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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애실천운동이라고 해서 부모나 어른만 공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기본 틀을 세우는 운동이 바로 효애실천운동입니다.”
이란에서 한의(韓醫)로 이름을 날렸던 이영림(李榮林·62)씨가 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효애실천운동본부’ 창립 총회를 가졌다. 이씨는 이란에서 활동하다
18년 만에 귀국해 보니 떠나갈 때와 딴판으로 달라진 사회 풍조 때문에
효애실천운동본부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평소 사회운동을 해온 것도 아닌데 회갑을 넘긴 나이에 이런
일을 시작하려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묻자 “평생 무슨 일을 할 때
무서워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이란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5년. 당시 을지로에서 한의원을 개업했던 이씨는 자신에게 치료받던
주한 이란대사로부터 팔레비 당시 국왕의 저서 ‘백색혁명’을
번역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이씨는 이듬해 번역서를 냈고,
이것이 계기가 돼 이란 왕실의 초청을 받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 가난했어요.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란 왕실의 초청을 받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가서 뭔가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1976년 이란에 도착한 이씨는 정부 고위 관리들의 질병을 침으로
고쳐주는 등 한방의 힘을 보여줬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란혁명의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는 환자들을
돌봤고,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의사로서의 활동을 보장받았다고
한다.
그는 라프산자니 전(前) 이란 대통령 가족들과 교분을 나누고 건설회사를
경영할 정도로 안정된 생활을 누렸지만, 1994년 한국에서 노인 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귀국했다. 그는 “노인 복지를 위해 여러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에 앞서 효애사상이
바로서야겠다는 생각에 효애실천운동에 나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