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길의 마지막에서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어쩐지 커다란 감동이 된다. 장흥 기행의 끝을 소설가 한승원의 작업실 ‘해산토굴’(안양면 율산마을)을 찾아가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그런 감동을 충분히 예감케 했다. 찾아가는 길은, 좌우로 억불산과 사자산이 근거리에서 보이는 길목에서 수문해수욕장 방면으로 죽 내달리면 된다. 억불산의 며느리바위가 가깝게 보이고, 꾸물꾸물 사자가 일어서는 듯한 사자산의 전경도 손닿을 만한 거리다. 이 마을 저 마을을 거쳐 득량만의 바다가 가까이 있는 수문해수욕장에 이르면 그 바닷가 건너편이 율산마을이고 그 마을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가 해산토굴이다. 이곳을 찾아가는 방법은 이처럼 장흥읍에서 내려오다 안양면에 도착해 수문해수욕장을 물어보면 가장 쉽다. |
율산마을 앞에서 작가의 작업실을 물었더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작가의 살림집과 그 윗편에 있는 작업실의 위치를 상세하게 안내해주었다. 우리가 해산토굴을 찾아간 것은 남포의 일출을 빗줄기에 빼앗겨버린 후 짙은 안개가 낀 이른 새벽이었다. 동네의 낮은 뒷산 중간쯤에 자리한 그곳은 깊은 산사의 암자처럼 기와지붕이 나무 사이로 살짝 빗겨있고 마당앞으로는 석등 하나와 석탑이 놓여 있었다. 아침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느라 이리저리 염탐을 하는 사이, 이제 막 기침을 하고 나선 듯 부산하게 앞마당을 오고가는 한승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해산토굴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사립문은 여닫을 것도 없이 엉성한 어망을 둘러놓아서 처마 밑 풍경소리와 그 옆 대나무숲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낯선이의 두드림을 대신 알려주었다 |
한승원의 작업실 해산토굴에는 이모저모 볼거리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명물은 토굴의 주인이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쁜 것”이라 일러준 석등, 탑, 그리고 수련이 앉아 있는 연못이 그것이다. 석등은 마당 가장 앞쪽에 놓아 들어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먼저 닿는 곳에 있는데 주인은 부처님 오신 날도, 성탄제에도 석등의 불을 밝힌다며 살풋 웃어 보였다. |
마당 아래 연못에는 노란 수술을 감싼 자주빛 연꽃이 이른 아침부터 풍성하게 개화해 있었다. 연못 주변에 서자, 작가는 시간을 잃은 것처럼 부산하게 서성거리다 연꽃과 비단잉어에 대한 관찰기록들을 섬세하게 전해 주었다. 수련은 아침 7시에 피어, 9-10시에는 만개하게 되고, 11시가 지나면서부터는 조심스럽게 꽃봉우리를 모아 물속으로 잠기어 초라한 뒷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자존심 강한 꽃이라고 한다. |
그리고 자주빛 꽃잎 가운데에 노란 수술이 마치 연꽃 받침 위에 밝힌 촛불의 형세를 보는 듯 하고, 물위에 떠 있는 연꽃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연못 위에 비친 연꽃의 그림자와 함께 할 때라고 말하면서 ‘실체’와 ‘그림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성찰을 넌지시 건네주었다. 연못을 두고 불교와 철학적 사색을 설파하는 토굴의 주인은 어느새 그의 소설과 닮아가고 있었다. 미루나무, 백양숲에서 내려온 물길과 지하수를 한데 모았다는 연못의 물은 고요하게 깊이를 만들어냈다. |
‘향초’란 일반적으로 ‘香草’라고 그냥 생각하기가 쉽지만, 작가는 애지중지한 잉어의 이름을 동다(東茶)의 훌륭함을 예찬하는 [동다송(東茶頌)]과 다도의 학술적 이론을 기록한 [다신전(茶神傳)]을 지은 다신 초의선사의 ‘다반(茶半)의 향초(香初)’에서 빌어온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찻물을 끓여 넣고 처음으로 우러나는 차향이 으뜸이듯이, 비단잉어는 작가의 하루를 붙드는 ‘향초’가 되고 되고 있는 셈이었다. |
해산(海山)이라는 자호에 당(堂)이나 헌(軒)과 같은 근사한 용어는 마다하고, 스님이 수도하는 장소를 뜻하는 토굴(土窟)이라는 겸허한 현판을 건 그의 작업실은 멀리 득량만의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졌다. 토굴거사의 안내로 작업실을 들어갔더니, 그곳 역시도 하나의 연못처럼 아늑했다. 컴퓨터가 놓인 작업실의 벽에는 이제 막 꽃잎을 피우려는 연꽃을 사진에 담아 걸어두셨고, 아담한 나무결의 부엌은 차향기가 가득 든 찻잔들이 놓여져 있고, 거실에는 득량만의 바다가 그대로 들어올 수 있게 통유리창을 내고 칸칸을 채우는 책들이 들어 있었다. 한지로 쌓은 등이나 한쪽에 벽난로를 마련해둔 여유로움은 작업실의 멋을 더했다. |
잠시 후, 마당에 있는 대나무 앉은자리로 옮겨가 작품 계획에 대한 이야기와 토굴에서의 일상을 듣기로 했다. 바다가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바다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드물다는 것. 곧 출간계획인 바다소년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 [물보라]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도 계속 바다 이야기와 장흥 이야기를 써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한때 로렌스의 문명비판적인 면모에 관심을 갖게 된 후, 90년대 [연꽃바다] 등에서부터는 우주적인 생명의 세계에 천착하게 되었고 |
지금은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을 반성하며 전우주적 입장에서 노장의 상생의 철학과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에 입각한 글쓰기의 행로를 밝히기도 했다. 고향에 집필실을 정해두고서 모든 소설의 발원지인 이곳, 자기 뿌리로 찾아들어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때론 앞마당의 연못을 명상의 요람으로 삼고 철쭉을 매만지며 지내는 일상 또한 전해주었다. |
첫댓글 이 글을 푸름님께서 직접 쓰셨나요? ^^ 존경스럽습니다. ^^
아 죄송 ^^ 오래전 제 블로그에 퍼 놓았던걸.... 옮긴건대... 출처를 모르겄네요. 당근 찿아봐서 올려야겠지요.
제 큰 이모부님 형님이신데..^&^..
와~ 초인님 집안이 왜 그리 크게 느껴질까요?^^
그럼 언제 함 찿아 뵙고... 사진 좀 많이 찍어오셩~~
이렇케 인제가 계신지도 모르고 오늘날에 살기 바빠서 귀한신 분을 몰라뵙고 또 글쓰시는 분을 너무 소홀히 하는것이 우리나라에 문화가 너무 단절되어 문제에요 귀한분을 대접해야하는시절이 와야하는데 바다이야기를 많이 쓰시기를 바래요날에 우리에 문화유적이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