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세션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죽음에게서 축복이 오네요.” 유명화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형태장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도 나는 그 축복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감지하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지 벌써 9년 되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장례까지의 일을 나는 내 평생에서 가장 후회 없는 시기로 생각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려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기 때문에 뒤에 남을 감정이 미리 겁이 났다. 그런데 장례 후 슬픈 애도의 시간을 몇 달 보내고 나자 점점 마음이 가벼워졌다. 적어도 아버지에 대해 당장 힘든 감정이 남아있지 않는 게 신기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버지는 현중원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 결정을 반기지 않았다. 왜 굳이? 철없는 생각이었다. 지나고 보니 아버지의 선택은 내게도 큰 선물이었다. 장례 때 장지를 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나중에 알았다. 게다가 서울 시내 교통 좋은 곳에 계시니 자주 찾아갈 수 있었다. 갈 때마다 납골당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이 참 좋았다. 사람도 차도 거의 볼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주변은 온통 줄지어 자리 잡은 병사들의 묘였다. 묘지 한 가운데서 나는 평온과 평화와 위로를 느꼈다. 처음에는 그런 편안함이 이상하다 싶었지만 갈 때마다 마음이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는 그곳이 그런 곳인가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며칠 전 방문 때 9년 만에 처음으로 ‘죽음이 보내는 축복’ 같다고 생각했다.
그 전날에는 ‘채비하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내가 조합원으로 있는 협동조합에서 진행한 모임이었다. 참가자들은 부모님의 죽음에 미리 대비하려는 50대와 60대 조합원들이었다. 우리는 추모식 준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이 살아오신 삶을 정리하는 글이며 사진들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부모님을 기억할 물건들을 미리 정리해서 보관하는 ‘채비함’이라는 상자도 받아서 가져왔다. 교육에 가기 전에 무겁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돌아오는 길에는 한결 가벼웠다. 나는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해야 오히려 힘이 나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처럼 살아온 시간이 꽤 길었다. 죽음과 상실을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하느라 그랬나 보다. 뒤늦게나마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일 기회가 생기니 얼마나 다행인가. 죽음을 기피할수록 죽은 듯이 살게 되고, 죽음을 받아들일수록 삶이 더 살아나는가 보다.
첫댓글 "죽음을 받아들일수록 삶이 더 살아나는가보다" 라는 선생님의 글에 목이 메이네요. 한평생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면서 사는 게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가족세우기를 공부하면서 우리를 덮치는 더 큰 운명의 힘에 겸허해집니다. 하늘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다 가고 싶네요.
선생님의 글에서 평온하고 잔잔한 감동이 전해져옵니다. 함께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