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토지 컨설턴트 L씨는 고객으로부터 토지 매입대행을 의뢰받고 안면도 일대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하던 중, 특이한 땅을 발견했다. 바닷가 송림과 접한 땅으로 가운데가 움푹 꺼진 300평 가량의 타원형 토지였다. 당시 이 땅은 현지 주민들이 바닷가의 쓰레기를 소각하거나 각종 폐기 농기구를 쌓아두는 야적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흥미를 느낀 L씨는 태안군청에 들러 토지대장을 발급받아 보았다. 그런데 지목이 특이하게도 ‘유지(溜池)’였다. 유지란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논과 논 사이에 연못을 파 물을 저장하던 곳으로, 저수지나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말한다.
L씨가 발견한 땅은 과거 유지였으나, 물이 마른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유지를 매립하려면 논을 소유하면서 그 유지에 저장된 물로 농사를 짓는 사람(몽리민, 蒙利民)들의 동의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체 급수지를 확보해야 하는 등, 매립면허 절차 자체가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L씨가 발견한 그 땅은 자연적으로 물이 마르면서 현재 상태의 토지가 됐던 것. L씨는 곧바로 땅주인을 수소문해 해당 유지를 평당 15만원에 매입했다. 바닷가에 접한 땅치고는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이었다.
땅을 매입한 L씨는 태안군청에 등록전환 신청을 했다. 현재의 지목은 유지이지만 현실지목은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잡종지(雜種地)로 지목을 변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신청은 군청의 민원봉사과에 했고 측량신청(지적공사), 측량실시, 측량성과도 발급, 등록전환 신청, 지적공부정리, 등기촉탁, 등기필증 송부 등의 처리절차를 거쳐 20일 만에 지적 정리가 완료됐다.
허가를 받은 후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메우니 훌륭한 대지가 되었다 송림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조망권도 일품이었다. 주변에 펜션 등 숙박시설이 급속도로 들어서면서, 현재 이 땅은 평당 150만원을 호가해 10배라는 대박을 터트렸다.
유지와 비슷한 것으로 폐천 부지가 있다. 폐천 부지란 지자체의 하천직강공사 등으로 인해 물줄기가 바뀌면서 대지화된 땅을 말한다. 대개 하천관리청은 하천의 신설 또는 개축으로 말미암아 생긴 폐천 부지를 새로이 하천부지가 된 사람의 토지와 교환해준다. 폐천 부지는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지목을 잡종지로 변경하면 음식점 등 상업시설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대적으로 카페촌이 형성된 미사리 일부지역도 폐천 부지에 속한다.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역시 자유로 건설에 따라 발생된 폐천 부지를 개발, 조성했다.
이처럼 하천공사 또는 홍수, 기타 자연현상으로 하천의 유로가 변경되어 하천구역에서 제외되면, 폐천 부지로 편입돼 잡종지 등의 용도로 등록전환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폐천부지 외의 땅을 다른 용도의 지목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업인허가를 받아 목적 건축물의 건축준공이 완료되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폐천 부지의 경우 이와 같은 인허가 절차 없이 곧바로 등록전환을 통해 잡종지로 지목을 바꿔준다. 특히 그린벨트지역 내에 위치한 폐천 부지에는 일부 시설의 건축이 가능하다.
이처럼 발상을 바꾼다면 쓸모없어 보이는 땅도 금싸라기 땅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김영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리서치팀장
1993년 광운대 국문과 졸업/ 98년 월간 전원주택 라이프 편집장/ 2003년 토지개발 전문업체 (주)JMK플래닝 개발사업부 팀장/ 전 광개토개발 대표/ 현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리서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