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24세 때 고향을 떠났으니 48년이 되었으니 반 평생이구나.2011년 8월 28일 벌초에 갔다가 손곡문중 카페 운영자와 의논 끝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입각해서 고향의 이야기 역사를 카페에 담기로 했다.
어떤 문헌이나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글 쓴이의 아주 어릴 때 기억을 살리고 어른들의 증언을 참고하여 글 쓴이의 주관과 판단을 조금 담기로 했다.
기억과 추억들이 머리를 떠날가봐 마음이 조급해 진다.
읽은이와 생각과 다르드라도 선의의 충고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양해을 구하면서 ......
1944년 이른 봄.
고향의 봄이 물 오르기전에 농부들은 삼삼오오 청동 오리가 놀다간 논밭으로 내일의 희망을 품고 백조같은 모습으로 들판을 누빈다.
도호댁 집에는 어머니의 가날픈 울음으로 슬픔이 가득하다.집 밖을 나가는 할머니 (옥천댁)는 하얀 무명천으로 무엇을 앞 가슴에 품고 삽을 어께에 걸머맨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앞산의 얕은 그릉지대로 간다. 2살된 나의 남자 동생을 묻어 버리고 온것이다.홍진으로 가 버린 것이다.얕은 그릉지대에는 어일 아이들의 공동 묘지로 초 겨울에서 이튼 봄까지 수십명의 어린 영아들이 대한민국의 호적도 갖지 못한 체 살아진 것이다.삶의 환경이 연약하고 의료시설도 없었고 영양 부족으로 아프리카의 르완나 이린와 같이 다리가 꼬일데로 꼬이고 눈은 촛점을 잃은 상태로 그래도 부모들은 자라 주기만 기다렸다.
코레라,홍역,마마,장질부사 ,등 괴질병으로 자식 농사 반타작으로 만족 해야만 했다.지금의 공동 묘지을 애장이라 불렸다.애장은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은다. 적당히 구덩이 파서 죽은 사체던져 버리고 몆삽 흙으로 마감핳후 돌 세개 얺어 놓으면 끝이다.생이라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일단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놈의 여우들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다. 갖 파묻은 어린시체로 만찬을 즐긴 것들이 등네를 스치면서 캑캑 소리을 지르며 지나가니 가관이다.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여우 못지않게 낮이면 빨간 맆스틱으로 치장하여 이골목 저골목으로 배회하니 어른들은 미친개라 조심하라 했다.
어머니의 슬픔은 제 일막을 끝내고 곧 논밭으로 생활전선에 복귀한다.어머니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정한수 떠놓고 가화만사성을 기원하며 빌고 또 빌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우리들은 어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게 아닐까?
어린 넋들이여 깊숙히 고이 잠들어라.
너무 오래 살아 대단히 미안하다.
첫댓글 참 애닯습니다. 그 시절 우리 엄니들 짐승같은 삶을 살면서 숱하게 애를 낳고는 의료시설이 부족하여 반수 이상을 죽어보내야 했으니 얼마나 애절합니까? 여우란 놈이 그런 짓을 하고 개까지 그런 짓을 했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불쌍한 영혼들, 부디 극락왕생하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