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세기의 입시 이야기이므로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화외고 재학생들에게 입시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혀둡니다.
* 고1
선생님이 다니던 배정고등학교는 부산의 인문계 고등학교입니다. 1학년 입학 정원은 대략 610명 정도였고, 입학 당시의 서류에 68이라고 크게 써 있었는데 그것이 입학 등수였습니다. 그때는 전국 단위이거나 지역 단위인 고입 선발고사가 있었습니다. 11월 모의고사(중앙교육)에서 총점 백분위 96.1% 를 받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부산대 수학교육과에 도전해보라는 격려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 고2
여름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나의 장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부모님께서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곧 이혼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 때 두 가지 큰 결심을 합니다. 하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음악 테이프를 버리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TV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즐겨 듣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 테이프는 너무 많이 들어서 테이프가 끊기는 일도 있을 정도로 집에서 공부할 때마다 항상 틀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1집부터 5집 정도까지의 테이프를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음악을 들으며 수학문제를 푸는 것은 정말 즐거운 추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서 과감하게 망치로 테이프를 모두 박살내고 버렸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해도 공부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만점을 목표로 공부한다면 음악은 잠시 꺼 둡시다.
TV도 같은 맥락에서 박살내서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TV와 단절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전에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때부터는 초인적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고3 6월까지 성적이 지속적으로 향상됩니다) 06:00 기상 24:00 취침. 그리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은 공부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휴일에는 일부러 비싼 독서실에 아침 일찍 가서, 본전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공부만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11월 모의고사(대성)에서 총점 백분위 97.9% 를 받았습니다.
* 고3
1997.03.22 에 응시했던 논술 모의고사의 성적표를 보고 심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시험은 학교에서 청남관이라는 별도의 독서실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25명만 응시했었는데, 나의 논술은 전국 하위 5.5% 였습니다. 지금 이 성적표를 교사가 되어서 다시 보니, 이 학생에게 열심히 논술을 준비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생 허용훈은 그 당시 '논술 채점자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혼자서 논술을 공부합니다. 수능이 끝난 다음에는, 논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글만 모아둔 책을 구입하여 그 글을 흉내내는 연습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서울대 논술 당일에 신적인 감흥에 의해서 한 번에 논술을 완성하고 모자란 수능 점수에도 불구하고 합격을 했습니다. (서울대 수학교육과 논술 비중 4%)
이 논술시험에 응시한 학생 중에서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응시한 학생은 79명이었는데, 지원자 중 나의 석차는 76등이었습니다. T-T
4월 모의고사(중앙교육)에서는 총점 백분위 94.54% 를 받았습니다. 10월 모의고사(중앙교육)에서는 총점 백분위 95.18% 를 받았습니다. 지금 성적표를 분석하니까 중앙교육에서 출제한 시험은 성적이 잘 안 나왔네요.
'서울대 수학교육과는 역시 쉽지 않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포항공대 수학과를 노려보자.'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6월 모의고사(대성)에서 총점 백분위 98.6% 로 나의 고등학교 생활 전체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받았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모의지원에서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합격하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10월 모의고사(대성)에서는 총점 백분위 97.3% 를 받았습니다.
* 수능
실제 수능에서는 총점 358.5점/400점이었고 총점 백분위는 98.8% 였습니다. 모의고사로 가장 좋은 성적이었던 6월 모의고사보다 실제 수능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 대형학원에서 만든 배치표에서는 서울대 수학교육과 365점, 포항공대 수학과 350점이었습니다. 정시에 앞서 특차전형이라고 수능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두 학교에서는 상위 1% 성적의 학생들만 응시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차는 응시를 못했었는데, 그때 상위 1% 성적이 되었더라면 포항공대 수학과에 합격했을 것이고, 나는 이화외고 교사가 못 되었겠지요:)
마음 속에는 두 학교 밖에 없어서 두 학교만 지원을 했습니다. 포항공대가 배치표 상으로 무려 8.5점이나 남으니까 여기에 안정적으로 합격할 것으로 기대하고, 서울대 수학교육과는 그냥 무모한 도전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로 하향지원을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집념의 설득을 하셨지만, 나는 더 고집스럽게 수학교육과로 소신 상향지원을 했습니다. 그 해 사범대 자열계열 학과 중에서는 수학교육과만 경쟁률 1.2 : 1 이었고, 나머지 학과들은 5 : 1 이상이었습니다.
포항공대가 먼저 발표났는데, 탈락되었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된다는 말의 뜻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합격했습니다.
* 마무리
논술도 못하고(하위 5.5%), 모의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이 아닌 경우(서울대 수학교육과 기준)라 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잘 된 사례(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했던 20세기 입시와 달리 복잡한 21세기 입시를 준비하는 이화외고 재학생 여러분, 힘내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