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노예제사회에서는 토지와 영토라는 생산수단은 왕과 귀족에 의해 독점되었다. 또한 신을 요청함으로써 그들은 안정적이고 절대적인 확고한 계급사회를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중세 봉건제사에 이르러 사회 계급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되었다. 중세 봉건제사회는 4세기 무렵부터 14세기 정도까지의 약 1,000년의 기간이다.
중세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계급은 영주다. 영주는 장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영주의 사유지이다. 즉 장원이 생산수단이므로 실질적인 권력은 영주에게 있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장원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산물은 영주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주들은 더 넓은 장원을 차지하기 위해 영주들끼리 분쟁과 전쟁이 빈번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장원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축조했다. 유럽과 중국, 일본에 성이 많은 것은 그들이 중세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성이 없다.
중세는 기본적으로는 고대와 같이 지배자(a)와 피지배자(b)관계가 명확하고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했느냐, 그 생산물을 누가 독차지 하느냐 등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다른점은 a 스스로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세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우주 창조주로서 절대적 지위를 갖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국왕은 신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통치의 권한을 인정받은 존재였다. 그 권한은 성직자가 인정해주었고, 그 대가로 국왕은 성직자의 지위와 교회의 재산을 보장해 주었다. a는 여전히 생산수단이라는 물질적 측면과 종교의 인정이라는 정신적 측면에서 모두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b는 a의 지배에 불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중세는 천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세 후기부터 견고했던 사회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게 변해가면서 중세 계급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의 이유는 상업이라는 경제활동이 생겨나고, 공장이 탄생했던 것이다. 상업은 고대와 중세의 유일의 생산수단인 토지를 이용하지 않고도 부를 축척할 수 있게 했고, 그들은 비교적 지배층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 18세기가 되면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공장 안에서 분업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됨으로써 생산의 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b는 공장을 짓고 그기서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즉, 공장은 새로운 생산수단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생산수단과 생산물이라는 물질적 갖치가 비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로서 권력을 탄생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장이란 생산수단을 소유한 b를 【브르주아】라고 불렀고, 이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 을 의미하며 다른 말로는 자본가계급, 시민계급, 유산계급이라고도 부른다. a가 구권력(봉건제 권력)이라면 공장이란 생산수단을 가진 b의 권력을 신권력이라 표현해 보자. 이렇게 되면 당연히 한 사회 안에 두 권력이 있으므로 충돌하고 갈등이 생겨날 것이다.
공장과 상업으로 부를 축척한 브르주아 계급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했다(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듯 하다).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는데, 구권력이 인정해주 않았기 때문이다. 구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신과 같은 이론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신권력은 정치사회 참여를 확보해주는 신을 대신할 이론적 무기가 필요했다. 왕의 지배의 이론적 토대를 부여해주는 것은 성직자이다. 그러므로 이 성직자를 뛰어넘을 뭔가를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성】으로 완벽히 대체했다. 이성은 신이 독점했던 현실 세계의 설명과 사후 세계에 대한 주관에 대해 충분히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다. 진화론, 중력, 만유인력 등 우주 작동원리와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은 신체 기능의 정지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등등...
결국 브르주아는 왕을 정당화하는 신을 대신할 자신들을 정당화해주는 이성을 성공적으로 세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브르주아 자신들의 정치사회 참여를 보편화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로써 【사회계약설】을 도입했고 이것은 사회가 시민들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며, '왕권신수설'을 대체하는 신 없이 사회를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이제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구권력인 왕과 영주들은 장원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고, 종교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반면 신권력인 브르주아는 공장과 상업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고, 이성으로부터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 이렇다면 두 권력은 충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인류 역사에 가장 중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건인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세력이 구체제의 상징인 정치범 수용소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함으로써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어, 1789년 8월 26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제정되고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짐으로써 중세의 권력 체제가 끝나가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 세상 지성인이면 반드시 그 의미를 알아야할 것이라 생각됨으로 나중에 한 번 포스팅 해보기로 하겠다.
첫댓글 성직자들의 부조리
영주들의 행패,,,,,
유럽의 단두대 역사,,,,
그시절이 아니고
이시대에 살아있음에
감사 할 뿐입니다~~*
루이16세는 예전 단두대의 칼날이
무뎌 숨이 바로 안끊겨 고통이 있으므로
더 날카롭게 개량했는데
그 개선된 단두대의 첫 대상자가 본인 목...
어떤 설에는 루이16세는 독재나
폭압 정치를 할만한 인물이 아니고
우유부단한 좀 내성적고 착한 성격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역사의 평가는 천차만별..
하물며 현실 정치에 대한 시각도 제각각인데