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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암4:12]
주: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 '이와 같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켄'(*)이 앞에 이미 언급된 내용을 가리키는 반면, 이어서 나오는 '코'(*)는 앞으로 언급할 내용을 가리킨다(BDB). 하지만, 본 구절에는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이것을'에 해당하는 지시대명사 '조트'(*)는 앞에 나온 '코'를 가리키는 것으로 '코'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막연한 표현으로 강조한 이유는, 이미 앞에서 제시된 심판의 내용에 비추어 봤을 때, 비록 심판의 내용을 일일이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징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암시적으로 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Pusey).
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징계를 전제하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경고이다(T.E.McComiskey).
성 경: [암4:13]
주: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 심판 날에 이스라엘이 만나게 될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하면서 한 단락을 끝마친다. 접속사 '키'(*, 대저)는 바로 앞 구절에서 언급된 내용과 본절을 연결시킨다. '지으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체르'(*)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토기장이의 활동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사 29:16;렘 18:4,6), 자주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였다. 예를 들어, 동물과 사람을 만드셨다든지(창 2:7,8,19), 땅을 조성하셨다든지(사 45:18), 이스라엘 백성을 조성하셨다(사 43:1,21;44:2,21,24)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창조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레'(*)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위(creative activity)에만 사용되었다(창 1:1;사 40:28;43:1,15;45:12,18). 이상의 두 단어가 본절에서는 병행적으로 사용되었고, 모두 분사형으로 되어 있어 하나님의 창조의 연속성과 역동성을 나타낸다. 이로써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 고백을 상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것들은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편 '바람'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실체로 불가시적인 세계를 대표한다(Pusey). 그렇다면 '산'은 가시적인 세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 '자기 뜻'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 세호'(*)는 '자기 뜻이 무엇인지'라고 직역할 수 있다. 여기서 '세호'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온 단어(hapax legomenon)로 이와 다른 형태의 단어인 '사하'(*)가 하나님께 적용된 예가 없고 오로지 사람에게만 적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단수 접미사 '오'(*)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3:7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생각의 동기를 밝히 아시고, 드러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T.E.McComiskey).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참되게 우리의 뜻을 알고 계신다(Pusey).
주: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 산과 언덕 등 높은 데를 밟고 다닌다는 장엄한 비유는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주: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 엘로헤이 체바오트'(*)는 크신 능력으로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간결한 찬송은 앞서 아모스가 말한 모든 말과 잘 조화를 이루며 그의 메시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하나님은 창조주의 권리를 가지고 전피조계를 다스리시고, 지으신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나타낸다.
성 경: [암5:1]
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 '애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나'(*)는 슬픔을 표현한 노래나 시를 가리키는 것으로(J.K.Howard)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거나(삼하 1:17-27;겔 28:12), 민족의 멸망을 슬퍼하며 불려졌다(렘 7:29;겔 19:1). 소위 키나 리듬(Qinah Rhythm)은 다음 도표와 같이 전형적으로 3과 2운율(3+2 metre)을 이루고 있다. 본문의 애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주: 이 말을 들으라 - 3:1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5:2]
주: 처녀 이스라엘이 - '처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톨라트'(*)는 '딸'(*, 바트)이라는 표현과 함께 이스라엘을 수식하는 용어로 사용되곤 하였다(사 37:22;렘 14:17). 하나님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마치 남자에게 짓밟힌 적이 없는 여인을 대하듯 하신다. 이러한 표현은 아마도 이방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호칭일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이방의 침략이 없이 부귀를 누리던 시기가 여로보암 2세 때에 있었다.
주: 엎드러졌음이여...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 '엎드러졌음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펠라'(*)는 '처절한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고(삼하 1:19,25), '던지움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트솨'(*)는 어떤 동작으로 인해 나오는 소리를 흉내낸 의성적 단어로 사정없이 내팽개쳐진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런 표현들과 더불어 '일어나지 못하리로다'와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는 표현은 여로보암 2세 때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T.J.Finley). 한편, 하나님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위해 장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한 것은 유다 족속과 다윗의 혈통을 통한 회복을 내다보는 것이었다(9:11;렘 31:4-6).
성 경: [암5:3]
주: 이스라엘 중에서...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 본절은 이스라엘이 무너져가는 최후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스라엘 중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베이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집들에게'(to the house of Israel)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의 12족속 모두가 전쟁의 피해로 인해 쇠퇴할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100분의 1이라도 살아남을 것을 약속하여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소수나마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면서도 끝까지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다른 이방 나라들은 완전히 진멸하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만큼은 끝까지 남겨두신다.
성 경: [암5:4]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 '이스라엘 족속에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베이트 이스라엘'(*)은 앞 구절의 '이스라엘 중에서'와 같은 용어로 본 구절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앞 문장과 대구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장차 쇠퇴하겠지만, 소수나마 남게 되리라는 사실을 복합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를 권고하신다.
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구절이 단지 두 단어의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나를 찾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디르슈니'(*)는 여호와께 사용될 때, '그분께로 돌아와 다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라'는 의미이다(시 9:10;24:6;77:2;사 65:10;호 10:12;습 1:6). 그리고 '살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위흐유'(*)는 때때로 영적인 생명과 연관되어 있다(T.E.McComiskey). 또한 이 두 명령형 동사가 접속사 '와우'(*, 그리고, 그리하면)로 연결되어 있어서 앞의 명령은 전제로 제시되었고, 뒤의 명령은 그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를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화해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제시한다(Calvin).
성 경: [암5:5]
주: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 앞 구절에서는 회개를 촉구하였고, 본절에서는 회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본절에서 언급하는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당시 우상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으로, 앞에서(4:4,5) 이미 언급된 벧엘과 길갈에다가 브엘세바가 추가되었다. '브엘세바'는 '벧엘'이나 '길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미있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적이 있는 곳이며(창 21:33), 그곳에서 여호와가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시기도 하였고(창 26:24;46:1,2),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삼상 8:1,2). 이와같이 유서깊은 브엘세바도 타락한 이스라엘에 의하여 우상을 섬기는 장소로 변모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장소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를 상징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하나님대신 우상을 섬기는 우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본절에는 히브리어 두운법의 효과로 인한 언어의 묘미(word play)가 나타나는데,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하길갈 갈로 이글레'(*)로 '김멜'(*)과 '라메드'(*)가 연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마치 '길갈'이라는 지명의 특성상 사로잡히는 운명에 처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 경: [암5:6]
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앞에서(4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주체였고, 이번에는 아모스가 그와 똑같은 말을 반복하여 청중에게 던진다. 이로써 아모스의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게 한다.
주: 염려컨대...없을까 하노라 - '염려컨대...없을까 하노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펜'(*)은 백성들로 하여금 분명한 선택을 하도록 요청한다. 그 선택은 바로 여호와를 찾아서 그로 말미암는 모든 은혜를 누리든지 아니면 심판을 당하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는 요청이다(T.E.McComiskey). 한편, '내리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첼라흐'(*)의 기본적인 의미는 '돌진하다'(rush)는 의미와 가까운 것으로(BDB) 전후 문맥에 따라 독특한 뉘앙스를 준다. 이 단어는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시는 모습을 그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삿 14:6,19;15:14;삼상 10:6;11:6;16:13), 반면에 악령이 강하게 임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였다(삼상 18:10). 여기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항하시는 여호와의 강력한 행위를 묘사한다(J.Niehaus).
성 경: [암5:7]
주: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 '공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선지서에서는 주로 참종교, 곧 모세 율법이 지향하는 윤리적 실제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다(J.Niehaus). 이는 모세 율법을 제정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헤아려서 율법의 모든 요소를 편견없이 공정하게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정의'(justic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다카'(*)와 함께 사용되어 거의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24절;6:12). 그리고 '인진'이라고 번역된 '라아나'(*)는 문자적으로는 '쓴 쑥'(wormwood)을 나타낸다. 또한 이 단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몹시 쓰디쓴 경험을 나타내기도 한다(렘 9:15;애 3:15,19). 공법과 정의가 바로 지켜질 때에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
성 경: [암5:8]
일부 학자들은 본절에 나타나는 찬송의 요소가 후대에 삽입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본절이 논리적인 흐름을 깨뜨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8-13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서술 방식이 본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T.E.McComiskey).
주: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 '묘성'이라고 번역된 '키마'(*)는 많은 별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라틴어로는 '플레이아데스'이다. 이 별에는 일곱 개의 큰 별을 비롯하여 40개 이상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삼성'이라고 번역된 '케실'(*)은 70인역(LXX)에서 '오리온'(*)이라고 번역되었다. '묘성'과 '삼성'은 함께 사용되어(욥 9:9;38:31), 질서와 조화를 잘 이루는 전체 별자리를 대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하늘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주: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 시간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주: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 자연 질서를 총체적으로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성 경: [암5:9]
주: 저가 강한 자에게...산성에 미치느니라 - '저가...홀연히...임하게 하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벧리그'(*)는 다른 곳에서 단세 번만 나온다(욥 9:27;10:20;시 39:13). 따라서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고 그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이 단어는 '웃다'(laugh at, smile), '번득이다'(flash forth, RSV), '강하게 하다'(strenghteneth, KJV), '갑자기 일어나다'(burst)등으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에 의존하든지간에, 본절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강한 만큼 갑자기 멸망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될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성 경: [암5:10]
주: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 '책망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키아흐'(*)는 '불의에 맞서 대항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문'은 법률 소송 절차가 수행되었던 장소로(12,15절;신 21:19;수20:4;룻 4:1,2;욥 31:21), 공적인 선포는 주로 성문에서 이루어졌다. 예레미야는 문(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렘 17:19;19:2), 아모스도 성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것이다. 아모스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은 공법이 정당하게 실행될 수 있는 구조가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책망하는 자들'이나 '정직히 말하는 자들'이 미움을 받고, 의인이 고난받고 공의로운 통치가 배척받았던 것이다(왕상 22:16,24).
성 경: [암5:11]
주: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 '너희가...밟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솨스켐'(*)과 '취하였은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케후'(*)는 각각 '바솨스'(*)와 '라카흐'(*)의 미완료형이다. 이는 계속적이고도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성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관원들은 부당한 세금을 거둬들였음을 보여준다.
주: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 이스라엘의 부(富)와 탐욕을 상징하던 집들과 땅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텅비게 되고, 포도원은 돌볼 사람이 없이 방치될 것이다. 이런 예언은 이미 신명기에서 예고되었던 내용들이기도 하다(신 28:30,39).
성 경: [암5:12]
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 이스라엘 백성은 아마도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모른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욥22:13,14; 시73:11).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날카롭게 파악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앞 구절과 연결시켜 강조하기 위해 히브리어 원문에는 접속사 '키'(*, 그러므로)로 시작된다.
주: 너희는 악인을 학대하여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 '뇌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페르'(*)는 형벌에 처해질 사람을 위해 지불되었던 '생명의 속전'(the price of a life)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흉악한 범죄를 무마시키기 위해 사용된 불의한 재물을 의미한다(삼상 12:3). 그들은 책망하는 자들과 정직한 자들을 미워하였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인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
성 경: [암5:13]
주: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 '이런 때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에트 하히'(*)는 앞 구절에서 보여준 시대의 특성을 지시한다. 악이 범람하면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고, 의인들이 곤욕을 당하며 괴로움을 겪는다(잠 9:7,8; 29:2; 사 5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희생을 감수하며 외쳐야 할 것을 외치도록 부름받았다(겔 33:1-6). 본절의 경우처럼 최악의 경우에 지혜자는 죽임을 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할 뿐이다(사 53:7).
성 경: [암5:14]
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 앞서 4절에서는 여호와가 이방의 성소를 미워하시므로 거기서 돌이켜 신뢰와 확신의 대상이 되시는 여호와를 찾으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본 구절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선을 구하라고 촉구한다. '선을 구하라'는 것은 선에 관심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의미이다(T.E. McComiskey).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 히브리어 원문에는 개역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히브리어 '위히-켄'(* - )이 있다. 그 뜻은 '너희가 그렇게 한다면'(in case you do, BDB)으로 앞 문장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선한 행실로 하나님과 화목해지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속하길 원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위선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Calvin). 본절에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지적하여 실의에 빠지게 하지만, 장차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제시하여 소망을 갖게 한다.
성 경: [암5:15]
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 이 문장에 나오는 명령형의 문장들은 앞에 나온 명령형 동사들과 연관되어 점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먼저 4절에서 백성은 여호와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14절에서는 그저 외곽적으로만 여호와께 순종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도의적인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런 배경에서 주어지는 본절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의지를 다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을 추구해야 할 것을 보여준다(T.E.McComiskey).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 '혹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울라이''(*)는 의혹이나 불신을 전제하는 표현이 아니라, 엄청난 죄에 빠진 자를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며, 이를 기대하는 표현이다(욜 2:14). 또한 '남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에리트'(*)는 어떤 것의 일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이 상당히 많은 영토를 가지고 있던 점에 비추어본다면, 이러한 표현은 그리 걸맞지 않은 표현이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은 시대(silver age)의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을 아주 작고 미약한 것으로 표현한다(7:2). 그는 이스라엘을 강하고 능력있는 나라가 아니라 침략당하기 쉽고,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로 보았다(T.E.McComiskey).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하사엘과 벤하닷에게 침략당하여 파괴되고 땅을 빼앗겼다(왕하 13:3,7). 결국 이스라엘은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잃었던 땅을 완전히 되찾았다(왕하 13:23ff; 4:26ff). 이로써 아모스의 예언은 부분적으로나마 북이스라엘에게 성취되었다.
성 경: [암5:16]
주: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 본 구절에서는 독특하게도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성호가 한꺼번에 사용되어 아모스의 선포가 하나님의 엄위로우시며 절대적이며 확실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 이미 제시된 경고의 결과로 여호와께서 그토록 준엄하게 책망하셨던 죄를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과 거리는 물론이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농촌에서도 시행될 것이다. 울음꾼을 사서 슬픔을 나타내리라는 사실(렘 9:17ff)은 이를 뒷받침한다. 마치 출애굽 당시 애굽사람이 당했던 것처럼 모든 백성이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을 보여준다.
성 경: [암5:17]
주: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 보통 포도원은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인식되지만, 울음의 장소로 바뀌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슬픔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으로 슬픔의 도를 더해준다.
주: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 이런 표현은 과거 출애굽 당시에 주어졌던 마지막 장자 재앙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출 12:12), 앞에서 제시된 슬픔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사실임을 보여준다.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5:18]
주: 화 있을진저...빛이 아니라 - 본절을 통해 아모스 당시에 유행했던 신학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여호와의 날'은 선지자들에 의해 자주 선포된 종말론적 개념이다.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절대적인 주권을 발휘하여 세상을 통치하시며 심판하실 것임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T.E.McComiskey). 그들은 그날이 오면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위해 모든 원수를 물리치시고,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러한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즉, '여화의 날'은 어두움과 절망의 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는 여호와의 날을 유일한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던 자들에게 더 큰 위험을 예상하게 하고, 절망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C.L.Feinberg).
성 경: [암5:19]
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뱀에게 물림 같도다 - 본절은 앞 구절을 부연 설명하는 것으로 여호와의 날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날 것임을 비유로 설명한다. 여호와의 날에 대해 매우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형편에 빠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성 경: [암5:20]
주: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 반어적 의문법을 사용하여 18절 하반절의 내용을 반복한다. 여기서는 특별히 여호와의 날이 어둡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이제껏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을 소망하며 살았지만, 아모스의 선포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두움의 절망으로 잠식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