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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장 고성의 낭만적인 카페 전경. |
길 옆을 흐르는 맑은 물, 물살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수초와 그 안에서 사는 빨간 금붕어들, 물가의 테이블에 앉은 연인들, 붉은색의 오화석(五花石)이 매끈하게 닳아서 반짝이는 쓰팡제(四方街) 광장…. 해가 기울면 광장에서는 전통 선율이 울려퍼지고 노천카페에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서로 어울립니다.
허름한 인민해방군 팔각모에 담뱃대 물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나시(納西)족 할아버지, 청남색의 전통복장으로 외지인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인네, 살아있는 상형문자, 그리고 고성 안에서 바로 올려다보이는 위룽쉐산(玉龍雪山)의 하얀 봉우리 등도 이채롭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담고 있는 곳, 바로 윈난(蕓南)성 리장(麗江)의 고성(古城)입니다. 리장은 중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곳, 짝을 찾고 싶어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혼자 찾아가는 첫 번째 여행지, 한국 배낭족들의 새로운 국민여행지로 꼽히기도 합니다.
리장 고성은 소수민족 나시족의 주된 거주지로, 나시족 언어로는 공번즈(鞏本知)라고 합니다. 공번(鞏本)은 식량창고, 즈(知)는 시장이란 뜻으로 오래전부터 이 지역이 양곡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고도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고성 전체를 보면 커다란 벼루(硯)와 같다는 의미에서 다옌진(大硯鎭)이라고도 했는데, 옌(硯) 자와 옌(硏) 자의 발음이 같아 지금은 다옌진(大硏鎭)이라고도 합니다
골목골목 붉은색 돌길
이 리장 고성은 쓰촨(四川)의 랑중(閬中), 산시(山西)의 핑야오(平遙), 안후이(安徽)의 서셴(歙縣)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4대 고성의 하나지요. 송말·원초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니 8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고성에는 사방을 둘러싼 성벽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곳의 토착 권력자, 즉 토사(土司)는 오래도록 목(木)씨였는데 입구(口) 자 형태로 성벽을 둘러싸면 곤궁하다는 뜻의 곤할 곤(困)이 되기 때문이었답니다. 물론 다른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겠지만, 한자의 파자(破字)로 해설하니 이것도 꽤 절묘해 보입니다.
고성의 길은 쓰팡제를 중심으로 광이제(光義街), 치이제(七一街), 우이제(五一街), 신화제(新華街)의 네 갈래 길이 나 있고, 그 사이사이를 작은 골목들이 그물망처럼 잇고 있습니다. 고성의 길바닥을 덮은 돌들의 꽃무늬가 참 아름다운데 이 돌은 오화석(五花石)이라고 합니다.
붉은색이 감도는 각력암(角礫岩)의 일종인데 서로 다른 암석 조각들이 섞인 채 생성된 것이라 마치 돌덩이 하나하나에 꽃무늬를 새긴 것 같습니다. 비가 와도 질지 않고 말라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 길이지요. 새벽에 쓰팡제 광장에 나가 보면 아침 햇살이 오화석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색다른 것은 아마도 골목마다 콸콸 흘러가는 맑은 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룽쉐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위허(玉河)가 고성에 들어오면서 세 갈래로 갈라져 고성 안쪽 곳곳을 휘돌아나갑니다. 마치 장강 하류의 강남수향(江南水鄕)을 신묘하게 연출해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 물에는 빨간 금붕어가 곳곳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을 흐르는 물 치고는 물살이 빨라서 금붕어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갈 듯이 활기차게 온몸으로 헤엄을 치고 있지요. 어항 속에서 느릿하게만 오가던 빨간 금붕어가 이렇게 생생하게 헤엄치는 것도 참 신기해 보입니다.
玉龍雪山 물이 시내를 휘감고
고성 곳곳을 흐르는 물을 건너는 크고작은 다리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자그마치 354개나 되는 고성의 다리에서도 고성 건축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평이하게 물을 건너는 석판교(石板橋), 커다란 반원을 그리면서 오르내리막으로 넘어가는 석공교(石拱橋), 실내복도처럼 만들어 비를 맞지 않고 건널 수 있는 풍우교(風雨橋 또는 廊橋)도 있습니다. 통나무를 반 잘라서 단순하게 걸쳐놓은 다리, 난간을 벤치처럼 만들어 여행객들이 쉴 수 있게 한 다리, 난간도 없어 자칫 물에 빠질 것 같은 작은 다리도 있습니다.
이곳 고성에 주로 사는 소수민족은 나시족입니다. 나(納)는 자신들을 칭하는 이들 고유의 발음을 한자로 전사한 것이고, 시(西)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한국인들은 ‘납서족’이라고 읽기 쉽지만 원래의 발음을 옮긴 말이라 나시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고성을 걸으면 나시족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남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부녀자들이 거리를 오가고 광장에서는 저녁마다 남정네들의 연주에 맞춰 나시족 부녀자들이 여행객과 함께 가벼운 춤을 추며 민족 정취를 듬뿍 뿌려주기도 합니다.
특히 나시족의 전통 복식이 눈길을 끌지요. 리장 고성에서 자주 보게 되는 이들의 복장은 피성대월(披星戴月)이라고 합니다. 별을 지고 달을 인다는 뜻으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것을 묘사하는데, 나시족 전통 복장의 등판에 수놓인 일곱 개의 별과 머리에 두르는 둥근 모자를 형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 남자들은 대부분 마방의 일원으로 장기간 외지에 나가는 일이 잦았고 전란으로 죽는 경우도 많아 가사와 농사를 주로 여자들이 감당해 왔습니다. 그 힘겨운 생활사가 배어 있는 것이지요.
둥바(東巴)문화는 나시족의 전통 문화를 이르는 말인데 그 가운데 나시족 고유의 문자인 둥바문자는 따로 감상해볼 만합니다. 책이나 여러 종류 의상, 기념품 등에 새겨진 다양한 디자인으로 접할 수 있지요. 이 문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상형문자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살아있는 원시문명의 건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실용적인 문자로서는 역사의 유물로 물러나고 있고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전이되는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볶음 등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
리장 고성에서는 역시 나시족의 음식을 꼭 한번 탐구해볼 만합니다. ‘아마이 나시주 인스위안(阿媽意納西飮食院)’(문의 1390-888-3112)은 2007년에 개업한 식당으로 그 이름에 자신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이는 원래 1912년 리장에서 태어나 요리로 꽤 이름이 알려진 장이이(將義意)라는 나시족 여성 요리사의 별명이었답니다.
당시 차마고도를 오가는 마방들에게 꽤나 잘 알려진 요리사였는데 그 손자가 가업으로 이어받았고 2007년에 이 자리에 새로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이 식당은 쓰팡제 광장에서 우이제를 따라 100여m 걸어가면 왼편에 있습니다. 식당 입구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앉은 형태라서 자칫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식사시간에는 종업원 한둘이 좁은 골목 입구로 나와 귀엽게 호객을 하기도 합니다.
식당은 리장의 전통적인 민간가옥 그대로입니다. 가운데 마당이 있고 2층으로 돼 있습니다. 2층 난간 쪽의 테이블에 앉으면 마당도 가까이 정겹게 보이고, 운남의 맑고 투명한 햇살도 느낄 수 있고 창문 곳곳에 놓인 화분의 꽃들도 보기 좋지요. 혹시 창가 자리가 없거나 인원이 4명을 초과하면 안쪽의 방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방에 있는 둥근 식탁과 붉은 의자들은 목공예품들로 나시족 전통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집니다.
이 아마이에는 메뉴에 사진도 어느 정도 잘 정리돼 있고 곳곳에 자신들이 추천하는 메뉴 리플을 걸어놓은 것도 있어서 외국인이 음식을 주문하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추천하자면 이 지역 특색 음식으로 민물고기를 불에 구운 마방예카오위(馬帮野魚)를 권할 만합니다. 우화러우(五花肉·삼겹살)를 바삭하게 조리한 것도 훌륭합니다. 아마이샤오차오러우(阿媽意小炒肉)도 돼지고기를 약간 맵게 볶아서 한국인 입맛에 잘 맞습니다. 나시샹수러우(納西香肉)도 바삭한 맛이 일품이지요.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가격이 4인 기준 150위안 정도입니다.
가물치 샤브샤브 3인분 1만5000원이면 충분
리장에서 한국인 입맛에 아주 잘 맞는 윈난의 음식을 하나 더 추천하지요. 바로 ‘가물치 샤브샤브’입니다. 가물치는 우리에겐 잉어와 함께 대표적인 민물고기 보양식입니다. 고아서 산모에게 먹이기도 하고 고추장으로 양념해서 철판에 구워 먹기도 합니다만 값이 아주 비싸지요. 그런데 리장에서는 가물치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가물치는 중국어로 우위(烏魚), 헤이위(黑魚) 또는 반위(斑魚)라고 합니다. 우(烏)나 헤이(黑)는 가물치의 검은색을 칭하는 것이고 반(斑)은 검은 반점을 말하는 것이지요. 다 자란 가물치는 길이가 40~50㎝나 되고 살도 두꺼워 리장에서는 가물치를 얇게 샤브샤브로 먹습니다. 육질의 부드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육수도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그만입니다.
가물치 샤브샤브를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리장 고성에서 물길을 따라 위룽쉐산 쪽으로 올라가 헤이룽탄(黑龍潭) 공원을 찾으세요. 이 공원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화마제(花馬街)가 있는데 이 거리에 있는 ‘룽지 반위좡(龍記斑魚庄)’(문의 0888-512-3458)이 바로 가물치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이 식당에서는 궈디(鍋底·육수가 들어있는 냄비)가 25위안, 가물치살은 1㎏에 60위안인데 이 정도면 세 사람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가물치살을 끓는 육수에 데쳐 먹으면서 따로 나오는 다섯 가지 채소도 함께 익혀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채소는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손을 대면 음식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면을 뽑아 육수에 끓여 먹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식당은 쿤밍(昆明)과 위시(玉溪)에도 분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