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지게꾼
전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단풍을 보고자 해마다 오르는 설악산, 산을 마주하고 서면 그 찬란한 종말에 눈이 부신다. 그 단풍에서 삶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형형색색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그 열정은 나무이든 잎이든 제 한 생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는 이야기다. 과연 나도 나의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을까?
그곳에 단풍처럼 한 생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의 삶은 나에게 큰 충격이면서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작은 거인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 그를 표현한 제목이다. 16세에 부모도 잃고 초등학교 5학년도 마치지 못했다. 불쌍히 여긴 동네 어른들이 설악산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40년 넘게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성인이 된 그를 안타까워하며 이웃들이 소개한 아내는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2급이었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더 심각한 정신장애로 장애인 학교에 맡겨졌다. 그는 키가 160cm 몸무게는 60kg의 빈약한 몸이다. 한번에 40kg이 넘는 짐을 지고 하루에 4번에서 12번 험난한 설악의 산길을 오르내린다. 그리고 받는 월급은 쥐꼬리에서 조금씩 올라가서 지금은 150만 원 정도다.
요즘은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더구나 장애 자녀를 헌 물건 버리듯이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인 아들은커녕 자기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아내를 버릴 수 없었다. 하루는 아들을 장애인학교에 맡기고 나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20만원어치 과자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가서 나누어주었다. 그때 그는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어린 장애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많은 것을 느꼈다. 이후로 자신의 월급을 그들을 위해 통째로 사용하게 되었다. 장애인 학교, 장애인 요양시설, 독거노인 등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생필품을 지원하고 또 필요한 곳에 내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정신지체장애인인 아내의 정부지원금으로만 산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적어도 땀 흘려서 번 이 돈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 베풀면 그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온통 사람들의 손을 기다린다. 엉망진창인 자리 곳곳에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가? 망연자실하여 넋 놓고 앉아만 있었다면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에 옮길 때 기적처럼 힘든 일들이 해결된다. 임기종씨가 몸으로 마음으로 행한 것은 인간 심연에서 우러나온 휴머니즘의 발로였다. 풍요하지도 않고 배움도 적은 그가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 때 그는 뚜벅뚜벅 아름다운 휴머니즘을 실천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임기종의 키만큼 아름다워졌고 그의 몸무게만큼 행복해졌다. 그래서 내가 먼저 변하고 네가 함께 변할 때 세상은 삶의 향기가 난다. 세상을 꽃잎 한 장의 크기만큼씩이라도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멋진 분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