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EdL09krR3k
안부(安否) / 안진경
빨래를 널다 말고
화단 앞 은백의 노인처럼
봄볕이 잘 드는 베란다 창문 앞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그 볕에 스르르 눈을 감으니
어느샌가 나는 다 허물어져 가는
시멘트 담벼락 아래 바람 불면 다시
어딘가 기억으로 유전되어 떠날
운명의 소우주선들을 품은
올망졸망한 민들레 꽃이 됩니다
찬바람 한 자락이 일습니다
유일무이한 그들만의 우주 비행이 시작됩니다
다시 눈을 떠 오늘의 햇볕이 전부인양 계속
앉아 있을 궁리를 하다 손톱깎기를 가져옵니다
끝없이 생겨나는 질문들
없어지지 않을 갈증들
하나씩 톡톡 소리를 내며 끊어냅니다
볕이 좋은 오늘은
차로 쓰려고 말리는 중이던 귤껍질도
아직 다 널지 못 한 빨래도
다 마르지 않은 전생의 기억도
어쩐지 잘 마를 것 같은 날입니다
지금의 나는 이 생의 기억 또한 놓아버리지 못해
어디론가 떠나지 못했던 지난날의 변명도
현명하게 늘어놓을 줄 아는 비겁을 익힌 지 오래입니다
손톱이 톡톡 경쾌한 음을 내며 잘려 나갑니다
잘 있나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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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안부/안진경(영상시)
안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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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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