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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 31헌병전우회는 5월7일 토요일과 8일 일요일로 이어진다.
밝은 모습으로 통영 퀸모텔에 집결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모습에 손을 잡고 반갑게 환담을 나누었죠.
큰사모님, 국선배사모님, 정보균,이한중,최춘호,오길환가족까지 모두 10명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오승룡 선배께서는 가사형편에 의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전하지만 가을에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통영여행은 이순신공원,동피랑마을,중앙시장,미륵산케이블카,유람선(제승당),박경리기념관을 둘러볼 계획이다.
통영시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 통영(統營)으로 선조37년(1604)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영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한다.
또한 충무시(忠武市)의 본 지명은 통영군이고,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 하였으며, 1995년1월1일 충무시 통영군을 통합, 도농복합형태의 통영시가 됐고, 현재행정구역=1읍 6면 8동(법정17동) 59,173세대 138,883명(남 70,154명/여 68,729명)이다.(통영시홈페이지 4월말현황 자료참고)
통영 강구안 부근은 무척 분주하여 차량이 움직이는데 애로가 많았다.
우리 일행은 이순신공원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전망좋은 해안산책로[통영 이순신공원]은 처음부터 오르막길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통영시 정량동 망일봉 기슭 바닷가에 이순신 공원은 통영지역의 이충무공 유적지와 한산대첩에 대한 역사교육을 위해 꾸며져 있었다.
이순신공원(구, 한산대첩기념공원)은 통영시의 대표적인 성지로, 1592년 8월 14일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해상주도권을 다툰 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대파함으로써
해상주도권을 장악하여 식량보급로를 확보하고 수륙병진작전을 전개하려던 일본 수군의 전의를 상실케 한
임진왜란의 최대승첩지인 곳이다,
성웅 이충무공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거룩한 호국의 얼과 높은 뜻을 선양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동상은 청동으로 만든, 높이 17.3m의 동상이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숲으로 가는 산책길과 바다로 내려가는 오솔길 나무숲사이로 바라다보는 바다의 풍광은 신선이요 절경이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는 “필사 즉생 필생 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살기를 꾀하며 싸우면 죽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어록이 새겨져 있다.
천자총통(天字銃筒)은 임진왜란 청동주조로 만들었으며 대첩시 큰 전과(戰果)를 올린 무기로서. 사거리는 900~1200보(1.6~2.1km)라 한다. 동상앞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과 바다가 맞닿아 정말 아름다운 풍경으로 시원한 바다바람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을 즐기며 산책하는데 참 좋았다.
바닷가로 내려가면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바라보며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바닷가는 모래밭이 있어 여름에는 수영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산도를 바라보며 세상만사 잊어버리고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심신에 좋을 듯 했지만 뒤로하고 다음코스를 향한다.
다음코스는 [동피랑마을]이다.
동피랑 마을은 '동쪽의 벼랑'이라는 통영 사투리라고 한다.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던 마을 이었다.
이곳은 이순신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사라질뻔 하였던 마을이 벽화마을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로 인하여 새롭게 변신하였고,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였다.
2년마다 벽화전이 열린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팀의 벽화가 달동네의 벽을 채우게 된다. 벽화 축제를 통해 동피랑 언덕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규모는 부산 감천동, 인천 송월동 벽화보다는 작다.
인파속을 헤치고 다음 코스는 [통영중앙시장]이다.
통영의 양대시장 중 하나인 중앙시장은 퀸모텔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있지만 많은 인파에 시간을 체크하기가 어렵다.중앙시장은 4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시장 뒤편으로는 동피랑 벽화마을과 연계되어 있었고, 바로 앞 바다에는 강구안 포구가 위치해 있으며, 싱싱한 생선과 건어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멍게 2접시와 초장을 들고 강구안 포구로 나가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시장은 많은 인파로 밀려들면서 찾아오는 손님이 귀찮은 듯 친절은 커녕, 눈길도 마주해볼 수가 없었다.
나무젓가락을 구하려고 마트를 묻자 대꾸하기 귀찮은 듯 저쪽으로 가면 된다며 퉁명스런 말투는 관광도시를 지향하는 통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지만 소주한잔과 달콤상큼한 멍게맛과 건배잔으로 밝은 분위기로 이어진다.
강구안 문화마당에서는 마침 통영들꽃축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12회째를 맞는 축제는 야생화에 관심있는 회원분들이 소중히 키워 온 야생화 300여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런꽃이 있을까하며 있는지 조차 모를 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며 전시되고 있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한다.
모텔에서 추천한 영성횟집에 자리를 하였다. 바다를 끼고 있는 통영인 만큼 메뉴로 준비된 생선들은 자연산이며 국산일 것 이라보고 푸짐한 해산물을 맘껏 즐겼다,
이순신공원과 동피랑마을을 돌아보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족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문화마당에서는 한국연예협회 통영지회에서 공연이 있었다. 바로앞에는 강구안 포구에 바닷물이 들어와 넘실대며 같이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함께한 통영에서의 토요일밤은 관광객의 박수와 함께 그렇게 깊어간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돌아서자 통영에서 빠질 수 없는 꿀빵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계획은 내일 오미사꿀빵집으로 갈려했지만 한집건너 꿀빵집인데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유난히도 기다랗게 줄을 서있는 꿀단지빵집에 들러 수제로 빚은 쫀득 쫀득 달꼼한 통영꿀빵의 맛을 본다.
숙소에서 안건토의와 사진등을 배부하고 피곤한 일정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탑승 하려고 줄을 서는 데만 몇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케이블카탑승 예매를 하러 다녀온다. 해물뚝배기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어제 점심의 해물뚝배기맛과는 사뭇 다른 맛을 느끼게 하였다.
깔끔하기도 하였고 반갑게 맞이하며 안내하는 조리사 사장님의 인상도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블카탑승을 위해 갔는데 이미 주차장은 꽉 찼다.
들어가는 입구 도로 양쪽에 1km정도 길이로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리 표를 예매한 덕에 기다림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
인구 13만명의 소도시 통영에 케이블카를 타러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든 비결은 뭘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이곳의 경치다.
탑승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 부근에 오르면 한려수도 등 남해안 절경을 볼 수 있다.
통영의 수많은 섬은 물론 날씨가 좋은 날은 일본 대마도, 전남 여수의 돌산도,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인다고 한다.
2008년 4월 문을 연 통영케이블카(길이1975m) 8인승케이블카 47대가 쉬지 않고 탑승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아름다운 통영항과 그림 같은 한려수도를 품에 안은 통영미륵산 정상에 오른다.
그리 높지 않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하니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산행이 어려운 분이 있으니 배려하는 마음에 우리 헌우 한분 한분께 진실로 감사와 고마움을 갖게한다.
한려수도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통영 미륵산(461m)은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고 한다.
다음코스로 [제승당] 유람선을 타기위해 유람선터미널에 11시 도착하여 차량을 주차한다.
신분증까지 미리 미리 챙겨 두었건만 유람선 출항시간이 13시,
오후 귀가 할 시간을 생각하니 제승당을 다녀오기에는 무리였다.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수군의 본영으로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한산대첩의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정유재란때 원균의 패전으로 폐허가 된지 142년 후 107대 조경통제사가 복원,
운주당 옛터에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친필현판을 걸었다.
나라사랑했던 그 마음은 출렁이는 푸른바다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아남아 조국수호의 영원한 횃불이 되고 있다.
헌병가의 한 귀절이 떠오른다.
‘뭉치면 한마음 나라 힘이다. 참되거라 굳세거라 갈길은 하나. 이 나라를 지켜나갈 육군 헌병이다.’
제승당 유람선 탑승은 좀더 심도있는 준비가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못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일행들께 미안했다.
그래도 부담감을 갖지 않으며 다음코스로 이어지는데 또 한 번의 감사함을 갖는다.
유람선 터미널에서 건어물쇼핑을 하고 발길을 돌려 [박경리 기념관]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였던 박경리. 그의 대하소설 '토지'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민중의 한과 아픔을 그려낸 작품,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긋고 가신 분이셨다.
기념관의 문장비는 알을 깨고 나와 우주 삼라만상을 배회하고 고향 둥지로 귀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다.
경상남도 제9회(2011년) 건축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건물이다고 한다.
그의 문학이 뛰어났던 이유는 단 한번도 '생명'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점이라 한다.
대표적인 소설 '토지',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 생명의 존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사고하는 것은 능동성의 근원이며 창조의 원천이다. 는 글귀가 바로 다가오는 듯하다
박경리 소설가의 흔적은 여러 곳에 있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과 문학공원, 하동의 토지 문학관,
그리고 고향 통영의 박경리기념관 모두 선생의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졌다.
기념관내 마지막 산문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라는 어록이 적혀 있었다.
날씨가 더워진다.
허기진 것이 느껴오니 또 때가 된듯하다.
돌아오는길에 짱어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음식점 밖 탁자에 앉아 커피잔을 들었다.
통영은 더 돌아볼곳이 많았지만 시간의 제약으로 여기서 마무리를 짓고
다시금 가을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올해 5월은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까지 황금연휴로 더 좋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겠지만
31헌병전우회와 함께하여주신 큰사모님, 국선배 사모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좀더 따뜻하게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또한 우리 회원은 물론이지만 가족분들께도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건강하시며 가을에 또 만납시다.
한번 헌병은 영원한 헌병입니다.
2016년 상반기 31헌병전우회
통영을 다녀와서
2016. 5. 10.
오 길 환
첫댓글 이틀간의 만남
너무나 값지고 재미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언제나 건강들 하시구 11월 첫주에 웃는 모습으로 다시 만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