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들라쿠루아의 색채표현과 밀레의 모티브, 램브란트의 종교화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딱 떨어지게 정리되어지기에는 고흐는 연습광이었으며 독서광이었고
오노레 도미에나 바르비종파, 코로 등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좋아했습니다.
고흐가 편애했던 화가들.
굳이 편애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고흐의 성향이 지극히 개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한 화가들은 그나마 그의 성향으로 예측할 수 있는 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후기인상파의 흐름과는 정반대되는
보수적인 살롱의 화가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비평가 보들레르에게 '감정의 원숭이들'이라고 혹평을 받은
고전주의양식의 작품을 훌륭하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가 감정이입이 심한 사람이었던 것은 일본을 지나치게 이상향시하는 것이나
아를르에서의 고갱과의 생활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편애했던 화가들을 알아가는 것은
고흐의 내면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작가들에 대해서 고흐와의 연관성을 설명하기보다는 간단한 소개와 작품을 올립니다.
감상하시면서 작품속에 고흐의 모습을 찾아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1.
장 루이 에르네스트 메소니에 (1815-91, Jean-Louis-Ernest Meissonier)
프랑스리옹출신, 쥘 포티에르 (Jules Potier) 밑에서 아주 잠깐 그림을 배우다가
스승의 추천서를 들고 레옹 코니에 (Leon Cogniet) 화실에 입학합니다.
그나마 메소니에가 화실에서 그림 공부를 한 것은 5개월에 불과합니다.
그 후 메소니에가 다른 스승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최고의 화가로 이어지는 계단을 한 계단씩 밟아 갑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메소니에는 코니에 화실에서
17, 8세기 프랑스와 네델란드 화가들의 작품을 배웁니다.
주요 장르는 풍속화와 정물화였고 그렇기에 1834년, 19세의 나이로
처음 살롱전에 ‘플랑드르 사람’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출품합니다.
17세기의 옷을 입은 신사들이 묘사된 작품은
고전 의상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 부르주아 계층의 입맛에 맞았습니다.
메소니에는 살롱전에 매년 출품합니다.
출품을 통해서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 맞는 작품을 제작합니다.
그 후 1842년 ‘담배 피는 사람과 베이스 연주자 (Smoker and The Bass Player) '라는 작품을
시인이자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 (Theophile Gautier)가 호평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메소니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1855년에는 살롱에서 나폴레옹 3세에게 그림이 팔리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1859년 이탈리아전쟁에 종군한 뒤부터는 주로 전쟁화에 전념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을 회고한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있으며, 대표작으로는 바리케이트(1848),
그리고 나폴레옹 1세가 모스크바에서 철수하는 장면을 그린 1814년(1864)등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작은 화면을 장시간에 걸쳐 사진처럼 치밀하게 묘사해가는 데 있습니다.
The Card Players (1872)
The Barricade (1848)
The Reader in White
2.
애리 셔퍼 (1795-1858, Ary Scheffer)
궁핍한 화가였던 부친이 빨리 죽고, 모친은 셔퍼를 파리에 데리고 가,
피에르=나르시스 겔랑(Pierre-Narcisse Guerin)의 공방에 들여보냅니다.
셔퍼가 겔랑의 공방을 나왔을 무렵, 프랑스에서는 그자비에 시가론(Xavier Sigalon),
들라쿠루와, 테오도르 제리코같은 화가들에 의한 낭만주의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셔퍼는 낭만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고전주의(classicisme froid)로 불리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셔퍼는 문학, 특히 바이론이나 괴테의 작품을 소재로 한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당시 인기가 있던 파우스트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으며
1836년에는 괴테 작품의 히로인, 미뇽을 그립니다.
그리고 주제를 바꿔 1846년까지 종교화를 주로 그립니다.
셔퍼는 숙달된 초상화가이기도 했으며,
프레드릭 쇼팽, 프란츠 리스트, 메리 에밀리 드 부르봉 등을 그렸습니다.
1846년 이후, 셔퍼는 살롱 출전을 하지않습니다.
왕족과의 강한 관계는, 1848년의 프랑스 제2공화정 발족 후에 셔퍼의 인기를 떨어트렸습니다.
셔퍼는 아틀리에에 틀어박혀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전시된 것은 사후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명성은 죽을때까지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테크닉은 칭송되었지만 색채의 궁핍함과 감정의 생기가 없음이 비난당했습니다.
Mignon (1836)
Saint Monique and Saint Augustine (1855)
The Ghosts of Paolo and Francesca Appear to Dante and Virgil (1855)
Faust and Marguerite in the Garden (1846)
3.
쥘 부르통 (1827-1906, Jules Breton)
쥘 부르통은 20세기초 들라쿠르와나 앵글에 필적하는 높은 지명도와 평가를 얻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북부 마을의 지주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뛰어난 그림실력을 더욱더 키우기위해
벨기에의 겐트 그리고 파리에서 수업을 쌓았다고 합니다.
원래 시골뜨기 기질과 말주변이 없었고, 도시생활에서는 고립하는 때가 많았으며,
건강상의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와 농촌 사람들의 생활 풍경과 자연을 계속 그렸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사실적, 자연주의적인 아카데미즘의 전통에 따른 것이어서
1850년대에 살롱에의 출품작으로 차례차례 성공하며 평가를 높여
화단에서도 점차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떨어진 이삭 줍기를 끝내고> (Rappel des Glaneuses, 1859)라는 작품은
살롱전에서 일등상을 받은 대표작입니다.
같은 타이틀의 유명한 밀레의 <이삭 줍기> (Les Glaneuses, 1857)에 비하면
브루통의 작품은 당당하고 씩씩한 인물표현이 바르비죵파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농업 대국의 미국에서 그의 작품은 많이 선호되고 있어 소장수도 많다고 합니다.
초현실주의 예술운동선언의 안드레 브루통 (AndreBreton, 1896-1966)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The Recall of the Gleaners (1859)
A la Fontaine
The Potato Harvest
4.
쥘 바스티앵 르파주 (1848-1884, Jules Bastien-Lepage)
프랑스 뫼즈라는 지방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주의 화가였으며 조각가이고 또 판화가였었습니다.
농민생활이나 전원풍경을 주로 그렸으며 초상화나 풍경화에 뛰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르파주는 아홉살에 베르뒹 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며 학교에서 주는 모든 드로잉 상을 휩쓸었고,
그 후 파리의 에꼴 드 보자르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웠습니다.
밀레와 같은 관점으로 주로 전원풍경이나 농민생활을 소박하게 그렸으며,
전통적인 프랑스회화의 기법을 익히고, 쿠르베와 마네의 영향도 받았으나,
나중에는 모네 등의 인상주의의 특징인 외광 묘사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가지 작품들을 남기고 마지막에 전원을 주제로한 시리즈물을 계획하고 있을 때
병으로 프랑스에서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At Harvest Time (1880)
Gathering Potatoes (1879)
Portrait of Sarah Bernhardt (1879)
Flower-seller in London (1882)
5.
레옹 오귀스튼 레르미트 (1844―1925, Léon-Augustin Lhermitte)
교사였던 아버지가 아들의 그림을 당시 에콜 드 보자르의 교장에게 그림을 보여주자
교장은 그의 재능을 알아채고는 600프랑의 장학금과 파리 미술학교 진학을 제시합니다.
파리로 온 레르미트는 친구들과 함께 지냈는데, 그 친구들 중에는 로뎅도 있었다고 합니다.
에콜 드 보자르에서 공부하는 동안 살롱에 처음으로 출품하여 3등을 수상하여
그의 나이 19세에 당시 파리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살롱에 입상한 그해 레르미트는 브르타뉴 지방에서 몇달을 보내면서
그 지방의 문화와 의상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흠뻑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 5년 동안 때때로 브르타뉴 지방을 찾아가 그 곳의 모습을 화폭에 담습니다.
그는 바르비종파의 영향안에서 자기의 예술을 개화시켜 갔지만,
특히 밀레에게 감화되어 심취합니다.
그러나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숭고함, 엄숙함을 가지고 그린 밀레와 비교하면,
그의 작품은 이야기적 분위기가 있어, 목가적이고 감미로운 감상이 감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시의 브르조와의 목가적 전원에 대한 동경을 만족시키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게다가 밀레보다 한세대 젊어 모네와 거의 동시대를 살아 있었기 때문에,
인상주의의 색채와 터치의 영향을 받아 조심스럽게 채용하여 색채는 밝고 활기가 넘칩니다.
The Harvest
A la fontaine (1914)
The Gleaners (1901)
Repos pendant la fenaison
*
고흐가 편애했던 작가들입니다.
고흐는 저 작가들의 작품에서 뭘 배우고 따라하면서
어떤 것들에 감동받고 어떤 시도를 했을까요;?
맞춰보세요~ ^^;
첫댓글 공부 잘 했습니다 계속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필요하시면 제 글은 언제든지 삭제하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