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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방송 50년!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KBS TV가 개국하던 때 나라는 가난했습니다. 6.25가 휩쓸고 간 잿더미에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라고 스스로 기죽어 살던 때였습니다. 그때 예산도 없이 준비도 없이 군사정부가 어디선가 20만 달러의 돈이 생겨 제일먼저 우선 사업으로 마련한 국책 사업이 KBS TV방송국 설치였습니다. 지금도 그 돈의 출처를 모르시는 분들은 많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 50년, KBS TV 스포츠방송 50년 김민철 PD, 민혜경 작가
어찌 되었던 그런 상황에서 급박하게 쫓기듯이 서둘러 문을 연 것이 KBS 텔레비전 방송국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나서 장충체육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거기서는 스포츠 경기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프로 레슬링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TV수상기가 많지 않았지만 길거리에 설치된 TV앞에 사람들이 모이고, 다방에 모이고 어쩌다가 마을에 TV가 있는 집이면 그 집으로 모이고 외국과의 경기 중계방송을 듣다가 우리선수가 이기면 환호성이 올랐습니다. 기죽어 살던 국민들은 소리를 높이며 가슴을 폈습니다.
자신감이 생기고 사기가 높아지면서 마음이 모아졌고 에너지가 분출되었습니다. 김기수선수, 서강일선수, 홍수환선수 등 외국선수와의 싸움에서 이긴 선수들은 국민적 환영을 받으며 스포츠 영웅이 되었고 80년대까지 우리 체육의 매달박스였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 된 것은 무었 보다도 방송이 그 바탕이 되었습니다. 외국에 나가 중계방송 마이크를 든 아나운서는 당연히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을 웨쳤고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국민들의 가슴속은 벌써 뛰기 시작했습니다. 지면 안타깝지만 이기면 마음이 후련했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 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급적이면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중계방송 하는 경향이 있었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올라갈 때는 환호성이 올랐지만 지면 국력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권투경기는 KO승을 하지 않으면 판정패 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국력을 키워야 그런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구호아래 체육발전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어찌 되었던 국력과 체력은 하나로 컸고 방송은 그 뒷받침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은 흘러 그토록 가난하던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0,000달러의 나라가 되었고 아세아의 변방 대한민국이 아세아는 물론 세계 여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없이살아 기죽었던 국민이, 달러 몇푼을 쓰려면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했던 국민이, 이제 어깨를 펴고 어느때던지 자유롭게 세계 어디를 돌아 다녀도 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도움만 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민이 하나되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일구어 냈습니다. 상전벽해라던가, 지난 50년간 이토록 달라져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송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KBS TV방송 50년을 맞아 스포츠 50년 특집방송을 하겠다면서 김민철 PD와 민혜경 작가가 필자를 찾은 것은 12월 초였습니다. 저는 그 두 젊은 방송인을 만나자 마자 지금 앞에 쓴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두 방송인이 바로 그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2월 9일 방우회 만남의 날 그 얘기들을 방송선배님들로부터 듣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현장에서 녹화를 했습니다. 방송화면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PD 연출 김민철, 작가 민혜경, 카메라 등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그 스텝들과 최승돈 아나운서가 사단법인 한국방송인 동우회라고도 하는 방우회 (회장-한영섭) 행사장에 와서 녹화를 했습니다. 그날 방송의 살아있는 역사 황우겸, 전영우, 조동표, 정항구님 등이 마이크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자료를 비롯한 필자가 협조 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했습니다. 모든 스텝들이 하나 되어 TV 5O년 스포츠방송, 대한민국 50년 스포츠를 어우르는 역사적인 프로그램이 2011년 12월 31일 TV방송개국 50주년의 날 오후 7시 10분에 방영되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다소 미흡 한 점이 있을지라도 대한민국 스포츠 50년을 어우르는 이 프로그램은 그 의미가 큽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서 힘을 기울여 주신 김민철 PD, 민혜경작가, 최승돈 아나운서님을 비롯해서 관계자 여러분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해 주신 방우회 선배님을 비롯해서 출연자 모든 분들에게도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2012년 1월 1일 방우회 선배님들에게 올린 글 한편을 옮깁니다.
지난 12월은 방송사 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달이었습니다. 이 뜻 깊은 달에 방우회는 각 방송사와 연계, 여러 특집방송 프로그램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자료를 제공했으며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뜻 깊은 달의 마지막 날 아침 9시 40분부터 12시까지의 KBS 생방송 "TV 50년 특별 생방송 시청자와 함게 감동 50년" 저녁 7시 10분부터 "TV50년 대한민국 스포츠 50년 시간여행" 은 방우회와 밀접한 연계 하에 제작되었고 방우회 선배님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힘들다 하지 않으시고 방송에 출연하셔서 역사적인 그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셨습니다.
이날 생방송에 출연하시기 위해 일찍부터 용인에서 남산을 오르셨던 황우겸 선배님, 또 힘든 일에도 힘들다 하지 않으시고 남산을 올라 주신 정항구 선배님, 비록 짧은 시간의 방송이었다 해도 역사적인 현장에서 역사적인 방송을 한 것은 방우회로서는 길이 남을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TV 스포츠 50년을 어우르는 저녁 7시 10분부터 8시까지 50분간은 방우회의 위상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셔서 힘을 기울여 주신 방우회 선배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마운 말씀을 올리며 그런 기회를 제공 해 주신 KBS와 담당 PD, 연출가, 작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29일 KBS TV 50년을 축하하는 리셉션이 예식장으로 사용되는 KBS 로비에서 있었습니다.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지만 번잡 하실 까 봐 보내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날은 50년 전 TV개국과 밀접한 분들이 참여해서 개국의 의미를 되새기며 축하하는 자리로 당시의 TV방송 추진 위원장이었던 최창봉회장님을 비롯해서 20 여명의 내빈과 KBS 사장, 감사, 본부장님들이 참여했습니다.
방우회에서는 한영섭 회장님과 50년전, 그때의 방송에 참여 하셨던 황우겸, 정항구, 오승룡선배님 그리고 KBS TV 50년특집방송에 참여한 저를 포함해서 모두 다섯 분이 KBS사장의 초청을 받고 참석해서 그 자리를 빛내 주었습니다.
2012년 첫 달 KBS 저널에도 방우회 관련 글이 큰 비중으로 두 편이 오릅니다. 저널은 5만부가 발행되어 전국의 직장중심으로 배포됨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배재성 KBS홍보실장과 한지은기자, 김선아기자가 그 담당입니다. 역사적인 달 12월은 방우회로서도 뜻있는 달이고 아울러 여러 어려운 여건에도 방우회를 이끌으시며 제 자리에 있게 해 주신 한영섭 회장님께 방우회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한영섭 회장님에 관한 생각은 비록 저만이 아니고 전 방우회 회원님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노익중 이사님이 KBS 특집방송 프로그램을 녹화 하셨으므로 필요 하신 선배님께서는 노익중 이사님께 연락 해 주셨으면 합니다. 노익중 이사님은 방우회 일에는 물론 방우회의 지도를 받는 춘하추동 방송과 함께 하시면서 힘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방우회의 무궁한 발전을 빌며 참고로 지난 한달 현역 방송인과의 접촉 상황을 간단히 올립니다. 이 분들을 만나시는 기회가 되시면 현역방송인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춘하추동방송이 12월중 얘기를 나눈 현역 방송인은 KBS 보도본부 조태흠 기자. 김민철 PD, 민혜경 작가, TV 본부 이연식 PD, 김혜선작가, 장민정작가, 노래자랑 최혜진작가, 전주방송총국 이만천 PD, KBS저널 한지은, 김선아 두 기자, 종편 TV조선 이혜선 작가, 종편 JTBC 양민규, 김선민님, 종편 MBN 김주원님 등입니다. 다음사진은 김민철 PD, 민혜경 작가님등 스포츠 50년 특집방송 스탶들의 현장 녹화모습입니다.
그날 방송에 나오는 저 이장춘의 모습을 본 분들이 저보고 방송국 "엔지니어"였었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아시는대로 생각하시라고 합니다. KBS사우회에서는 직종을 PD, 기자, 기술, 아나운서, 행정 등 7가지로 분류합니다. 저는 어느 직종이라고 확실히 얘기 하기가 어려워 "기타"라고 분류되어 있습니다. 1963년 방송국에 들어와 PD도 하고 기자도 하고 또 1973년 KBS가 공사로 될때는 공사 창립 실무반에 편성되어 그 일을수행했고 공사가 되면서 기획관시실 차장을 했습니다. 시청료 징수책임을 맡아 일을 하기도 하고 전산정보실장도 했습니다. 수입을 총괄하는 업무국장, 지출과 회계, 조달, 재산관리등을 총괄하는 관재국장도 했으며 지역 총국장도 했습니다. 그러니 사우회에서도 제직종을 기타라고 분류했을것 같습니다. 제 직종 부르시는 분, 생각하시는 분에 따라 아무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삽니다. 그날 KBS 9시 뉴스에는 황송하게도 저를 "원로방송인" 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황송 할 따름입니다.
하얀마음 선생님 글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저도 사실 선생님께서 발송사에서 무슨 담당을 하셨는지 궁금했었습니다. KBS에서는 선생님 안계셨으면 쓰러질 뻔 했겠습니다. 하하하,, 이끌어 오신 분이시네요... 선생님~~ 부디 건강하세요...___()___
윤후현(팔방미인) 선생님 글
프로필을 이제야 보게 되여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방송사에 아니 kbs 한국방송에 헌신하신 선생님의 공로를 인정 해 주시고, 원로로 대접해 주시니 그 또한 영광으로 생각 됩니다. 불로그 운영에 애로가 많으심에도 불구하시고 끈임없는 정열을 발산 해 주신 이장춘 사장님! 한마듸로 " 존경합니다!".....
2012년 흑룡의 해 첫날에 방우회 이사 이장춘 올림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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