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홍수보다 더 피해 커…
여러 고대 문명 몰락 원인도 됐죠
가 뭄
"이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것은 나야. 내가 한번 지나가면 남아나는 것이 없거든." 태풍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대홍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슨 소리, 내가 물을 쏟아부으면 다 떠내려간다고. 내가 최고야." 가만히 앉아 있던 가뭄은 이렇게 말해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나 때문이라고. 내 힘이 가장 세거든!"
예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가뭄이 태풍과 대홍수 앞에서 힘자랑을 하는 모습을 묘사했는데요. 실제 기후학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기상 현상은 태풍이나 대홍수·쓰나미가 아니라 소리 없이 다가오는 가뭄이랍니다. 가뭄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마야 문명, 앙코르와트 문명 등 찬란했던 고대 문명을 수도 없이 몰락시켰지요.
가뭄은 식량과 물 부족으로 인한 대기근을 불러옵니다. 1800년대 말 세 차례의 강한 엘니뇨(적도 동태평양 부근의 바다가 더워지면서 온도 상승이 지속되는 현상)로 인해 큰 가뭄이 들었는데요. 이로 인해 인도·중국·아프리카 등지에서 70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습니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이어진 소련의 기근 때는 약 500만명이,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어진 중국의 기근으로는 최대 2950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요.
지난 2022년에는 유럽과 미국·인도·중국 등이 극심한 가뭄으로 큰 피해를 보았는데요. 가뭄으로 인해 강물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미국 남부 텍사스의 공룡 계곡 주립공원에서는 물속에 있던 1억1300만년 전의 공룡 발자국이 드러났고요. 중국 충칭 양쯔강 유역에서는 6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3개가 발견됐지요. 또 유럽의 엘베강에선 1616년 새겨진 '헝거 스톤(hunger stone)'이라고 불리는 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15세기부터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이 돌에는 가뭄의 정도가 심했던 연도가 기록돼 있어요. 옛날 사람들이 강물이 줄었을 때 강바닥에 있던 돌에 경고의 의미로 새긴 것으로 추정되지요. 돌에는 "내가 보이면 울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는데,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주릴 것을 예견합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에도 헝거 스톤처럼 가뭄과 관련된 바위가 있습니다. '나일미터'로 불리는 바위인데요. 이 바위는 강물의 높이를 재기 위해 고대 로마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어요. 과거 이집트는 나일강에 홍수가 나야 곡식이 잘 자라고 풍년이 들었어요. 홍수와 함께 상류에서 비옥한 흙이 운반돼 오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가뭄으로 강물이 낮아지면 이집트에는 흉년과 대기근이 닥쳤습니다. 그래서 강물의 높이를 잴 필요가 있었던 거지요. 이 나일미터를 보고 만들어진 것이 돌기둥에 눈금을 새겨 물의 높이를 잴 수 있도록 한 '나일로미터'라는 건축물입니다.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861년 이집트 카이로의 남부 로다섬에 지어진 것이 대표적이지요.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플리니우스는 식민지인 이집트 국민의 상태를 강물 높이에 따라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강물 높이가 약 22.5m면 '안심', 약 21m면 '행복', 약 19.5m면 '고생', 약 18m일 땐 '배고픔'이라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