는 소설이라는 공통된 분모를 가진 사람들의 단순한 모임이라기보다는, 동인들이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쓰기에 지쳤을 때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광주ㆍ전남에 기거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들을 광주ㆍ전남의 소설가라고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이 지역의 많은 소설가들이 실력을 인정받아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면서 중앙문단에서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ㆍ전남소설문학을 이야기할 때 이명한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가 없다. 나주출신으로 1975년 <월간문학>에 [월혼제]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명한은 민족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광주ㆍ전남소설문학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원로이지만, 소설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결같아서 ‘영원한 문학청년’이라고 불린다. 작품으로는 백호 임제의 생애를 그린 장편소설 [달뜨면 가오리다]와 소설집 [효녀무], [황톳빛 추억], 등이 있다.
장흥출신으로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한승원은 <소설문학>의 불을 지핀 창립멤버로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거처를 서울로 옮겼음에도 <소설문학> 3집에 참여를 했을 정도로 이 지역의 소설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한국문단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과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한승원은 오랜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인 장흥에 ‘해산 토굴’을 짓고 기거하면서 장편소설 [초의], [흑산도 하늘 길], [원효], [추사], [다산],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면서 조선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담양출신으로 1974년 <한국문학>에 [백제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한 문순태는 순천대학교와 광주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고향인 담양에 ‘생오지’라는 문학 공간을 만들어놓고 창작활동에 몰입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징소리], [타오르는 강], [아무도 없는 서울], 소설집 [고향으로 가는 길], [흑산도 갈매기], [피울음], 등 다수가 있다.
화순 출신으로 197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이무기]가 당선되어 등단한 김신운은 동신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백령도], [땅끝에서 며칠을], [청동조서], 소설집 [황혼의 마을], [낯선 귀향], [부처님 입술], 등이 있다.
광주출신으로 197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벌거벗은 자여!]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지흔은 담양에 작업실을 두고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욕망의 늪]과 소설집 [쇠똥구리의 기도], [어느 과민성 사내의 몽상], 등이 있다.
광주 출신으로 1985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시창작 실습기]가 당선되어 등단한 김유택은 화순에 칩거하면서 창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보라색 커튼]과 소설집 [어메이징 그라스]가 있다.
광양 출신으로 <문학예술운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혜강은 실천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대산 문예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았다. 광주ㆍ전남작가회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젊은 혁명가의 초상], [검은 노을], 대하소설 [운주] 5권, [도선비기], 등이 있다.
목포 출신으로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어머니의 저녁]이 당선되어 등단한 채희윤은 광주여자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집 [한 평 구 홉의 안식], [별똥별 헤는 밤], [스무고개 넘기], [곰보 아재], 등이 있다.
목포 출신으로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다시 나는 새]가 당선되어 등단한 은미희는 이후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 18세 첫경험], 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 등이 있다.
고흥 출신으로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꿈꾸는 실낙원]이 당선되어 등단한 송은일은 이후 [아스피린 두 알]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아스피린 두 알], [불꽃 섬], [소올 메이트], [도둑의 누이],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 [반야], 소설집 [딸꾹질], 등이 있다.
이밖에도 근래에 작품집을 내는 등 꾸준히 활동을 하는 소설가로는 소설집 [너를 찾다]를 출간한 이미란, 소설집 [돌각담]을 출간한 농군 소설가 이재백, 장편소설 [순바의 연인]을 출간한 김다경, 장편소설 [나비를 태우는 강]을 출간한 이화경, 장편소설 [다도해의 아침]을 출간한 송재희, 장편소설 [블루칩 시티]를 출간한 백은하, 등이 있다. 또한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물은 없지만 소설에 대한 열정만은 남달라서 머지않아 한국소설문단의 한자리를 차지할 만한 작가들이 많이 있으나, 굳이 일일이 거명을 하지는 않겠다.
광주ㆍ전남소설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세세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양이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필자의 능력 또한 부족하여 극히 일부 표면적인 것만 서술하였다. 이에 광주ㆍ전남소설문단사에 누나 끼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다.*
*주동후의 광주ㆍ전남소설문학사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나는 소설문학]에서 참고
첫댓글 이 글은 뭘까요? 주동후 선생님께서 쓰신 <광주전남소설문학사>는 4*6배판 책으로 24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타이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습니다만 '사료'의 보관 내지는 전승 차원에서 조만간 카페에 올리겠습니다.
박혜강의 <도서비기>가 아니고 <도선비기>입니다. 그리고 정강철의 장편소설 <열하일기>, 신동규의 소설집 <운명에 관하여> 등, 민혜숙의 <황강 가는 길>, 홍광석의 <회소곡>도 누락되었네요.ㅎㅎㅎ
샘, 죄송합니다. 김신운 샘의 청동조서(조사라고 씀)는 잡아냈는데~ 정정 기사를 내달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근래에 책을 출간하신 분들로 하다 보니~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