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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神閨房思老玄虗,弄尾弄璋如竜如虎.重光荒落,五羊献桃.我女,如凰来自丹山,飢不啄粟,貞靜幽閑.昭陽協洽,又擧鸞主,似凰而肥,雖非后也,亦可以妃.旃蒙作畺,三禽子飛,单于之敀,花草何為.
崑山之酒藏於駝卵,三神之薬採於鰲頭,求醬柏谷,漂母殺鷄聞謠“康衢有女如玉,仙風道骨原来多情,無名之花泣於草野,金枝玉葉自是多風,有恨之實落於空汀,拓跋索頭‧慕容紫蒙.”
규방閨房에 신주神主를 모셔놓고 노자老子(道敎,仙敎)의 현허玄虛(道敎의 현묘하고 공허함)를 마음에 품었더니, 딸을 낳고 아들을 낳으면 용龍과 같고 범虎과 같았다. 중광황락(辛巳,BCE100)년에 오양五羊(古代의 國家나 사람을 의미하는 듯, 다섯 羊氏? 현금 中共 땅 南方 廣州의 別稱?)이 복숭아를 바쳤는데, 우리 딸(長女觧凰)은 단산丹山(옛甘州張掖東方・鎭番西北方丹山? 西域의 天山? 현금河北省中西部定縣北方40Km地境檀山? 현금北京北方赤城인근? 赤峰? 赤峰北方天山?)에서 온 봉황凰(봉황새 암컷)이 굶주려도 알곡을 쪼지 않듯 오직 고요하고 그윽하게 등한할 뿐이었으며, 소양협흡(癸未,BCE98)년에 또 란鸞공주(次女)를 들어 올렸더니 봉황(觧凰)이 비슷하나 뚱뚱하여 비록 황후 감 아니어도 비로서는 역시 삼을 만하였고, 전몽작악(乙酉,BCE96)년엔 셋째 금禽(三女)이가 떨어졌는데, 선우單于(匈奴君主)가 돌아왔으니 화초가 어찌 될꼬?!.
곤륜산崑崙山의 술(不老酒?)을 타란駝卵(타조알 그릇)에 담아놓고 삼신산三神山의 약藥들을 오두鰲頭(자라목 그릇)에서 따라놓고 장醬을 백곡柏谷(잣나무골)에서 구한 빨래하는 아낙이 닭을 잡다가 노래 소리를 들었더니 “강구연월康衢煙月(太平聖代)에 옥玉 같은 여인이 있어 선풍도골仙風道骨에 본디부터 다정多情하였는데, 이름 없는 꽃들이 초야草野에서 울고 금지옥엽金枝玉葉도 이날부터 바람 잘날 없더니, 한恨 서린 씨앗들이 휑한 물가에 떨어져서 탁발拓跋씨 색두索頭와 모용慕容씨 자몽紫蒙이 되었다.”하더라(☞朝鮮後裔一派 鮮卑族들의 分枝를 말함인가?).
彊圉淵黙,<禾>母賔天,<存>公下降,存之存之<夫余>之名可以存之.帝叔<夫婁>,爰自<故國>移于<加葉>,生木為柵死貝為陵,五穀豊盛魚鼈無盡,一年城邑三年成都,貝為<洛陽>柵為<長安>,<桑海>之濱<罽山>之隅.
帝妹<鼋>主,初嫁<禾相>生<賴>而別,再嫁<羊山>生<福>而敀,著雍困敦桃夭之時,百両御之十燭華之,千乘之君萬姓之妃.后弟之婦仙法之家,宅於<杜訥><西川>之涯,宮於<獸林>春官之衙,宜爾<黃竜>世守<羊加>.
강어연묵{丁亥,BCE94}년에 <화禾>모(德皇禾太后,慕漱帝母后)께서 상천上天하시고 해존存공(羊皇后所生慕漱帝長子)이 태어났더니, 보살펴서 보존해 오던(慕漱帝 父皇 德皇은 아들이 慕漱帝 하나뿐이었고, 慕漱帝는 세 딸 凰・鸞・禽을 낳은 후에 存公을 낳았음) 부여夫余라는 이름을 보전할 수 있었던지라, 모수제의 숙부 부루夫婁(東夫余始祖)가 고국故國(옛조선말기도읍?北夫余後期都邑?)에서 가섭加葉(東夫余初期都邑!)으로 옮겨가서(BCE94年以後) 생나무로 성책을 세우니 죽은 조가비들이 큰 언덕을 이루었고, 오곡五穀이 풍성하고 어별魚鼈이 무진하여 1년만에 성읍城邑을 이루고 3년만에 도성都城을 이루어서 조가비들은 락양(都邑)이 되고 성책은 장안(都城)이 되었더니, 상해桑海(뽕나무벌판, 桑田이 碧海가 된 바다, 松嫩平原?)가의 계산罽山 모퉁이였다.
모수제 여동생 원鼋(禾太后所生慕漱帝女)공주는 애초 화상禾相에게 출가하여 화뢰賴를 낳고서 헤어졌고, 양산羊山(黃龍王)에게 재가하여 양복羊福을 낳고서 돌아왔다. 저옹곤돈(戊子,BCE93)년 복숭아꽃이 흐드러질 무렵, 백 수레(귀한 벼슬아치나 손님들 또는 혼례패물)가 당도하여 열 촛불을 밝혔더니(화촉을 밝혔더니), 천승임금이요 만백성의 비妃가 되었다. 모수제후后 남동생의 아낙은 선법仙法하는 집안으로 두눌杜訥(黃龍都城,山西城五台市豆村地境?)땅 서천西川(在中川之西方? 滹沱河上流!) 연변에 살며 수림獸林(楡林?사냥숲?)땅 춘관春官(禮曹) 마을에 궁을 들였으니, 마땅히 너희 황룡국黃龍國은 양가羊加를 세세토록 지킬지어다.
屠維赤奮,如駿之駾,駾兮駾兮,是誰之女.重光单閼,鼋又生芳,其芳如何,芝蘭之室,天香拍地,天后之姿,金霞滿堂,帝配之慶.屋禾羊家三舅之臣,帝以玉醬賜之后父,又以金飴饋之鼋山.
玄黙執徐,仲秋之月,狐鹿為母屠殺漢将.李女之兄,昌邑之舅,賣笑而貴牲於絶域,朝露人生一何如是,因緣內謁者所當龜鑑.武甘斧鉞陵不再辱,義固難屈志不碌碌,無功而尊不祥之甚.
鮮卑王柏,帝之姨也,槐里為婿,狐鹿之叔,昭陽荒落生子豪全.帝亦是年生子騘公,柏與松‧槐入朝檀宮.帝賜靑詞曰“※松栢,為槐其蔭不絶,為我臣妾,永久護持豪全.豪全,吾兒之騘,騎不仆之走不失之."
도유적분(己丑,BCE92)년, 준마駿馬 같은 태駾(羊后所生慕漱帝四女)는 빠르구나! 빨라! 이는 누구의 딸이던가! 중광단알(辛卯,BCE90)년에 원鼋이 또 양방芳을 낳았더니, 그 방芳은 어떠하였느니? 향기 가득한 방에 천향天香이 바닥을 어루만지니 천후의 자태이고, 금빛노을 만당하니 천제(慕漱帝)께서 짝을 맺어주신[또는, 천제께서 짝을 맺으실] 경사로고. 옥屋(順奴)・화禾(鮮卑)・양羊(黃龍)씨 세 장인丈人 신하들이 있으셨더니, 천제께서 옥장玉醬(귀한 된장・간장 또는 육장)을 후들의 아비들에게 내리시고 또한 금이金飴(맛있는 음식)를 원鼋과 양산羊山에게 먹이셨더라.
현묵집서(壬辰,BCE89)년 중추지월(음력8월)에 호록고狐鹿姑(匈奴선우)가 어미를 위해 한漢의 장수(貮師將軍李廣利)를 도살하였다. 이李녀(貮師將軍妹,李夫人)의 오빠이며 창읍왕(劉賀)의 장인으로, 웃음을 팔아서 귀하게 되었다가 외딴 곳에서 희생되었으니, 조로인생朝露人生(아침이슬같은 인생) 하나 어찌 이리 되었는고? 인연이 닿아서 내알內謁하는(은밀히 임금을 찾아보는) 이들은 귀감龜鑑으로 삼을 일이로고. 소무蘇武(字子卿)가 부월斧鉞(도끼)을 감내하고 이릉李陵은 재차 욕됨을 당하지 않았음에 의義는 진실로 꺾기 어려웠고 뜻志은 녹녹하지 않았건만, 공功 없이 존귀尊貴하게 되었다가 심히 상서祥瑞롭지 못하였다.
'선비鮮卑(옛朝鮮一派) 왕백王柏'이는, 천제(慕漱帝)의 이종姨從(4촌)으로, 괴리槐里(匈奴 且鞮侯 單于의 동생)가 사위가 되고, 호록고의 숙부이었는데, 소양황락(癸巳,BCE88)년에 아들 호전豪全을 낳았고 천제(慕漱帝) 또한 이해에 아들 총騘공(羊聖后所生慕漱帝二子)을 낳으셨음에, 왕백柏이 왕송松 및 괴리槐와 함께 단궁檀宮(丹闕,不而城)으로 입조하였더니, 천제께서 청사靑詞(道家에서 醮祭 즉 吉한 祭禮・儀式 때 읽는 푸른 종이에 쓴 祝願文)를 내려 이르시길 “왕송松과 왕백栢이는 괴리槐里로 인해 덕을 봄이 끊이지 않았고 내 신첩臣妾(臣下)이 되었으니 오래도록 호전豪全이를 보호하고 지켜야 할 것이며, 호전이는 내 아이(騘公)의 총이말騘馬(西方 땅을 다스려 줄 臣下, 꼬리와 갈기가 파르스름한 白馬)이니, 말을 탈 때 엎드리게 하지 말고(自他가 貴하게 여기고) 달리다가 잃어버리지도 말아야(조심해서 키워야) 할 것이야.”라 하셨라.
(王氏는 血統이 鮮卑族이었는가? 그럼 後世의 王建도 本始 鮮卑族의 後裔였나?)
閼逢敦祥,鼋生羊俊.漢斃狂徹,光桀作乱乃立弗陵,幼子何知.燕旦可憐,旦使来庭請伐弗陵.帝命孤鹿助旦問罪禽獸殺寬,不疑收澤加刄泉鳩太守.北地夷滅宗室乃尹京兆,誰謂漢廷其有人才.
靑羊之夏,狐鹿生女,名曰可喜不足可喜.火猿之春,鮮松生子,名曰佗利實不佗利.屋妃生女,其名曰蜃,[雀入海中其珠爲真],兄曰奧陵‧姊曰好辰皆敀奧山,蜃獨封主,因亦以功陞爲副后.
알봉돈상(甲午,BCE87)년에 원鼋공주(慕漱帝同腹妹)가 양준羊俊을 낳았다. 한漢에선 미치광이 유철徹(漢世宗則武帝)이 죽고, 곽광光과 상관걸桀이 난을 일으켜서 불릉弗陵(劉徹6男)을 세웠으니, 어린아이가 무얼 알겠는가. 연燕왕 유단旦(弗陵之異腹兄,劉徹3男)이 가련하여, 유단旦의 사자가 조정으로 찾아와서 불릉弗陵이를 토벌하시길 주청하매, 천제께서 호록고狐鹿(匈奴선우)에게 명하시어 (漢의 燕王) 유단旦을 돕고 금수들을 문죄하고 유관寬을 죽이게 하셨더니, 준불의不疑(西漢,渤海郡人,靑州刺史)가 유택澤(西漢齊孝王孫,與燕王旦叛)이를 잡아들이고 천구泉鳩태수를 베어 죽였다. 북지北地(北方?西漢北地郡?) 이인夷人들이 (漢의) 종실宗室들을 멸하고 경조京兆(西漢都城)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어느 누가 한漢 조정에 인재가 있다고 하겠는가? (☞漢書昭帝紀에 “齊孝王孫劉澤謀反,欲殺州刺史雋不疑,發覺,皆伏誅.遷不疑為京兆尹,賜錢百萬"라고 기록되어 남아있음을 보면, 弗陵의 신하인 靑州刺史 雋不疑가 先手를 쳤고, 劉旦과 共謀한 劉澤이는 狐鹿姑와 共助하지 못했음인가?)
청양(乙未,BCE86)년 여름에 호록고가 딸을 낳아 이름을 가희可喜라 하였으나 기쁘기엔 부족하였다. 화원(丙申,BCE85)년 봄에 선비鮮卑 왕송松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타리佗利라 하였으나, 실은 편안하지도 이롭지도 않았다. 옥屋비가 딸을 낳아 이름을 해신蜃(무명조개,대합)이라 하였다. 참새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그 구슬이 참 진주로 되었더니? [혹시, 검붉은 것들이 바다에 떠있는 것 같은 그 구슬이 참 진주이었더니?], 오빠 오릉奧陵과 언니 호진好辰은 모두 오산奧山의 자식으로 되었으나, 해신蜃이만 홀로 공주로 봉해졌더니, 이 공으로 인하여 승차하여 부후副后(次后)가 되었더라.
紅毛鷄春,禾相如胡,賈達東来,且鞮之女.相爲之妻,帝爲之妃.壺衍新立,其母不正,二王不朝,龍城孤危.燕旦稱臣願爲白耳,帝以壺新留之不决.盖長私客五歲入宮,桀光爭道,旦乘其間.
羊聖生華,鼋又生蓉.翌春三月,賈達生穗.真番来降,磧東入貢.帝命屋文東巡海上,又命禾相整理遼東與旦相會大獵而敀.欒大之子淫徹之孫願入刷馬,賜以客卿,妻以宗女賜姓漢氏.
弗陵非子霍光立之,黃犢似真不疑斬之,三十万錢万三千戶,奪旦之位.桀光窈弄鉤弋爲雉,桑樂驕淫樂與婿飮,罵天而悖.奧川如胡,李陵来朝.帝命壺衍,放武與陵敀,與光桀以迎燕旦.
凰為川妻而生萬,鸞為賴妻而生岑.翌年白[獺],鼋生芈花,蘇得鴈報.帝開東池灌於民田,又放南林許民逐羊.雖是晩覺亦一旱雨,鴮․鯉․鷹․雉之楽敀於田夫,鴻․鴈․麋․鹿之戱不愧賢者.
홍모(丁酉,BCE84)년 계춘에 화상禾相(慕漱帝之姨從兄)이 호胡(흉노)로 가서 가달賈達을 동쪽으로 데려왔더니 저제후且鞮侯(匈奴선우,狐鹿姑之父)의 딸이었다. 화상이 그녀를 처로 삼았다가, 제(慕漱帝,禾相之姑從弟)께서 그녀를 비로 삼으셨다. 호연제壺衍鞮(狐鹿姑之子,左谷蠡王이었음)가 새로이 보위에 올랐다. 그 어미가 옳게 하지 않아서(閼氏가 狐鹿姑선우의 遺命을 따르지 않아서) 두 왕들(左賢王과 右谷蠡王)이 알현하지 않았더니, 룡성龍城(匈奴들이 天祭를 지내는 터)이 고립되고 위태로워졌다. 연燕왕 유단劉旦이 신하를 칭하며 백이白耳(조건없는 첩보원 또는 소규모 군대)가 되길 원하매, 천제(慕漱帝)께서 호연제가 새로 보위에 올랐음에 유단이를 눌러앉혀서 곁을 떠나지 않게 하셨다. 개략 장長공주가 객客과 사통私通하길 5년만에 입궁하매, 상관걸上官桀과 곽광霍光이 도리道理를 다투고, 유단이 그 틈을 노렸음이었다.
양성羊聖(慕漱帝皇后)이 화華를 낳고, 원鼋공주(慕漱帝同腹妹)가 또한 용蓉을 낳았다. 다음해(戊戌,BCE83) 춘3월에 가달(狐鹿姑父且鞮侯之女)이 화수禾穗를 낳고서, 진번真番(所謂漢四郡眞番?甘肅西北部凉州武威北方鎭番?)이 항복하여 찾아오고, 적동磧東(甘肅西北部凉州武威北方鎭番周邊? 合黎山・祁連山地境? 積石山 동쪽?)이 들어와서 조공하였다. 제(慕漱帝)께서 옥문屋文에게 명하여 동쪽으로 해상海上(현금遼河平原・松嫩平原? 北夫余 東部?)땅을 순행하게 하시고, 또한 화상禾相에게 명하사 요동遼東(河套北流・南流黃河間? 河套以東? 山西省 淸漳河 또는 沁水 以東?)땅을 정리하고 유단과 함께 회동하여 크게 사냥(軍事訓練兼武力示威)하며 돌아오게 하셨다. 란대欒大{劉徹之方士,芻牟臣漢素之祖父의 아들이자 음흉한 유철劉徹의 손자(芻牟의 策士・將帥・丈人인 漢素의 生父)가 들어와서 말을 빗질하겠노라 원하기에(☞漢에서 逐出되었음!) 객경客卿(國外에서 와서 卿相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삼아서 종녀宗女(宗室의 딸)를 처로 주고 한漢씨 성姓을 내리셨다.
불릉弗陵(漢昭帝)이 아들이 없어 <곽광>이 그(불릉)를 보위에 세웠더니, 누런 소수레를 탄 이가 진짜(西漢世宗 劉徹이 反逆罪를 씌워 죽인 一妻衛子夫녀소생 衛太子)처럼 보였어도, 션불의不疑(西漢,渤海郡人,靑州刺史)가 그를 참하고서 30만전과 만3천호를 받았으며 유단의 지위도 빼앗았다. 상관걸과 곽광이 은근히 농간弄奸하여 구익鉤弋(劉徹六妻)을 여치呂雉(劉邦妻;淫凶女)가 되게 하였더니, 상락桑樂(上官桀之子,桑樂侯上官安)이 교만하여 음락淫樂하며 사위(弗陵)와 술을 먹으면서 하늘(임금,弗陵)을 욕하였다가 갑자기 어그러졌다. 오천奧川이 호胡(匈奴)로 갔더니, 이릉李陵이 래조하였기에, 제(慕漱帝)께서 호연제에게 명하사 소무蘇武를 풀어주어 이릉과 함께 (漢으로) 돌아가게 하여서 곽광 및 상관걸과 함께 연왕 유단을 맞아들이게 하라고 하셨다(☞西漢朝廷에 影響力을 行使하였다는 얘기임).
황凰이 오천奧川의 처가 되어 오만奧萬을 낳았고, 란鸞이 화뢰禾賴의 처가 되어 화잠禾岑을 낳았다. 다음해 백달白獺(庚子,BCE81)년엔, 원鼋이 미화芈花를 낳고, 소무蘇武는 기러기雁를 얻어서 보고하게 되었으며, 제께선 동지東池(卑离땅? 居延湖의 東湖?)를 열어 백성들 밭에 물을 대어주시고 또한 남쪽 숲을 트시어 백성들이 양들을 내몰 수 있게 하셨다. 비록 이 일들이 늦은 감은 있었지만 역시 하나같이 가뭄중의 단비였음에, 오鴮(사다새)・리鯉(잉어)・응鷹(매)・치雉(꿩)를 쫒는(사냥하는) 즐거움이 전부田夫들 몫이 되었고, 홍鴻(큰기러기)・안鴈(작은기러기)・미麋(큰사슴)・록鹿(작은사슴)과 함께 하는 유희遊戱가 현자賢者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더라.
重光赤奮,后生觧德,賈達生穎.是年大旱,夫婁献粟.自是以後,年年献粟,沿江八國為之舟運.
桀與燕旦謀殺弗陵而敗,皆被誅戮,旦與其妻子奔入鮮卑.帝命壺衍發兵伐光懲其骨肉相殘.
玄黙攝提,凰生奧犍,鸞生羊吉,禽生稽侯.羊芳入宮.屋文雲去斗辰嗣之,好人承寵副於賈達,羊川雲去,羊山代之.帝召桓公入為牛加,秉直盡忠以代二老.虗閭来朝黃駝千匹,幽冀之民敀者如雲.
중광적분(辛丑,BCE80)년, 후(羊聖)께서 해덕觧德(慕漱帝三子)을 낳고, 가달이 화영禾潁을 낳았다. 이해에도 크게 가물어서 부루夫婁(東夫余)가 곡식粟을 바쳐왔고, 이후로도 해마다 곡식을 바쳤더니, 강江(桑干河・西遼河 등?)들을 연접한 여덟 나라가 이를 위해 배를 운용하였다. 상관걸이 연왕 유단劉旦과 함께 불릉弗陵(西漢昭帝)을 죽이길 모의하였다가 실패하여, 모두 목이 잘리거나 찢겨져 죽고, 유단은 제 처자식들과 함께 선비鮮卑땅으로 도망쳐 들어갔더니, ※제(慕漱帝)께서 호연제에게 명하사 군대를 징발하여 곽광霍光(西漢將軍)을 치셔서 그들이 골육상잔骨肉相殘하였음을 징치懲治하게 하셨다.
※漢書卷一에 “北貉燕人來致,梟騎助漢. 즉, 北貉과 燕의 사람들이 와서 날래고 용맹한 기병으로
漢을 도왔다.”라는 짧은 단서가 남아있고,
북맥北貉은 안사고顔師古 주석에 "貉在北方,三韓之屬,皆貉類也. 즉 동북방의 삼한지속은 모두 맥의 부류다."
라고 되어있음을 보아, 북부여가 사납고 강한 항우 대신 유방을 구원하여 한漢을 세우게 한 후견으로
한漢의 무도함을 징치하는 권도를 행사함이었나?
현묵섭제(壬寅,BCE79)년에 황凰이 오건奧犍을 낳고, 란鸞이 양길羊吉(禾賴子)을 낳았으며, 금禽(慕漱帝三女)이 계후稽侯(狦,呼韓邪)를 낳았다. 양방羊芳이 입궁하였다. 옥문屋文이 죽어 옥두진屋斗辰이 뒤를 이었고, 호인好人이 승은을 입고 가달賈達의 다음자리가 되었으며, 양천羊川(黃龍王)이 죽어 양산羊山이 대신하였다. 제(慕漱帝)께서 환桓공(桓那)을 불러들이시어 우가牛加로 삼으셨더니, 강직하게 충성을 다하면서 두 노인(屋文・羊川)들을 대신하였더라. 허려권거虗閭權渠(匈奴;壺衍鞮單于之弟,呼韓邪則稽侯狦之父)가 래조하여 누런 낙타 1,000필을 바쳤으며, 유幽(河套陝西省地境?)・기冀(山西省西南部)땅 백성들이 귀의함이 구름과 같았다(☞西漢世宗則武帝 劉徹의 治勢는 劉徹이 死後에 急速히 무너졌음!!).
玄兎之年,禾相失賴,鸞嫁羊福,吉為福子.秋英生弗,鼋生芈英.帝與禾相西巡而敀,戇光倖秋爭權幻弄,乃命槐里綂率烏桓南伐西掠大獲而敀.范賊度遼殺其二子,充國坐笑,桓胡爭功.
靑竜之春,賈達生蕚.桓淑牛姬皆承帝寵,牛生丹公,桓孕柘公.一言于秋死于好言,要功介子万里行刺,放火于廟稱赦不罪,蟲食宻葉書以病已,姦人不覺妖言先斬,范賊欺功介盜為義.
현토(癸卯,BCE78)년에 화상禾相이 화뢰禾賴(鼋所生禾相子)를 잃어(죽어), 란鸞이 양복羊福(鼋所生羊山子)에게 재가再嫁하매, 양길羊吉(鸞所生賴子)은 양복羊福의 아들로 되었다(其實也,以鸞所生賴子禾吉爲羊福養子羊吉). 추영秋英이 왕불旺弗을 낳고, 원鼋이 미영芈英(羊山女)을 낳았다. 천제(慕漱帝)께서 화상禾相과 함께 서쪽(匈奴・鮮卑)을 순방하고 돌아오셨더니, 미련한 곽광霍光(西漢大將軍・丞相)과 간사한 전천추田千秋(漢부민정후)가 권력을 다투면서 교묘하고도 못된 꾀를 부렸다. 이에 괴리槐里(匈奴 且鞮侯 單于의 동생)에게 명하사, 오환烏桓(鮮卑一派)을 모조리 이끌고 남쪽과 서쪽(漢)을 토벌‧경략하여 크게 노획하여 돌아갔더니(☞漢書昭帝紀曰"是年冬遼東烏桓反."이라 하였는 바, 요동의 오환 또는 요동과 오환이 반란하여... ), 범范적(西漢度遼將軍中郞將范明友)이 요수遼水(遼河;河套東邊黃河?河套西邊黃河?)를 건너서 그(槐里?)의 둘째 아들을 죽이매, 조충국趙充國(漢世宗・中宗兩代將帥)은 앉아서 웃고, 오환烏桓과 호胡(匈奴)는 공(잘잘못)을 다투었다[또는, 조충국은 오환과 호를 비웃으며 공을 다투었다].
청룡(甲辰,BCE77)년 봄에 가달賈達이 화악禾萼을 낳았다. 환숙桓淑과 우희牛姬 모두 천제의 총애를 받았더니, 우희는 단丹공을 낳고, 환숙은 자柘공을 잉태하였다. 전천추田千秋에게 말 한마디 하였다가 호언好言에게 죽었고, 공功이 필요한 부개자傅介子가 만 리 밖(西域)에서 칼질하였었고, 종묘사당에 불을 질렀어도 사면을 칭하며 죄를 묻지 않았으며, 벌레들이 꿀 바른 나뭇잎을 갉아먹어서 병이病已(西漢中宗의 이름)란 글자가 써졌어도 간교한 이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먼저 베어야 한다는 요사한 말이나 하였으며, 범적(范明友)은 공적을 속였고(☞漢書昭帝紀曰是年罷象郡), 부개자傅介子 도적놈은 의인義人이 되었다.
-- 계속 --
첫댓글 추모경을 볼 때마다 새로운 사실들로 놀람이 앞섭니다.
어려운 길, 어려운 일을 개척해 주시는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한 선생님, 들러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