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숭례문 화재 사건이후, 우리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실천방안으로 진행되는 답사기적 글입니다.
우리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문화유산에 좀더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이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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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의 중심하면, 시청이나 광화문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하여도 그렇지 않았다. 4대문을 중심으로 가장 중앙에는 종루가 있었으며, 그 종루가 있었던 곳이 바로 지금의 보신각지이다.
해마다 새해를 맞이할때면 어김없이 서울의 보신각에서는 종을 치는 이유도 난 잘 몰랐다.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나요? 종이 그곳에 있기에 그럴까? 뭘까? 왤까?
이유는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어진 옛 이야기속에 있다.
종루는 도성중앙에서 새벽과 저녁에 종을 울려서 시각을 알려주었던 것 같다.
이 종과 종루 또한 많은 시련이 있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한양(漢陽)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이다. 광주(廣州)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靑雲橋) 서쪽 종루에 걸었다. 1413년(태종 13)에 종루를 통운교(通雲橋:종로 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에는 새로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후 1619년(광해군 11)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明澧洞)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이 종은 본래 원각사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 1536년(중종 31)에 남대문안으로 옮겨놓았다가 1597년(선조 30)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 그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현액(懸額)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네이버 백과사전
(조선 말기 보신각 - 1층 단층이다. 출처 : 다음카페)
하지만, 현재의 보신각은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80년 다시 2층 종루로 복원한것이다.
어찌보면 "보신각"이라고 하기보다는 "보신루"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1층을 보신각이라 할 수는 있지만, 2층까지의 전체를 본다면, 보신루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다수인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보신각이라고도 하지만, 종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종을 위해 만들어진 누각이라는 의미에서 종각이라도 부는 듯 싶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또한 종루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 같다.
현재, 허가를 받지 않으면, 바리케이트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냥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하나의 건축물이지만, 경희궁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듯하다. 궁과는 또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생각된다.
종루 바로 옆에는 고층 빌딩이 적지만, 조금만 더 뒤로 보면 빌딩숲 사이에 이런 사적들이 있다는 것이 좋다고 해야하는지
아님 이것밖에 지키지 못했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있는 유산들은 잘 지키고 아껴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종루 2층과 보신각 현판.
1층 중앙 입구 ..
참,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아름다운 유적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너무도 아쉽고, 원형 그대로 보전하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많은 사진을 담으려고 애썼는데, 큰 사진을 못올리는 것이 좀 아쉽다.
이제는 지붕의 단청은 정말 아름답다. 색과 정렬된 모습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것에 놀란다.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 여러분도 이 매력에 직접빠져보면 어떨까 싶다.
사진으로 보는것과 실제로 보는 것이 다를테니까 말이다.
아름답다.
측면에서 찍은 모습이다. 일단 최대한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맘 같아서는 들어가서 좀더 가까이에서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이 돌 난간은 전후좌우에 올라가는 돌계단과 돌 난간이다. 모든 것이 다 예전의 것은 아닌것 같다.
다시 고쳐지을때 새롭게 만든것이 아닌가 싶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2층 난간.
이것은 일층 천장의 모습이다. 멀리서 찍어서 화질이 좋진 않지만, 무늬는 참 화려해 보인다.
이렇게 점심시간을 활용한 보신각 촬영을 급하게 마치고, 돌아왔다. 4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역시 아쉬움이 남아 저녁에 다시 갔다.
낮에도 잘 안보이던 종이 저녁에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좀더 뚜렷히 종루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듯하다.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의 보신각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 함께 가꿔가야하지 않을까?
사실 이곳에 주일날도 잠깐 와서 봤었는데, 숭례문 사건때문에, 숭례문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40분정도 있었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가족이 체험학습비슷한 것을 한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몇몇 지나가는 연인들이 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조금 아쉬웠다. 이왕 숭례문에 왔다면, 이곳에도 한번 들러보고, 다른 문화재들도 보고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참, 이렇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기 위해서, 스스로가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하나하나 자료를 찾아가면서, 정말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것 같다. 쉽게 배운 지식들은 금방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고민하고 고생해서 얻은 자료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함께 해보는 것 어떨까? 요즘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는 많은 분들이 계신데, 조금만 전통쪽으로 신경을 써주시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http://glovision.org 함께해요. 우리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 사진한컷, 댓글하나, 격려하나가 여러분을 이 모임으로 동참시킬 겁니다.
첫댓글 아.... 여기가 그렇게 의미있는 곳이었구나를 지금 알았다... 작년 12.25일 가족 망년회에서 새벽에 2차로 다른곳에 가면서 그냥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그냥 세워놓은 곳인줄 알았어요;; 크기도 작고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