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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지 않은 영상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 작은 로봇을 몸 안에 넣어 그 안을 직접 볼 수 있는 세상이 멀지 않아 보인다. | |||||||||||||||||||||||||||||||||||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한정된 지각을 넘어 '봄'의 영역은 확장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의 보이 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 것을 보기 위한 기술 덕택으로 우린 이제 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 |||||||||||||||||||||||||||||||||||
우리의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은 쉴 새 없이 변화하며 사람의 눈길을 끌려 노력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각종 매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많은 정보는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소화시킬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이제 자연스럽게 외면하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 중에는 아침의 하늘 색이나 가족의 아름다운 마음 말고도 우리의 삶 속에 너무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있어 보이지 않게 된 삶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하늘에서 가볍게 눈이 내리면 그것에 맞아 다치는 사람은 없다.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하루 하루의 가벼운 일들은 이런 눈처럼 가볍다. 크게 기억 나지도 심각하거나 의미가 있지 않는 눈들이 계속 내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신의 무게에 눌리고 눌려서 커다란 덩어리-빙하가 된다. | |||||||||||||||||||||||||||||||||||
하루가 시작되면 꿈을 꾸느라 다른 사람이 되었던 몸을 샤워기의 따스한 물 아래서 추스르며 건축가로 돌아오고 또 하루 질문들이 시작된다. | |||||||||||||||||||||||||||||||||||
그 시작은 기억 나지 않지만 질문하지 않고 지나간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동안의 질문들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중요하거나 의미 있던 질문들이 있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물이 투명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연세대 뒷 산의 나무 잎은 몇 개 일까?' 와 같은 주변에 대한 호기심에서, '왜 건물을 사고파는 단위는 부피가 아니라 면적(평)일까?', '왜 형인 내 방은 동생 방보다 큰 걸까?', '도시와 건물의 중간 영역은 어떤 모습일까?', '건물은 자연을 닮을 수 없는가?' 하는 조금 더 건축적 질문도 있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약하고 한정된 존재다. 몸을 넘어 빨리 달릴 수도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다. 보는 것에 관해서도 이러한 한계는 똑같이 존재한다. 우린 너무 먼 것을 볼 수 없고 너무 작은 것 또한 볼 수 없다. 벽 뒤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든 피부와 근육으로 숨겨진 사람 몸 속은 더욱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호기심과 필요에 의해 먼 곳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유리를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고 아예 너무 멀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볼 수 전파 망원경을 생각해 냈다. 선명하지 않은 영상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 작은 로봇을 몸 안에 넣어 그 안을 직접 볼 수 있는 세상이 멀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은 쉴 새 없이 변화하며 사람의 눈길을 끌려 노력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각종 매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많은 정보는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소화시킬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이제 자연스럽게 외면하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 중에는 아침의 하늘 색이나 가족의 아름다운 마음 말고도 우리의 삶 속에 너무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있어 보이지 않게 된 삶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하늘에서 가볍게 눈이 내리면 그것에 맞아 다치는 사람은 없다.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하루 하루의 가벼운 일들은 이런 눈처럼 가볍다. 크게 기억 나지도 심각하거나 의미가 있지 않는 눈들이 계속 내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신의 무게에 눌리고 눌려서 커다란 덩어리-빙하가 된다.
이 덩어리는 더 이상 눈이라기보다는 얼음에 가까워 진다. 이 빙하에 그 큰 타이타닉 호가 부딪치면 가라 앉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하루 하루는 아주 가볍고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 당연한 것들이 오랜 시간 쌓이고 사람들의 그것들이 모이면 우리가 사는 굳건하고 고집 쎈 세상이 된다. 이 보이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그 것들을 내 건축 속에서 녹여 내는 것이 내가 건축가로 살아가는 이유이고 기쁨을 느끼는 이유다. 하루가 시작되면 꿈을 꾸느라 다른 사람이 되었던 몸을 샤워기의 따스한 물 아래서 추스르며 건축가로 돌아오고 또 하루 질문들이 시작된다. 그 시작은 기억 나지 않지만 질문하지 않고 지나간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동안의 질문들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중요하거나 의미 있던 질문들이 있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물이 투명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연세대 뒷 산의 나무 잎은 몇 개 일까?' 와 같은 주변에 대한 호기심에서, '왜 건물을 사고파는 단위는 부피가 아니라 면적(평)일까?', '왜 형인 내 방은 동생 방보다 큰 걸까?', '도시와 건물의 중간 영역은 어떤 모습일까?', '건물은 자연을 닮을 수 없는가?' 하는 조금 더 건축적 질문도 있다.
하루하루 너무 연약한 살얼음 위에서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중이니 자신 있게 할 말은 없다. 다만 학생을 가르치며 또 사람들과 만나며 점점 반짝이는 눈과 호기심을 발견하니 어려워진 것은 항상 아쉽다. 한 5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어린 아이가 땅에 떨어진 죽은 매미를 손 위에 올려 놓고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해하는 아이의 손을 본 엄마는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만지면 안 된다고 아이의 손에서 죽은 매미를 쳐냈다. 그 아이의 실망한 눈빛과 놀란 엄마의 얼굴. 우린 매일 신기함의 세상과 만난다. 그것들이 경이의 눈으로 보고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은 순간 머뭇거리면 그 날은 지나간다. 또 신기함에 가득 찬 다른 이의 세상을 눈을 열지 않고 외면하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영원히 닫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아침이 되면 우린 새로운 세상을 기꺼이 만나야 되고 다른 이가 보여 줄 것을 기대해야 한다.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호기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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