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팔이 되어
삼일 이재영
오늘 1월 23일을 기해, “하나, 둘, 셋!”하고 태어난 지 만 70년, 세는 나이 일흔한 살로, 이제 고희도 넘겨 팔순을 바라보는 망팔(망팔쇠년:望八衰年)이 되었다.
그런데, 내 생일이 음력으로는 12월 27일이라, 태어나서 나흘 만에 한 살 더 먹은 셈이다.
그래서 십이지지 띠가 음력으로는 토끼띠 12월이라 별 볼 일 없는 토끼 꼬리지만, 양력으로는 용띠라서 1월 용머리가 되니 아주 좋은 달에 태어난 셈이다.
하지만, 매일 일간지를 받으면 맨 먼저 ‘오늘의 운세’를 훑어보는데, 내 거는 토끼띠, 한 달 뒤에 태어난 아내 거는 용띠를 보고 읽어 준다. 안 좋은 운세는 서로 조심하면 되고, 좋은 운세면 함께 즐기면 되니까, 용머리 위에 올라앉은 토끼도 괜찮다 싶다.
한국에서 나이 세는 방법은 세 가지나 된다. 태어난 해를 원년(한 살)으로 삼고 새해 첫날에 한 살씩 더하는 ‘세는 나이’,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세는 ‘연 나이’, 출생일을 기준으로 세는 ‘만 나이’까지 세 종류가 있다.
트로트 경진 대회에 나오는 청소년이 13세라고 하면, 초등 6학년인지, 중학 1학년인지 판단이 헷갈리거니와,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도 나이 때문에 크고 작은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얼마 전 대선에 출마한 야당 Y 후보는 “법 개정을 통해 ‘만 나이’로 법적 나이 셈법 기준을 통일하겠다”라고 밝혔다.
얼핏 보면 아주 사소한 공약 같지만, 바로 저런 세세한 부분을 제대로 살피고 올바로 고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싶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50대 초반이 되신 부모님이 외아들인 나를 데리고 여수 시내 초입 시골길 10여 리를 걸어가 문둥이(나환자) 점쟁이를 찾았다.
나는 무서워서 수염에 덮인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조수가 깨알 같은 붓글씨로 받아 적은, 나이별 내 ‘평생 사주’ 두루마리를 받아왔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내가 큰 벼슬에 올라 재산이 아버님의 스무 배가 될 것이고, 여든두 살까지 산다는 것이다.
대기업 연구소에서 잘 지내다 나와 개인사업 하면서 고생만 실컷 하고 돈도 못 모았는데, 앞부분은 빗나간 것 같지만 뒷부분 82수는 맞기를 바랄 뿐이다.
해서, 앞으로 12년 더 살아갈 노후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3개년씩 4단계로 작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도 문제지만 이제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싶다.
특히 대장암에 걸려 수술도 하고 항암치료도 받으며 2년 넘게 아내, 자식, 며느리들, 손녀에게까지 걱정을 끼쳐서 매우 미안할 뿐이다.
오늘 내 생일 축하 겸 가족 월례 모임으로 모두 와서, 거실에서 아내가 준비한 미역국, 조기, LA갈비 반찬에 팥 찰밥 점심 먹고, 지금 떠들고 웃으며 노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보다 더 좋은 생일선물이 또 있겠나. 앞으로 열두 번 더 차려줘야지!
그리고 수필은 매달 한 편씩 꾸준히 쓸 작정이고, 올해부터 담채화 그림을 그려볼 계획이다.
집에서 왕복 4km 거리에 내가 가끔 산보하러 가는 ‘옥구공원’이 있다. 옥구봉은 해발 95m의 바위산인데 제법 숲이 무성해서 올라가면 깊은 산중에 들어온 느낌도 든다.
산자락의 송사리 떼 노는 큰 연못에 연꽃과 수련이 피는데, 오작교 건너 물레방아 도는 왕버들 아래 벤치에 앉아 스케치하면 아주 좋다.
무궁화동산, 장미꽃 동산, 군데군데 조각품이 자리한 넓은 공원에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 내가 항상 가서 벚나무 아래 나무 벤치에 앉아 쉬는, 대나무 숲 옆 부처님 부조 돌조각이 있는 작은 정원도 그림 그리기 좋은 곳이다.
원래 담채화는 연필로 스케치하고 묽은 수채화로 그리는데, 나는 연필 스케치 위에 형광펜으로 그릴 거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여름은 엄청나게 더웠다. 그때 개업 5년 차인 내 개인사업이 여의치 않아 지인의 3층 건물 옥탑방을 얻어 신제품 개발에 목을 매고 있었는데, 철판 지붕이라 에어컨도 소용없었다.
그때 멀리 보이는 도심지 땡볕 아래 5층 건물과 주변 길거리 풍경을 무심코 연필로 그렸고, 책상 위에 있던 형광펜으로 채색했는데, 작품이 괜찮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때 구상했던 형광펜 담채화를 28년이 다 지난 올해 시작할 참이다.
그리고 중학교 이후 손을 떼었던 시(詩)도 다시 써볼까 하는데, 시에 맞는 담채화를 그려서 나만의 시화(詩畫)를 만들 생각이다.
제1차 3개년 계획이 잘 이뤄지면, 제2차 3개년 계획을 수립할 건데, 혹시 에너지에 관련된 엄청난 계획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 전에 아이들이 돈 봉투 외에 밝고 즐거운 모습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중학 2학년이 될 손녀에게 세뱃돈 5만 원만 줬다.
두 아들에겐 내 수필 두 편이 수록된 OO문학 산문선 두 권씩 나눠줬고, 아내는 강의 나가는 학원 제자들에게서 받은 여러 가지 선물을 두 며느리에게 나눠줬다.
앞으로 나잇값은 하며 살아야 하겠지만, 나의 망팔은 결코 서글프지 않다.
[ 2022년 01월 23일 만 70세가 되어 ]
< 어제, 4월 11일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참 다행이다 싶고 반가워, 이 수필을 맨 먼저 올립니다. >
첫댓글 참 적시에 올린 수필
맛깔스럽네요.
만 70 맘세하루님.
12년 더 사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
거기다가 12년 더 보태시와용.
네, 난정 작가님. 말씀 감사합니다.
작가님 글 중에 72세(세는 나이?)로 나오던데,
12년 더 기다렸다가 24년 후에, 작가님 따라 함께 갈까요? ㅎ
@삼일 이재영 히히히~ 만 72세입니다.
@蘭亭주영숙 아, 만 나이였군요.
두 살 위시니까 서로 깐부 먹어도 괜찮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