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이 허접한 붓 쓰는 거 못 봤고
명장이 싸구려 악기로 연주하는 일은 결코 없더군요.
지난주에(5.12일) 태어나서 처음 개인큐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십여년 전 쯤 한참 당구를 칠 때에도 개인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개인큐라는 것이 하우스큐 중 손에 익은 것을
당구장 주인의 배려로 네임택 붙여서 큐장에 넣어주는 정도였으니
이번에 마련한 것이 처음입니다.
구슬모아에 두 번째로 들렀을 때에
클럽 회원들의 태도나 분위기에서 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력 여부를 떠나 다들 진지하고 예의를 갖추어 게임에 임하는데,
공을 치다말고 큐가 마땅치 않아서 이 큐 저 큐를 다시 골라보고 하다가
나의 이런 아이큐 모자라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로또님께 개인큐를 하나 부탁했습니다.
사실 어떤 취미든 좀 제대로 할려면 장비를 마련하쟎습니까?
탁구를 친다 해도 탁구라켓을 사고, 테니스를 쳐도 테니스라켓을 삽니다.
볼링을 쳐도 웬만큼이 되면 하우스볼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 볼을 장만합니다.
실제로 위의 취미들은 개인 장비를 마련해야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주색”을 제외한 “잡기”쪽에 밝은 편이라서
위에 언급한 잡기들도 당구만큼 즐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취미를 위해서는 장비들을 마련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에게 꼭 맞도록 튜닝까지 해서 사용하면서
당구는 여태 맨땅에다 머리 디밀며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하긴 여태라고 해 봐야 대학 졸업하고 24년 만에,
그 무렵 함께 당구에 몰두했던 고교동창을 만나
뒤늦게 다시 손대기 시작한 금년 초부터의 일이긴 합니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44B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 날 하루 새 칼을 휘둘러보고 생각했습니다.
나만 이럴게 아니라 친구에게도 개인큐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새 큐는 친구에게 선물을 하기로 하고 저는 중고를 하나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마자 바로 “직거래장터”에 55B를 중고로 처분한다는 글이 올라와
앞뒤 가릴 것 없이 연락을 하여 구입했습니다.
55B를 인수 받는 날(5.15일) 저는 친구와 구슬모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인수받는 큐에 대한 궁금함....친구가 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려나...
그런 여러 가지로 좀 들떠서 클럽에 들렸겠지요?
인수받은 큐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상대가 더러워져 있어서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로또님께서 깨끗하게 손질을 한 후 살펴보시고 상태가 좋다는 말과 함께 건네주셨는데
그 때는 이미 새 큐가 되어 있었고 그립부분에 50g짜리 볼트로 튜닝이 되어 있어서
무게감도 제게는 안성맞춤이었지요.
문제는 친구에게 44B가 안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가불 둘 중 하나를 처분해야하겠는데
중고로 구입한 것을 또 처분하기는 그렇고 차라리 새것을 처분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제게 개인큐 “더블오비”가 장착되었습니다.
그 무슨.....풀빵(Plus 5)이나 송곳니(Longoni)나 알다마(Adam) 같은 명검의 반열에 오르는 보검은 아니더라도
제겐 참 신통한 물건입니다.
연필 바꿨다고 갑자기 공부가 잘 되어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스트로크는 성질대로 내지를 수 있고
클럽에 가서 게임 전에 먼저 큣대찾아 삼만리 안 해도 되어 면목이 섭니다.
상대의 브릿지 부분이 아직은 좀 두텁다 싶어 손을 좀 봐야하는데
그거야 끄루또이님의 "큐깎던 노인"을 찾기만 하면 해결될 일이고
하루속히 은둔고수를 만나 싸부로 삼고
무림비급 "오와반"이나 "제각개박살"등을 익혀 그간 맺혔던 한을 풀 일만 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부탁합니다.
당분간 저 만나면 꽁꽁 감추었던 비장의 초식으로 박살내 주시기 바랍니다.
포경수술은 아니지만 아픈만큼 성숙하는 법이니 호되게 당할 수록 절치부심하여
일취월장 할 수 있으리라 싶습니다.
첫댓글 자작나무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림고수는 아니지만 언제든 함께 초식을 나눠보고 싶네요~ 기대하겠습니다~^^*
어제의 게임에서 느낀 바가 많습니다. 하연사랑님의 플레이를 보며 생각한 점을 글로 올릴까 하는데 괜챦겠지요....?
연필 좋아고 공부잘하는것은 아니지만 저도 하우스 큐로만 24년하고 8개월을 치다 얼마전 플파를 구입해 당구를 즐기는데 괜히 비싼큐를 쓰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구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는걸 느꼈습니다..
명품 소장자 대열에 오르셨군요. 명불허전이라고 괜히 이름났겠습니까....? 플파...얼굴 이쁜 것이 성질까지 끝내주니 여자라면 어떻게든 사귀고도 싶을 터....
그나저나 11월님은 당구를 참 일찍 시작하셨네요....대개는 젖은 떼고 큐를 잡는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작나무 박살난 장작개비에 다치는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근래의 집중적인 손풀기로 제가 좀 까칠해져가고 있거든요.
연필 깍고.....다듬고....광내고...하는것 배우실 차례이신것 같습니다...............좋은 연필은 아끼고 관리를 ..직접 하실줄 알아야 겠지요............
동감입니다. 다른 건 제가 다 합니다. 이제 큐에 대해서도 살피고 다듬을 줄 알아야 도리일 것 같습니다.
저도 큐마련하구 실력이 많이 향상됐는데 이제 자작나무님은 무적이 되지않을까 싶네요.. ^^
하하하...무적은 커녕 더 많은 적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요즘 클럽이 문제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음, 예전에 하나코비 와 내가 놀던 중국의 중원 무협시대도 아닌데, 연장이나 초식 이야기가 나오고, 이런 야그는 동양에서나 있는 야그인데, 영국여왕에게서 자작 직위를 받은 서양인까지 당구 초식 과 연장을 이야그하니. 가~히 ~ 전국 춘추 시대인 것 같군요....... 나는 공용시대로 돌아가야지........... ~홍보~ 나는 우리 아들래미가 당구 큐를 선물 합디다...... 부럽지요.... 자작님
헐.. 전 언제 울딸레미가 커서 큐선물해줄까여..? ㅠㅠ
저도 울 아들래미가 크면 반드시 당구를 가르쳐서 환상의 복식조를 이루리라 작정했었는데....이제 고등학생이기는 한데, 여기에 있지를 않아 원통할 따름입니다. 펜션님의 염장샷....타격이 큽니다.
참고로...예랑의 따님 이름이 -예람-입니다.................... 예람이의 이름이 구슬모아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내공이 장난이 아니십니다.....^^;
장난이 아닙니다...에...........1표.....
장난입니다에 ...... ............1표......
장난을 좋아합니다에....올인!ㅋㅋ
글구 어제의 첫게임....모짤님 뒷공, 정말 장난이 아니었던 거 기억나세요...?
오늘은 게임칠 기회가 없었네요...다음엔 꼭 한수 배우겠습니다~!!
배우는 건 저구요....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예전엔 배울만한 분을 찾느라 당구장 원정까지 다녔는데 여기는 고점자들이 그냥 들 있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키보드가 좋으면 이렇게 글을 잘쓰실수 있는지여~~~ ㅡ,.ㅡ 자작나무님의 필력은 대단하시고 내공이 느껴집니다... 자작나무님께서 분양하신 44B는 제가 잘 길들여서 보검으로 만들고저 하오니... 자작나무님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신 친구분에 대한 서운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셨으면 합니다...
인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친구는 당구에 있어서 늘 저보다 두세걸음 앞서 있는 친구입니다. 물론 게임을 여러번 하다보면 혹간 제가 이기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승부를 떠나 공을 다루는 여러 경우와 스타일에 대해서, 또 경기를 풀어나가는 흐름속에서의 집중과 선구에 대해서 등 어쩌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간격을 느끼게 하지요. 즐당님도 저의 그 친구처럼 충분히 당구의 매력을 즐기시리라 기대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