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무바라크가 잘 포장된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너무 "한 쪽에 치우친 정보"만을 접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말은 포장하기 나름이기에, 무바라크의 업적이라는 것이 정작 당사국 국민들에게는 가장 큰 실책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윗 분이 "시위대를 경찰이 아닌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 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 이라고 적어놓으셨는데,,,
이집트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과잉진압했으며, 군 병력은 시위대에 무력행사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몇 일 전에는 "군은 이집트 국민에게 무력을 사용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라고 성명 발표한 것이 한글 기사로도 여기저기 떠돌았는데... 뉴스 못 보셨나 봅니다.
계속되는 경찰이나 친정부 단체와 시위대의 충돌을 막기 위해 몇 일 전부터는 이집트 육군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다른 집단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을 차단했었죠..;
질문에 언급된 무바라크의 업적이라는 것들 중 실효있다 인정되는 것은 아래 두 가지 정도로 생각됩니다. 그것도 좀 더 살펴봐야 할 문제긴 하지만,,;
1. 이집트 국내의 민주화에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기여
2.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으로 중동 분쟁 완화에 기여
위 두가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우선 무바라크가 합법적인 지도자인가를 짚고 넘어가자면...
장기 집권의 합법화를 위해 법과 제도(선거)에 손을 대 왔기 때문에 이를 합법적인 집권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이번 이집트 사건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간략히 이집트와 그 주변국의 현대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바라크 이전의 이집트
무바라크 이전의 이집트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아랍 입장에서 보자면 침략이나 다름없었고 이스라엘을 몰아내기 위한 수 차례의 중동 전쟁.. 그 "저항의 촉"에서 항상 선봉에 서 왔던 국가가 바로 이집트였죠.
국내에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현재의 중동 갈등 현상에 대한 원인에는 대체로 관심들이 없는지라 생소하실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섰던 아랍의 지루한 투쟁은 결국 이스라엘이 더욱 견고한 강대국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랍 세계는 이집트를 필두로 외세에 저항하기 위해 내세운 아랍 민족주의라는 이념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각국의 이해관계에 맞추어 아랍 민족주의에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 하야한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은 이 시기에 대통령이 되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저항의 선봉이던 이집트가 가장 먼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었죠. (당시 이집트는 일시적으로 아랍 22개국의 연맹체인 아랍 연맹에서 제명당함)
잠시 중동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 정세를 살펴보자면,,,
당시는 아직 냉전시기였고, 독립 후에도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방국가들로부터 실질적 독립을 얻고자했던 많은 아랍국가들은 중립 노선을 취하되 사회주의 이념을 채택해 소련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석유자원의 보고인 중동으로 남하하려는 소련을 저지하고, 중동 점유를 지속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트루먼 독트린, 아이젠하워 독트린 등으로 잘 알 수 있듯 필사적이었습니다.
이 때 이집트(중동의 주요 국가들 중에서도 이집트는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한 강대국에 속했었음)에 친미 성향의 무바라크 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미국에게는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었겠죠?
냉전이 끝날 때 까지 미국은 이집트를 비롯하여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산유부국 등을 거점으로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고히 다집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아랍 대중, 이집트 국민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관점, 즉 아랍인과 이집트 국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집트가 '반 아랍, 반 이슬람'적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중동지역 내 거점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적이던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당연히 그 대가를 기대하겠죠? 경제 원조 확대라든지, 미국이 이집트와 중동 내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갈등에서 이집트를 지지한다든지..하는 것들 말입니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이런 보상은 잘 적용 되었습니다. 한 때 이집트는 대한민국보다 많은 면에서 앞서가는 선진국이었죠.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걸프전쟁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다시 서방 세계 입장에서 중동 정세를 살펴볼까요?
중동의 석유 밭을 넘보던 소련의 위협이 사라졌고, 이라크나 이란처럼 석유를 바탕으로 미국 같은 강대국의 영향력을 떨쳐내고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손쉽게 먹혀주지 않으려는 나라들이 생겨나긴 했으나... 미국은 두 차례의 침공을 통해 이런 불안요소를 진압했죠.
그럼 냉전 종식 후 절대적인 강대국 위치에 오른 미국에게 이집트의 용도가 뭘까요? 사실상 냉전시기의 요긴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겠죠?
이집트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무바라크가 집권하고나자 질문 내용에 언급하신대로 평화도 찾아왔고, 전쟁 기간 동안 닫혀버렸던 민주적 절차들도 하나 둘 씩 열리기 시작하고... 일종의 보상으로써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수단과의 분쟁에서 이집트는 항상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었음)으로 정치적으로도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이집트의 문제를 살펴보자면,
그러나 이라크전쟁 이후 용도 불명상태가 되어버린 이집트는 방치되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동안의 무바라크의 치적은... 이스라엘과 더 이상 치고받지 않으면서 찾아온 평화와.. 거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국내의 정치, 경제적 안정.. 거기에 미국의 지원이 더해져 그럴싸한 모습으로 포장된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사회주의 공화국인 이집트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상당 기간 유지되어 왔으나, 제도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죠. 해외 원조와 이전과 같은 이점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무바라크 정부의 무능함이 곧바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이 유지되지 않을 만큼 형편없던 급여수준을 지탱해주던 복지혜택은 원조감소와 함께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집트 경제가 무바라크 집권 초기 발전해온 것에 발맞추어 상승해온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급여는 대다수 이집트 국민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의 이집트 국민이 요르단과 같이 임금이 높은 나라에서 값싼 단순 노무자로 팔려나가 일하고 있으나, 수치상 보여지는 이집트의 경제발전 혜택은 결코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단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오랜 시간 무시되었고, 무바라크는 그 시간이 혁명까지 발전하기에는 아직 충분치 않다고 안심했는지도 모릅니다만..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채 계속 방치되면, 불만이 증폭되어 결국 혁명에 이르는 것은 수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죠?
튀니지, 이집트의 무능한 독재자들은 이렇게 무릎꿇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2대 째 대통령을 하고 있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불안하더라도 아직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걸 보니...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이라는 말은 들어도 자국민들에게 그럭저럭 인정받는 통치를 하고 있나 봅니다. 리비아의 까다피는 장기 집권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대통령인데, 리비아 역시 잠잠하네요.
이걸 보면 비 민주적인 장기 집권 때문이라기 보다는.. 무능한 지도자가 교체되지 않고 실정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결국 지금의 도미노 시민혁명으로 나타난 것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