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갈공명이 천하에 둘도 없는 현인이라는 얘기를 들은 유비는 그를 초빙하기 위해 관우, 장비와 함께 몸소 융중으로 간다. 하지만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한 뒤에, 세 번째에야 겨우 그를 만나 눈물로써 간곡히 청한 끝에 드디어 그를 초빙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조조는 강남을 평정하기 위해 백만대군을 이끌고 남정 길에 오른다. 조조의 선봉 부대가 신야에 이르자 공명은 불과 삼천 명의 군사로 하후돈이 거느린 십만대군을 크게 무찔러 패주시킨다. 뒤이어 벌어진 장판교의 싸움에서 조자룡은 유비의 장자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백만 대군 속을 뚫고 나왔으며, 장비는 장판교에서 단기로 버티고 서서 천둥같은 호령소리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다. |
다른 판소리가 민간 세상의 설화를 재창조한 것인 데에 비해서 <적벽가>는 기존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이 색다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적벽가>(화용도라고도 함)는 나관중이 지은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가운데서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해서 판소리로 재창조한 것이다. 재창조 과정에서 <삼국지>가 새롭게 해석되고 각색되어 원래 <삼국지>에는 없는 부분이 덧붙여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결과로 조조는 비참할 정도의 졸장부로 묘사되어 있고, 정권다툼의 제물이 된 서민들이 반전적인 내용으로 '군사 설움'을 노래하는 대목 따위가 설정되어 있다. 이 대목 역시 체제와는 상관없이 평화스럽고 자유스럽게 살고자 하는 서민들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고 보인다.
<적벽가>의 극적 클라이맥스는 적벽대전 대목인데 이 부분은 <춘향가>의 어사출도 대목과 마찬가지로 유머와 해학적인 사설로 그려져서 긴장감을 오히려 풀어놓고 있다 .적벽대전 뒤에 조조가 화용도로 도망가는 대목도 조조의 망신이 해학적으로 표현되고 극적 긴장감이나 음악적인 밀도감이 적다. 다만 원작에는 없는 '장승타령'이 각색의 효과를 발휘하면서 판소리의 멋을 느끼게 한다.
<적벽가>에서 음악적으로 밀도있는 짜임새를 보여주는 '눈' 대목은 공명이 남병산에 올라가서 '바람 비는 대목'부터 자룡이 활을 쏘아 서성 정봉을 혼내주는 대목까지이다. 이 대목은 빠른 자진모리 장단의 엇붙임이 사설과 결합하는 붙임새가 뛰어난 대목이다. 옛 명창들은 이 대목에서 서로의 기량을 견줄 만큼 이 대목의 연마에 정열을 기울였고 그 더늠을 계발했다는 증언이 조선 창극사같은 문헌과 명창들의 구술에 담겨져 있다.
● <적벽가> 내용 정리
* 연대 : 미상
* 갈래 : 판소리 사설
* 별칭 : 화용도(華容道)
* 문체 : 가사체, 구어체와 한문체의 혼용
* 성격 : 희화적(戱畵的), 풍자적
* 제재 :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 주제 : 적벽대전과 이 전쟁을 주도해 나간 영웅의 이야기
● <적벽가> 이해하기
<적벽가>중 유명한 군사 설움 대목은 적벽가의 원전인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것으로 판소리 창자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와 대치하여 일전을 벌이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적벽 대전의 전야에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설움을 늘어놓는다. 이들의 설움은 고향의 부모·처자를 이별하고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어서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움이다. 더욱이 이들은 다음 날이면 제갈공명의 동남풍을 이용한 주유의 화공(火攻)에 죽거나 부상당할 운명이어서 그 슬픔은 더욱 고조된다.
신재효의 적벽가는 <화용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른 7종의 이본과 비교해볼 때 이것은 독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재창조 과정에 잘 나타난다. 삼국지에서는 전쟁영웅을 빛내주기 위한 장식품 구실을 하였던 일반군사들이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주동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변모되었는데 신재효의 적벽가에서는 이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예를 들면 적벽가의 중심을 이루는 적벽대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신재효는 조조의 심복모사 정욱을 인물의 성격에 가장 두드러진 특성을 부여하였다.
이 작품에는 적벽대전에서 크개 패해 화용도로 도주하는 조조를 정욱이 풍자하고 비판하는 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판소리 사설이 지닌 일반적인 속성과 신재효의 작가의식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창자가 긴 이야기를 소리로 엮어가는 판소리에서 청중의 흥미를 계속 지속시킬 수 있는 길은 희극적인 효과를 적절히 구사하는 데에 있다. 신재효의 적벽가에 나타난 군사들의 말과 행동은 삼국지에 일관된 엄숙하고 숭고한 분위기를 파괴하고 계속적인 희극미를 표출시킨다. 여기에 현실 비판의식이 결합될 때 풍자적 수법은 더욱 두드러지게 되는데 신재효의 적벽가에서는 정욱을 통하여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적벽가에서 이름난 소리대목은 삼고초려, 고당상, 서름타령, 군사조련, 남병산 제단, 자룡이 활쏘는데, 적벽강 싸움, 새타령 장승타령 등이다. 적벽가는 왕후장상이 격돌하는 대목이 많아 엄숙한 발성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음악적 기교보다는 서슬있는 소리라 하여 격렬한 표현력을 구사하는 광대가 적벽가엔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적벽가> 읽어보기
<군사 설움 대목>
[아니리]
군사들이 승기(勝氣)내어 주육을 장식하고,
[중머리 장단]
노래 불러 춤추는 놈 서럽게 곡하는 놈 이야기로 히히 하하 웃는 놈 투전(鬪霜)하다 다투는 놈 반취(半醉) 중에 욕하는 놈 잠에 지쳐 서서 자다 창 끝에다가 턱 꿰인 놈, 처처(處處) 많은 군병 중에 병노직장위불행(兵勞則將爲不幸)이라. 장하(帳下)의 한 군사 전립(戰笠) 벗어 또루루 말아 베고 누워 봇물 터진 듯이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우니,
[아니리]
한 군사 내달으며,
"아나 이애 승상(丞相)은 지금 대군을 거나리고 천리 전쟁을 나오시어 승부를 미결(未決)하야 천하 대사를 바라는데, 이놈 요망스럽게 왜 울음을 우느냐 우지 말고 이리 오느라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 연(然)하여 왈,
"네 설움 제쳐 놓고 내 설움 들어 보아라."
[진양조 장단]
고당상학발양친(高堂上鶴髮兩親) 배별(拜別)한 지가 몇 날이나 되며, 부혜(父兮)여 생아(生我)하시고 모혜(母兮)여 육아(育我)하시니, 욕보지은덕(欲報之恩德)인데 호천 망극(昊天罔極)이로구나. 화목하던 전대권당(全大眷黨) 규중의 홍안 처자(紅顔妻子) 천리 전장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꺼나 기다리고 바라다가,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니 출문망(出門望)이 몇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오는데 의려지망(依閭之望) 몇번이나 되며 서중의 홍안 거래(鴻雁去來) 편지를 뉘 전하며 상사곡(相思曲) 단장해(斷腸解)는 주야 수심에 맺혔구나. 조총(鳥銃) 환도(環刀)를 둘러메고 육전 수전을 섞어 할 제 생사(生死)가 조석(朝夕)이로구나. 만일 객사(客死)를 하게 되면 게 뉘라서 암사를 하며 골폭사장(骨曝沙場)에 흩어져서 오연(烏鳶)의 밥이 된들 뉘라 손뼉을 두다리며 후여쳐 날려 줄이 뉘 있드란 말이냐. 일일사친(日日思親) 십이시(十二時)로구나.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하는 말이 부모 생각 너 설음이 충효지심 기특허다. 또 한 군사 나서며,
[중머리 장단]
여봐라 군사들아 이내 설움을 들어라 너 내 이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남의 오대 독신으로 어려서 장가들어 근 오십이 장근토록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매월 부부 한탄. 어따 우리 집 마누라가 온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 대찰(名山大刹) 성황신당(城皇神堂) 고묘 총사(古廟叢祠) 석불 보살미륵 노구맞이 집짓기와 칠성 불공 나한 불공(羅漢佛供) 백일산제(百日山祭) 신중맞이 가사 시주(架裟施主) 연등시주(燃燈施主) 다리 권선(勸善) 길닦기며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성조조왕(成造 王) 당산(堂山) 천룡(天龍) 중천 군웅(衆天軍雄) 지신제(地神祭)를 지극 정성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신든 남기가 꺾어지랴. 그 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하고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하고 이불청음성(耳不廳淫聲)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십삭이 절절찬 연후에 하루는 해복기미가 있던가 보더라.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혼미(昏迷) 중 탄생하니 말이라도 반가울 때 아들을 낳었구나. 열 손에다 떠받들어 땅에 누일 날 전혀 없이 삼칠일(三七日)이 지나고 오륙 삭이 넘어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모양 방긋방긋 웃는 모양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암잘강 섬마 둥둥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여 감을 사 껍질 베껴 손에 주며 주야사랑 애정한 게 자식밖에 또 있느냐 뜻밖에 이한 난리 위국 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나오너라 외는 소리 아니올 수 없던구나 사당문 열어놓고 통곡재배 하직한 후 간간한 어린 자식 유정한 가족 얼굴 누워 등치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후사(後嗣)를 전해 주오. 생이별 하직하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에 안고 아가 웅아 업어 볼거나.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꾸짖어 왈, 어라 이 놈 자식 두고 생각는 정 졸장부의 말이로다. 전장에 너 죽어도 후사는 전하겠으니 네 설움은 가소로다. 또 한 군사가 나서면서,
[중머리 장단]
이내 설움 들어 봐라. 나는 부모 일찍 조실(早失)하고 일가친척 바이 없어 혈혈단신(孑孑單身) 이내 몸이 이성지합(二姓之合) 우리 아내 얼굴도 어여쁘고 행실도 조촐하야 종가대사(宗家大事) 탁신안정(托身安定) 떠날 뜻이 바이 없어 철 가는 줄 모를 적에 불화병 외는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웨는 소리 나를 끌어내니 아니올 수 있든가. 군복 입고 전립(戰笠) 쓰고 창을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내 거동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루 달려들어 나를 안고 엎더지며, 날 죽이고 가오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이팔 홍안 젊은 년을 나 혼자만 떼어놓고 전장을 가랴시오. 내 마음이 어찌 되겄느냐. 우리 마누라를 달래랄 제 허허 마누라 우지 마오 장부가 세상을 태어나서 전장출세(戰場出世)를 못 하고 죽으면 장부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울지 말라면 우지 마오. 달래여도 아니 듣고 화를 내도 아니 듣던구나. 잡았던 손길을 에후리쳐 떨치고 전장을 나왔으나 일부지전장 불식이라. 살아가기 꾀를 낸들 동서남북으로 수직(守直)을 허니 함정에 든 범이 되고 그물에 걸린 내가 고기로구나. 어느 때난 고국을 갈지 무주공산 해골이 될지 생사가 조석이라. 어서 수이 고향을 가서 그립던 마누라 손길을 부여잡고 만단정회 풀어볼꺼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조조가 관우를 만나 비는 대목>
조조가 하릴 없어 갑옷 벗어 말에 걸고 투구 벗어 손에 들고, 관공전(關公前)에 나아가서 백배 합장 애걸한다.
"장군님 뵈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기체 안녕하시니까?"
관공이 말 위에서 몸을 굽혀 대답하되,
"관모는 무사키로 군사의 장령(將令) 모아 승상을 만나려고 이곳 온 지 오래노라."
조조 울며 비는 말이,
"조조 신수 불행하여 적벽강에 패진(敗陣)하고 혈혈한 이 목숨이 간신히 이곳에 왔사오니, 장군님 장한 의기 옛날 정을 생각하셔 목숨 살려주옵소서."
관공이 대답하되,
"하비에서 패군하고 승상 군중에 갔을 적에 과연 후은(厚恩) 입었기로 안량 문추 목을 베어 백마위(白馬圍)를 풀게 하여 그 은혜를 갚았으니, 오늘 같은 나라 일에 이사폐공(以私廢公) 못하리라."
조조 다시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군전에 비나이다. 장군이 패군하고 소장의 나라 와 계실 제, 청하신 삼건사(三件事)(항우가 하비에서 패하고 조조에게 희망한 세 가지 내용)를 그대로 시행하여 미부인(유비의 첩) 감부인(甘夫人)을 별당에 사처(舍處)하고 천자께 여짜와서 장군을 인견(引見)(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서 봄)하여, 편장군(偏將軍) 한수정후(漢壽亭侯) 작록(爵祿)을 봉하옵고, 능라금수(綾羅錦繡) 금은기명(金銀器皿) 아끼지 않고 바치옵고, 삼일 소연(小宴), 오일 대연(大宴) 객례로 대접하고, 미녀 10인 보내어서 두 부인께 시위하고 비단갑옷 몸에 맞게 새로 지어 올리오며 사주머니 곱게 지어 수염싸개 하였으며, 타 옵신 적토마(관운장이 탔던 준마 이름)도 소장이 드렸삽고, 황숙의 소식 듣고 하직 없이 가실 적에 금포(錦袍) 지어 가지옵고 몸소 가서 전송하고, 오관(五關)에 육장(六將) 베고 동행 천리하실 적에 막은 일이 없사오니 지성으로 하온 일을 장군 어찌 잊으니까."
관공이 대답하되.
"하직하러 수차 갔다 회피패(回避牌) 걸었기로 부득이 떠나올 제 봉금괘인(封金掛印) 하였으니 무슨 말을 그리 하노."
조조가 또 빈다.
"장군님 장한 의기 문독(文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유공지사(庾公之斯) 자탁유자(子濯孺子)들의 일을 모르시오. 일제포 연연하여 고인정(故人情)이 있사오니 장군도 전포(戰袍) 모아 범저(范雎)를 생각하오. 천리마 주던 사람 평생 아니 잊었으니 장군도 적토마 보아 제오륜(第五倫)을 생각하오. 소장 평생 먹은 마음 장군 어찌 모르시오. 황건적 난을 만나 이 몸이 기병(起兵)하여 역적을 소멸하고 천하를 삭평(削平) 후에 이 몸이 죽삽거든 묘비에 새기기를 한고(漢故) 정서장군(征西將軍) 조후지묘(曹侯之墓)라.
소원이 이뿐인데 인심이 무거(無據)하여 천자를 바란다고 지목을 하거니와. 견마(犬馬) 같이 천한 나이 53세 되었으니 인제 산들 몇 해 살며. 풍진(風塵)에 고생하여 이 털이 세었으니. 센 대가리 베어다가 어디다 쓰오니까. 백마진(白馬陣)에 죽을 목숨 장군이 살렸으니. 장군이 살린 목숨 장군 도로 죽이시려우. 태산같은 높은 의기 새알에 다 누르시려우. 맹호같이 장한 위엄 궤상육(궤上肉)을 잡수시려우. 살려주오 살려주오. 소장 목숨 살려주오. 함정에 빠진 짐승 열어 놓아 살리시오. 그물에 걸린 새를 끌러 놓아 살리시오. 명촉달야(明燭達夜)하신 맹세 천지가 증인이라. 만고천지에 독왕독래(獨往獨來)하실 테니 초개(草芥) 같은 이 목숨을 죽여 무엇 하오리까. 장군님 가실 적에 봉서(封書) 중에 하시기를 기유여은미보(其有餘恩未報)는 원이사지이일(願以俟之異日)이라 친필로 쓰였으니 두 말씀을 하시리까. 봉서가 여기있소. 살려주오 살려주오."
손을 싹싹 비비면서 꾸벅꾸벅 절을 하니 비는 짐승 꼬리 같고 죽는 새의 울음이라. 관공의 평생 행세 의중여산(義重如山)하온지라 불인지심(不忍之心) 못 금(禁)하여 말 머리를 돌리시니 주창(周倉)이 옆에 서서 분분(忿憤)하여 여짜오되.
"장군님 오실 적에 조조를 못 잡으면 군법을 당하기로 군령장(軍令狀)을 두었으니 저만 놈의 사정 보아 군령장을 어쩌리까. 청룡도를 소인 주면간사한 조조 목을 콱 찍어 올리라니."
조조가 깜짝 놀라 목을쑥 움츠리며.
"여보시오 주별감님 어찌 그리 유독(有毒)하오. 웃양반의 인심 얻기 하인에게 매였으니 아무 말씀하지 말고 말머리만 돌리시면. 가다가 큰 주막에 좋은 안주 술 대접을 양대로 하오리다."
얼레설레판에 조조와 제장들이 다 살아 도망하니 관공의 높은 의기 천고에 뉘 당하리. 훗사람 글을 지어 관공을 송덕(頌德)하되 조만병패주화용 정여관공협로봉 지위당초은의중(曹瞞兵敗走華容 正與關公狹路逢 只爲當初恩義重)하여, 방개금쇄주교룡(放開金#鎖走蛟龍). 이러한 장한 일을 사기(史記)로만 전하오면 무식한 사람들이 다 알 수가 없삽기로. 타령으로 만들어서 광대와 가객들이 풍류좌상(風流座上) 장 부르니 늠름한 그 충의가 만고에 아니 썩을까 하노라.(성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