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8일, 목요일, Nazca, Hotel Algeria (오늘의 경비 US $35: 숙박료 30, 버스 50, 저녁 14, 기타 25, 환율 US $1 = 3.50 sole) Pisco행을 취소하고 다음 행선지인 Nazca로 직행했다. Pisco는 바닷가 도시인데 산 쪽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였다. 자유여행의 좋은 점 하나는 맘 내키면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도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탄 2등 버스는 1등에 비해서 화장실이 없고 내부가 좀 헐었지만 지정좌석이고 난방이 되니 별 불편은 없었다. 그 대신 완행이라 목적지까지 한 시간 정도 더 걸렸다. 멕시코 여행 때는 1등과 2등 차이가 20% 정도밖에 안되어서 주로 1등을 탔는데 페루에서는 차이가 너무 크니 (3배) 주로 2등을 타야겠다. 버스가 서면 잡상인들이 버스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와서 먹을 것을 판다. 분위기가 도떼기시장 같지만 재미도 있다. 내 뒷좌석에는 10살 정도의 여자 애가 앉았는데 계속 내 좌석을 발로 차고 일어서서는 팔로 내 머리를 친다. 몇 번 주의를 주었더니 치노 (Chino, 중국인 혹은 중국 놈) 하면서 옆에 앉은 엄마에게 불평을 한다. 엄마는 아무 얘기도 없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삭막하다. Lima 남쪽 태평양 해변인 이 지역은 굉장한 사막지대로 미국이나 중국의 사막보다 훨씬 더 건조한 풀포기 하나 없는 100% 모래사막이다. 오른쪽은 푸른 바다, 왼쪽은 모래사막인데 가끔 초록색의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Andes 산맥에서 내려오는 강물로 생긴 이 오아시스들은 페루 해변에 40여 군데 있어서 페루의 농업중심지를 이룬다. 야채, 포도, 옥수수 밭이 보였다. 버스가 Nazca 가까이 오니 어디에서 탔는지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Nazca 관광 정보를 나누어준다. 여행사들끼리 경쟁이 보통 심한 게 아니다. Nazca는 900 BCE 부터 600 CE까지 이 지방에 살던 인디언들이 수백 미터 길이의 동물 또는 기하 모양의 그림을 사막에 그려 놓았는데 하늘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다. 세계 각처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이 30분 정도 비행기를 타면서 구경하는데 가격은 약 $40 정도로 제법 비싸다. Nazca에 도착하여 Lonely Planet에 소개된 Hotel Algeria라는 조그만 호텔에 들었는데 관광객들로 붐빈다. 간신히 35 sole 짜리 방을 얻어들었다. 방은 호텔 뒷마당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당 한 가운데는 수영장이 있고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는 풍경이 보기 좋았다. 저녁식사는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볶음밥으로 했다. 페루에는 중국음식점이 웬만한 도시에는 다 있는 것 같다. 내일은 Nazca 그림을 구경하고 밤 버스로 Arequipa로 떠날 예정이다. Arequipa는 볼거리가 많은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라 며칠 푹 쉬어 갈 생각이다. 가능하면 등산도 좀 할 생각이다. 힘들게 구해서 사온 전기냄비가 고장이 났다. 110v 용인데 이곳 전기가 220v라서 조그만 콘센트를 사용했는데 2, 3일 잘 되다니 더 이상 안 된다. 콘센트가 맞지 않았나 보다. 한국에서 샀더라면 220v 용을 구했을 텐데 미국에서 사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제 라면을 어떻게 끓여 먹을지 걱정이다. 여행지도 햇살이 따가운 Nazca에서 묵은 Hotel Algeria 수영장 2003년 9월 19일, 금요일, Arequipa 행 밤 버스 (오늘의 경비 US $50: 버스 110, 입장료 14, 저녁 14, 기타 5, 환율 US $1 = 3.50 sole) 아침 6시경 요란하게 울어대는 닭소리에 잠이 깼다. 사막이라 그런지, 서머타임 제도가 없어서 그런지, 벌서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커피를 끓여서 어제 사 둔 빵과 삶은 계란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 Nazca 그림은 구경하지 않기로 했다. 비행기 타고 구경하는 $40이 아무리 생각해도 바가지요금 같아서였다. 실수를 하는 것일까? 그 대신 밤 버스를 탈 때까지 여유 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우선 한 블록정도 떨어진 버스 정거장에 가서 Arequipa에 가는 버스표를 샀다. 밤 9시에 떠나서 그 다음날 아침 6시경 도착하는 밤 버스다. 1등과 2등 사이인 비즈니스 등급 표를 55 sole에 샀다. 호텔에 돌아와서 뒷마당 그늘에서 책도 읽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커피포트로 밥을 지어서 김과 시금치 된장국으로 맛있게 들었다. 전기냄비가 고장 났으니 전기 커피포트를 당분간 사용 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220v 용 전기냄비를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찾기가 쉬울 것 같지 않다. 호텔에서 12시경 체크아웃 한 다음 수영장 그늘 밑에서 "The Epic of the Latin America"라는 책을 읽었다. 1,0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 빨리 읽고 누구에게 주던지 해서 짐을 덜어야겠다. 남미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라 두 번째로 읽는 중이다. 수영장 가에서 우리같이 쉬고 있는 사람들이 15명 정도는 되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들어 누어서 몸을 태우고 있는 여자들도 여럿이다. 뜨거운 햇빛을 잘도 참고 견딘다. 아마 햇빛을 많이 못 보는 북유럽 사람들인 것 같다. 오후 5시에 인터넷을 한 시간 했다. 시간당 2 sole의 (700원 정도) 비교적 싼 가격이었다. 인터넷이 끝난 후 중국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양도 많고 맛도 괜찮은데 5 sole (1,700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옆 좌석에 동양여자 세 명이 앉아 있어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싱가포르에서 왔단다. 우리 식사가 먼저 나와서 먹고 있는데 싱가포르 여자들이 식사 주문을 하다가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나에게 통역을 부탁한다. 메뉴가 영어와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주문에는 문제가 없는데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을 보니 양이 많아서 2인분을 시켜서 셋이 먹으려 하는데 그 얘기를 웨이터에게 스페인어로 할 수가 없으니 나보고 좀 해 달란다. 적당히 말을 만들어서 통역을 해주니 웨이터가 잘 알았다고 하고 부엌으로 돌아간다. 나는 싱가포르 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집사람에게서도 축하를 받았다. 난생 차음으로 하는 영어-스페인어 통역이었다. 저녁 7시부터 이곳 기상대에 (Planetarium) 가서 Nazca 그림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입장료가 $7로 비싼 편이었으나 Nazca 그림에 관해서 많이 배웠다. Nazca 그림은 이곳에 살던 인디언들이 6백여 년 작업을 해서 만든 것이고 1920년경 이곳을 비행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40년 이상 이곳에 살면서 Nazca 그림의 발굴, 보존, 연구 일을 하다가 5년 전에 95세 나이로 타계한 독일학자 Maria Reiche 에 관한 얘기, Nazca 그림 유래에 관한 학설 얘기를 (하늘의 별을 그린 것, 땅속의 물줄기를 그린 것 등) 흥미 있게 들었다. 그 외에도 남십자성을 (Southern Cross) 밤하늘에서 찾는 법, 남십자성의 십자가 동서남북을 가리킨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나 미국의 밤하늘에 항상 보이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이곳에서는 안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남미가 있는 지역은 남반구이기 때문인 것이다. 저녁 8시경 호텔에 맡겼던 배낭을 찾아서 Arequipa 행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버스가 한 시간이나 연착해서 10시경에 나타났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프랑스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 부인은 영어가 유창한데 남편은 전혀 못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 페루에 와서 3개월간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귀국하는 길에 부모를 초청해서 딸과 함께 구경하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페루에 와서 5일간에 두 번째로 도둑을 맞을 뻔했다. 첫 번째는 Lima에서 버스표를 사러 버스 정거장에 갔을 때다. 집사람과 함께 걸어가는데 어느 젊은이가 내 시계를 채어가려다 집사람과 눈이 마주치고는 씩 웃고는 가버렸다. Lima 시내 중심가에서는 시계, 카메라, 목걸이 등 돈이 나갈만한 물건은 절대로 보이게 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 가방도 몸 앞에 꽉 잡고 다녀야 한다. 두 번째인 이번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큰 배낭 둘, 작은 배낭 둘, 라면을 넣은 가방 하나를 땅 밑에 놓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명함을 두어 장 건넨다. 떠나는 사람에게 명함은 왜 주나 생각하고 안 받으려다 그 친구 손이 부끄러울 까봐 받았더니 두 장을 더 주면서 옆에 앉아있던 집사람에게 줘 달라고 나에게 손짓을 한다. 이상한 친구다. 나에게 주었으면 그만이지 집사람에게까지 왜 주나 생각하고 있는데 집사람 옆에 있는 라면 가방이 움직여서 쳐다보니 한 여자가 가방을 빼다가 씩 웃고는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여자가 우리 가방을 훔치려고 했다고 얘기하는 동안에 나에게 명함을 주던 친구도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그걸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우리는 한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어쩌면 이번이 세 번째 인지도 모른다. Lima 해변에서 만나서 30 sole을 보태준 고아들 모아서 공예품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그 친구에게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정말 당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해진다. 불과 5일 동안에 세 번을 당하다니, 페루는 정말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