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상품을 직접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특허출원에 만족하거나 비즈니스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엔지니어 전필동씨는 매번 두 마리토끼 잡기에 사력을 다한다. 에어운동화를 시작으로 수많은 아이디어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그가 체형보정 코르셋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취재 김명은 기자 사진 신승희
타고 다니던 고급 외제 승용차와 소유하던 별장 12채를 처분한 전필동(54)회장. 그는 그 돈으로 혼자서도 입기 편한 체형보정용 여성 코르셋 개발을 시작했다.
조각가에서 발명가로 변신해 그동안 여러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아 히트시킨 그도 이번만은 쉽지 않았다. 총 6년간의 개발과 연구 끝에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95% 만족할 만한 수준의 기술력을 얻었다. 기술의 핵심은 바로 좌우를 끌어오는 힘이 강한 특수 지퍼와 늘어나지 않는 원단. 기존 코르셋처럼 끈을 묶지 않아도 되고 스판덱스 원단보다 몸매보정 기능이 뛰어난 제품을 향한 집념이 낳은 결과다.
“어떤 개발 상품도 보통2년이면 론칭을 할 수 있는데 여성 속옷은 아니에요. 많은 전문가들이 개발 과정에 참여했지만 명확한 해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죠. 영원히 미궁에 빠질뻔한 아이템입니다.”
오랜 고생 긑에 탄생한 NB(New Body)코르셋. 전 회장이 만든 특수 지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강제로 잠그면 체인이 손상되고 슬라이더 뒷부분이 벌어져 쉽게 기능을 잃어버리는 기존 지퍼의 한계를 수정, 보완한 듀얼 지퍼를 개발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특허출원을 했다. 듀얼 지퍼는 기존 체인 옆으로 낚싯줄처럼 생긴 레일을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쉽게 닫히는 위치까지 체인을 끌어와 강제로 얽어서 맺는 방식이다. 이 지퍼의 개발로 그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YKK를 긴장시키로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NB코르셋으로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시장 공략의 최대 목표
지퍼를 개발하고 이를 코르셋에 응용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 외출을 위해 보정속옷을 입을 때마다 시간이 많이 들어 짜증을 내던 아내가 자극을 준 것.
기존 코르셋처럼 끈으로 묶지 않고도 혼자서 입고 벗기 쉬우려면 지퍼의 기능이 특별해야 했다. 그야말로 그가 개발한 듀얼 지퍼와 코르셋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셈이다.
NB 코르셋은 론칭3개월 만에 국내 보정속옷 16개 브랜드 가운데 매출 2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매달 4억~5억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지만 전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 교정속옷 시장의 10배에 달하는 규모의 일본 시장에 진출해 제대로 한번 ‘사고’를 치겠다는 각오다.
NB 코르셋은 국내에서도 이미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주문 물량을 제때 맞추기 힘들 정도다. ‘행복한 비명’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도 전 회장은 영업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우리의 목표는 일본 시장”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YKK를 긴장시킬 만한 새로운 지퍼 기술과 보정을 넘어 교정의 개념으로 진화한 코르셋의 등장이 일본속옷 시장의 일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강한 확신 때문이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스판덱스 원단의 코르셋이 한국에서 1백5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데 반해 NB 코르셋은 70만원대. 가격 경쟁력에서도 앞선다.
실제로 NB 코르셋은 지난해 10월 일본 오사카에 있는 한 산부인과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산모들에게 출산 후 다이어트 코르셋을 착용하게 한 결과 산후 회복이 빠르고 몸매 교정에도 큰 효과가 있어 일본 쪽에서 납품을 요청해왔다. 전 회장은 이를 계기로 올해 3월 (사)한국체형보정의학연구소를 설립했고, NB 코르셋을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등록해 의료용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현상 파괴적 기술로 만든 NB 코르셋
전 회장은 NB 코르셋이 기존스판덱스 원단의 코르셋과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하게 될 것으로 봤다. 한쪽이 흥하면 다른 한쪽이 망하는 구조라는 것. 그는 “기존 코르셋이 현재 체형에 맞춰 입는 식이라면 NB 코르셋은 의류를 신체 형태의 틀 속에 입혀 고온으로 가열한 뒤 급랭시켜 형태 보존을 이루는 방식이기 때문에 교정의 효과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허리둘레가 32.5인치였던 한 화가분이 우리 코르셋을 착용한 지 1년2개월만에 25인치로 줄어들었어요. 체험을 통해 직접 효과를 보자 우리 사업에 합류하셨죠. 또 결혼 후 10년간 아이가 없던 한 주부는 어머니로부터 코르셋을 선물 받아 입은 지 2달 만에 임신을 했어요. 산부인과 의사가 코르셋 착용으로 장기가 제자리를 찾고 배가 따뜻해져 그런 것 같다고 말하더래요.”
이 코르셋은 개발 과정에서 수백 벌의 샘플이 만들어졌고, 대학교수와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체험하고 리뷰를 작성했다. 또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를 6개월간 대여해 미술작품과 연계해 전시하는 독특한 홍보 방식을 취했다.
“예상 외로 큰 파장을 일으켰어요. 체험하신 분들이 정말 놀라워했어요. 어떤 여성분은 전화를 하셔서 ‘제 가슴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고 고마워했어요. 원단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배 주위 살들이 상체로 올라가 가슴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제 아내도 브래지어가 A컵에서 B컵으로 바뀌었어요.(웃음)”
전 회장은 NB 코르셋의 체형보정 기능이 기존 코로셋 시장을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엔진을 바꿔 다는 시대에 엔진 기술자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파괴적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아름다움은 물론 건강도 챙긴다
코르셋의 기능은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다.
청소년은 자세 교정을 목표로 한다. 공부하는 자세가 흐트러지면 몸에 무리가 오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이를 코르셋이 막아준다. 더불어 청소년들의 비만 증세나 척추 이상을 바로잡는 역할도 한다.
20대 시장은 가장 파이가 크다.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하는 때라 아무래도 코르셋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큽니다.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은 허리 반 인치에 민감합니다.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면접을 앞둔 사람들이 찾을 때가 있습니다. 스튜어디스나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자세 교정에도 좋습니다.”
30대는 출산 후 몸매 관리에 목표를 두고 있다. 출산 전 몸매와 똑같은 체형틀을 착용하면 예전 몸매로 돌아갈 수 있다.
40대부터는 무너지는 몸매를 보정하는 데 집중한다. 전 회장은 현재의 스판덱스 원단의 코르셋은 이 기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50대 이상은 건강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이 죽을 때는 척추가 반듯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은 생사를 확인할 때 허리 밑으로 손을 넣어봅니다. 등이 약간 굽어지는 체형을 유지해야 건강에 좋은데 NB 코르셋이 교정 기능을 할 수 있어요.”
잘 빠진 몸매를 흔히 S라인 이라고 부른다. 전 회장은 “진정한 S라인은 허리 옆 라인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등에서부터 엉덩이로 내려가는 선을 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엉덩이 탄력을 높여주는 올인원을 입어야 하는 이유다.
기술 개발을 끝낸 전 회장은 앞으로 다양한 영업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다. 영업사원들의 방문판매는 기본이고 인터넷 사업부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다. 명동과 청담동 등에 명품관을 열어 오프라인 판매도 본격화 한다. 명품관은 일본과 중국에도 열 계획이다.
부침 많았던 사업... 경험이 재산
전 회장은 코르셋 사업을 하기 전에도 많은 아이디어 히트 상품을 내놓았다. 하루 매출 1백40억 원일 때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에어백 운동화를 개발해 1천만 달러 수출실적을 올렸다. 당시 그가 설립한(주)해머스포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그를 소개할 때다. 종업원만 4백 명이 넘는 규모였다. 그러나 무리한 대리점 운영으로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2년간 무위도식하며 지내다 컬러운동화로 또 한 번 대박을 터트렸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잃기 마련. 그는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했고 늦둥이 딸이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 딸이 성장해 지금은 아홉 살이 됐다. 이후 가수 세븐이 뮤직비디오에서 신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던 바퀴달린 신발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장마철에 이 신발을 신은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반품이 쏟아졌다. 겨우 본전치기 장사를 하고 끝냈다. 더 이상의 모험은 중단하고 기존 제품을 기술력으로 업그레이드한 인라인스케이트 에어스켓을 론칭했지만 제대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모델로 김태희를 쓸까 동방신기를 쓸까 고민했어요. 김태희가 인라인스케이트를 잘 탄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동방신기를 최종 선택했어요.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주 팬층이 여중생이었는데.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연령이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남자아이들이었어요. 여자아이들이 빠져든 동방신기를 그들이 좋아할 리 있겠어요?”
발명가들은 찰나의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는 “한번제품을 개발해서 돈이 생기면 그걸 다 써버렸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 다시 개발했죠. 그러나 여러 번의 부침을 겪고 나니 이젠 경영이 뭔지를 좀 알겠더라구요.”
지금까지 오는 데 가족의 힘이 컸다는 그는 마지막에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삶도 대단하지만 아들도 그에 못지않은 투지가 있다고.
“아들이 대학 4학년 때까지 야구를 했어요. 저는 기초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아들이 운동을 해도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늘 얘기했어요. 그런데 얘가 어깨를 다쳐 야구를 못하게 됐어요. 그러자 이 녀석이 다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덜컥 합격하는 거예요. 김연아 선수 선배죠. 그러더니 그 어렵다는 교원임용고시에서 1천3백여 명 가운데 1등으로 붙었어요. 정말 대단한 놈이지요. 저보다 더한 놈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