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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리버 크루즈 낭만여행
-중세 동유럽 문화 탐방-
제3화 암스텔담 근교여행
2016년 6월 14일
-레이든 헤아그 텔프트 로텔담 차량관광-
아침 9시 정각 호텔로 찾아온 가이드와 함께 암스델담 근교(레이든 - 헤아그 -
텔프트- 로텔르담)관광을 위하여 암스델담을 떠나기 전에 렘브란드가 말년에
살든 집을 찾아 보았고 지금은 흑색 건물로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렘브란트는 대작 “야경”을 만들 때 이 장소가 협소하여 집 근처의
남교회에서 장소를 빌려 그곳에서 작업을 하였다고 하여 근처의
남교회를 찾았다
남교회는 17세기 건축된 신교회로써 최초로 프로테스탄트 신교 예배만을
위하여 건설된 교회로써 렘브란트의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렘브랜트의 자녀들이 매장된 교회이기도 하여 우린 교회내부로
들어갔다 지금은 교회로 사용하지 않고 문화 공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교회의 역사를 알려 주는 비석과 지하의 창고
어렵게 교회 관리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워
현제에는 콘서트나 문화공간으로 임대하여 주면서 보수 유지만 하고
있다고 하며 “야경” 작업공간이나 렘브란트의 자녀들 무덤에
대하여서는 자기도 모른다면서 아래 바닥의 비석과 유물을 보여준다
레이든(Leiden)
우린 시간을 재촉하며 레이든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30분만에 도착하였다
화가 렘브란트가 태어난 곳이며 그가 살든 집이 있는 소도시이다
1606년 레이든에서 태여난 램브란트는 레이든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인
1632년 "해부학 강의"를 주문받고 유명해 졌으며 암스텔담으로 옮겨 1642년 "야경"을 그림으로
빛의 화가로 네델란드의 천재화가이다
레이든은 성체 도시였고 로마시대 부터 라인 강의 중요한 거점
도시로써 16세기 기아에 허덕이면서 스페인군을 물리친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 하며 아직도 그 성채가 남아 있다
또한 16세기 최초로 개교한 유서깊은 대학이 있어 대학도시이며
인문학 대학이 제일 유명하다고 한다
오늘 하루 4개 도시를 관광해야 하기에 우린 성곽이 시작되는
동문만 보고 덴하그로 출발 하였다
덴하그(Den Haag)
헤이그라고도 하며 네델란드의 정치 중심도시이다
이곳에 네델란드의 국회 의사당이 있고 정부 관청이 산재해
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 베아트릭스 현 여왕의 궁전과
로얄 시티가 있다고 한다
특히나 평화의 궁이라 불리는 국제사법제판소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1913년 미국의 부호 카네기의 기부금 150,000달러로 지어진
국제 사법 제판소는 지금도 다양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장소이며
법관은 여러나라에서 추천한 판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시계탑과 아름다운 정원은 평화를 상징한다고 하여 평화 궁이라
고도 부르고 있다고 한다
헤아그하면 우리나라의 이준 열사기념관이 있기에
이곳을 찾았다
1907년 헤아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것을 알고
고종 황제는 을사 늑약이 무효임을 만국에 알리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의정부 참찬 이상설, 평리원 검사 이준 그리고
러시아 참사관 이위종 3명을 극비리에 헤이그에 파견하여 6월 25일
헤아그에 도착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만국 평화 회의에서의 폭로는
무산되었으나 7월 8일 국제 기자클럽에서 늑약의 부당성과 일본의
잔악상을 이휘종이 유창한 불어로 “한국의 호소”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여 많은 공감을 받았으나 7월 14일 이준열사는 이곳에서
순직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기념관은 그 당시에는 호텔이었고 이곳에서 순국하셨기에 이곳을 구입하여
기념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넨호프(Binnenhof)
홀란트 백작궁전을 중심으로 유서깊은 건물이 모여있는 광장으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13세기 플로리스 5세가 건설한
"기사의집" 이며 매년9월 국회 개회식때 국왕부부는 황금마차를 타고
군악대의 호의를 받으면서 이 거리를 지나간다고 한다
비넨 호프는 13세기경 네덜란드 백작이 살았던 성인데 성벽 없이
고딕 양식의 건물들과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 성은 가운데 통로가 만들어 져 있는 이유는 소통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의 저택“(Ridderzaal)’은 비넨 호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는 국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이 바로 1907년 제2회 만국평화화담이 열리든 장소로
이준 열사 등의 특사들이 헤이그에 파견되어 을사능약의 부당함과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역설하려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비넨호프 앞 광장에는 네덜란드를 건국의 아버지 빌렘 1세의 동상이
서 있다. 오랜지 공이라고 하는 벨럼 1세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국부로 존경 받는 사람으로 덴하그에는 여러군데
그의 동상이 만들어 져있다
국회 의사당 앞 광장에는 금으로 장식된 분수가 서있고
맨위에 벨럼 2세의 동상이 만들어 져 있었다
이 분수대에는 빅토르 스투어러스(VictorStuers)와 덴하그 주민 86명이 기증한 돈으로
1885년에 만들어 졌다고 새겨져 있었다
마우리츠 미술관 (Maurishuis)
마우리츠 미술관은 17세기 네델란드가 가장 황금시대의 걸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페르 메이르의 '진주 귀거리를 한 소녀'를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1635년 네델란드의 총독 나소 가의 사택으로 지은 고전 르레상스식
건물이었으며 1704년 소실되었고 복원된 후 1822년 왕립미술관으로
개관하게 되는데 오랜지 나소 가의 월리엄 5세의 소장품이 기초가
되었으며 미술관의 첫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마우리츠 하위스라는
하였다고 한다
1795년 나폴레옹은 이곳을 점령하고 소장품들을 모두 프랑스로 가져
갔으나 1차 대전으로 프랑스가 패하자 윌리암 5세의 아들인 벨렘1세가
프랑스로 부터 돌려 받았다고 한다
16-7세기의 주옥같은 800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루벤스 렘브란트 베르베르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6년-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 릴 정도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한 소녀의 모습과 진주 귀걸이가 어두운 배경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면서 사랑스럽게 보이게 한다.
귀걸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고개를 돌린 모습은 빛의 마술을 마음껏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요한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sson of doctor
Joan Deyman)은 1632년 암스텔담 외과 의사 협회의 요청으로
해부학을 강의 하는 박사와 7명의 제자를 그렸는데 빛과 어둠의
조화를 멋지게 만들어 내어 죽음과 삶에 대한 대비를 명확하게 나타낸 작품으로
이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자 렘브란트는 크게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루벤스의 Old womam and a boy with Candles
루밴스의 대표작으로 1600년부터 1608년 까지 이태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이태리 화가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영향을 받아 왔으며 1617년 시인 Dvid 의
“Art of Love”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이 그림을 그렸는데 빛과 암흑의 조화를
사실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으로 할머니의 젊은 시절 화려했든 삶을 회상하며 이제
소년에게로 그 찬란한 눈 빛과 함께 사랑과 희망을 어어주는 순간으로 촛불을 안전하게
소년에게 부쳐 주는 모습으로 인생의 삶이 덧없음을 암시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판데르 베이던 (Van der Weyden1400~1464)의 유화그림으로 내려지는 예수님의 그림으로
이 제단은 마리아가 죽은 아들 곁에서 무릎을 꿇고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제자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타내는 슬픈 감정은 충직한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오는
그림이라고 한다 의식 예복을 입은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이 제단의 사제이라고 한다
Jan Brueghel (I) (1568-1625) & Hans Rottenhammer (1564-1625) -의 협업으로
1595년 제작된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 (이집트 행 비행기에서 의 휴식)
얀 스틴 (Jan Steen 1626~1679)의 1670년대 작품 '옛 노래로서, 그래서 파이프는 젊음'
"나쁜 예가 나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네델란드의 속담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으로
왼쪽에 있는 여자는 스파클링 와인을 받으며 즐거워하며 오른쪽에서 웃는 아버지는
자녀에게 파이프를 피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닥에 있는 토기 주전자 개 의자등이
소박한 한 가정의 유머스러한 이야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우린 많은 시간을 덴하그에서 보내고 나서 서둘러 30분을 달려 텔프트의
관광을 시작하였다
델프트(Delft)
도자기의 고장으로 흰 바탕위에 푸른색으로 투영된 도자기를 델프트 도자기라고 한다
1653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처음 만들어진 푸른색 주석유 도기를 Royal Delft라고도
하며 네덜란드 도공들은 나중에 델프트라는 이름과 함께 주석유 기법을 영국에 전달했다.
오늘날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만든 도자기는 델프트, 프랑스·독일·
스페인 및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만든 도자기는 파이앙스
이탈리아에서 만든 도자기는 마욜리카라고 한다.
17세기 중반 델프트는 많은 사람들은 양조장 사업을 하였으나 1654년 화약 창고가
폭발 하면서 폭발 후 양조장을 도자기 공장으로 전환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도자기
산업에 종사 하면서 도자기 산업이 새로운 사업의 형태로 기반을 잡게 되었다 하며
17세기 중국의 청화 백자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모방하기 시작하여 1640년부터
1740년 까지 델프트 블루의 도자기 산업의 전성기라고한다
하멜과 도자기 이야기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1630~1692)은 1653년 네델란드 텍셀 섬에서 선원 64명과
함께 스파르웨르(Sparweht)호에 승선하여 일확천금을 노리고 아사아로 출항하였으나
6개월 만에 제주앞 바다에서 난파선이 되어 36명만 제주도에 상육하여 관원에 잡혀
노란 눈을 가진 이방인을 효종에게 진상하였다
10여년간 하멜일행은 춤과 노래로 조정을 기쁘게 하고 있었으나
이 이방인들이 탈출을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여수에 12명
남원 5명 순천에 5명씩 노예 신분으로 수용하였는데 남원의
5명은 이곳에서 가마의 화부로 많은 중노동을 시켰으며 12년간의
노예생활을 이겨낸 8명은 1666년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하멜은 동방 견문록이라는 써서 후대에 남긴 사실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지만 남원에 수용되었든 이들은 고국으로 건너가
전라도에서 배운 도공기술을 여기에다 보급하여 텔프트 블루의
원조가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멜 기념비은 제주도 산방산 아래에 세워져있다
구시가지 중심 Markt 광장에는 조각가 핸드릭 더 캐이스르가 지은
빨간 덧문의 시청이 인생적이었고
13세기에 르네상스식과 바로크식으로 지어 재판소로 사용했으나 17세기
화재로 인하여 재건축한 뒤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신교회와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이다
신교회
델프트 출신의 국제법 창기자이자 법철학자로 존경받고 있는
휘호 호로티위스의 동상이 신교회 앞에 서 있었다
1351년 마르크트 광장의 한 노숙자에게 빵을 주려고 하는 시민에게
노숙자는 “형제자매여 하늘을 보소서 성모 마리아님이 내려오고
계십니다‘라고 하여 하늘을 보니 눈부신 광채가 마리아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자리에 교회를 세워야한다고 시청에 건의를
하였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으며 계속 마리아의 환상이 계속됨으로 1381년에
이곳에 신교회를 건립하여 마리아님께 봉헌하였다는 전설이 유래 된다고 한다
신교회는 3가지 돌을 이용하여 건축하였기 때문애 교회의 탑도
색깔이 다르게 보이며 스테인그라스와 1889년에 완성된 파이프
올간도 유명하다고 한다
신교회는 화재등 3번의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1965년에 109M의
첩탑을 가진 교회로서 건국의 아버지 윌리엠1세의 안장으로 시작하여
왕족 오랜지가의 묘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1584년 자객에 의하여 샬해 된 국부 윌리암 1세의 모역을
이 교회에 만들기 위하여 당대의 최고 건축가 발하자르 제라드가
설계하고 그의 아들이 완성한 묘역은 1621년에 완공되어
40년만에 이곳에 안장되었으며 그 후 역대 오랜지 가의 묘역으로
활용하였다
2013년 스키 사고로 죽은 둘째 왕자 요한 프리소(Johan Friso)의 무덤도 여기에
있으며 장례식도 이곳에서 엄숙이 진행되는 비디오도 상영하고 있었다
1806년 12월 22일 서거한 Graemal 왕자의 석관도 교회의 한 회랑에 안치되어 있었다
우린 신교회를 나와 프린센 호프(Prinsenhof)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원래15세기 수녀원으로 건축하였으나 1572년부터 빌럼1세가
왕궁으로 사용하였으나 1584년 스페인의 펠리페2세의 사주를
받고 프랑스인 자객 발타자르 제라드가 이 궁정 계단에서
저격하여 국부를 잃게 되는 슬픔역사를 가진 박물관이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빌렘1세를 1층 기둥 뒤에 숨어서 저격하여 숨지게
하였으며 그 탄흔이 그대로 벽에 남아 있어 그것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또한 저격범 제라드의 사진과 사용하였든 총도 전시하고 있었다
내부의 중앙부분에는 역대 왕가 인척들의 인물 사진들이 있으며
그들이 사용하든 생활용품과 델프트 불루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왕가에서 애호하는 델프트 불루의 모습 정원도 아름다웠으며 정원에는 Stantvastich의
동상이 서 있었다
델프트 구교회
1246년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는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한 개신 교회로써 철탑이 75M나 되는 아름다운 교회이지만
2M가량 기울어져 있어 “피사의 사탑”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보수 공사 후 이젠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내부는 화려한 스테인글라스 아래 1400개가 넘는 가족묘가
지하에 있으며 특히 1975년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 출신 유명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무덤도 여기에 안치
하였다고 한다
구교회를 나와 운하 쪽으로 걸어 나오니 16세기에는 호텔로 사용하든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 2층 여관방에서 빌렘1세를 자격했든 범인이
투숙했든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내용을 2층벽에다 걸어
놓고 있었다 지금은 유명한 빵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델프트는 이름다운 도시로써 운하 양편에 15세기 지어진 집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노테르담 (Notterdam)
우린 30여분을 달려 오늘의 마지막 관광지인 북해의 최대 항구도시 로테르담 행했다
네델란드의 제2도시이며 바이킹의 무역 항구인 로테르담은 2차 대전으로 거의 시 전체가 파괴되어
가장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재건을 위하여 새로운 도시계획을 만들어 실행함으로써
지금은 북구에서 가장 활발한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참신한 건축물의 전시장으로 명성을
나타내고 있다
큐브하우스 1956년 피트블름이 설계한 건물로 루빅 큐브를 비스듬히
연결한 맨션으로 기숙사 형식의 호텔과 스테이 오케이 호스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 도시마다 독특한 전통 재래시장이 있는데 네델란드는 이런곳이 없어 로테르담에
세계적인 네델란드의 재래시장을 최근에 완성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마르트할(Markthal)
이라는 건물이다
CNN은 세계 10대 건물로 선정할 정도의 아름다운 건물이며 건물은 10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15개의 대형 음식 상점들과 8개의 레스토랑 228 가구가
사는 아파트와 1200개의 주차 공간을 이 건물 안에 배치해 두었다고 한다
2014년 오픈식 날 건물 전체의 벽화 조화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의상을 준비한 막시마 여왕이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에라스무스(ERASMUS)다리는 로테르담의 15세기 신학자이자 인문학자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시대 양대 천재로 불리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의 이름에서 따와서 1996년에
개통되었다 주의에는 로테르담 호텔을 비롯한 현대건물들이 줄지어 만들어 져 있었다
유니레버는 생활용품회사로써 네덜란드와 영국의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10대 부자 기업이다. 실험정신이 강한 유니레버는 2005년
외부에서 만들어이렇게 옮겨놓은 톡특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De Burg(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다
바쁘게 4개 도시를 관광하고 2시간을 달려 암스텔담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이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우린 호텔에서 보이는 “The Eye”라는 건물에서 가이드와 함께 경치를
만킥하면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땅거미가 질 무렵 호텔로 돌아와
오늘의 강행군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