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작품]
♧ 들풀 – 민병도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 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 민들레 방점 - 권숙월
민들레는 책벌레다 바람의 글씨, 물의 문장, 구름의 책 언제 다 읽어내려는지 시험 공부하듯이 중요한 대목마다 방점을 찍어간다 그의 오래된 꿈은 하늘의 백과사전에 방점을 찍어보는 것이지 아기별들과 밤새워 사진 속 온갖 사연들을 읽는 것이지 부푼 꿈 이루려 날개를 달아보지만 아직은 머나먼 기다림이다 봄이 펼쳐놓은 이야기책에 방점을 찍는 밤이면 그 기다림은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 온다
♧ 앉은뱅이꽃 – 김연동
여리고 작은 꽃이 시위하듯 피고 있다
흐린 하늘 한 모서리 깨끗이 닦고 싶어
궐기한 사람들처럼
무리지어 피나 보다
저만치 비켜서서 혼자서 피는 꽃도
먼 듯 가까운 듯 저 꽃 속 꽃이 되어
서로가 젖어 우는 날
꿈꾸고 있나 보다
[특집 2] 무오 법정사지
♧ 법정사지 고사리 – 이창선
서귀포 법정악* 한라산 둘레길에
고지천川 옆 산중에 봉려관이 세운 절
도린곁 무너진 돌담 고사리만 무성해
항일항쟁 수단을 꽃 피우기 위해서
김연일*의 거룩한 뜻 실행에 앞선 스님들
서귀포 순사주재소*에 서릿발을 내리다
무오년 그 모습이 선명하게 오는 오늘
우리는 이 빈터에 무엇을 새겨 놓을까
먹먹한 가슴 헤집는 고사리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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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악 : 서귀포시 하원동 산1-1번지에 있는 오름.
*봉려관 : 비구니(1863~1938)는 1908년 관음사, 1911년 법정사를 창건, 제주불교 중흥조이며 애국자이시다.
*김연일 : 법정사 주지.
*순사주재소 : 일제강점기 파출소.
♧ 법정사 옛터에서 – 한희정
나뭇잎 흔들려요
맞바람 항변인가요
후드득 소낙비 꽂혀요
눈물 감춘 절규인가요
새싹이 뾰족 돋아요
우주 향한 일침인가요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통권 제2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