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길이 험하고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한 만어사는 늘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험한 길을 이리 저리 미로 찾아가듯이 절 집 에 도착하면 대웅전 아래로 넓고 길게 시선을 사로잡는 장관이 펼쳐진다.
미륵전에서 시작하여 넓은 계곡을 따라 펼쳐진 검은색 돌의 무리들이다. 작게는 초가집 추춧돌만한 것에서부터 집채만한 바위 돌들이 넓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면서 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다.
높은 산등성이에 오랜 세월 강 물에 씻겨 닳은 것처럼 가지런히 펼쳐진 것은 설화처럼 신의 조화일까?
이 지역에 전해오는 설화를 보면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육지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의 신승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 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의 터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왕자가 길 을 가다가 머물러 쉰 곳이 만어사 미륵전 자리였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미륵돌로 변했고, 수많은 고기들도 돌로 굳어져 장관을 이루는 돌밭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이 설화에 나오는 미륵돌은 현재 미륵전 안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가리킨 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 서있는 길쭉한 큰돌이다.
수많은 돌 무더기 위쪽에 홀로 서 있어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약간 비스듬 한 모습의 표면에는 예사롭지 않은 무늬들이 있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예전 에는 야외에 그대로 드러나 있던 것을 현재의 미륵전 안에 봉안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돌 하나 하나를 물고기로 보아 수많은 고기들이 계곡을 덮었다하여 만어사라 하였다. 만어사를 자주 찾는다는 어느 신도의 말에 의하면 돌로 변한 바위 위에 빨래를 널어 말리면 빨래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고, 옛날에 미륵 전 옆에 있는 샘물의 높이가 동해의 밀물과 썰물의 높낮이에 따라 변했다고 한다.
고려의 보림 스님이 임금에게 올렸다는 보고서의 세가지 내용중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두가지를 확인했다고 했는데, 그 하나가 골 속에 있는 돌의 3분의 2는 모두 금과 옥의 소리가 난다고 한 것이다.
그 말에 따라 계곡에 있는 돌들을 작은 돌로 하나하나 두드려 보면 신비하게도 온갖 소리가 난다. 어떤 것은 금속성의 종소리를 내기도 하고, 둔탁한 나무소리 를 내기도 한다. 물론 전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정말 3분의 2가량만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싶다.
일연 스님이 밝힌 나머지 한 가지는 못에 비치는 부처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만어사에서는 못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비내리는 여름 날 만어사 아래로 펼쳐진 돌밭을 고기로 생각하면서 일망무제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래가 수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용왕 나라에서 올라온 거북이 가 유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만어사를 등지고 서서 돌밭 너머로 강물 이 유유히 흐르는 들판을 보고 있으면 뿌연 안개비가 내리는 모습이 동해 의 파도가 밀려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담한 대웅전 아래쪽에는 보물466호 만어사삼층석탑이 있다. 지금의 대 웅전이 자리한 위치와는 조금 떨어져 있으나 석탑의 뒤편에 건물터로 보이 는 대지가 있어 이곳이 본래의 법당터로 여겨진다. 이 석탑도 지금의 위치 가 원래 세워져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1단의 기단 위에 올려진 3층 석탑으로,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밑 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 식)가 얹혀 있으나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탑의 바닥돌이 드러 나 있고 지붕돌이 약간 파손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뛰어난 작품이다.
일부에서 퇴화된 자취가 엿보이지만 각 부의 구조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만어사는 삼랑진읍 용전리 산 4번지 만어산(해발 670m) 정상 바로 아래 에 있다. 만어사는 불교의 남방 전래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정(大定) 20년 경자(1180) 즉, 고려 명종 11년에 만어사를 세웠는데 동량(棟梁:고려의 僧職) 보림(寶林)이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 내용이 「삼국 유사」-어산(魚山)의 부처 그림자 편에 있다.
첫째로 산 옆 가까운 곳이 양주(梁州) 경계의 옥지(玉池)인데 역시 악독 한 용이 숨어있다는 것이 그것이요, 둘째로 때때로 강변으로부터 구름 기운 이 떠올라 산꼭대기에 이르면 구름속에서 음악이 나는 것이 그것이요, 셋째 는 그림자 서북쪽에 반석이 있어 언제나 물이 괴어 마르지 않는데 이곳은 부처가 가사를 씻던 곳이라고 이르는 것이 그것이다.
「삼국유사」에는 만어사의 유래를 옛 문헌인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소 개하고 있다. 만어산(萬漁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이니 또 아야사산 (阿耶斯山: 아야사는 마땅히 마야사라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물고기를 일 컫는다)이라고도 한다.
그 이웃에는 가라국이라는 나라가 있어 옛날 하늘 나라로부터 알이 해변에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니 이가 곧 수로 왕(首露王)이다.
이 당시에 나라안에 옥지(玉池)라는 못이 있고 못속에는 악독한 용이 있 었다. 만어산에는 다섯명의 계집 악귀(羅刹女)가 있어 저마다 내왕하고 교 접하기 때문에 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이래 오곡이 잘되지 않았다.
왕이 주문으로 이를 금할수 없어서 공순히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였더 니 그러고 난 후는 계집 악귀들이 다섯 가지 계명을 받고 아무런 후폐가 없 었으므로 동해의 고기와 용이 이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로 화하여 악기 소 리를 내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지금 친히 와서 예배를 하고 보니 역시 분명히 공경하여 믿을만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 골속에 있는 돌로서 무릇 3분의 2는 모두 금과 옥소리가 나는 것이 그 한 가지요, 멀리서 쳐다보면 금방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거나 혹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 것 등이 그 한 가지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가야의 수로왕 설화와 만어산의 설화가 합쳐진 만어사을 찾아 답사를 나 서는 길은 매우 흥미롭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산모퉁이 좁은 길가에는 산 골짜기 정취와는 전혀 낯설게 느껴지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