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선택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설계경기 본선 참관기-
1. 본선진출 6개 작품 접수
2003년 6울 6일 아침 서둘러 박물관으로 내려갔다. 마음이 바빠 도영스님(해인사 사회국장)에게 부탁한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접수처’라는 큼지막한 붓글씨가 제대로 마르기도 전에 둘둘말아 챙겨야 했다. 해인사 개산 1200주년이 되던 지난 해(2002년) 12월 28일 성보박물관에서 건축가 86개 팀이 참석한 가운데 ‘신 해인사 창건’을 위한 현장설명회와 심포지움을 가진 후, 2003년 2월 28일 37개 팀이 참여한 1차접수 마감을 하였고, 이틑날인 3월 1일, 2일에 걸쳐 1차 심사 결과 6개팀이 예선을 통과한 바 있다. 오늘은 본선에 진출한 6개팀의 설계 및 모형작품을 마감하는 날이다. 대충 이것저것 접수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 한 숨을 돌리고나서 박물관 로비에서 잠깐의 여유동안 차 한잔을 마시면서 처음 청동대불을 모시려고 했던 그 언덕을 쳐다보노라니 지난 일여년간의 일들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박물관 입구 유리문에 봉고차가 시동을 멈추는 것이 보였다. 첫 작품이 도착했다. 큼직한 설계모형은 4사람이 한 귀퉁이씩을 잡고서야 옮길 수 있을만한 부피였다. 오늘이 현충일인지라 공휴일인 까닭에 길이 막혀서 늦겠다는 전화가 두군데서 왔다. 거의 저녁 아홉시가 되어서야 여섯 개 작품이 모두 도착하였다. 도착한 순서대로 박물관 세미나실에 진열을 하고서 문단속을 단단히 하였다.
2. 당선작인 조성룡․사닌 작품
6월 15일 정오를 넘겨 김원중(원 도시건축 실장)씨가 도착했다. 뒤이어 심사위원이신 김동현씨가 도착했다.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김원중씨의 역할은 설계지침서에 의거한 기술심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평가에 대한 메모를 해나갔다. 현장에서 보아야 할 것과 서류로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였다. 현장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류검토를 위하여 나머지 자료들을 챙겨서 저녁무렵 숙소로 떠났다.
6월 16일 오전 10시 무렵 심사위원 일행과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보존과 창조적인 계승을 위한 활동을 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 일행과 코디네이터 정기용씨 등이 도착하였다. 잠시 차 한잔을 나눈 후 11시부터 김원중씨가 심사위원 제위에게 기술심사 결과를 보고 하였다. 보고를 마친 후 곧이어 심사위원장에 원로 건축가 김종성씨를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11시 30분부터 심사가 시작되었다. 출품자의 작품설명 20분, 질의 응답 10분으로 한 팀 당 총 30분이 할애되어 오후 4시 무렵 본선에 진출한 김영준 ․장광협(김영준도시건축․다인건축), 김종규(M.A.R.U), 우경국․김기연․ 김수희(예공․인제대건축과), 조성룡․샤닌(조성룡도시건축), 최욱․김정숙(One O One), 최두남․이종길(DCA건축) 등 6개팀에 대한 심사가 완료되었다.
곧바로 심사위원 전원이 각 작품에 대한 의견피력의 기회를 가졌다. 심사위원장께서 당선작 결정을 위한 절차를 논의토록 하였다. 심사위원 1인당 3편의 작품을 추천토록 하여 다수자를 선정하기로 의견접근을 보았다. 이어 나누어준 종이에 작품을 문자로 추천토록하고 바로 개표에 들어갔다.
조성룡․사닌 출품작의 최다득표로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김영준․장광협의 작품이 우수작, 김종규 작품이 가작으로 선정되었다.
2차 본선 심사위원은 김종성(심사위원장․ 서울건축 대표), 민현식(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상해(성균관대 건축과 교수․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코디네이터), 김동현(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조건영(건축가)씨를 모셨으며, 해인사 측에서는 지관스님(해인사 원로․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전 동국대 총장)과 원융스님(해인사 유나)이 참여하여 총 7명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날 참관인은 세민(해인사 주지), 정기용(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코디네이터․기용건축 대표), 원택(해인사 백련암 감원), 종성(해인사 총도감), 순민(해인사 총무), 현종(해인사 재무․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코디네이터), 원철(월간해인 편집장․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코디네이터),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신연균(이사장), 정민자(고문), 정인숙(총무이사) 박관규(팀장) 김대홍(간사) 등이 끝까지 일정을 함께 하였다.
3. 각 작품의 심사평
각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은 다음과 같다.
당선작인 조성룡․샤닌의 작품 ‘풍경의 집합체’는 전통적 사찰건축구조와 기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21세기 현대적 사찰의 창조성이 가미된 작품으로 기존 박물관 건물을 회랑回廊이라는 구조물을 통하여 주변건물과 조화롭게 만든 창작성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법당을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기존 해인사 큰절과 암자의 건축구조와의 조화 및 연계성을 추구하였으며, 현실적으로 가장 실현가능한 안이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
우수작인 김영준․장광엽 작품은 지형을 잘 해석한 뛰어난 배치와 서구적 건축시각의 동양적 변용을 잘 보여준 작품이나 너무 복잡다단한 것이 약간의 흠으로 지적되었다.
가작인 김종규 작품은 기존건축이론에 구애되지 않고 자기건축철학의 주관적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으며, 공간이 분절되어도 단순하게 느껴지도록 하였으나 너무 준엄하게 축을 지킨 나머지 산지가람의 정신을 위배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고, 박물관에 비해 집들이 너무 작게 처리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었으며, 본 설계기간인 3개월동안 고민만 하다가 끝나버린듯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우경국․김기연․ 김수희 공동작품은 세가지 영역의 분화分化가 뛰어났으나, 건축물이 지형축의 흐름으로 표현한 까닭에 역설적으로 건축물이 오히려 기호화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욱․김정숙 작품은 집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지형만 남은 래디칼한 작품이 되어버렸다는 평을 받았다. 최두남․이종길 작품은 배치나 동선은 훌륭한 반면 전체적으로 오버 스케일(over scale)이라는게 중론이었다.
4. 조성룡․사닌의 작품세계
당선의 영예를 안게된 조성룡․샤닌씨는 본 설계기간 3개월동안 해인사를 세 번이나 찾아 가야산의 지형을 이해하고 읽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설계지침서에 대한 의문사항에 대하여 수시로 질문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이번 설계경기에 임하였다. 또 사찰의 역할과 기능 등을 이해하기 위하여 새벽예불에 참여하였으며, 서양인 건축가 샤닌씨와의 공동작업으로 동․서양의 시각적 단점을 서로 보완하는 훌륭한 파트너쉽을 발휘한 것이 이런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선자의 작품제작의도는 ‘풍경의 집합체’라는 작품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행문화도량의 설계의도는 터의 집합을 통하여 건물과 자연, 건물과 건물, 건물과 사람이 서로 연계를 맺으며, 풍경을 이루어내는 작업이다. 신라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축조되어 오늘에 이르는 산지사찰이 폐쇄적이고 사회와 고립되어 있는 상황을 극복하면서, 공공적인 공간과 기능으로 재구성하여, 장소성을 살리고 신성한 공간을 회복하여 이 시대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공간의 새로운 전개를 의미한다. 이는 한국 불교건축의 중용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집합성을 구현하는 일이다.” 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집합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두 분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조성룡씨는 1944년 생으로 인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현재 서울건축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설계사무소 조성룡도시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아시아선수촌 및 기념공원〉〈의재미술관〉〈선유도공원〉등이 있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프란시스코 사닌씨는 1955년 콜럼비아 출신으로 도시디자인 분야의 권위자이다. 미국 시라큐스 건축대학 교수이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일은 당선자와 해인사측의 협의에 의하여 세부지침에 대한 의견 조율 후 본 설계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다음 문화재청․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의 관계기관 심의과정을 거쳐 조정할 것은 조정되고나면 허가신청을 하게 된다. 허가 후에는 당선자 인터뷰, 심사위원장의 심사평, 해인사 주지스님의 입장 등을 전함은 물론,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전반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곧 본선진출 6개 작품에 대한 기획전시회를 개최하도록 할 것이다. 또 이 모든 설계도면과 모형들을 모아서 자료집을 만든다면 21세기 사찰건축의 새로운 지침서가 될 것이며, 이 역시 한국건축사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5. 주지스님 마무리 인사
해인사 주지 세민스님은 “이번 설계경기에 참여해주신 모든 건축가들과 열렬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한국건축계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좋은 작품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과, 그동안 궂은 일을 도맡아주신 코디네이터,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아름지기 관계자 여러분들께 특히 감사를 드린다. 심사위원 모든 분과 정기용 선생님을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건립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함에 이를 허락해주심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이 시대를 대표하고 미래건축의 지남指南이 되는 건축불사佛事가 될수 있도록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우고자 하니 사부대중과 전국민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당부말씀으로 이번 설계공모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6. 최선의 선택
이틑날 당선작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고 있는데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스님이세요? ”
“아! 예.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잘 도착 하셨습니까?”
“염려해주신 덕분에 저희들은 잘 올라 왔습니다.”
“당선작이 나와서 참 다행스럽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잖아도 올라와서 ‘우리가 제대로 뽑았나’ 하고 1차 총 응모작 37점과 본선에 진출한 6개 작품을 시간을 가지고 꼼꼼히 다시한번 살펴 보았습니다. 결론은 뽑혀야 할 작품이 뽑힌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이 글은 현재 해인사박물관 자리에 ‘신해인사’ 창건을 위하여 20002년부터 2003년까지 설계공모를 한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비록 건물은 짓지못하고 도면만 남은 미완성으로 끝났으니 건축설계를 구체화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후일을 기약하는 인연을 씨앗을 심는데 만족해야 했지만 그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첫댓글 사람과, 자연 그리고 건물과의 관계성 속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할수 있는 소통의 공간 ,종교의 공간인 풍경의 집합체~~시절인연이 도래할 때를 기다려야 겠네요...건축공부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