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6반 기억시.hwp
2학년 6반 전현탁
행복
엄마의 전화,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였죠.
“편지 봤어?”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이상하게도 편지를 꼭 쓰고 싶었다는 엄마
<듬직하게 잘 커 줘서 고맙고 엄마는 네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
난 그냥 “응”, 하고 말았지만
알아요, 난 알았어요, 엄마!
내가 엄마의 행복이란 거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잖아요, 하하하!
그때만 해도 누가 알았을까, 우리 엄마가
“행복은 이제 끝이다, 이놈아.”
팽목항 칠흑 바다를 향해 울부짖게 될 줄을
내가 친구들과 함께 수 천 수 억만 개의 별들 중 하나가 될 줄을.
누나와 함께 간 중앙동 맛집
아빠도 불러내어 300미리 큼직한 내 운동화 산 가게
엄마의 상쾌한 손 살금살금 들어와
내 몸 어루만져 아침잠 깨우던 이불 속엔
난 이제 없답니다,
그럼 전 어디에 있냐고요?
별은 너무 아득히 멀기만 할 뿐이라고요? 만질 수 없다고요?
바보 같은, 사랑하는 엄마, 누나, 아빠!
아득히 멀기에 별은 모든 걸 환히 본답니다.
우리 세탁소 문 다시 열리던 날
영영토록 닫혀 있어라 했던
엄마의 행복, 누나의 행복, 아빠의 행복의 문도
참 이상하게도 찬연히 열리지 않았나요?
그렇게 행복의 문 열릴 때
‘착한 아이’는 분명 거기 있을 거예요
그것만이 현탁이의 더 없는 행복
그것 외엔 아무 것도 없답니다, 하하하!
2학년 6반 정원석
눈부셨어요
“우리 막둥이 천재 판사 정원석!”
내 귀에 엄마 목소리 쟁쟁해요
어둔 세상 밝게 비추는 사람 되라는
엄마의 곱고 곧은 바람도
하늘과 바다 사이로 마냥 쟁쟁해요.
온종일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
부은 종아리, 뭉친 어깨, 손가락 마디마디 마사지 하노라면
우리 아들 오늘 힘들었지? 엄마의 얼굴
눈부셨어요.
열여덟, 열일곱, 열다섯, 열세 살 많은
키 큰 느티나무 같은
승재 형, 승희 누나, 영주 누나, 은정 누나 올려다보면
참 좋았어요! 눈부셨어요.
참소반 보쌈집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누나 부츠 선물 사러갈 때
빗속에서 파지 줍는 할머니 도와 손수레 밀어 갈 때
배고프다는 친구에게 주먹밥 사주러 교문 밖을 몰래 나설 때
아, 그리고 내가 사온 보쌈에 맥주 한 잔 하는 엄마와 형과 누나들!
밤의 원고잔 공원 팔각정 마루
가만히 누워 팔베개 하면
나를 눈부시게 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나를 빛나게 한 별의 사람들이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2학년 6반 최덕하
여리고 착하고 섬세해서였던 거야
“배가 가라앉고 있어요.”
119로 보낸 SOS로
백일흔넷 귀한 생명 구했다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안 했다
구조 신호 젤로 먼저 보낸 건
원래 겁이 많아서였을까? 정말?
늘 엄마 안아줘, 아빠 안아 줘 했지만
중국 여행 3박4일 동안
혹 일행에서 떨어질까 봐 긴장해
세수도 않고 옷도 입고 잤다지만
멋진 경호원이 장래 희망이라고도 했던 너였잖아.
여리고 착하고 섬세해서였던 거야
누나의 향기, 어깨까지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
고소하고 달콤한 엄마의 품 냄새는 폭 잠기도록 깊고 아득했겠지?
김이 서린 목욕탕에서 아빠 등 밀어줄 땐 또 어땠고?
초등학교 졸업식 날
동네 중국집 정원각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가슴이 아려오는
그 이상한 기분도 그래서였던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누나와 둘러 앉아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과 만발한 이야기꽃과 웃음소리 그 모두가
여린, 착한, 섬세한 네가 있어 더 정겨웠던 거야.
2학년 6반 홍종영
홀로 서서
하느님이 한꺼번에 내려주셨다
형 종영과 동생 종인, 쌍둥이 형제
왜 그리도 빨리 하늘로
형을 데려갔는지
하느님의 뜻 알 순 없지만
난 형이 내 형인 게 좋아
형과 내가 다른 고교에 배정되었을 때
형은 말했어, 아쉬워하는 엄마에게
형과 나는 서로의 분신이라고, 멀어지는 건 절대 아니라고
나도 형도 홀로서기가 필요한 때라고
이토록 홀로 외로울 땐
형을 생각해, 형의 꿈을
싸움 거는 중딩들
더 센 힘으로 제압하기 싫어
정말 강한 사람 되고 싶어
주먹질 발길질 맞기만 한 형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렇게 홀로 선 형의 꿈은 법관
누구든 자유롭게 꿈을 펼치고
누구든 차별 받지 않는 평등의 세상을 꿈꾸고 꽃피울
멋진 법관
난 형이 내 형인 게 언제까지나 좋아
자랑스러워,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이제 난 알 것 같아, 형
우린 이렇게 홀로 섰지만 이렇게 하나란 거!
2학년 6반 황민우
내 맘 속의 별들
겨울비 오는 날 태어나
열일곱 살, 푸른 바다에서 푸른 하늘로 떠났다.
안산 와동 할아버지 댁
아빠와 고모와 영림 누나와 유림 누나 기다리는 나
여섯 살 때 떠난 엄마 구 년 만에 처음 만나러 가는 나
그립다
먹고 싶은 것 맘대로 먹으면 큰 탈 나는
나 위해 할머니가 차린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
우리 민우 잘 한다, 운동회 날 학부모들 틈에서 고모가 흔드는 손
통통한 내 어린 얼굴 예쁘다고
만두, 만두, 황만두, 놀리는 누나들의 손뼉, 웃음소리
그립다.
와동 초등학교 와동 중학교 그리고 단원고
축구가 좋고 격렬한 운동이 좋고
숨 몰아쉬며 땀 흠뻑 흘리는 때도
좋았지만, 무지무지 상쾌했지만
강원도 삼포 해수욕장 끝 모를 모래밭
마트, 식당, 백화점이든 어디든
아빠와 같이 세상 속을 걸을 때만큼은 아니었어요,
아빠가 최고였어요, 그리운 아빠!
내게 아이유는 노래했죠
‘내 맘 속에 넌 살아있는 별’이라고.
나 민우 맘속의 별들이 누군지 말하진 않겠어요
가만히 바라만 봐도 이젠 모든 것이
별처럼 너무나 명백하니까요!
윤지형 약력
1957년 대구 출생. 교육과 교사와 학생과 시의 진실에 관한 몇 권의 책을 펴냈다. 부산의 고층 아파트 사이 저 멀리로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해강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배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