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경: [슥2:3]
주: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 스가랴에게 친절하게 답해주었던 그 천사가 떠나려고 했을 때, 다른 천사가 나타나 그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다른 천사는 스가랴에게 4-13절에 언급되고 있는 메시지의 뜻을 알려준다.
성 경: [슥2:4]
주: 사람과 육축이...같으리라 -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질 정도로 도시가 번영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은 성벽이 없는 주변 촌락에서 살게 될 것이다(겔 38:11). 그러나 역사상 아직 이런 축복이 실현된 바 없기 때문에(느 7:4; 11:1-2)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교회나 새 예루살렘, 곧 천국의 예루살렘으로 확대 적용시키기도 한다(K.L.Baker, Feinberg).
성 경: [슥2:5]
주: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영광이 되리라 - 예루살렘의 번영으로 사람들이 성외곽 지대로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임을 설명한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내가'가 강조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NIV 영역 성경은 이를 살려서 'I myself'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불성곽'이란 말은 출애굽 당시의 '불 기둥'을 연상시키는데(출 13:21). '불 성곽'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의 모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상징하고 있다. 출애굽기에도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불'과 '영광'이 자주 등장한다(출 13:22; 14:20; 40:34, K.L.Baker).
성 경: [슥2:6,7]
주: 도망할지니라...피할지니라 - 아직 바벨론에 많은 유다인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사가 그들의 귀환을 촉구한다. 그 이유는 (1)바벨론에 임할 심판과 (2)예루살렘에 임할 축복때문이다(T.V.Moore).
성 경: [슥2:8]
주: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 본절은 해석하기 난해한 구절 중에 하나로서 여러 가지 번역과 사본들이 존재하고 있다.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란 어구는 '강권적으로 나를 보내셨다'로도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가 나를 보내셨다'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곳의 '나'를 스가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 곧 메시야 시대의 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Baldwin, Feinberg). 그렇다면, 본절의 화자는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또한 여호와의 사자이며, 메시야 자신과 동일시된다. 아무튼 이 사람의 임무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해롭게 한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상하게 한 것과 같기 때문에 유다인들을 학대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반역인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눈동자는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소중히 여기며(신 32:10) 질투하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수 24:19; 시 17:8; 마 25:34-45; 행 9:1,4,5).
성 경: [슥2:9]
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대적들을 위협하는 몸짓으로 그의 손을 들어올린다는 뜻이다. '움직이다'란 말은 '손을 들어올리다' 또는 '흔들다'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앞절과 본절의 화자가 신성을 가진 인물, 곧 메시야나 여호와의 사자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내 손'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 곧 신적 전능을 나타낸다. 그 능력의 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해서 대적을 파멸시킬 것이다.
성 경: [슥2:10]
주: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 위대한 구약의 언약, 특히 세계 만방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리라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될 날이 이르게 될 것임을 말한다. 이 예언은 성육신으로 이루어졌고,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T.V.Moore).
성 경: [슥2:11]
주: 그 날에 많은 나라가...내 백성이 될 것이요 - 위대한 메시야 시대에는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 내용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8:20-23; 창 12:3; 18:18; 22:18; 사 2:2-4; 60:3)는 아브라함과의 언약과 관계가 있다. 그들이 복을 얻은 결과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 날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날'이란 말은 '여호와의 날'을 축약시킨 표현으로서, 역사적 또는 종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Baldwin).
성 경: [슥2:12]
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상속물로 취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거룩하고 영광스런 왕인 여호와는 그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선포하는 거룩한 백성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출 19:6; 레 11:44,45; 19:2; 시 24:3-10; 29:1,2; 96:9; 벧전 1:15,16; 계 14:8, K.L.Barker).
주: 거룩한 땅 -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이다(K.L.Barker). 문자적으로 가나안 땅을 의미하지만, 상징적으로는 하나님이 계시고 여호와의 주권이 마치는 땅 전체를 의미한다(출 3:5; 호 9:3).
성 경: [슥2:13]
주: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 수많은 성도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행위를 하심을 보여준다(시 44:23; 사 51:9). 한편 여기서 '성소'가 스룹바벨 성전과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거처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슥3:1]
본장에서는 사탄이 여호수아를 고소하고 이에 대해 여호와의 사자가 변호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메시야 사건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주어진 복을 언급한다.
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 '여호수아'는 당시에 대제사장직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보이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앞에 섰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메드'는 분사형으로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1)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신 10:8; 대하 29:11; 겔 44:15). (2) 재판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민 35:12; 신 19:17; 수 20:6; 왕상 3:16).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여호와의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여호수아가 사탄의 참소로 하나님 앞에서 그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제사장직이 공적이듯이, 그는 개인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공적인 위치로 여호와 앞에 섰다(1,2,5,8,9절). 한편, '사단'은 욥 1,2장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 욥의 신앙은 참신앙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바뀌는 일시적인 신앙이라고 참소하였다. 사탄은 모든 성도들을 대적하고(벧전 5:8) 참소하는 일(계 12:10)을 계속한다.
성 경: [슥3:2]
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 사탄의 최후는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며(마 25:41), 마지막 때에 하늘에서 떨어져(눅 10:18) 무저갱에 들어가고야 마는 것이다(계 12:9; 20:3).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표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암 4:11). 이는 여호와의 구원이 가진 성격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다. '불'은 바벨론 포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이스라엘은 그 불로부터 불타는 막대기로 취급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애굽에서의 구원을 아울러 회고하게 하며(신 4:20; 7:7,8; 렘 11:4). 장차 올 환난의 때에 있을 구속을 예상하게 하기도 한다(13:8,9; 렘 30:7; 계 12:13-17).
성 경: [슥3:3]
주: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 '더러운 옷'은 수치와 비난거리가 되는 것으로 심각한 죄의 상태를 나타내며(사 64:6). 이런 옷을 걸친 여호수아의모습은 당시에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더러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초임'은 가장 간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의 더러움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Feinberg). 사탄은 바로 정결하지 못한 성도의 상태를 문제삼는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바로 은혜로 말미암은 메사야적 사역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 경: [슥3:4]
주: 여호와께서...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 '더러운 옷을 벗긴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죄악으로 인해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K.L.Baker).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죄로 인해 직분이 박탈되고, 죄책에 시달린다고 해도 여호와의 선언은 죄과를 제하여 버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호수아의 죄를 깨끗이 하겠다는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며(계 7:14), 우리의 옛 사람을 벗기고 새 사람을 입히시는 것과 같다(롬 6:6; 엡 4:2; 골 3:9).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고(사 6:7) 구원과 의로 옷입히실 것이다(사 61:10; 눅 15:22; 계 19:8). 이런 일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성 경: [슥3:5]
본절은 죄과가 없어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운 성도들이 그에 합당한 지위를 제공받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로 성도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의로운 모습이 나타나 성결되고 구별된 삶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성 경: [슥3:6,7]
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 여기서는 속죄로 인한 결과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것이다. 속죄로 인해 새로운 자격을 얻게 된 여호수아는 그 자격과 지위에 걸맞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하나님은 은혜로 성도들을 의롭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결륜을 알리시고 율법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 법도와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삶의 최고 가치이다. 그 조건은 두 가지인데, (1) '내 도를 준행하며'라는 것으로 여호와께 대한 개인 생활 및 자세를 가리킨다. 즉, 개인으로 실제적인 의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살전 4:1; 딤전 4:16). (2) '내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것은 신적 수임인 제사장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기 때문에(호 14:9) 선한 생활과 거룩한 삶을 요구하며(신 8:6; 10:12; 시 128:1). '율례'는 모세의 법을 따라 맡은 직무에 충실히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한다(레 8:35; 대하 6:16; 겔 44:15,16). 이러한 조건을 지키면 얻게 될 상급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성 경: [슥3:8]
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순을 나게 하리라 - '예표의 사람'은 바로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 제사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들의 직분이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결국 구약의 제사장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메시야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가리키는 '종'(사 42:1; 49:3; 50:10; 겔 34:23)과 '순'(荀)(렘 23:5)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진다. '종'이라는 표현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행하여 완전한 속량을 이루실 것을 잘 나타내며, '순'은 다윗의 계보에서 나올 새로운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적 특성을 시사한다(6:12; 사 11:1; 42:1).
성 경: [슥3:9]
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 이 돌은 일차적으로 성전 건축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으로 필요한 기초석이나 모퉁잇돌을 의미한다(스 3:9-11; 시 118:22,23; 마 21:42; 행 4:11). 이는 문맥상 메시야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Bullinger). 이와 함께 일곱 눈의 모습은 보다 완전한 메시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수로 여호와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모습이며(4:10; 계 5:6), 하나님의 무한한 지성과 전지성을 상징한다(사 11;2; 골 2:3,9; 계 5:6). 이는 성전 재건 사업이라는 역사적인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죄악의 요구를 단번에 만족시키시는 사역을 가리킨다(히 7:27; 10:10).
성 경: [슥3:10]
8,9절에 열거된 메시야적 행동에 대한 결과로 주어지는 소망스러운 약속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공되는 평강과 안정이다.
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큰 은혜를 받은 상태를 말한다(K.L.Baker). 메시야 시대가 도래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백성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성도들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롬 5:1; 고후 5:18).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해 평강을 얻게 된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며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