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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늦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윤항기씨가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KBS-1의 장수 프로그램인《가요무대》서죠. '불후의 명곡'《여러분》을 부르더군요.
어렴풋한 기억으론 동생인 윤복희씨가 불러 <서울국제가요제> 에서 그랑프리인 '대상' 을 받은, 바로 그 노래를요.
그때의 노래와 어제 밤의 이 노래에 다른 게 있다면 이쯤 되겠네요.
한참 옛 시절의 여동생은 쟁쟁한 각국의 대표가수들에 맞서 '출세를 위해' contest에서 기량을 겨룹니다.
당대의 국민 가수들 중 '명가수' 로서 한창 젊은 나이에 맞게 온 몸에 혈관이 터져나라 힘차고 폭발적으로 열창을 했구요.
반면에, 어젯밤 방송분의《가요무대》에 선 오빠는 지금은 명망있는 '현직 목사' 입니다. 동생과 똑같이 '왕년 가수왕' 이었지만..
얼굴에 새겨진 깊고 많은 주름살의 모습마냥 명예와 부귀에서 한참을 벗어난 듯 싶네요. 세월을 달관한 듯, 세속의 번민을 초탈한 듯..
넉넉하고 만면에 여유로운 웃음 띈 얼굴로 고즈넉이 노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박에, 두 해 쯤 전에 올린 글이 떠오르더군요.
<샘물교회 신도들의 탈레반 인질 사건> 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나라가 몹시 떠들썩하기 시작할 무렵이죠.
이때도 우연하게 기독교 케이블 방송에서 '목회자' 윤항기의 간증을 시청하곤, 곧바로 올리게 된 글입니다.)
'자,타칭' <기독교인들의 일상적 신앙고백과 간증> 이 <일반인의 정서와 상식> 을 손쉽게 외면합니다.
그와 충돌하고 대립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 종교와 믿음의 자유, 신념의 확신을 위해서라면,
그 종교권 밖 이웃들의 그것들을 공공연하게 폄훼할 뿐 아니라 빈번하게 참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니 말입니다.
이 둘 사이의 괴리가 이미 크게 벌어져 왔고, 또 그 간격만큼.. 언제나 일반인과 기독교인들 사이의 충돌과 대립은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해서, 이런 부조리한 현실로 인해 그들을 향하는 비판과 독설이 끊일 수 없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일테구요.
예를 들어, 탈레반 인질사건이 발발한 직후, 그러니깐 2007년 7월 23일 무렵에.. 우연히 시청한 <전직 가수왕 윤항기 목사의 간증>
역시 그렇습니다. 그날오후 기독교 케이블 tv인 CTS에서죠.
열 살 남짓한 어린 나이에 이미 양친을 여의고, 동생인 윤복희씨와 기구절창한 고생 끝에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굶어 죽을 환경에
서 도움 준 고아원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에 기독 신앙을 가지며 기독신에게 기도했다죠. 헌데, 이후 장성해서 물려 받은 음악 재능
으로 부귀와 명예를 누리며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두었을 무렵, 3년 간 단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답니다. 골수 크리스천이던
아내는 불평없이 그저 집으로 돌아오기만 기도하고...
폐결핵을 얻어 1년이란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야 귀가했을 때도, 아내는 여전히 맨발로 나와 기뻐하며 심지어 목숨을 건 40일 금식
기도까지 해 주었답니다. 해서 지금은 목사요 한 교단의 당회장까지 된 윤항기 본인이 깊은 회개를 시작했다고 하고.. 그때 크리스
천인 아내에게 자신이 쾌차하면 들어줄 소원을 물어도,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는 게 유일한 그것!'.. 이라고 했다더군요. 그리고
'아주아주 행복한 지금의 자신이 있다' 는 게 이 간증의 주요 스토리입니다.
시청하는 내내 '참으로 딱하다!' 는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 스토리 자체는 인간적으로야 인생 선배로부터 듣는 진한 인생의 교훈이 왜 안 되겠습니까? 말로 꺼내는 것조차 그리 쉽지만
않은 개인적인 희.로.애.락. 이니.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 자체만도 인간적 공감은 충분하죠. 하물며, 그 개인이 살갗으로 겪어내
온 인생역정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 체험과 느낌을 '하나님, 주님의 은혜' 란 말과 연계시킨
다는 것이 딱하다는 거죠.
그같은 말만을 그리 덧붙이면 자신의 과거 인생이 저절로, 또한 기독교리의 용어대로 고스란히 '칭의' 되고 '성화' 되고 '영화' 되
는 건지... 제가 보아선, 그 과정을 아무리 훑어 보아도 '윤항기' 라는 한 인간의 개인적인 삶일 뿐이니 말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
낸 우리들 부모님 세대분들이 절감하실 헐벗고 굶주린 그런 삶.. 헌데도, 그 삶이 기독신의 이름을 부르고 몇마디 바이블구절을
읊조리고 기독교리의용어를 붙이면 절로 되는 게 '칭의' 고, '성화' 고, '영화' 인가 봅니다. 그저 <값 없이 거져!> 받는다니...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나름으로 열심을 내 본 바 있던 제겐..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삶은 물론이요, 같은 시대에 비슷한 고난과 역경을 꿋꿋하게 살아내 온 벗들의 삶마저 폄훼하고 무례를 범하는 일로 비춰
집니다. 예컨데, 윤항기씨가 그 '간증' 의 막바지에 연거푸 강조하는 표현만 봐도 그렇죠. "...자신이 지금처럼 교회에 다시 나오
지 않고, 목사나 당회장이 되지 않았으면.. '원로가수' 란 이름으로 가요무대에서 늘그막에도 처량하게 노래나 부르고 있었을 거
다..." 대체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
실제로, 그는 간증의 처음부터 '가수' 윤항기로서 멀지 않던 과거, 자신의 유명세를 청중들에게 몇 번이고 강조하며 확인했더랬죠.
1977년 가수왕에 올랐느니, 오빠 부대를 전국적으로 몰고 다녔느니.. 심지어 동생인 윤복희의 하늘 높던 인기의 '사실 관계' 마저
그런 전력에 생소할 법한 젊은 신도 두 어 명에게 물어 보더군요. '자신들은 이렇게 세상에서 잘 나갔다.. 헌데 지금은 그런 세속의
영예와 지위를 버리고...' 한다는. 물론, 이는 자신의 간증에 설득력을 입히려는 수사죠. 일종의 대중 연설이니 영향력을 높이려는
노력 그 자체엔 뭐라할 마음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진정성' 이요 '진실성' 부분입니다.
간증의 청중 설득력을 높이려고 매우 주효하게 들고 있는 자신의 과거 평판을 결과적으론 '불쌍한 탕자 시절' 이라고 폄훼하고 있
다는 겁니다. 더 정확하겐, '탕아였던 자신' 을 그 자신만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의 말처럼 지금의 명성이 있
는 윤항기를 있게 한 '최고 인기가수' 시절에 같이 활동하던 수많은 가요계의 동료 선후배들, 어려운 시절을 함께 살아 낸 인
생의 벗들마저 자신의 신앙과 간증을 위한 소품으로 쓰고 있는 격이니까요. 그것도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들을 처
량하고 불쌍한 인생들로 못 박는 데도 한점 주저함이 없습니다.
즉, 그것을 자신의 개인적 신앙과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신앙공동체(교회)의 교리와 종교(개신교)에 유리한 수사로 이용하고 있다
는 것에 도대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과 양심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쉽사리 엿봅니다. 게다가, 결국엔 그의 그러한 행위는 <간증>
이란 또다른 포장지에 싸여.. 자신의 말에 귀를 쫑끗 세워 줄 뿐만 아니라, 똑같은 말의 유희인 '하나님, 주님' 이란 큰 포장으로 추
켜 세워주기까지 하는 <'교회공동체' 란 현실 내> 에선 또다른 권위와 명예를 누리게 되니 말이죠. 물론! 윤항기 목사 입장
에선 가히 '주님의 영광' 이랄 수 있겠죠. 허나, 제가 노래를 같이하고 더나아가 동시대의 고락을 함께한 동료요, 벗이였다면 참으
로 배신감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언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지금도 이따금씩 윤항기 자신이 '처량하고 불쌍하다' 는 그 가요무대에 서는 걸 봅니다.
'권사' 라는 윤복희씨도 뮤지컬 등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기독교회에서 자신들의 신앙공동체와 그외의 사회를 구
분하는 말로 '세상' 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결국 윤항기씨의 위 간증에서도 도드라지게 엿볼 수 있던 바처럼, 그들에게 세상은 마
귀의 소굴이며 사탄의 악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악에 빠진 집단> 일 뿐이구요. '저주' 와 다름 없는 그런 신앙적 독단의
다른 한 편으론, 입술에 '주님과 하나님' 을 달고 다니며 그에 대해 '믿음' 을 운운하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맞대어 비교하며, 노골
적으로 상대적 우월함, 선의 집단임을 단정합니다. 윤항기씨도 역시 몇 번이고 '늘그막에 처량한 노래' 란 말로 표현한 바이구요.
그러면서도 부득불 그런 악의 구렁텅 무대엔 왜 자꾸 서려고 기를 쓰는지...
'그의, 그들의 진정성' 이란 게, 과연 자신과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도 진실하게 받아 들여 질까요?
그건 그렇다 해도, 자신들의 이런 입버릇 언행들이 <그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신> 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되긴 할까요?
교회 다닐 때, 교회공동체 내에서 손쉽게 듣고 써 온 말이 퍼뜩 떠오릅니다.
'... 모든 좋고 선한 건 하나님 탓, 모든 나쁘고 악한 건 인간 탓! ...'
위처럼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바이블과 교리 공부할 때부터 학습을 통해 들었고, 늘상 일상에서 확대,재생산하던 표현이
죠. 전형적인 기독교리와 교회공동체식 선악 이분법입니다. '독선' 과 '독단', '아전인수'.. 란 의미를 이보다 적절하게 이해하게 해
주기도 힘드리라 여겨오던 터입니다. 위 표현과는 전혀 다르게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현실과 실태, 그들의 일상과 교회생활은 사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 한다는 우리 옛 말의 의미를 충실히 보여 주니까요.
교리 학습과 공과 공부, 설교와 예배, 간증과 선교, 전도와 봉사 등.. 인간인 '기독교인' 들 그들 스스로 해석하고 이해한 것을 두
고 자신들 것만은 오롯이! '야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가 직접 주고 가르친 것' 이라고 하는 건 구,신약 바이블 - 역사용어로
보다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구약 (바이블)은 '유대교 경전', 신약은 '기독교 경전' 이라해야 바른 표현입니다 - 을 경전 삼는 모든
기독교류 종교(집단)가 놀라우리 만치 집착하는 불변의 공통점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그래야, 자신들이 그리도 확신하
며 믿고 신앙하는 해당 종교의 정통성과 보편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니까요.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神 야훼와 삼위일체 메시아 예수
의 가르침이 이들로부터 온 것이라야 인간인 자신들의 '자의적 해석' 에 의한 신념과 교리.. 라는 치명적인 비판에서 조금이라도
피해갈 수 있으니까요.
해서, 이는 <정통> 을 자처하는 기존의 막강한 종교권력.. 인 개신교(프로테스탄트)든, 가톨릭(로마캐톨릭)이든, 동방정교회이든,
성공회든.. 이들 '정통' 집단들의 타의에 의해 <이단> 으로 지목된 통일교든, JMS든 여호와의 증인이든, 제칠일 안식교든, 말일
성도 예수그리스도(몰몬교)든, 또 하나님의교회(안상홍 증인회)나 이만희의 신천지든, 조희성의 영생교나 박태선의 전도관이든..
심지어, 유불선.. 동양사상에 서양의 야훼,예수교까지 뒤섞어 통합을 주장,자랑하는 증산 강일순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증산도나
대순진리회 등등도.. 한결같이 똑같습니다. 그 교리와 종교적 신념의 내용들은 너무도 다르고 다양하면서도! 말이죠.
즉, 제 종교집단에서 선배 종교인들이 해석하고 이해하며, 합의에 의해 교리와 경전으로 채택한 내용은.. '그저 '신' 야훼가, 혹
은 '메시아' 예수의 가르침과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다' 라고 강변한다는 겁니다.
결국, 이 수도없이 많은 '자칭 정통들' 과 '타칭 이단들'.. 또한 이 시간에도 계속 태동하는 기독교류 '신흥 종교' 집단들의 주장들
을 모두 취합해서, 비교/분석/종합해 보면.. <똑같은 신과 메시아가 이들 정통,이단, 신흥 삼단/사단들.. 에게
전혀 다른 말을 자신들의 '절대 진리' 라고 가르치고 있다> 는 꼴이 됩니다. 세상만물을 창조한 유일한 신이란 존
재가, 또한 인류를 구원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가.. 한 입으로 두 말은 커녕 '세 말, 열 말, 수 천/ 수 만 가지 내용으로, 인
간이 만든 언어보다도 많은 다른 진리를 가르치며 그게 <절대 진리> 라고 하고 있다' 는 뜻이죠. 이런 블랙코미디스런 상황이 기
독교류 종교의 역사, 기독교회사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게 참으로 어리둥절하게, 더욱더 어처구니없게 만듭니다.
따라서, 그들이 'In the name of God ..' 라고 기도하는 방법과 명분.. 이라는 건, 사실 인간들인 자신이 것에 불과합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포교하기 위한 수단인 따름인 거죠. 즉, 하루에도 수도없이 두 손을 모으며 하는 기도의 맨끄트머리에 반드
시 읊조려야 '만' 하는, 이 당위의 '예수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 하면서도, 도리어 자신들이 신앙하는 神과 숭
배하는 그리스도,메시아 예수에게 자신들의 모든 허물까지 덤터기 씌우는 꼴이죠. 이런 참담한 생각과 판단마저 떨치기 힙
듭니다. 더우기, 제가 윤항기씨의 간증을 비교적 상세히 인용하며 이렇게 말이 길어져가는 건.. 그의 간증이란 행위가 참으로 <자
기 중심적>인 면모를 적나라게 드러낸다는 판단이 너무도 확고하고 뚜렷해져가기만 하는 까닭입니다. 해서, 자신이 속한 신앙공
동체의 이익, 혹은 스스로 의롭다함을 자처하는 <자칭 칭의>가 부당하며 역겹기까지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신을 <믿는다> 라고만 '말' 할 수 있으면, 곧바로 '칭의' 되고 '성화' 요 '영화' ..라는 소위 <기독교 구원의 9단계>
과정을 착!착! 절로 밟아 갈 수 있는 거라니...-_-; <믿는 내용> 의 그런 류의 어이없음이야 그들 신앙을 스스로 욕보이는 일이라
도, 자신들 신앙과 무관한 이들에게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만 히히덕거리고 자위하면 관심 없습니다.
허나,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한 방송에서, 선교와 포교의 목적을 방송의 목적으로 못 박고 있는 CTS란 대외 방송 매체를 이용할
때에는 자신의 발언의 정당성에 대한 책임 역시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여깁니다.
사보나 사내방송 따위처럼 동호회와 친목회 수준의 매체도 아닌 방송전파를 통해서, 대중에게 정당한 이유나 납득할 만한 근거,
공감할 만한 설명도 없기 때문이죠. 명백히 시청자란 불특정다수를 향해 그저 '개인적인 경험' 의 썰을 한바탕 풀어 놓고선.. '할렐
루야 아멘!' 하는 놈에겐 명예와 평판을 거져 얻는 일이고, 그의 부당함과 근거없음을 반론하는 이들에겐 '그저 내 신앙의 자유일
뿐!' 이라는 행태는 언제나 변함없는 기독공동체들의 몰상식입니다. 이런 몰지각한 언행이 '간증' 이란 말로 포장되고 '주님, 하나
님 아버지' 란 소리와 함께 뒤섞이기만 하면 '할렐루야! 아멘' ?
CTS 프로그램 중엔 케이블과 공중파를 넘나들며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는 장경동 목사를 위한 코너가 부쩍 늘었더군요. 지금의
장경동을 있게 한 기존 코너의 업글 버전 뿐만 아니라, <영성 회복> 이란 주제로 사탄,마귀에 빠져 있는 '세상' 을 향한 설교 훈계
한마당도 있더군요. 영성? 글말로는 분명히 규정해 놓은 그 말의 의미를 장목사가, 윤항기씨가, 크리스천을 자처하는
이들이 얼마나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묻고 싶고, 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믿음의 영역입
니다' 란 답변 말구요. 가령, 영성에서의 영감, 신앙적 영감과 예술적 영감, 지적/이성적 영감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으
로부터, 위로부터' 혹은 '주님이 주셨다' 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제거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자신과 자신들의 신앙공동체만의 정체성과 좀더 바른 신앙관 확립, 제 삶의 안위와 인생의 안정감을 위해서라도..
'종교와 신앙이 무엇인가', '그것이 아我와 비아非我 - 즉 나 자신이나, 더 나아가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들의 그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 의 삶과 일상에 어떠한 의미나 가치를 던져 주는가', '어떤 면이 긍정적이며 또한 부정적인 영향력은 무엇인가'.. 등
등의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 적이 있을까 하는 겁니다. 자신들 종교와 신앙의 고유한 그것들을 보다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이
해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것들을 포함해 종교와 신앙에 관해, '보다 본질적이고 궁극적이라 할 수 있는 숱한 물음들' 을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의문들부터라도 문제 제기를 해 보았고 해 왔고, 하고 있으며, 할 의향이 있는가 하는 거죠.
사실, 이런 <자기 반성> 과 <자아 성찰> 행위를 유발하기만 한다면야, 자신이 소속된 '종교단체의 조직 속' 에서 받은 학습의 자
극이든, 그들 '신앙공동체 내' 교육의 결과든 상관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이런 화제들에 대해 '<자문自問> 해 보았는가' 에 있으니
까요. '스스로에게 끝없이 문제 제기를 하며 자성과 성찰을 하고 있느냐'.. 개인적으로 이런 행위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또한 필연적으로 이런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종교와 신앙 그 자체에 관련한 다양한 의미의 자각으로 이
어질테구요. 내가 갖고 있는 신앙, 내 신앙이 소속된 특정 종교집단만의 교리와 신앙적 교의, 종교적 가르침..
소위 <내 집안 가치들> 마저도 넘나드는 보다 '보편적 가치의 각성' 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헌데...
불행하게도, 이런 것을 설명하는 자칭 크리스천들을 거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절대다수가 생각조차, 의문조차 가져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이번 탈레반 사건 직후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대다
수는 역시나 여전히 한결같더군요. 아프간에 갔다가 인질로 잡힌 샘물교회 신도들의 명백한 경솔함과 잘못을 성토하며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글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이쯤되면.. 이런 기독교회의 태도에서도 그저 <윤항기 목사의 간증> 이 고스란히 떠
올라 오버랩될 뿐입니다.
되레... 국제적,외교적 문제가 되자 '선교와 포교' 를 기본 목적으로 삼은 것조차 숨기는 최소한의 솔직함도 없는 이중성의 비양
심. 그저 '의료 봉사' 만을 거듭 강조하며 인질이 된 젊은이들의 생명을 인간적인 입장,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비호만 하려는 아
전인수.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 성토해야 할 기독공동체와 그의 일원인 샘물교회, 그 교회 담임인 박은조 목사가 이사장을 겸임하
는 한민족복지재단이 명백한 잘못을 자각,시인, 반성하기는 커녕, 도리어 인류애를 들먹이며 인본주의 논리로 역비판까지 하고 있
는 적반하장은 정말 역겹습니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은 항상 독단적이고 독선,배타적인 기독교리에 근거한다는 데 심히 우
려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어떤 사건이든 그 자체는 결과죠.
해서, 그 사건의 원인을 먼저 생각해 보고 성찰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래야 최소한 똑같은 수준의 과오가 반복되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유연한 마음.. 예민한 정신 ...
첫댓글 진리는 전체다라는 말이 있는데 부분적이고, 주관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경험 한 조각에 절대자의 이름을 얹어 특별한 것으로 구별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의 소중한 삶을 하찮은 것으로 차별하는 유아기적인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한 개인의 도덕성, 인격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곳에 문제의 초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기독교를 현상적으로 날카롭게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바꾸는 데에 와서는 무기력한 것 같습니다. 글 쓰신 분의 유연한 마음, 예민한 정신이 그들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깊은 성찰의 글 감사합니다.
기독교와 그 신앙을 비판한 내용이라 내심 '올릴까 말까' 했습니다.
엊그젠 올렸던 <자유게시판> 에서 글이 없어져서..
<갈릴리> 의 주요 '미덕' 들 중 하나인 열린 의식에 다소 의아했구요.
짧은 생각을 <생각방> 에까지 올려주시니 되레 부끄럽기만 합니다.
잠시라도 카페지기님이나 이곳 갈릴리의 운영진 분들을 향해 가졌던 '섭섭함'..
'열린 생각과 태도에 대한 의구심' 에 대해서는 더욱!
개인적으론 그저 고맙습니다.
<갈릴리> 가 새해에도.. 번창하기만을...!
종교와 과학에 대해,
신앙과 삶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꾸준히 성숙하고 깊이 있고,
끝없이 열려 있는 카페가 되길 희망합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여주는 글로서 우리 각자의 영혼을 성찰하여 맑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종류의 비판도 전혀 부담갖지 마시고 올려주세요. "사회적 가치"를 갖고서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참으로 폐부를 찌르는 논평입니다. 고맙습니다.
한때는 저런 간증에 목말라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감정적 열광을 한적도 있었습니다.또한 바른 신앙이라고 믿었던적도 있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이것이 실질적 현주소라고 봅니다. 아직도 기독교는 결혼시켜 출가 시킬 때가 아닌지 아니면, 할 생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출가 시켜 성인으로 성장 시켜야 할 자녀를 어거지로 붙잡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소중한 글 감사드립니다. 완전 심장에 남는 내용이네요.
소중한 글 감사드립니다. 완전 심장에 남는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